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열대의 짐승들 (6)
칸드라 키라나는 그녀 자신이 「라스카르 쁭아왈 끄술타난 잠비(잠비 술탄국 근위대)」라 부르는 정예 행동타격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줄여서 「라스카르」 또는 「LPKJ」라 부르는 이 조직은 단순히 무기를 들었을 뿐인 다른 부하들과는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장비가 우수한 것은 물론이고, 해군 특수부대 「덴자카」의 부사관 출신과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외국인 용병들을 교관으로 기용하여 실력 또한 충실하게 배양해 놓았다.
이들 라스카르에게 언제든 사냥을 나갈 수 있게끔 준비해두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술타나는 나와 더불어 자신의 사업장을 산책하듯 거닐었다.
이 일대의 사업장은 마을을 중심으로 덩이식물의 뿌리처럼 분산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각각의 중간거점들 사이로는 배수로와 교통호, 입사호 역할을 겸하는 낮은 길들이 구불구불한 미로를 이루었다.
이러한 공간배치는 방어용 화력거점(Fire support base) 구조를 크고 엉성하게 본뜬 것으로, 사업장의 시인성(視認性)을 낮추는 동시에 총격전 상황에서 방어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사이사이의 공간엔 어김없이 기름야자 나무를 심어놓았다. 사선을 가리는 장애물이긴 하나, 유사시엔 도폭선을 감아 터트려버리면 그만이었다.
성벽 바깥으로 분산된 사업장을 외부의 적이나 야생동물 각성체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건 곳곳에 박힌 철주들과 그 사이에 치렁치렁하게 쌓인 5미터 높이의 면도날 철조망들이었다.
사실 마을을 지키는 성벽은 그저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장식에 가까웠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인 방어력은 강철의 가시덤불이 훨씬 더 우수할 테니까. 분노한 각성체 코끼리라도, 염동력을 보유한 희귀개체가 아닌 한 맨몸으로는 철조망을 돌파하지 못한다. 힘으로 날뛰어봐야 전신이 걸레짝이 된 채 과다출혈로 죽고 말 터.
그럼에도 술타나는 때로 인명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악령이 깃든 호랑이는 저 높이를 가볍게 넘어서 들어오곤 하지. 여를 더 심란하게 만드는 건 녀석들이 어린애들만 노려서 습격을 한다는 사실이야. 그 이유를 짐작하겠는가?”
“애가 더 쉬운 사냥감이라서가 아닙니까?”
“아니지. 악령이 깃든 호랑이 입장에선 애와 어른이 똑같이 쉬운 사냥감인 것을. 영의 기운을 감지하여, 각성한 능력자만 피하면 될 일이잖나.”
이를 듣고 잠시 생각해본 나는 보다 나은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무게가 더 가벼운 사냥감이라서……겠군요.”
“그대는 역시 명철하도다. 저쪽을 보라.”
습관처럼 담뱃대를 쥔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술타나. 그녀가 가리킨 쪽의 철주와 철조망엔 검붉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주로 위쪽에서 비처럼 뿌려진 듯한 흔적들이었다.
“보이는가?”
“예.”
“사냥감을 잡는 것과 사냥감을 먹는 것은 서로 별개인 문제이지. 먹는 덴 시간이 걸리니까. 하여, 호랑이는 여 휘하의 사냥꾼들이 출동하기 전에 사냥감을 물고 달아나야만 하는 것이야. 그러니 입에 물고 높이뛰기에 용이한 아이들을 주로 습격할 수밖에.”
“그렇지요.”
“이쪽으로 물려간 아이의 이름은 하산 유스완다리일세.”
“…….”
“하산의 아비는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일을 하고 있었다네. 같은 기름야자를 따더라도 그쪽 임금이 세 배는 더 높거든. 거기서 한 달에 8백 링깃(한화 약 20만 원)을 받아서는 가족들에게 그 절반가량을 보내주었단 말이야.”
술타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제 각성한 노동자 하나가 두 사람분의 임금으로 일반 노동자 대여섯을 대신하게 되어, 하산의 아비는 그만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래서 그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귀국을 하지 못하는 중이야. 비행기 값은커녕 뱃삯조차도 치를 돈이 없으니까. 그런데 놀라운 게 무엇인지 아는가?”
“글쎄요.”
“그런 처지인데도, 하산의 어미는 그 호랑이의 목에 2천만 루피아(한화 약 140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는 점이야. 우리에겐 푼돈에 불과하여도 그네들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지.”
이런 사연을 늘어놓는 술타나의 입가엔 여전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여긴 자식이나 부모가 죽었어도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가급적 웃으며 말하는 사람들의 나라인지라, 이럴 때 보이는 미소가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 부부가 그 돈을 마련할 방법은 얼마 없어. 집을 내놓고 가산을 정리하거나, 사채를 당겨쓰거나, 장기라도 꺼내어 팔아치우거나. 어느 쪽이든 더는 내일을 살아갈 마음이 없는 자들이 내릴 법한 결정이지.”
“그래도 헌터들을 움직이기엔 부족한 대가입니다. 현상금을 받기보단 그냥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편이 이익이잖습니까.”
“맞아, 맞아. 중국인들의 몸보신과 주술사들의 수요 덕분에 각성체 호랑이의 값어치가 좀 많이 치솟았어야지. 그래서 그들 부부는 호랑이의 사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노라 공언했어. 다만 자식의 영혼을 위로할 부속물 약간을 바랄 따름이라고. 피 한 줌과 뼛조각 하나. 이 정도면 사냥꾼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부수입일 것이야.”
“그렇겠지요.”
“이런 일이 이제부터 얼마나 더 흔해질까.”
술타나의 가지런한 잇새로부터 한숨을 닮은 연기가 몽글몽글 흘러나온다.
“세상이 지금처럼 이상해지기 이전의 호환(虎患)은 한 달에 한두 번이면 많이 일어나는 불행이었지. 코끼리에게 치여 죽거나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건 호환보다는 드문 사건이었고. 그래서 그때는 누가 그렇게 죽으면 꼭 신문에 기사가 실리곤 했어.”
“…….”
“허나 이제는 아니야. 과거의 수십 배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니, 이제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언론도 그 죽음들을 일일이 다뤄주질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이름이 아니라 도표 속의 숫자로만 기록될 뿐.”
“앞으로는 수십 배가 아니라 수백, 수천 배의 사람들이 죽어나갈 겁니다.”
술타나가 스르륵 쳐다보기에,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난세로군요.”
술타나는 불투명한 미소를 머금고 끄덕였다.
“우리네 사업의 전망이 이렇게나 밝음에 여는 가슴 벅찬 슬픔을 금할 길이 없노라.”
가슴 벅찬 슬픔이라. 야심가로서의 기쁨이자 군주로서의 슬픔인가.
전대미문의 밀수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세상에 혼돈을 퍼트리자 제안했던 인간이 여기선 슬픔을 입에 담는 게 우습지만, 고쳐 생각해보면 전근대적 군주는 오직 자신의 백성들만 아끼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 왕국 밖의 인세가 마경 그 자체로 전락해도 자기 왕국만 평안하면 그로써 군주의 의무를 다하는 것.
이 인간의 슬픔이 진심인지 도취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합리성은 깔려있으므로 사업을 함께할 파트너로선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쿵-!
가까운 곳에서 기름야자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 열매 덩어리 하나가 포탄보다도 묵직하여 사람이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나무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안전장구조차 갖추고 있지 못했다.
열매를 떨구려면 먼저 열매를 둘러싼 가지들을 쳐내야 했다. 인부들이 길이 조절이 가능한 장대에 낫을 끼워 이 가지들을 잘라내면, 떨어진 가지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다. 야자나무 가지는 뻣뻣하고 날카로운 가시로 가득하여, 아이들의 손엔 심심찮게 그 가시가 박혀있었다. 함께 일하는 어른들의 손도 마찬가지. 속에 가시가 박힌 채로 상처가 아물어, 움직일 때마다 적잖이 고통스러울 손들이 눈에 띈다.
뙤약볕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어른과 아이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비 많은 계절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회로가 열린 각성체 모기들의 활약이다. 비행속도와 지구력, 회피능력 모두가 비각성체보다 우월하고, 비행음의 주파수가 높아서 소리도 잘 안 들리며, 피를 빨아내는 속도는 물론이고 소화시키는 속도마저도 빠르니 그야말로 일당백의 해충이라 할 만했다. 앞서 읽었던 자카르타 포스트는 이를 두고 「3밀리그램의 괴물」이라 표현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일반인들 입장에선 악몽이 따로 없을 듯 했다.
지직-
멋모르고 내 쪽으로 날아오던 각성체 모기 하나가 마력을 태우는 불에 지져진다. 희미하게 퍼뜨린 염동력을 제7의 감각으로 삼았기에, 나는 마력장이 없는 비각성체 모기도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었다. 나와 내 애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려운 거야 둘째 치더라도, 말라리아에 걸리면 곤란하지.’
미리 예방약을 복용하긴 했으나, 적도 지방의 말라리아는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하여 약을 먹어도 감염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생명」을 통한 치유가 가능하기는 할 테지만, 이런 질병 쪽으로는 아직 경험이 없을뿐더러 일반적인 부상을 치료하는 것에 비해 귀찮고 번거로울 게 뻔했다.
그러니 가래로 막기 전에 호미로 막는 편이 현명하겠지.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얼마쯤을 더 나아가 도달한 곳은, 기름야자 재배지 사이로 녹슨 강철의 무더기를 해체하는 현장이었다.
콰아아아아-!
관형 노즐에서 뻗어 나오는 새파란 불꽃이 커다란 강철을 파고든다. 물을 전기분해하여 만들어내는 수소폭명기는 금속을 자르기에 충분한 열을 제공할 수 있었다. 한쪽에선 정과 끌을 든 아이들이 고철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 있는 모든 강철은 바다 아래로부터 건져 올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저배경강(低背景鋼/Low-background steel)의 값이 많이 올랐겠습니다.”
크툿은 내 말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저배경강이라는 낯선 용어를 인도네시아 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다가, 결국 불완전한 통역을 하고 만다. 그러나 어차피 요식행위에 불과한 통역이었으므로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었다.
술타나가 머리를 까딱였다.
“그러하다. 수요가 많이 늘었으니까.”
“영역다툼이 벌어지진 않습니까?”
“몇 번 충돌이 벌어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어. 힘 있는 자들은 대개 더 큰 돈이 되는 해적질에 주력하고 있고, 힘이 모자라거나 대범함이 부족한 자들은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함부로 나서질 못하고 있는지라.”
“과연.”
저배경강이라 함은 배경 방사선(Background Radiation)의 영향을 적게 받은 강철을 뜻한다. 핵무기와 원자력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제철소의 고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쇳물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배경 방사선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고로에 공기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공기 중을 떠도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녹아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사능 오염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정도가 못 되지만, 정밀 계측기기의 소재로 쓰면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심원한 바다로부터 구시대의 강철을 건져 올린다. 최초의 핵폭탄이 터지기 전에 진수되어 파도 아래로 가라앉은 거대한 군함의 잔해들을.
근래 들어 저배경강의 수요가 늘어난 건 마법의 실체와 각성 능력자들의 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가 늘었기 때문이다. 계측을 하든 실험을 하든, 정확한 결과값을 도출하려면 오염되지 않은 도구와 촉매와 계측장비가 필수적이었다.
이 같은 구시대의 철을 수거하는 과정에선 최소 수십 톤에 달하는 화약이 부수적으로 딸려온다. 1톤 내외의 포탄을 삼사십 킬로미터씩 날려 보내고자 탄약고 가득 채워두었던 추진용 장약들. 그리고 사람보다 더 커다란 철갑유탄을 뜯어 긁어내는 작약들. 이 해묵은 화약들은 잘 말려주기만 해도 높은 비율로 재활용이 가능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화약의 탄생이다.
술타나의 발걸음은 스크랩 재처리 현장과 인접한 공터에서 멎었다.
“여기가 바로 그대를 위해 내어줄 땅이다. 마음에 드는가?”
이미 평탄화를 끝내놓은 공터는 숙소와 시설이 들어서기에 모자람이 없는 면적이었다. 곁에 물길을 끼고 있음에도 지대가 높아 수해의 우려가 적고, 주변으로 술타나의 사업장이 가지처럼 뻗어있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도 낮았다.
공터로부터 멀지 않은 강가엔 벌겋게 녹슨 중형 탱커 선박 하나가 드러누워 기우뚱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술타나가 연료저장시설로 활용 중인 폐선이다.
여기까지 살펴본 나는 간명하게 평했다.
“괜찮군요. 좋은 땅을 골라주셨습니다.”
“그런가.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니 이제 이 땅을 축복할 차례로다.”
담뱃대를 문 술타나가 손을 까딱이자, 술타나를 수행하던 시종 하나가 공터의 가장자리에 모여 있던 일군의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이렇게 불려오는 무리의 선두에 선 둘은 신선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큼지막한 소머리 하나를 양쪽으로 나누어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