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9화 (169/561)

#20. 열대의 짐승들 (9)

수마트라 호랑이는 호랑이들 중에서 체구가 많이 작은 편에 속한다. 무게를 많이 잡아도 성인 남성 평균의 두 배 언저리에 불과하니까. 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이 땅의 호랑이 각성체는 멧돼지 각성체보다 오히려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종에 따른 영혼의 차이를 따지기가 무의미할 만큼 생체질량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호랑이 쪽이 월등하게 높았다. 희소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마트라 호랑이의 앞발은 물갈퀴가 있다는 이유로 중국인 약재상들이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는 탓이었다. 호랑이의 기운에 물의 기운이 더해진 귀한 약재라나. 대개의 병환이 열을 품고 있으므로, 물의 기운으로 열을 다스리고 호랑이의 기운으로 쇠해진 몸을 보하면 환자에겐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는 게 그 약장수들의 판촉이었다.

술타나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오늘의 주인공이렷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개체수가 적은 멸종위기종이다. 그러니 하산 유스완다리를 씹어 먹은 녀석 외에 다른 각성체가 포위망에 갇혔을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내가 아는 한, 국립공원 외의 지역에 서식하는 호랑이의 수는 채 2백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암시장 도매상들의 추정치이니 공식적인 통계에 버금갈 것이었다.

그럼에도 엉뚱한 호랑이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확인할 방법은 있습니까?”

“있고말고. 녀석은 울타리의 폐쇄회로를 피하지 못했다. 호피무늬를 대조해보면 알 일이야.”

즉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죽이고 보겠다는 이야기. 그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돈인 동물이면 죄의 유무는 중요치 않지. 경쟁자가 없는 환경이었다면야 개체수를 고려해가며 죽이겠으나,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이 활동하는 상황에선 씨가 마르거나 말거나 잡을 수 있을 때 잡는 편이 이득이었다.

위잉-

하늘엔 여러 대의 드론들이 날아다녔다. 사냥꾼들의 어깨에도 숄더 캠이 하나씩 달려있다. 여기서 찍힌 영상은 감정사들의 손으로 넘어가 각성체의 진위판별에 이용되었다.

술타나는 중간상과 소비자들에게 신뢰 받는 공급자일 것이다.

“한 방에 깔끔하게 죽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흔한 멧돼지와 달리 각성체 호랑이는 가죽마저 비싼 값에 팔린다. 항상 경매를 통해서만 판매되는, 정해진 시세라는 게 없는 귀한 상품이었다. 그러니 가죽의 손상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았다. 구멍이 하나인가 둘인가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달라질 테니까.

“그거 아는가? H&H에서 .800과 .900, 그리고 대망의 1.000 니트로 익스프레스를 준비하고 있다더군. 그들이 새로운 구경의 신제품을 내놓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니트로 익스프레스는 탄종인 동시에 엽총의 규격이기도 하다. 니트로 익스프레스를 쓰는 총이 엽총 말고는 없는 탓이었다.

“1인치 라이플이라. 각성능력자들 중에서도 그걸 감당할 사람은 드물겠군요.”

“사냥에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겠지. 어떤가, 도전정신이 샘솟지 않는가?”

이렇게 마니악한 호승심과 인연이 없는 나는 적당한 대꾸를 돌려주었다.

“뭐, 조금은 그렇습니다.”

어떤 탄종 앞에 붙는 숫자는 따로 밀리미터를 붙이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인치 단위로 계산한다. 그러니 1.000 니트로 익스프레스는 탄두직경이 1인치, 2.54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 탄환이었다. 보통 총과 포를 구경(口徑)으로 가르는 경계가 20밀리이므로, 1인치 라이플이면 더는 엽총이라고 불러주기도 어색할 물건이다.

‘보나마나 실용성은 바닥을 기는 흉물이 나오겠지.’

그럼에도 미학에 도취된 사냥꾼들은 아낌없이 환호를 보낼 터.

콰아아앙!

멀리서 포위망을 조이는 몰이꾼들은 때때로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며 동물들을 위협했다. 확성기로 키운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좁은 면적에 갇힌 각성체들이 서로의 마력장을 느끼며 더욱 광분을 일으킨다. 그 괴력난신들 사이에 낀 일반 야생동물들의 혼란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숲이 온통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

쾅! 콰쾅! 쾅!

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핏빛의 작은 폭발들이 일어났다. 제 실력을 다 발휘한다면 경태가 신들린 듯 휩쓸어야 정상일 게임이었지만, 녀석이 접대축구를 하듯 적당하게 손대중을 해주었기에 술타나는 자신의 흥겨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좋구나, 아주 좋아.”

이렇게 학살을 계속하며 얼마를 더 나아갔을까.

‘저기 있군.’

호랑이는 어느 커다란 각성수 위로 올라가, 커다란 수관(樹冠)이 제공하는 사각지대에 도사린 상태였다. 나는 이 고양이과 육식동물의 교활함에 감탄했다. 나무의 마력장에 자신의 마력장을 겹쳐 존재감을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밝은 갈색의 줄기에 맞게 어딘가의 진흙탕에서 묽은 흙을 잔뜩 묻혀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색조의 차이는 풍성한 줄기와 이파리가 가려주었다. 그리고 나무줄기엔 발톱 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각성체의 힘으로 단숨에 뛰어올라갔을 터. 울퉁불퉁한 땅 여기저기 고여 있는 작은 물웅덩이들은 체구 작은 호랑이가 짧은 구간에서나마 발자국을 숨기기 용이하게 해주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른 후, 앞장서서 나아가던 각성자 길잡이 하나가 코를 킁킁대더니 표정이 진중하게 바뀌었다.

“Semuanya, tetap waspada. Harimau itu baunya menyengat.”

크툿이 덩달아 긴장하며 뜻을 옮겨주었다.

“호랑이의 냄새가 강하게 나니 모두 경계하라고 합니다.”

코가 좋은 사냥꾼이로군.

하리마우(Harimau)라는 단어는 앞서 굿판을 벌일 때도 들은 바가 있다. 분명 파왕 하리마우가 호랑이를 쫓는 주술사라 했었지.

술타나가 다른 사냥꾼들에게 묻는다.

“드론은? 잡히는 게 없나?”

돌아오는 답은 부정적이었다. 추적대상이 빽빽한 수림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흔적을 놓쳤다는 것. 술타나는 작게 머리를 흔들고는 웃음기가 빠진 얼굴로 손짓했다. 학살자들의 대열은 군주의 손짓에 따라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모기가 들러붙어도 함부로 치지 못하고 그저 손을 휘저어 쫓아내기만 하는 조용한 전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호랑이의 위장이 워낙 절묘하여, 내가 끝까지 정상인 흉내를 고수하다간 놈이 숨어있는 나무 아래를 그냥 통과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혹은 나 이외의 사냥꾼들이 너무 늦게 놈의 존재를 알아차려, 치명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겠고.

‘맹수 치곤 왜소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지. 술타나가 죽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는 정도가 아니야.’

놈은 가지 위에 웅크린 채 이쪽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놈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척 나아가다가 갑작스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주면 그만. 내가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이쪽을 주시하던 짐승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노출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로써 사냥감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주면, 나는 일말의 의심도 받지 않고서 자연스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문제는 간격을 얼마나 두느냐다.

커다란 줄무늬 고양이 새끼가 워낙에 잘 숨어있는지라, 대놓고 눈깔병신 티를 내지 않으려면 넉넉하게 잡아도 20미터 선까지는 다가가야 할 터였다. 코가 좋은 길잡이와 그 동료 사냥꾼들이 그보다 일찍 눈치채주면 좋을 텐데. 멧돼지보다 호랑이의 체구가 작아, 내 실력으로는 초탄과 차탄을 백 퍼센트 급소에 꽂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염동력을 쓰자니 지켜보는 눈과 녹화하는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발각당한 호랑이는 십중팔구 도주를 택할 터.

날랜 짐승이 대열 한가운데 떨어지면 사수들은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기도 어렵다. 자칫 짐승이 아니라 사람을 쏴버리는 수가 있을 테니. 기실 도망치는 호랑이의 앞발질이 사람을 해칠 가능성보다는 당황한 사수의 반사적인 대응사격에 불의의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이 식인 호랑이가 도주에 성공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된다. 난 내 부하들이 머물 사업장 근방에 인간 맛을 알아버린 호랑이가 배회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도주한 호랑이는 이번 경험을 소화하여 더욱 교활한 개체로 거듭날 게 뻔했다.

어쩌면, 낮은 확률로, 이 땅에서 제2의 「쁘리즈라크(При́зрак)」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 시베리아 호랑이는 제 목숨을 노리는 헌터들을 잡아먹으며 지금도 제 악명을 차근차근 드높이는 중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내가 일상적인 어조의 한국어로 말했다.

“경태야.”

“예, 형님.”

“쳐다보지 말고 들어라. 11시 방향 약 50미터 지점, 밝은 갈색 각성수 위에 우리가 쫓는 사냥감이 숨어있다. 20미터 거리에서 자극할 테니, 튀어나오는 순간을 노려 한 방에 보내버리도록. 할 수 있겠지?”

“걱정 마십쇼, 형님. 제 이름이 김경태입니다.”

“그래.”

“각성수라고 하셨는데, 나무는 위험요소가 아닙니까?”

“괜찮아. 기껏해야 물안개다.”

“옙. 뒷북치는 사람들 때문에 유탄이 제법 튈 듯한데, 이것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난 걱정할 것 없다. 방탄복에 염동코팅을 씌울 테니.”

“초탄만 쏘시고 바로 엎드리시죠. 수연 누님도 그렇고요.”

“알겠다.”

내 답에 이어 수연도 알았어, 하고 짧게 끄덕인다.

갈색 나무와의 거리는 느리게 걷는 속도로 줄어들었다. 45, 30, 25……. 수관에 몸을 웅크린 짐승은 몸을 긴장시키며 호흡을 길고 가늘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척을 죽이는 짐승 아래를 무지각으로 지나치는 사냥꾼들. 유감스럽다. 뭐가 알리 시까리란 말인가. 표적을 곁눈에 두고서 안력으로 간격을 재던 나는, 이쯤이다 싶은 순간 시선을 홱 올리며 경고성을 내질렀다.

“Harimau!”

시선이 마주친 각성체 호랑이가 벼락처럼 반응했다. 쾅! 내가 쏜 초탄은 뛰어내리는 호랑이의 등짝을 스쳤다. 퍽 하고 흩날리는 피에 젖은 터럭들. 맹수는 움찔거리지도 않는다. 혈관에 도는 아드레날린의 영향. 그러나 굵은 육구가 흙에 닿기도 전에, 내 옆에서 터지는 제2의 총성이 호랑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어깨관절을 부수며 대각선으로 파고든 탄이 폐를 찢어발긴 것이다. 땅을 짚는 다리가 힘없이 풀리고, 호랑이의 남은 몸뚱이는 연체동물처럼 꺾이며 십 수 미터를 거칠게 나뒹굴었다.

악!

호랑이에 치인 짐꾼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른다. 직후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온갖 구경의 총성들. 쾅, 콰쾅, 투타타탕! 예견했던 바, 다수의 사선들이 땅을 구르는 호랑이를 쫓았으므로 바닥을 치고 물수제비처럼 튀어 오르는 유탄의 수가 많았다. 불운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사방의 목피(木皮)들이 바바박 부서져나가는 시점에서, 난 이미 꼰대를 몸으로 감싼 채 자세를 낮춘 상태였다.

콰앙!

꼰대의 총구에서 화염이 번뜩인다. 그러나 내 손이 총열을 쥐었기에 조준점은 일찌감치 하늘로 향해있었다. 얼결에 방아쇠를 당긴 꼰대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총성의 마지막 메아리가 잦아든 뒤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폐가 터진 호랑이가 가로로 길게 누운 채 피를 토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뒤따라 일어선 술타나는 곤혹스러운, 혹은 조금 화가 나는 눈으로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내게 미소를 머금은 눈인사를 보냈다.

“조금 전의 결례는 개의치 않겠노라.”

“……예.”

이 꼰대는 “감사한다.”는 말을 입에 담는 법이 없었다.

소란이 가라앉았을 때 최종적으로 유탄을 맞은 사람의 수는 아홉이나 되었고, 이 중 넷은 상처가 제법 깊어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그나마 급소를 맞았거나 출혈이 심각한 경우는 없어 사망자가 나오진 않을 것이었다.

어찌 보면 손님이 보는 앞에서 망신살이 뻗친 셈인데, 술타나는 부하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놓고 화를 내는 걸 천박한 짓으로 간주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무리 부하라고 해도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건 이 땅에 거하는 윗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아랫사람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아는 상황에선 조용히 눈으로만 꾸짖어도 충분한 것.

잠시 후, 죽은 호랑이를 물로 씻어 수배지처럼 생긴 인쇄지 몇 장과 비교하던 사냥꾼들이 환성을 올린다. 희색 만연한 크툿이 그들의 말을 옮겼다.

“노렸던 호랑이가 맞다고 합니다. 무늬와 흉터가 일치한다는군요.”

“그거 잘 됐군.”

건성으로 답하며, 나는 조금 찌푸린 눈으로 숲 저편 먼 곳을 응시했다. 포위망을 형성했던 몰이꾼들의 일각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던 까닭. 이쪽으로 합류하는 게 아닌, 뒤로 물러나며 좌우로 퍼지는 모양새는 아무리 고쳐 봐도 음습함이 묻어났다.

이 와중에 하늘에 뜬 드론 세 대는 카메라의 초점을 이쪽으로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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