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73화 (173/561)

#20. 열대의 짐승들 (13)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술타나의 별장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며 포로들에 대한 심문 과정을 참관했다. 나를 노린 공격이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알게 된 배후는 대단히 뜻밖이었다.

포로의 실토를 들은 술타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즐리스 무자히딘」의 아래에 있는 것들이 왜 여를 공격하지? 어느 울라마(이슬람 학자)가 여의 죄를 논하는 파트와(교리해석)를 내리기라도 했나? 아니, 그만큼 영향력이 강한 울라마의 선고라면 당연히 여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왔을 터인데…….”

마즐리스 무자히딘, 즉 인도네시아 무자헤딘 평의회는 수마트라 북부 아체 지역에 근거지를 둔 극단주의 이슬람 계열의 무장 테러 단체였다.

하루 만에 입을 연 간부급의 포로는 라스카르 대원이 고문용 전극을 들이밀자 몸서리를 치며 공격의 이유를 털어놓았다.

“당신들이 각성체 호랑이를 사냥했기 때문이다.”

술타나의 눈이 가늘어진다.

“너, 천한 것이 지금 여를 시답잖은 농으로 희롱하느냐?”

“정말이다! 호랑이나 코끼리, 코뿔소 같은 걸 잡는 밀렵꾼들을 사냥하면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준다고 했다! 잡아 죽이는 동물의 값어치가 높을수록, 그리고 그 짓을 하는 밀렵꾼들의 머릿수가 많을수록 엄청나게 늘어나는 현상금을!”

“현상금이라니. 대체 누가 그런 약속을 했단 말인가?”

“나는 모른다! 나도 대장에게서 들었을 뿐이다! 그들이 이번 사냥에 5천억 루피아를 제시했다고! 이거 한 번이면 다들 팔자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그들? 5천억 루피아? 제시?”

5천억 루피아라면 달러로는 3천 5백만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수마트라 일대에서 사람을 쓰는 값을 감안하면 일군을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가.

특히 아체는 실전을 경험한 유휴인력이 넘쳐나는 지역이었다.

그 인력의 출처는, 지금은 해체되고 없는 「그라깐 아체 므르드까(GAM)」다. 과거 아체 독립투쟁을 주도했던 GAM은 전성기에 5만의 전투 병력을 운용했던 민족주의 무장단체 겸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조직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2005년 정부와의 평화협상을 통해 공식적인 해체 및 자치정부 수립을 선언하면서, 아체 지역엔 장기간에 걸쳐 정부군과 죽고 죽이는 혈전을 치른 만 단위의 인력이 풀려나게 되었던 것.

따라서 수마트라 북부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은, 돈만 충분하다면 인력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술타나가 준열하게 요구했다.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라. 최종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네 처분이 결정될 터인즉. 잘만 하면 너 하나만큼은 사지 멀쩡하게 걸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야.”

그럴 리가 있나. 술타나가 입에 담는 건 너무도 희박한 가능성이었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거 아무래도 재수 없게 환경 미치광이들과 엮인 모양인데…….’

내가 아는 한, 호랑이를 살리고 밀렵꾼들을 죽이는 데 수천만 달러를 뿌려댈 미치광이들은 환경 미치광이들이 유일했다. 보통은 급진적 환경주의자라 칭하는 부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환경주의자들은 무기밀수시장과 용병시장 양쪽에서 아낌없이 돈을 써대는 귀한 고객집단이다.

예컨대 후원자의 수만 5백만에 달하는 「세계자연기금(WWF)」은 오래 전부터 제3세계 용병시장의 큰손들 가운데 하나로 통했다. 용병을 고용하고 무기를 밀수해서 환경보호를 위한 준군사조직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대자연의 수호자들은 환경의 소중함을 모르는 무식한 원주민들을 상대로 세계 곳곳에서 고결하기 이를 데 없는 투쟁을 벌여왔다. 부모가 보는 앞에서 열한 살 먹은 자식을 고문하고, 나무껍질을 벗기던 열두 살 소녀를 살해하고, 불에 달군 마체테로 생살을 지져 교훈을 주고, 마을의 집들을 무너뜨리고, 의약품과 식료품 창고를 불사르고, 어민들의 수확을 수시로 강탈하고, 배를 대는 나루터들을 초토화하고, 남성의 성기를 낚싯줄로 조여 괴사시키고, 원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를 막아 기아에 시달리게 만들고, 임산부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들을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등.

이들이 고객으로서 훌륭한 점은 이런 짓들을 벌이면서도 알아서 뒷감당을 한다는 것이다. 대중과 언론의 시선이 워낙에 호의적이고, 초국가적 연대에서 나오는 정치적 영향력도 강력하여 어지간한 사건은 조용히 묻어버릴 능력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무기를 팔든 뒤탈이 없는 상대인 것이다.

이러한 환경 미치광이들의 후원자들 중엔 가진 게 돈밖에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재산이 많은 거부들과, 반쯤 공공기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여러 사회기금의 핵심 관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돈을 써서 차별화된 자존감과 자부심을 얻고 싶은 인간들. 혹은 환경 미치광이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또는 위기감-이 골수까지 스며있는 자들.

그런 대형 후원자들이 마음을 모으면 3천 5백만 달러의 집행자금쯤이야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정부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환경단체, 고래잡이에 반대하는 환경 미치광이들의 함대 「씨 셰퍼드」는, 원양항해가 가능하고 유사시 포경선에 충각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크고 단단한 기함의 구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내가 이걸 왜 기억하고 있느냐면, 이들이 원했던 배가 네덜란드제 초계함이었기 때문이다. 무기체계를 제외한 순수 선체가격만 천이백만 달러이고, 미국 해안경비대를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엄연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군용 선박. 그러니 밀수업자들 사이에서도 흥미로운 가십거리였을 수밖에. 보통은 브로커 노릇 해보기도 쉽지 않은 상품이니까.

이 같은 관심 속에서, 씨 셰퍼드는 천이백만 달러의 구입자금 중 약 천만 달러를 연초의 자선 연회 한 방으로 조달했다. 그것도 여러 후원자들이 삼삼오오 손을 보태어 모은 돈이 아니라, 대형 기관 후원자 하나가 단독으로 쾌척한 후원금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현 기함 「오션 워리어」의 탄생 비화다.

해당 기관 후원자의 정체가 「네덜란드 우편번호 자선복권」이었고, 수주를 받은 회사가 네덜란드의 조선사 「다먼 그룹(Damen Group)」임을 고려할 때 조선사와 모종의 사전교감이 있기는 했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쯤 되는 국가가 수십 년간 이를 갈아온 단체에 거금을 꽂아 넣는 건 여간해서는 하기 어려운 짓이었다.

‘마르띠네즈 제독이 들으면 어처구니없어하겠지.’

꼰뜨라 알미란떼 마르띠네즈.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남쪽 부두로 무기를 밀수할 적에, 몸소 나와서 하역 현장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던 멕시코 해군의 후제독. 그가 무가치한 장식품이라 자조했던 자국의 해상보급선 「이슬라 마리아 마드레」가 바로 오션 워리어의 동형함이었다. 원래 무기체계를 탑재한 전투함이었어야 할 배를 비무장 깡통으로 들여와서는 죄수를 실어 나르는 데나 써먹고 있노라고. 분명 높으신 분들이 뇌물 깨나 받아먹었으리라고.

어쨌든, 돌아가는 사정이 이러하니, 마음가짐 고상한 후원자들이 기꺼이 희사하리라 약속한 3천 5백만 달러는 사실 그리 대수로울 게 없는 평범한 돈이었다. 백 명이 넘는 중무장 밀렵꾼들을 몰살시키는 대가라 치면, 한 사람당 이삼십만 달러 남짓한 가격의 청부살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념과 감성으로 하는 소비는 천금이 아깝지 아니한 법.

“하…….”

심문을 이어가던 술타나가 한숨을 억누른다.

“그러니까, 너희는 습격을 감행하기 직전까지도 흥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로구나. 여가 호랑이를 잡아 죽이는 모습을 기록으로 확보해놓고서, 예상보다 많은 머릿수를 빌미삼아 더 많은 대가를 얻어내고자.”

“그, 그렇다. 대장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증거만 확실하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거라고. 그러니 증거는 많을수록 좋다고.”

“여를 사냥감으로 간주한 것만 해도 치욕스러운 일이거늘, 얼마나 쉬운 상대로 여겼기에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그렇게나 여유롭고 방만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로다…….”

꼴깍. 마른침을 삼킨 포로가 무릎 꿇은 채 술타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아는 건 전부 털어놓았다. 약속대로 날 살려주는 거겠-”

타앙! 포로의 이마에 붉은 점이 찍힌다. 머리통 뒤쪽 바닥에 핏빛의 부채꼴이 펼쳐진다. 열심히 통역을 하던 크툿이 움찔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약속은 한 적이 없노라.”

나른하게 말하는 술타나의 손에선 큼직한 독일제 권총(H&K Mark 23)이 실낱같은 초연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과거엔 무거운 무게로 인해 마니아들만 찾는 상품이었지만, 요즘은 우수한 성능과 탁월한 내구성, 그리고 화력을 강화한 특수탄의 존재로 말미암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권총을 허리춤의 홀스터에 꽂은 술타나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품속에서 담뱃대를 꺼내었다. 분쇄한 담뱃잎을 연통에 채우는 동작이 무척이나 섬세하다.

아무래도 이 애연가가 심란함을 달래는 방편인 모양.

치익! 화르르르-

길이가 반 뼘을 넘는 기다란 성냥에 불이 붙는다. 성냥갑에서부터 나무의 재질에 이르기까지 끽연가들의 주문제작으로 만들어지는 고급 성냥이었다. 성냥머리가 까맣게 타서 구부러지기를 기다린 술타나는 나무에 붙은 부드러운 불을 연통 위에 가져다대고 뻐끔뻐끔 파이프를 빨아댔다. 연통에 든 담뱃잎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음 붙이는 불을 ‘태우는 불(Charring Light)’이라고 부른다. 눅눅한 습기를 날리기 위한 초벌 점화에 가까운 개념. 성냥을 흔들어 꺼서 던져버린 술타나가 이번엔 누르개(Tamper)로 연통 안을 살살 눌러가며 태우는 불의 기세를 죽여 놓는다. 몇 번 더 빨면서 담뱃잎을 건조시킨 꼰대는 새로운 성냥을 그어 다시 한 번 연통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붙이는 두 번째 불을 ‘진정한 불(True Light)’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연통 위를 슬쩍슬쩍 막아가며 파이프를 빨아 화력을 알맞게 조절하면, 파이프 담배의 모범적인 점화가 완료된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 술타나가 한숨처럼 긴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벗이여,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는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더욱이 근래엔 자연을 숭배하는 광신도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는 어제처럼 황당한 조우전이 일상화될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의 돈이 알라의 전사를 자칭하는 꼴통들에게까지 흐르다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환경전사 무자헤딘이라는 개념이 우습긴 합니다만, 아체 근방엔 무기를 휴대한 실업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위장용 간판을 내걸고 브로커에게 추가 수수료를 떼어주는 식으로 자기네 정체를 숨겼겠지요. 알라의 전사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테니 말입니다.”

“한심하구나. 차라리 바다로 나아가 해적질이나 할 것이지. 같은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죽여 양놈들의 돈을 받을 생각을 하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잡것들이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해적질보다는 밀렵꾼 사냥이 더 나은 사업임을 술타나도 알 것이었다. 지금의 해적업계는 지나치게 낮은 진입장벽 탓에 경쟁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었고, 해적퇴치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 또한 하루가 다르게 강화되고 있는 데다, 민간 선사 차원에서도 실효적인 대응책을 마련해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가 경솔하였다. 어제 바로 철수하는 게 아니었어.”

술타나가 뒤늦은 후회를 입에 담는다.

“우리가 무찌른 놈들은 위성통신장비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지. 그럼에도 습격 개시 직전까지 흥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면, 분명 전파가 닿는 범위 내에 의뢰인들을 대변하는 누군가가 있었을 터. 그 인간을 잡았어야 했다.”

“잡는다고 뭐가 달라졌겠습니까?”

“브로커든 전권대리인이든, 산채로 껍질을 벗겨 경고를 전할 수는 있었을 것이야. 손만 잘라 돌려보내도 나쁘지는 않았으리.”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죽어나가는 건 말단들일 뿐이고, 그 배후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싸우는 광신도들이니까요. 경고를 받으면 오히려 전의를 불태울 겁니다. 여기에 꺾을 보람이 있는 대적이 있노라고. 술타나 당신만 피곤해지는 일이지요.”

“…….”

“앞으로의 사냥은 외주를 쓰시는 게 좋겠습니다.”

“벗으로서의 충고인가?”

“동업자로서의 권고입니다.”

“받아들이지 않겠다.”

짧은 정적 속에서 지직지직 담뱃잎이 타들어갔다. 코로 연기를 뭉글거리며 연통을 만지작대던 술타나가, 담뱃대에서 입을 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젓는다.

“받아들이지 않겠다. 여의 백성이 될 자들을 해치는 짐승은 여의 손으로 죽여야 마땅한즉, 그 일을 방해하는 자들 역시 여가 사냥해야 할 짐승의 한 갈래로다. 그 모든 짐승들을 무찔렀을 때, 잠비의 백성들은 비로소 여를 왕으로 우러러볼 것이야.”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나는 설득을 길게 끌지 않았다. 이번이야 기습을 당하여 낭패를 보았어도, 술타나가 사냥에 동반했던 건 술타나의 전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즉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이 꼰대를 화력으로 능가할 상대가 드물다는 뜻이다.

꼰대가 묻는다.

“그대여, 이런 쪽으로 종종 어제와 같은 협력을 기대해도 좋겠는가?”

“가능하다면 해드리겠습니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담배를 좀 줄이시죠. 짐승을 잡아 죽이는 일이야 얼마든지 손을 보탤 수 있어도, 폐암이나 후두암에 걸리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 꼰대의 건강은 무시하기 어려운 사업상의 불안요소였다. 회로구조야 제법 양호하게 굳어져서 불사암 고위험군과는 거리가 멀지만, 통상 시야의 색채를 기준으로 시꺼멓게 물들어있는 폐는 아무리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었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담담한 요구를 들은 술타나 칸드라 키라나는 소리 내어 터트리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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