#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2)
스승새끼가 영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래,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온 악몽은 동적인 것이 하나였고 정적인 것이 다시 하나였다.
동적인 것은 문자 그대로의 악몽이다. 특정구간의 기록을 무제한적으로 반복 재생하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기약 없이 쫓기기만 하던 그날의 기억이 끊임없이 되살아나 꿈속에서 반복되는 것. 내가 꾸는 대개의 악몽은 이 동적인 경우에 속했다.
정적인 것은 가위눌림으로서의 악몽이다. 빈도는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꿈꿀 때의 공포감으로는 결코 동적인 것에 뒤쳐지지 않는다. 꾸고 나서 기분이 더럽기도 마찬가지.
가위눌림의 가위는 무서운 꿈 그 자체, 혹은 꿈속에 나타나는 무서운 것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내 정적인 악몽 속의 무서운 것은 원탁에 둘러앉은 제국주의자들의 「태양」이었다.
모든 힘과 진리의 원천을 상징하는 태양. 달리 부르기로는 대홍수를 목격한 인간. 이 인간이 목격한 대홍수란 황금기의 뒤에 찾아온 황혼기, 이 세상에 충만하던 마소와 마력이 우주의 저편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미증유의 재난을 말한다. 그 재난 이후의 이 세계는 줄곧 진리의 빛이 사라진 암흑기를 겪어왔음이라. 이것이 빛과 진리의 원탁이 설명하는 고대의 역사다.
태양의 발견자들은 고대의 유해로부터 심장을 뽑았고 눈알을 파내었으며 골통을 갈라 마른 뇌를 끄집어냈다. 미라화 된 시체에서도 본연의 모습을 보전하고 있었던 세 가지의 생체기관. 최초의 발견자들, 원탁내각의 초대 대의원들은 여기에 초월적인 지혜의 열쇠가 깃들어있으리라 직감했고, 그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나를 코앞에서 마주보는 태양의 눈구멍은 시꺼멓게 뚫린 공허와도 같았다.
「-」
어두운 꿈속에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울림이 가득하다. 웅웅 울리는 소리는 무수하게 겹쳐진 속삭임 같기도 했고 수많은 아기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으며 나를 겨냥한 저주 섞인 탄원 같기도 했다. 이 모든 울림들을 통해 태양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내 눈으로 보는 세상은 본디 네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노라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뇌와 육체의 기계적 오작동에 의한 공포감은 제한적인 이성으로 완벽하게 해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 본능적으로 찾아온 호흡곤란은 오작동으로서의 공포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이루었다.
그래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으므로, 이럴 때마다 나는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조하려 애썼다.
‘길어봐야 사오 분이다.’
삼백에서부터 줄어드는 초를 헤아리다 보면 보통은 영에 이르기 전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영까지 세고서도 깨어나지 못하는 날은 유별나게 운이 나쁜 하루일 뿐. 초를 헤아림은 이 꿈에 끝이 있음을 인지하여 공포감을 줄이는 방편으로서도 유효했다.
「-」
여전한 웅웅거림이 의식의 여백을 파고드는 가운데, 사막처럼 메마른 시체의 냄새가 어두운 공간의 냉기를 머금은 채 꿈꾸는 자의 코끝을 맴돈다. 이 와중에도 빨라진 심장박동과 높아진 혈압의 영향으로 머릿속을 채우는 불쾌한 열기.
몸을 움직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머리가 조금이나마 우측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비록 깨어나려는 시도로서는 미수에 그쳤으나,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용을 쓰고 있으려니 다시금 시동이 걸리려다 마는 육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시도가 연거푸 실패로 돌아간 뒤, 여섯 번째에 비로소 머리가 확 돌아간다.
가위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의 호흡은 언제나 크게 들이쉬는 들숨이었다.
“……후.”
긴 한숨을 토하며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이마를 쓸어 넘겼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잔뜩 묻어났다. 전자시계가 보여주는 시간은 오전 4시 35분. 졸음이 무거워 뒷골이 당기지만, 다시 잠들기는 어려운 새벽이었다. 이럴 때 도로 누워버리면 몇 번이고 가위에 눌리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학습한 까닭이다.
‘그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동적인 악몽이든 정적인 악몽이든, 악몽을 꾸는 횟수는 그저 도망자로서만 살던 시절에 비해 정말로 많이 줄어들었다. 악몽보다는 통제 가능한 자각몽을 더 자주 꾸게 된 것은 덤이고.
다만 인도네시아를 거쳐 본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악몽은 다시금 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마법이 돌아오기 이전만큼은 아닐지언정, 잠을 자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는 충분할 만큼.
몇 번 그러하리라 짐작은 했었지만, 그간 내가 누렸던 수면의 질적 향상은 계속되는 전투에 신세를 지는 부분이 컸던 모양이다.
싸우고 있다는 기분. 무력하게 숨고 도망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그러한 실감이 많이 죽어버린 게 사실이다.
인형술사를 격살하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 바, 나 자신을 비대칭전력으로 만드는 것은 런던공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장에 서도 여전히 귀족적인 소임만을 맡으려 할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은 전투경험을 축적한 나를 실전으로 당해내지 못할 터이므로.
고로 내게는 싸움이 필요했다. 내 영을 담금질하여 날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경험이.
「지난 21일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중국 발 유럽행 화물열차의 탈선사고가 알고 보니 대규모 마적단에 의한 열차강도 사건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주변지역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중국 외교부의 왕린 부장은-」
집무실에 붙은 침실에서 나와 정적을 지울 요량으로 TV를 켜자, 항시 고정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한 뉴스채널은 언제나처럼 혼란이 깊어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무실 의자에 몸을 묻은 나는 자기 전까지 검토하던 전자문서들을 불러왔다. 그러나 피로 때문인지 가위의 잔향 탓인지 문자열에 의식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태양을 마주하는 가위눌림이 악질적인 것은,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눈알을 후벼 파고 싶은 충동이 남는다는 점이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그날 하루가 끝날 무렵까지. 그러한 충동의 근저엔 이질감과 이물감이 있었다. 내 것이 아니라는 이질감과, 그 이질감을 과하게 의식하는 데서 기인하는 강렬한 이물감. 그러니 자연히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어질 수밖에.
이럴 땐 황금기의 눈이 그저 의안일 뿐이라고 자기최면을 되풀이하는 방법이 유효했다.
의식의 초점이 전자문서 위에서 무의미한 방황을 이어간다.
짜증이 치민 나는 리모컨을 들어 시끄러울 정도로 TV의 볼륨을 키워놓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개신교 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신도들에게 영성을 바르게 길러주고 불사암을 막아준다는 카드를 나눠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직접 한번 들어보시죠.」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카드를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무료로 나눠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카드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그 대학, Y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공학박사 형제님이 개발한 것입니다. 이 카드에서 나오는 3D 디지털 파동이 여러분의 영성을 바르게 길러주고 불사암을 막아준다 이겁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깃든 과학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이 종이 한 장으로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는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까지 이 카드를 지닌 사람 중에서 불사암에 걸린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약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가슴 속에 진실 된 믿음이 없는 까닭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시잖습니까.”」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군. 초능력과 불사암이 모두 5G 네트워크 때문에 발생하며 그 배후엔 세계를 암중에서 지배하는 그림자 정부가 있다는 음모론만큼이나 형편없는 개소리다.
세상의 모든 신비주의적 지식들 가운데 황금기의 지혜에 기초한 것들만이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니,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이 황금기를 숭배하는 교조주의자 집단으로 전락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언젠가의 내부교육에서 경태는 내게 이렇게 물어보았었다.
“그 인간들은 왜 그렇게 황금기에 집착한답니까?”
이에 나는 선문답을 하듯 반문했다.
“혹시 태양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예?”
“문자 그대로, 저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다.”
고심하던 경태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같은 자리에 있던 수연과 다른 녀석들도 그저 모호한 표정만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 불타는 천체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떠올려봐라.”
내가 말했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 중력, 자기장, 방사선과 복사열. 이것들로 인해 발생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현상과 생물들의 소리는 크든 작든 태양의 소리를 품고 있는 것이지. 조석력으로 말미암은 파도와 해류, 복사에너지로 말미암은 대기의 변화, 구름, 강우, 강설, 벼락, 그리고 빛에 의지하여 자라나는 생명들 전부와 그 생명들을 잡아먹는 또 다른 생명들 전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듣는 소리엔 항상 얼마쯤의 태양이 녹아있다. 그렇지 않으냐?”
수연이 되물었다.
“그들에겐 황금기가 태양과 같습니까?”
“정확히는 황금기의 진리가 그러하지.”
이때의 나는 원탁의 마법사들이 진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하여 논한 것이었다.
그들의 영혼은 황금기의 중력에 붙들려있노라고.
눈꺼풀의 무거움이 덜어질 즈음이 되어, 화면에 뜬 글자들이 산만하게나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제안에 대한 마르띠네즈 제독의 답신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돌아왔다. 양자 모두가 빠른 진행을 원하고 있었으므로, 서면으로 의사를 주고받으며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시차를 감수하고 근 일주일에 걸쳐 실시간으로 협의를 진행한 것. 내 쪽에선 수연 이하의 비서실과 기조실, 그리고 국제사업부에 전권을 위임했고, 저쪽에선 제독이 거의 직접 나서다시피 하여 의사소통과정에서의 비효율이 없었다.
지금 보는 페이지엔 그 중간경과를 알리는 보고서가 떠있었다.
제독이 이토록 의욕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단순히 밀수사업의 수익에 고무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이는 정치에 간접적으로나마 발을 들였기 때문일까.
보고서를 읽던 나는 어느 대목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제독 역시 사람장사를 하고 싶다 이건가?’
마르띠네즈 제독이 타진해온 바, 그는 무기상에 이어 자국인들에게 해외 불법취업을 알선하는 브로커 노릇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내보내면 그들에게 신분, 송금경로, 일자리, 숙소 등을 제공해주었으면 한다는 것. 우리가 직접 나서도 좋고 신뢰할 만한 다른 브로커를 알아봐줘도 좋지만, 중간에서 받아먹는 수수료는 상식적인 범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이는 단순히 수익구조의 다변화만을 위한 게 아닌, 애국자로서의 제독이 자신의 사명감을 충족시키는 방편이기도 했다. 하는 김에 살길이 막막한 퇴역군인들의 일자리도 얻어주고.
솔직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본디 이번 사안은 내가 아쉬워서 제안하는 것이었다. 물론 제독이 머릿수대로 돈을 받아가기야 했겠으나, 원주민 도망자들의 머릿수가 많지 않은 만큼 머릿수 하나하나에 시세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만 했을 것이었다. 못내 불안요소가 남는 건 덤이고.
그랬던 것이 이제는 관계가 역전되어, 나보다는 제독이 더 아쉬운 소리를 할 처지가 되었다.
제독이 지정한 중간 경유지는 마리아스 제도였다. 보다 정확히는 제도의 북쪽에 자리한 마리아 마드레 섬(Isla Maria Madre). 이슬라스 마리아 연방교도소의 소재지로서, 같은 이름을 지닌 해군 보급선이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바로 그 섬이다.
「제독은 이 제도의 해군사무국이 독자적 작전권을 행사한다는 점과 사무국에 자신의 인맥이 있음을 들어 사업의 보안성을 자신하였음. 또한 섬을 오가는 정기 보급선은 함장이 제독의 계파에 속해있다고 함.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음.」
「재작년 초 연방교도소를 폐쇄하는 안에 서명했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치안의 불안정을 이유로 들어 작년 말 해당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함.」
「첨부 1. 잠정적으로 합의한 수수료 분배비율.」
내 애들이 제독에게 제시한 수수료는 업계 평균과 비교하면 충분히 관대한 것이었다. 만약 중국계 브로커들을 거친다면 비용은 두 배가 들고 서비스의 품질은 절반 이하로 낮아질 터. 전용면적 5평짜리 방에 사람을 열 명씩 구겨 넣고는 1인당 숙박비로만 30만 원을 뜯어가는 짱깨들에 비하면 어느 브로커가 양심적이지 않겠느냐마는.
여하간 제독이 이렇게 의욕적이라면 북미 원주민 도망자들을 빼돌리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이 브로커 노릇이 한편으로는 본인의 지지기반을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겠어.’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주의를 환기한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트레이닝 복 차림의 수연이었다. 사내 피트니스로 가던 참에 TV 소리를 듣고 들어온 눈치였다. 꾸벅이는 묵례를 올리고서 실내를 살핀 녀석은, 나를 잠시 조용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삼키며 이렇게 물어보았다.
“또 악몽을 꾸셨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그냥 일찌감치 눈이 떠졌을 뿐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티가 나나?”
“예.”
“…….”
“커피를 내올까요?”
“부탁하지.”
재차 묵례한 수연이 집무실을 나간 뒤에, 나는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불러들였다. 무서운 꿈을 꾸고서 아직도 잠이 덜 깬 사냥감을 사냥꾼으로 일깨우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