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4화 (164/561)

#20. 열대의 짐승들 (4)

사업장으로 들어가는 길엔 구경꾼들이 몰렸다. 하기야 이 외진 영지에 피부색부터 다른 외국인의 방문이 몇 번이나 있었겠는가. 어쩌면 나와 내 부하들이 최초일지도 모르는 일. 순진한 웃음과 무구한 관심을 담은 시선들이 나와 일행을 쫓아다녔다.

내가 싫어하는 담배 냄새가 난다.

길가에 무리지어 서서 이쪽을 기웃대는 아이들은 저마다 필터도 없는 담배를 한 대씩 입에 물고 있었다. 나이는 모두 대여섯쯤 되었을까? 습윤한 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치는 독한 연기엔 정향의 향이 알알하게 배어있다. 타르와 니코틴 등의 유해물질 함량에서 타국 제품들을 압도하기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정향 궐련, 크레텍(Kretek)이었다.

이게 딱히 이 고립된 영지만의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 만으로 갓 두 살을 넘긴 애새끼가 하루에 크레텍 두 갑을 태워 화제가 되기도 한 나라인 것을.

술타나 역시 담배를 피우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뭉툭한 파이프를 손에 쥔 그녀는, 사업장 내 붉은 기와를 올린 목조 저택의 거실에서 미소를 머금고 나를 맞이했다.

“Sudah lama. Saya harap anda bisa datang.”

술타나를 시중드는 여인은 술타나의 말을 고어체가 섞인 고풍스러운 영어로 통역했다.

“오랜만이로구나. 여는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노라.”

나는 얼굴 앞에 손을 모으고 까딱이는 눈인사를 곁들여 답했다.

“사정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술타나 독토란다 하자 칸드라 키라나 파크루딘.”

내 말은 크툿이 통역했다.

‘사실 통역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칸드라 키라나는 영어에 능통했다. 그런데도 굳이 통역을 끼고 대화를 진행하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영어를 말하는 걸 품격 없는 일이라 여기는 까닭이었다. 영어를 듣고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 고로 내가 크툿의 통역을 쓰는 건 그녀를 존중하는 행동이 된다.

부하 하나가 술타나의 수하에게 준비해온 선물을 건네었다. 상자 안에는 송나라 시절의 도자기가 들어있었다.

술타나가 다시금 이 나라 사람들의 상수(常數)와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다시금 통역으로 옮겨진다.

“오랜만에 보아도 변치 않은 모습이 반갑구나. 앉으라, 어서. 오는 길이 많이 고단했을 것인즉. 그대와 그대의 사람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라 일러두었도다.”

여긴 가진 게 상한 음식뿐이어도 손님이 오면 내놓아야 하고, 손님은 주인의 체면을 고려하여 먹는 시늉이라도 해주는 걸 예의로 아는 동네다. 그러므로 술타나가 준비한 식사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만찬이었다.

사라진 왕국의 전통에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치장한 술타나는, 스스로는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로 느긋하게 담배를 태우며 나와 내 애들의 식사를 감상했다. 손에 쥔 파이프는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광택과 나이테의 문양이 아름다운 극상품.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거래 자체가 불법인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로 만든 물건이다.

거슬리는 담배 연기를 인내하며 성의껏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내 속을 모르는 술타나가 연기를 후우 내뿜더니 연기보다 거슬리는 질문을 던졌다.

“그대여, 결혼은 하였는가?”

“……아직입니다.”

“저런.”

칸드라 키라나의 입가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잦아든다.

“어찌 그러한가? 그대, 전에 만났을 땐 분명 노력을 해보리라 약조하지 않았느뇨?”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일이 바쁘다 보니 기회가 없더군요.”

이에 술타나를 자칭하는 꼰대가 곤란한 미소를 머금고서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머리에 쓴 황금관의 꽃장식들이 바람을 맞은 듯 흔들린다.

“안 된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야. 여는 오랜 벗인 그대가 여태까지도 홀몸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금치 못하겠노라. 나이가 찬 후에도 짝을 얻지 아니한 이는 아직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자라. 일이 아무리 중하여도 사람이 있고서 일이 있는 것이지, 일이 있고서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

“그러니 그대는 한층 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여가 그저 그대를 사람 만들어주려고 타이르는 것이니, 그대는 부디 여의 말을 잔소리로 듣지 말고 허투루 듣지도 말라.”

“……명심하겠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면 이상한 사람 내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문제다. 참으로 고깝고 어이없는 오지랖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마냥 남이라고 여기지 않기에 나오는 말. 이러한 거리감은 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니, 간접흡연에 더해 시답잖은 잔소리쯤이야 이익을 감안하여 얼마든지 참아줄 의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기회가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도다.”

이렇게 말하며, 술타나는 나른한 시선으로 수연을 곁눈질했다.

“내 지난 만남에서도 저 아이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필시 그대가 가까이에 두어 중히 쓰는 사람일진데, 그렇다면 능력은 부족하지 않을 터이고, 서로 간에 숨기는 바도 적을 것이라, 그대의 처지가 여와 같지 않으므로 상급자와 하급자가 맺어지는 일은 충분히 가하리라. 무릇 인연은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미 다가와 있는 법. 그대는 손닿는 곳에 고운 인연을 두고서 엉뚱한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닌가?”

나는 식기를 잠시 내려놓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대꾸했다.

“이 녀석과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술타나.”

“답답하구나. 처음부터 그런 관계인 남녀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야, 노력을. 기회가 있어도 잡지를 않으니 번듯한 얼굴이 아깝도다. 여의 아들이 그대처럼 사내다운 생김새였으면 진즉에 좋은 짝이 달라붙었을 것인데…….”

“…….”

이 상황이 뭐가 웃긴지, 경태가 웃음을 참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사자인 수연은 먹는 것을 멈춘 채 눈길을 비스듬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생체징후는 언제나처럼 기복이 완만하여 읽기 어려웠다.

금빛 찬란한 꼰대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탄식 아닌 탄식을 이어갔다.

“남녀가 서로 맺어짐은 신께서 정하신 섭리라, 그러한 섭리가 아니고서는 종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한즉 여기엔 자연적인 당위성 또한 존재하노라. 허나 개인의 자유니 구습으로부터의 해방이니 운운하는 서구인들의 퇴폐적인 습속이 퍼지고서부터는 도리어 서로와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남녀가 늘었고, 거리는 온통 도덕관념이 없는 여자들(Wanita tuna susila/매춘부)로 가득하게 되었으니, 아, 애닳도다. 문화적 침략으로 말미암은 전통의 상실과 공동체의 위기란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형편이 이러함에도 못된 물이 든 요즘의 젊은 것들은 옛것을 소중히 하자는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만 아는 개인주의에 경도되어-”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까 뜬금없이 아들 이야기가 튀어나온 걸로 봐서는 평소부터 가슴 속에 맺힌 바가 있었던 모양. 짐작컨대 신세대인 아들이 개인의 자유를 운운하며 속을 썩인 게 아닐는지.

‘자식새끼도 참 귀찮겠군.’

이런 것만 봐도 피붙이가 있다는 게 마냥 긍정적인 일만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말을 옮기는 시녀의 이마가 땀에 젖어 반들거린다. 고풍스러운 모국어를 고풍스러운 외국어로 바꾸기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건만, 그 속도마저 빠르니 오죽할까.

시세를 개탄하는 범죄조직 여군주의 넋두리가 끊어진 것은 파이프를 다시 채울 때가 되어서였다. 공들여 길들인 파이프를 오래 사귄 친구라 일컫는 사람답게, 술타나는 담배 갈이를 시녀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녀가 연통에 잘게 썬 연초를 채워 넣고 불을 붙이기를 기다려, 나는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내었다.

“제가 앞서 사람을 보내어 요청드린 일이 있을 겁니다. 그 일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담뱃대를 몇 번 뻑뻑하게 빨아들여 불씨를 키운 술타나는, 후우 하고 긴 연기를 내뿜고서 부드럽게 끄덕였다.

“여의 뜻이 그대의 뜻과 같노라.”

이 한마디. 이 형식적인 한마디의 동의를 면전에서 들으려고, 내가 광저우에서 이곳 수마트라의 외진 영지까지 먼 길을 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걸 번거롭게 여기는 인간은 귀한 혈통의 전근대적 꼰대와 장기적인 협업을 도모할 수 없었다.

술타나가 말을 이었다.

“상대가 그대이기에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선물과도 같은 제안이었도다. 땅을 빌려주고 보호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대양횡단이 가능한 잠수정 건조기술을 이전해주겠다니. 그대, 정녕 다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무방하겠는가?”

“괜찮습니다.”

“분명 그 기술을 얻고자 많은 비용을 들였을 터인데?”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 거스름돈이 남는다면, 가지고 계시다가 다른 일로 챙겨주십시오.”

이익이 크게 걸려야 건조시설을 숨기고 보호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겠지. 잠수정으로 남기는 이윤을 런던 공략보다 중시하는 건 근시안적 본말전도 그 자체다. 잠시 말이 없던 술타나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는 길에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앞 마스지드(모스크)의 정문 근처엔 최근 정령이 똬리를 튼 자띠 나무(티크 나무) 한 그루가 있도다.”

“봤습니다. 마을 내에 있는 유일한 각성수더군요.”

“그랬을 것이야. 정령이 깃든 다른 나무들은 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정령을 달래는 의식을 치른 후에 다 잘라내 버렸으니. 하지만 그 자띠 나무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지. 왜냐면 그 나무는 왕국의 전성기에 옛 술탄의 뜻으로 심어진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왕국의 흔적이야.”

“그렇군요. 헌데 그걸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좀 더 들어보라. 그 커다란 나무는 이 근방에서 가장 먼저 이적(異蹟)을 보이기 시작한 생명이기도 하노라. 처음엔 그저 물과 안개를 모으는 정도였지. 근처에 흘려놓은 물이 기울기를 거슬러 뿌리를 적시며 둥치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모두가 놀라워하였어.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리고 나와 이맘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이곳에 신의 기적이 임하였노라 무릎 꿇는 자들이 많았을 테지.”

원시마법의 발현은 해당 생명의 태생적 방향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그 방향성과 전혀 무관한 능력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겠지만, 방향성에 수렴하는 경우가 그 이상으로 많다는 이야기. 물과 빛은 식물종의 태생적인 방향성이며, 없는 빛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물을 묶어두는 쪽이 마법적으로 훨씬 더 쉬운 일이므로, 물에 대한 구속력은 식물종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흔한 능력이 될 것이었다.

‘완성도 면에서 거인의 술식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모든 식물들이 동일한 술식을 얻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비슷하거나 동일한 결과를 얻는, 일종의 마법적 수렴진화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거인의 영혼이 지닌 격은 그 거인이 견뎌온 세월이 담보하는 것. 백만 년의 무게 앞에선 나와 같은 대마법사조차 겸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잠시 조용한 가운데 담뱃잎이 타들어가며 바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두어 달쯤 전인가, 여가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는데 마을의 장로가 달려와 호들갑을 떨면서 그러더군. 나무 둥치에 갑작스럽게 불이 붙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꺼지더라고.”

깊은 흡입을 끝낸 술타나가 연기를 뭉글거리며 하는 회상.

“비록 늦게 걸음 한 여는 그 불을 보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서 불에 그슬린 오롱-오롱 몇 마리를 발견할 순 있었다.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중이었어.”

“오롱-오롱이 뭡니까?”

“애벌레의 일종이다. 성충이 되어 날개를 얻기 전까지 자띠를 파먹고 살지. 잎을 갉거나, 수액을 빨거나. 나무가 호오를 가릴 줄 안다면 이 벌레는 분명 싫은 축에 들으리.”

해충 제거인가. 불은 빛을 얻는 간접적인 수단이다. 그 빛이 식물이 선호하는 스펙트럼과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인 술타나가 강조하듯 반복했다.

“싫은 벌레를 태웠던 것이야. 새롭게 얻은 힘으로.”

“그런 것 같군요.”

“스스로를 물로 적시고는 불을 써서 해충을 죽인다……. 그 방법의 정교함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하나의 생명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이적을 행한다는 사실이었노라.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런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던 까닭이지.”

“지금은 그때보다는 흔해진 일이지요. 절대적인 수를 따지면 여전히 귀하긴 합니다만.”

“그러하다. 마스지드 앞 자띠가 불을 얻은 다음에는 벌목장에서 부리던 코끼리가 투명한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코와 발을 대지 않고도 통나무를 들거나 굴리기 시작했던 게지. 시기를 같이하여 비슷한 소식들이 다른 곳에서도 들려오게 되었고. 이에 나는 하나의 가능성을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무슨 가능성을 말입니까?”

“이미 각성한 사람들도 새로운 힘에 눈을 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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