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7화 (167/561)

#20. 열대의 짐승들 (7)

각성능력자가 포함된 이들 무리의 정체는 두쿤과 파왕. 즉 주술사들이었다.

공장을 올리거나 유정을 뚫거나 할 때 주술사를 불러 굿을 치르는 건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사에 속했다. 그래서 멋모르는 외국인 사업가들은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슬람 신자가 절대다수인 국가에 무슨 놈의 우상숭배가 이토록 판을 치느냐고.

“시작하라.”

술타나의 지시에 따라,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 주술사들이 굿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보자기로 감싼 소머리를 정면에 놓고 그 앞에 돗자리를 깐 다음, 돗자리 위에 제사상을 차리듯 약간의 음식과 주술적인 물건들을 올린다. 굿을 보조하는 자들이 가야금을 닮은 탄현악기와 대나무 피리를 연주하는 가운데, 늙은 남자 주술사는 노래와 같은 주문을 외우고 중년의 여자 주술사는 두 손을 독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린 채 돗자리 앞에서 괴기스러운 동작을 이어갔다. 뚝뚝 끊어지는 자세 하나하나에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었다.

주문을 외는 주술사는 손으론 정성스럽게 담배를 말았다. 담배에 들어가는 속 재료엔 정체불명의 뼛가루와 짐승의 털 따위가 포함되었다.

“이런 굿판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내가 묻자, 술타나가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예전엔 영험한 주술사 하나를 부르는 데 15억 루피아 안팎이면 충분했지만, 요즘은 시세가 많이 올라 20억 루피아를 상회하더군. 영성이 강한 주술사가 영성이 강한 제물을 준비한다 치면 30억 루피아까지도 호가하지.”

영성이 강하다는 말은 마력장이 크다는 뜻일 터였다. 저기 앞에 있는 소 대가리도 살아생전엔 각성체였으리라는 이야기. 30억 루피아는 미화로 20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렇게 무가치한 주술적 소비가 세계 각성체 사냥 수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은, 마법사로서 보기엔 꽤나 웃기는 현실이었다.

“그럼 지금 이 자리를 준비하는 데엔 얼마가 들었습니까?”

“글쎄. 아랫사람에게 지시하여 여는 잘 모르는 바라. 잠시 기다려보라.”

시종과 몇 마디 문답을 주고받은 술타나가 곧 정확한 액수를 입에 올린다.

“총 115억 루피아가 들었다는군.”

“예상보다 비싸군요.”

“주술사를 여럿 불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호환을 막아줄 파왕 하리마우, 악어를 막아줄 파왕 부아야, 홍수를 막아줄 파왕 후잔, 흰개미와 악한 영을 쫓아줄 두쿤에 이르기까지. 영험하기로 명성 높은 넷을 초빙하는 비용이 115억이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었다고 해야 옳을 일이야.”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닙니다. 비용의 절반은 내가 분담하지요.”

이 말에, 술타나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벗이여. 마음은 고마우나 이는 여에게 필요해서 치르는 행사이니 그대가 신경 쓸 바가 아니로다. 여는 다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외지인들이 들어와 부정을 탔다는 불만이 나오는 걸 예방하고 싶을 뿐. 고로 이는 백성들을 순화하고 그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속하는즉, 이 땅의 지배자인 여가 마땅히 져야만 할 책임인 것이다. 군주의 자격은 책임으로부터 비롯되는 법. 한데 여가 이 책임을 어찌 다른 이와 나누려 하겠느뇨?”

“…….”

“비록 누구도 예기치 못한 신비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으나, 여는 사람을 해치는 짐승들과 각종 천재지변의 배후에 「사악한 호랑이의 악령」이 도사리고 있다는 주술사들의 희언을 믿지 아니하느니. 차라리 「진」의 소행이라 하였으면 거부감이라도 없었으리. 그러므로 이 굿판은 결국 형식적인 통치행위에 해당하며, 지출한 비용은 통치비용의 한 갈래인 것이다.”

다소의 냉소를 담아 말한 술타나는 담배 연기를 뻐끔거리며 굿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굿판은 주술사들이 땅을 파고 소머리를 묻은 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마지막 주문을 노래함으로써 끝이 났다. 주술사 한 사람당 약 10분씩을 잡아먹었기에, 굿판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알라에게 오후의 기도를 올릴 시간이었다. 멀리 모스크로부터 들려오는 아잔 낭송과 여기저기서 울리는 시계 알람들. 방금까지 정령에게 제사를 지낸 주술사들이 이번엔 각자의 양탄자를 깔고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지켜보는 입장에선 꽤나 재미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장소는 라스카르의 무기고였다.

“안내를 붙여줄 테니, 그대들은 여기서 여흥에 쓸 무기와 장비를 자유롭게 골라보라. 여는 금방 옷을 갈아입고 올 것이야.”

금빛 번쩍이는 전통복식 차림으로 밀림을 헤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술타나가 라스카르 대원 둘을 남겨두고서 시종을 동반하여 자리를 비우자, 경태가 무기 진열대를 기웃대며 한국말로 입을 연다.

“저 여자가 몸소 나가려는 걸 보면 함정일 확률은 희박하고……. 단순히 우리 실력을 확인해두고 싶은 걸까요? 새로운 시대의 무장동맹으로서는 얼마나 가치가 있으려나, 하고?”

크툿의 통역은 영어를 인도네시아어로 옮기는 것이라, 한국어로 오가는 대화는 비밀이 보장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크툿이 알아듣는 징후가 있는지 살피면서 대꾸했다.

“동시에 자신의 실력과 투자가치를 보여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지. 내가 나중에라도 자기 외에 다른 협력자를 찾는 일을 예방하고, 자기가 낸 구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만들 목적으로 말이야.”

“아까 그 제안이 갑작스럽긴 했지요?”

“서두르다 망칠까 봐 보류를 해두긴 했다만, 받아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그렇군요……. 어라, 이게 뭐지?”

경태의 눈에 띈 것은 끝에 폭탄이 달린 막대였다. 말을 영어로 바꿔 이게 뭐냐고 물어보자, 크툿의 통역을 거쳐 질문을 이해한 라스카르 대원이 설명했다.

“그것은 「봄-톰박(Bom-Tombak)」이라 부르는 무기입니다. 각성체 사냥용 폭탄투창이죠. 끄트머리의 안전핀을 제거하고 사냥감에게 집어던지는 식으로 씁니다. 성형작약 폭탄이라 제대로 꽂히기만 하면 어두운 눈의 코끼리라도 일격에 즉사시킬 수 있지만, 거리 조절이 위험하고 명중시키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오직 용기 있는 「알리-시까리」들만이 대담함을 과시하고자 봄-톰박을 사용합니다.”

“어두운 눈의 코끼리? 알리 시까리?”

경태가 고개를 기울이자 크툿이 눈에 띄게 버벅대기 시작했다. 라스카르 대원의 말에 따라 더듬더듬 옮겨놓는 설명을 들어보니, 이번에도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였다.

어두운 눈, 「글랍 마따」는 맹목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사람을 해치는 각성체 야생동물을 다른 평범한 각성체들과 구분하여 이르는 표현이라 했다. 사악한 호랑이의 악령 「한투 블리안」에게 영혼을 지배당해 눈에 어둠이 씐 동물이라는 것이다. 본래는 광란에 빠진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었으되 어느 언론보도를 계기로 대중적인 쓰임새가 변화한 단어라고.

그리고 「알리-시까리」는 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냥꾼을 뜻했다. 「뚜깡-시까리」, 「알리-시까리」, 「뚜깡-픔브루」, 「알리-픔브루」 등 숙련도의 차이와 역할구분에 따라 사냥꾼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들이 존재했는데, 이걸 영어로 옮기면 다 똑같은 헌터가 되어버리니 통역하는 입장에선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문장으로 풀어 설명하기도 곤란한 노릇이고.

궁금증을 다 해소한 경태는 투창 하나를 들어 무게와 균형을 가늠해보더니 오호, 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게 마음에 드나?”

“대담함을 과시하기 좋은 물건이라고 하니, 조직에서 형님의 체면을 담당하는 이 김경태가 한 번 던져주지 않을 수 없죠. 이거 형님께서 보시기에 만듦새는 어떻습니까?”

“부실하지는 않다. 공연히 터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럼 됐습니다. 두어 개 챙겨가야겠네요.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봐요, 크툿. 이 봄-톰박인가 뭔가 하는 투창, 당신네들은 평소에 어떤 식으로 휴대하냐고 물어봐줄래요? 그냥 이렇게 덜렁덜렁 들고 다니진 않을 테고.”

뒤쪽은 영어로 하는 말이었다.

경태가 라스카르 대원과 재차 문답을 주고받는 동안, 나 역시 폭탄투창을 들어 종류별로 손맛을 느껴보았다. 탄두 중량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이를 지닌 다양한 투창들은 투박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균형감을 내재하고 있었다. 크기를 불문하고, 이쯤을 붙잡고 던지면 되겠다 싶은 부분에 정확하게 무게중심이 잡혀있었던 것이다.

깡통을 닮은 탄두엔 깔때기 형상으로 오목하게 굳힌 성형작약이 들어있었다. 성형(成形), 즉 일정한 모양을 잡아 놓았다고 해서 성형작약이라 하는 것. 이렇게 오목한 모양의 화약은 터질 때 발생하는 압력의 3할이 전방 직선상으로 집중된다.

이러한 화약 깔때기에 금속접시만 끼워주면 저 흑해자당이 줄기차게 써먹었던 폭발성형관통탄(EFP)이 만들어진다.

공기저항을 고려하여 둥그스름하게 마무리한 탄두 끝엔 용수철이 지탱하는 단순한 구조의 압력신관이 달려있었다. 빡빡하게 끼워진 핀이 유일한 안전장치다.

이건 확실히 거리조절이 까다로운 물건이었다.

우선, 너무 멀리서 던지면 명중률이 떨어진다. 육중한 관성 탓에 방향전환이 둔한 코끼리나 코뿔소 따위를 노린다면 모를까,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의 맹수가 상대라면 각성체가 아닌 평범한 개체라 할지라도 명중을 장담하기 어렵다. 문자 그대로의 동물적인 회피로 피해버릴 확률이 높은 까닭.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해버리면, 이번엔 사냥꾼 자신이 폭발의 영향권에 들게 된다. 탄두의 밑받침에 해당하는 부분을 튼튼하게 만들어두긴 했으나, 입사각에 따라선 사냥꾼 본인이 파편을 맞고 마는 것이다.

나는 투창을 내려놓았다.

‘내가 쓸 물건은 아니로군.’

위험성이야 감당 가능하지만 품위가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전근대적 꼰대와 함께하는 사냥에선 조직의 수장으로서 보다 ‘기품 있는’ 무기를 쓸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내게 어울리는 무기는 무기고의 깊은 안쪽, 무기고의 나머지와는 따로 구분된 공간에 보관되어 있었다. 총이 든 사각 케이스를 열자, 그새 제가 쓸 주무장과 부무장을 다 골라서 뒤따라온 경태가 휘파람을 불었다.

“와……. 이거 엄청나게 클래식한 놈인데요.”

두 개의 총열이 나란히 붙어있는 고풍스러운 수렵용 라이플. 측면에 장인의 서명이 들어가 있는 수제 명품 엽총이었다.

영국의 홀란드 앤 홀란드, 아일랜드의 존 릭비, 스페인의 그룰라 아르마스, 이탈리아의 파브리, 오스트리아의 페터 호퍼 야크트바펜 등 오랜 세월 주문제작으로만 물건을 만들어온 건 메이커들의 제품들은, 최상위 라인업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10만 유로를 넘어간다. 한화로 환산하면 적어도 1억 3천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

게다가 돈만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하나의 제작기간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도 가는 탓에, 주문이 밀리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그래서 중고로 나오는 매물이 신품보다 비싸기가 예사다.

술타나의 컬렉션엔 이렇게 사치스러운 라이플이 다양한 구경(口徑)으로 서른한 자루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예의상 이렇게 물어보아야 했다.

“내가 이걸 써도 되겠나?”

라스카르 대원은 통역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바팍 아노니미타스. 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그거 고맙군. 시사(試射)를 해보고 싶은데, 준비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길.”

두 대원 중 하나가 실탄을 가지러 가는 사이, 나는 총열과 총몸이 분리되어 있던 라이플을 하나로 합치고 휴대용 가죽끈(라이플 슬링)을 고정시켰다. 이 단순한 끈조차도 총기와 별개로 주문제작을 받는 브랜드들이 있어, 어느 장인이 어떤 가죽을 쓰고 어떻게 가공을 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총기보다 더 비싼 값을 받아먹기도 한다.

탄약고로 달려갔던 대원이 무거운 탄약상자에 전용 탄입대를 얹어서 들고 돌아왔다.

우득, 뚜드득-!

상자를 내려놓은 대원이 철사를 끊고 덮개를 뜯어낸다. 상자 속 커다란 금빛 실탄들의 이름은 「.700 니트로 익스프레스」. 코끼리나 코뿔소 같은 대형 포유류의 두꺼운 두개골도 한 방에 깨부수기로 유명한 고중량 고속탄이었다. 순수 운동에너지로만 비교하면 중기관총탄(.50 BMG)에게 한 수 접어줘야 하겠지만, 이건 무거운 중량과 강한 저지력으로 쳐 죽이다시피 하는 탄종이어서 그런 식의 단순비교는 무의미했다. 탄자의 중량이 정확히 1천 그레인이라 어 사우전드 그레인(A thousand grai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철컥.

수연 녀석이 총기에 탄약을 채우는 소리. 수연의 선택은 니트로 익스프레스를 쓰는 볼트액션 박스탄창 엽총이었다. 교전거리가 짧기 마련인 우림지대에서,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어떤 각성체를 만나더라도 일격에 죽여 버릴 화력을 휴대하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술타나를 흡족하게 할 고상함도 챙길 겸 하여. 여기에 부상자 발생시 응급처치를 위한 트라우마 키트가 더해진다.

무기고에 있던 방탄복을 입고 그 위에 탄입대를 걸칠 즈음, 활동성 높은 차림새로 환복한 술타나가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이번엔 담뱃대를 물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든 라이플을 보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 18파운드 H&H. 훌륭한 물건이지. 세상엔 세월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명품이라는 게 있는 법. 그대가 들고 있으니 아르주나가 따로 없도다.”

이 땅에서 힌두교 신들의 이름은 보편적인 관용어구로 통한다. 예컨대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아르주나와 같다고 함은 잘생기고,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고, 용감하고, 강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의미.

“시사를 해볼 참이었습니다만, 같이 가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술타나가 온화하게 손짓한다.

“먼저 가있으라. 여도 곧 뒤따라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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