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8화 (168/561)

#20. 열대의 짐승들 (8)

콰앙-!

얼마 만에 쏴보는 것인지 모를 .700 니트로 익스프레스의 총성은 총성과 포성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하는 굉음이었다. 전방 50미터 지점에 줄지어 매달려있던 철판 중 하나가 거센 불꽃을 튀기며 앞뒤로 요동친다. 철판을 묶은 사슬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녹 가루를 흩뿌렸다.

소염기가 없는 고전적인 라이플은 발사시의 번쩍임이 크고 반동이 강력했다. 이러한 구시대적 결점들을 클래식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마니아들의 총기이니 당연한 일.

하여 이 엽총의 반동은 쌀 한 포대가 1미터 높이에서 떨어질 때의 운동량과 맞먹는다. 평범한 사수가 쏘면 총을 놓치거나 뒤로 굴러버리기 일쑤이고, 익숙한 사수라도 한 발 한 발을 쏠 때마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단련되지 않은 자들은 견착한 자리에 멍이 들어서라도 여러 발을 쏘기 어려워했다.

물론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콰앙!

약실에 남은 한 발을 마저 쏘고 총열을 꺾자, 연기를 머금은 황동탄피 한 쌍이 스프링의 힘으로 툭 튀어나온다. 차탄 두 발을 한 동작으로 채워 넣고 잠금 레버(Top Lever)를 되돌린 나는 이번엔 2회 연속 속사를 시도했다.

콰쾅!

서로 다른 격발음이 하나로 뭉개질 만큼 빠른 사격. 두 개의 표적이 강풍을 맞는 그네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내가 노렸던 지점과 실제 탄흔의 간격을 어림해보았다. 기계식 조준기가 없어 총을 사수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수가 총에 적응해야 하는 라이플임에도, 쏘는 족족 눈으로 노린 자리에 정확하게 꽂히는 편이었다.

“놀랍도다.”

칸드라 키라나가 감탄했다.

“여는 각성을 하고 나서도 18파운드 라이플로는 속사를 해내지 못하였거늘. 그대는 빠르게 쏘면서도 표적의 중앙을 놓치지 아니하니, 벗의 기량이 내 예상을 크게 넘어서는구나.”

18파운드는 라이플의 무게를 말한다. .700 니트로 익스프레스를 쓰는 이중총열 엽총의 무게는 어느 회사든 18파운드가 표준이었다.

“약간의 요령이 있을 뿐이지요.”

“어허. 그대가 말하는 약간은 가진 자의 약간이라. 가지지 못한 자에겐 넘보기 어려운 비범함이니, 이는 그대를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의 기쁨일진저.”

여기까지 말한 칸드라 키라나는 내 옆에 서서 자신이 가져온 라이플을 단단히 견착했다. 내가 하는 짓을 보고 호승심이 일기라도 한 모양.

쾅! 총구에서 화염이 번뜩이고, 탄이 표적에 꽂히며 째앵- 하는 금속성 소음이 울려 퍼졌다. 회로 구조가 좋은 각성자답게 가늘고 호리호리한 체구로도 양호한 반동제어를 보여준다.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겨 잔탄을 소비한 칸드라 키라나는, 못내 아쉬운 기색으로 가만히 서 있다가 총을 꺾어 약실을 개방했다.

그러곤 툭 튀어나오는 탄피를 붙잡아 코밑에 가져다 댄 채 스읍- 들이마시는 깊은 들숨.

술타나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돌아온다.

“하, 역시. 굵은 탄일수록 향이 진해져서 좋아. 화약의 초연엔 사람을 고양시키는 무언가가 있도다. 담배와는 또 달라서 아무리 맡아도 질리는 법이 없는 것이야.”

폐 건강에 해로운 짓만 골라서 하시는군.

개머리판을 아래로 하여 약실이 빈 총을 지팡이처럼 짚은 술타나가 턱짓으로 나를 가리킨다.

“시사는 만족스러우셨는가?”

“이런 총은 오랜만이라 적응이 필요했을 따름입니다. 총도 좋고 탄도 좋은데 만족스럽지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지.”

이 순간의 술타나는 자신의 컬렉션이 자랑스러운 마니아였다. 탄이 좋다는 건 박스에 가득한 니트로 익스프레스가 지금은 단종 된 홀란드 앤 홀란드제(制) 정품 실탄이어서 한 이야기. 한 발당 가격이 백 달러나 나가지만 성능 면에선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즉 이는 감성적인 영역의 소비였고, 나는 거래상대의 마니아적 감수성을 건드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대는 그럼 그걸로 결정이라고 봐도 좋은가?”

“예.”

“좋아. 이제 나가면 하루의 마지막 기도를 올리기 전에 돌아올 수도 있겠군. 잡아온 동물들로 만찬을 벌이면 색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이야.”

“……?”

나는 이 골초가 착란이라도 일으켰나 싶었다. 하루의 마지막 기도를 올리기까지 남은 여유가 채 다섯 시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사이에 기도 한 번이 더 끼어있으니 실질적인 가용 시간은 네 시간 남짓이라 보아야 했다.

저 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초원에서 그러하듯,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사냥감을 찾는 방식이면 모를까, 열대 우림에서 동물을 추적해 죽이는 사냥은 단시간에 끝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술타나가 친히 주관하는 사냥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스로를 군주라고 칭하는 사람이 몸소 나섰으면 그 격에 걸맞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와야 하는 것. 아까 말을 꺼낸 식인 호랑이까지는 아니어도,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맹수의 각성체 정도는 잡아줘야 마땅하다. 부하들의 눈이 있으니 비각성체를 잡아서 허풍을 떨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습니까? 난 사냥이 당연히 심야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술타나가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염려하지 말라. 이 사냥은 사실 그대가 오기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인즉. 여가 고용한 알리 시까리들이 벌써 사흘째 주도면밀하게 사냥감을 몰고 있으니, 우리의 역할은 가서 조여드는 포위망의 마지막 탈출구를 닫는 것뿐이노라.”

……그렇게 된 거였나.

술타나는 짚고 있던 총을 올려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여가 이르지 않았느뇨. 훌륭한 군주는 우수한 사냥꾼이어야 한다고. 여는 오늘 하산 유스완다리의 복수를 이루어 군주의 명성을 얻을 것이로다.”

오후의 사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많은 인력을 동원한 몰이사냥은 쫓겨 오는 사냥감을 쏘기만 하면 그만인 게임이었다. 누가 먼저 포착하여 누가 먼저 쏘느냐로 승부를 벌이는, 문자 그대로의 여흥. 그러니 앞서 여흥을 즐겨보자 했던 술타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했던 것이다.

나는 총을 겨누었다.

콰앙!

공중에 뜬 멧돼지의 목이 폭발한다. 옆구리에 혹처럼 불사암 덩어리가 붙은 각성체 멧돼지는, 코끼리를 죽이고자 만든 중량탄의 저지력에 기도가 찢어지고 경추가 박살나서 절명했다. 온 힘을 다해 달리던 각성체가 나무 둥치를 밟고 튀어 오른 관성이 남아, 피를 뿌리는 사체는 쿠궁 쿵 퉁겨지며 비탈길의 바위처럼 쇄도했다.

“Awas!”

전열을 이루던 창잡이들이 기겁을 하며 흩어진다. 창날을 피하지 않는 사체는 짧은 시간이나마 살아있던 시절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쿠웅-!

죽은 돼지는 굵은 고목에 부딪히고서야 간신히 정지했다. 충격으로 떨어진 이파리들이 분분히 흩날리는 가운데, 불사암 덩어리와 가까운 쪽의 다리 두 짝은 순리를 거슬러 미친 듯이 허공을 걷어찼다.

“잘라내라.”

놀란 나무가 진정하기를 기다린 술타나의 지시. 라스카르 대원들이 세찬 칼질로 마력종양을 잘라냈다. 그대로 붙어있으면 계속해서 죽은 본체의 양분을 빨아먹는 까닭이었다. 심장처럼 맥동하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니 발광하던 두 다리가 뒤늦게 시체의 본분을 되찾는다.

이렇게 커다란 혹을 제거했음에도, 멧돼지 사체는 여전히 미미한 마력장의 근원들을 품고 있었다. 체내에도 자잘한 불사암 덩어리들이 존재한다는 뜻. 이를 느낀 라스카르들이 돼지 사체를 짐꾼들에게 넘겼다. 각성자로서의 능력은 대수롭지 않을지언정 마력장을 감지할 수는 있는 짐꾼들이었다. 이들은 짐승의 사진을 찍고 크기와 무게를 측정한 뒤, 가죽을 벗기고 살을 푹푹 헤집어가며 숨어있던 마력종양들을 남김없이 캐내었다.

적출한 종양들은 모두 태그를 붙여 한 바구니에 모았다. 내버려두면 마력만으로도 스스로를 느릿느릿 살찌우는 덩어리들이니, 비상식량으로 삼아도 좋겠고 주술사들이나 중국의 약재상들을 상대로 팔아넘겨도 좋을 것이다.

사실 신선한 배달이 가능한 경우라면 굳이 종양을 제거할 필요가 없었다. 불사암이 붙어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정품인증’인 까닭. 사냥감이 생전에 각성체였다는 증거다.

짐꾼들의 또 다른 역할은 탄약 수송이었다. 각성능력자들이 휴대하는 총기는 탄약 소모량이 많거나 탄약 휴대량(휴행탄수)이 적거나, 둘 중 하나에 반드시 해당하므로, 탄약상자를 짊어진 짐꾼들이 있으면 전투지속력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던 내가 한마디 했다.

“움직이는 게 왠지 불편해 보이는 짐꾼들이 많군요. 몇몇은 땀을 흘리는 양이 과도하고.”

이유는 안다. 몸속에 불사암이 박혀있는 탓이다. 다만 짐꾼들의 유병률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멀쩡한 사람이 열에 하나조차 되지 않을 지경. 술타나가 미소 지었다.

“그걸 알겠는가? 여의 안전이고 또 귀한 손님의 앞이어서 모두가 점잖게 참아내고 있거늘, 벗의 눈썰미는 참으로 섬세하도다.”

“암입니까?”

“그러하다. 일종의 복지사업 같은 것이지. 경증인 자는 수술비를 벌어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중증인 자는 진통제 값을 마련하는 한편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산을 남겨줄 수 있게 해주는 복지사업 말이야.”

불사암의 확산에 따른 의료비 지출의 증가는 선진국들도 골머리를 앓는 문제. 민간 보험사들은 불사암이 기존의 약관상에 포함되지 않은 질병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간단하게 책임을 회피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사암은 오롯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인도네시아는 그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대표적인 국가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 답은 방치다.

술타나는 미소 아닌 미소를 머금고서 말을 이었다.

“이 나라의 의료제도는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로다. 중병에 걸리면 진통제와 해열제나 먹다가 죽는 게 서민들의 평균이었던 나라에서, 불사암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해줄 리가 있나. 저들을 보살필 것은 이제 지역사회의 전통밖에 없으리. 같은 뿌리를 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전통만이, 저 가엾은 병자들의 마지막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야.”

여기서 끝냈으면 훌륭한 애민군주의 역할극이었겠지만, 술타나는 불필요한 말들을 덧붙였다.

“이래서 여와 같은 어른들이 항상 옛것을 소중히 하며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해왔던 것인데, 도시의 젊은 것들은 평소에 어른들의 지혜를 소중히 하지 않았지. 그 어리고 어리석은 세대가 이제라도 전통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좋으련만. 하여간 이게 다 부정함과 음란함과 천박함으로 가득한 서구인들의 문화와 띠옹호아(중국인)들의 배금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생기는 사회적 아노미 현상으로-”

“…….”

정말이지 말이 많은 꼰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술타나의 꼰대스러운 수다에도 의미 있는 대목은 있었다. 이렇듯 낙후된 환경에서는 지역사회의 전통,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압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공공의 질서가 개인의 생존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의 사람들은 매양 혈연과 지연과 학연 등의 사사로운 연대를 강화하는 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흩어진 개개인들이 자신의 생존성을 제고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그런 사회야말로 나나 술타나 같은 사업가들에게 번영을 약속하는 환경이었다.

멧돼지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사방으로 찢어지듯 흐른다. 서로 다른 각성수들이 제각기 구속력을 발휘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Hati-hati.”

가장 앞에서 나아가던 창수가 뒤따르는 이들에게 발아래를 가리키며 주의를 준다. 그 자리엔 수풀에 덮인 곰덫 하나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고장력강을 써서 보통 이상으로 강력한 덫은 중형 각성체라도 어려움 없이 발을 붙들어놓을 함정이었다.

몰이꾼들이 내지르는 위협적인 소음이 아스라이 가청영역에 들어올 즈음부터는 수풀에서 사냥감이 튀어나오는 빈도가 확연하게 늘어났다. 전방의 먼 수풀이 흔들리는 것을 본 사수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콰앙!

술타나의 총구에서 화염이 번뜩인다. 이번에도 터지는 건 멧돼지의 목이었다. 멧돼지를 비롯한 다종의 야생돼지들은, 특유의 번식력과 무거운 질량으로 말미암아 세계 전역에 걸쳐 종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숲에서도 가장 빈번히 마주치는 각성체 사냥감은 역시 돼지들일 수밖에 없었다.

각성체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생포가 최선이고 목을 쏴 죽이는 게 차선이다. 각성체의 머리는 아프리카, 중남미, 카리브, 동남아 등지의 주술사들에게 인기가 많은 까닭. 또 몸통을 쏘았다간 내장이 터져서 많은 양의 고기를 못 쓰게 된다.

그륵, 그르르륵-!

입에 피거품을 문 돼지는, 그러나 단번에 죽지 않고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려 들었다. 이 순간, 콰앙! 울리는 두 번째의 총성. 비틀거리던 몸뚱이가 맥없이 앞으로 꼬꾸라진다. 술타나는 총을 꺾어 여유롭게 탄을 채워 넣었다.

“아주 좋아. 못해도 3백 킬로그램은 나가는 놈이겠어.”

낚시꾼들이 저가 낚은 물고기의 크기를 자랑으로 삼듯, 사냥꾼들 역시 사냥감의 크기와 무게를 자랑으로 삼는다.

아랫것들이 줄자와 용수철저울로 사냥감의 상세를 측정하는 사이, 멀리서부터 어느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술타나는 어느 때보다도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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