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3화 (163/561)

#20. 열대의 짐승들 (3)

두 번째 경유지인 팔렘방에 도착한 나는, 수 시간의 기다림을 거쳐 내가 마지막으로 타야 할 비행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엔진의 팬 블레이드 다수에 상당한 금속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근시일 내로 반드시 부러지리라 확언하긴 어려우나, 하나라도 부러진다면 그 즉시 엔진이 갈려나가는 사고가 터진다. 그 사고의 마지막이 비상착륙으로 끝난다면 다행일 터. 어찌 찜찜하지 않겠는가.

조종사 교육과 항공기 정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 이익을 최대화하는 후진적인 경영은 인도네시아 항공사들의 공통적인 고질병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선 크고 작은 항공사고가 거의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며, 내가 중국을 떠나기 직전에도 승객 전원이 몰살당하는 추락 참사가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안전 불감증에 빠져있는 것이다.

항공기가 추락하더라도 나 하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부하들은 아니었다.

“이번 비행기는 그냥 보내지.”

“어째서입니까?”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내 부하들은 언중언을 이해했고, 크툿은 그냥 느낌이 불길하다는 말 자체만으로 납득했다. 전통 속에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근거 없는 불길함은 결코 가볍게 넘어가선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신비한 힘과 영적인 존재들로 가득한 곳이기에. 이는 마법이 돌아온 이후로 더욱 강해졌을 원시신앙이었다.

아랫것들에게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도록 한 경태가 곤란한 어조로 보고했다.

“잠비로 가는 직항은 하루에 한 편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경유지를 한 곳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얼마나 걸리나?”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서 9시간 30분입니다. 시간만 놓고 보면 차라리 차를 타고 가는 것만 못하겠네요. 육로로 가면 일고여덟 시간쯤 걸릴 테니까요.”

“…….”

말이 일고여덟 시간이지, 잠비에서 다시 사업장으로 가는 길이 다시 네 시간이니 근 12시간 동안 차를 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나마도 뒤쪽의 네 시간은 험지주행용 오프로더(Off-roader) 신세를 져야 한다. 그쪽 도로는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환장하겠군.

고심하던 나는 한숨이 나오는 결정을 내렸다.

“별수 없지. 차를 타고 간다.”

낙후된 지역에서 국내수송에 전념하는 저가항공사들은 정비가 불량할 확률이 높다. 하여, 운 나쁘게 또다시 ‘불길한’ 기체를 만나게 된다면 도착예정시각은 더운 날의 엿가락처럼 늘어날 것이었다. 그러니 피곤하더라도 도로를 타는 편이 확실하다.

“술타나께는 조금 늦는다고 전해주게.”

“그리하겠습니다, 바팍 아노니미타스.”

크툿이 내게 고개를 숙인다. 술타나는 내 도착이 늦어져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었다. 이럴 땐 이쪽 사람들의 느슨한 시간관념이 도움이 되었다.

경태는 크툿의 도움을 받아 차편을 대절하는 한편 이 지역의 암상인으로부터 경호용 총기를 배달받았으며, 현지 경호업체와 접촉하여 에스코트 차량을 수배하기까지 했다. 크툿이 조언하기로, 이 경호업체의 사장이 전직 경찰 고위관계자이고 경호 인력들도 군과 경찰 출신이 대부분이므로, 웃돈을 찔러주면 자잘한 말썽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라 했다.

북으로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명상 도중에 짤막짤막 끊어지는 쪽잠을 잤다.

요즘 내가 눈을 붙일 때마다 연습하는 잡기(雜技) 중 하나는, 신체강화술식을 통한 신체 제어를 활용해 신속한 수면을 유도하는 기술이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빠르게 잠들도록 해주는 기술은 시간활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전투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었다.

수연 녀석도 신경을 좀 덜 쓰게 되겠지.

몇 번째인지 모를 쪽잠에서 깬 나는 버스가 멈춰있음을 깨달았다. 이유는 그냥 눈으로 보면 아는 것이었다.

‘또인가.’

광활한 열대우림과 거대한 기름야자 플랜테이션들을 가로지르는 얄팍한 간선도로는 많은 구간에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는 각성체 수목들의 뿌리가 도로 곳곳을 파고들어 아스팔트를 박살내놓은 탓이었다. 가뜩이나 지금이 우기(雨期)의 한중간이었으므로, 물을 좋아하는 나무들의 급속한 팽창은 일반적인 수단으론 막기 어려운 재난이었다.

그래서 자연의 폭거에 맞서는 인간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수단을 동원했다. 안전요원들이 파편 피해를 막고자 도로의 통행을 일시적으로 통제하는 가운데, 작업복 차림으로 손에 기폭장치를 쥔 각성능력자 하나가 한껏 목청을 키워 소리친다.

“3 detik sampai bom meledak! 3! 2! 1! Meledak!”

콰웅-! 콰콰콰쾅!

공업용 다이너마이트들이 줄줄이 폭발하며 도로 좌우의 나무들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내버렸다. 각성수에 대해선 특히 더 많은 폭약을 할당하여 마법적인 후폭풍을 최소화했다.

바직, 바지직…….

그루터기만 남은 각성수의 주변 공간에 크고 작은 스파크가 일다가 가라앉았다. 평범하게 벌목을 시도했으면 사람이든 중장비든 벼락으로 지져버렸을 중후한 거목이었다. 나는 윗부분을 힘으로 잡아 뜯은 것처럼 생긴 굵은 밑동으로부터 피 분수처럼 솟구치는 마소와 마력의 광채를 볼 수 있었다.

크게 흔들리다 뿌리 쪽으로 수축한 식물의 영혼은 여전히 마력회로를 품은 채로 번득이고 있었으나, 그 출력은 폭파당하기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상태였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뇌가 영성을 붙잡는 확고한 중심기관이 되어주지만, 모듈화가 잘 이루어진 생물로서의 식물은 그러한 중심이 적잖이 분산되어있는 까닭이었다.

뭐, 그래도 인간이었으면 생체질량의 절반이 증발한 시점에서 즉사를 면치 못했겠지.

안전요원이 도로 가장자리로 빠지며 까딱까딱 경광봉을 흔들었다.

“Kamu boleh pergi sekarang! Lanjutkan perjalanan!”

이제 가도 좋다는 신호다. 차량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일반적인 벌목이 위험하다면 폭탄을 써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마냥 현명한 선택인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가 않았다. 민간 차원의 폭발물 사용량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난다 함은, 그만큼 폭발물의 유출을 막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니까.

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는 부패문제가 심각한 나라다. 뇌물 좀 찔러주면 밀거래를 눈감아줄 경찰과 관료들이 넘쳐난다는 말. 게다가 폭발물 확보에 혈안이 된 민족독립세력과 테러조직들마저 넘쳐난다.

이로 말미암을 치안 악화에 공권력만으로 대응하는 데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이런 쪽에서도 사냥꾼들을 고용할 시장이 만들어지는 거지.’

미국이 왜 그렇게 사설군사기업들을 애용하는가? 정부가 지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군인이나 경찰의 순직은 국가의 책임이지만, 용병의 죽음은 위험한 일감을 받은 그 개인의 책임이니까. 작전이 실패하거나 대민사고가 발생해도 1차적으로는 용병업체들이 대신 욕을 먹어주니 이 얼마나 유익한가. 시위대의 과반수는 백악관 앞 광장이 아닌 용병기업의 정문 앞으로 몰려간다.

게다가 부상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할 일도 없고 은퇴자에게 연금을 지급할 일도 없으며 상시고용을 유지할 필요조차도 없으므로, 몸값을 비싸게 준다 한들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패한 나라에서 사설군사기업들의 융성은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만약 내가 일반적인 용병기업의 경영을 맡는다면, 우선 범죄자들에게 무기를 팔아서 이윤을 남기고, 그렇게 치안을 악화시켜 끊임없이 일감을 만들어내는 쪽이 이익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정부의 감시는 뇌물로 무마하면 그만이고. 장기적으로는 용병집단과 범죄집단 사이에 적대적 공생관계가 성립할 터였다. 양자의 경계가 흐려질 것은 물론이다.

일찍이 곱씹은 바, 사업을 하려는 자는 스스로 수요를 창출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이 세상에 사업가가 나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사업가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따른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열대우림을 빠져나온 건 최초 출발로부터 8시간 20분이 경과한 다음의 일이었다. 이동거리를 고려하면 평균시속이 30킬로미터 남짓에 불과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한 면적의 다섯 배에 달하는 섬에 남북을 잇는 도로라곤 왕복 이차선로 두세 가닥이 전부이니, 그야 전 구간에 걸쳐 거북이 운행이 일상일 수밖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가지는 무질서와 난개발의 극치였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주택들이 검푸른 밀림의 침략으로 반파당한 모습도 보인다. 그런 집을 떠날 형편이 못 되는 빈민들은 비가 새는 지붕과 바람이 드나드는 벽을 감수하며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일행은 이제 술타나 측이 준비해둔 4륜구동 오프로더로 탈것을 바꾸었다.

오프로더에 오를 때 경태 녀석이 가볍게 넌더리를 냈다.

“어휴. 이쯤에서 헬기라도 탔으면 좋겠는데…….”

이 정도 육로이동이야 국제사업부를 거쳐 온 애들에겐 익숙한 것이지만, 그러한 익숙함이 지겨움과 고단함을 덜어주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술타나에게 헬기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 여자가 돈이 얼마나 많은데. 헬기는 기본이고 터보프롭 항공기 다수와 위장된 활주로까지 가지고 있다.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어딘가에 공습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노출을 피하고 싶은 것뿐.’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이기 이전에 영향력 있는 지역 유지이기도 한 그녀는 나만큼 편집증적으로 흔적을 지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업장의 존재를 은닉하는 건 어두운 사업을 경영하는 자의 숙명적인 소임이었다.

날개가 달린 탈것은 그 날개가 회전익이든 고정익이든 지나치게 노출도가 높다. 지표에서 뜨는 순간부터 지역 공항의 관제 레이더에 잡히고 마는 것이다. 주 관제 레이더의 감시범위만 반경 111킬로미터에 달하고, 레이더에 잡히는 모든 비행체의 추적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므로, 광저우에서의 나처럼 강력한 보험을 들어두지 않는 한에는 하늘 길을 마음 놓고 이용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안으로서 레이더의 측정범위를 벗어난 초저공비행을 시도할 수 있겠으나, 그 같은 초저공비행은 사람의 눈에 띈다는 게 또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가끔 한 번씩 시도하면 모를까 자주 애용하다간 사업장의 위치가 노출되기 십상인 것이었다. 지도상으로는 활주로도 뭣도 없는 곳에서 자꾸만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그 얼마나 수상쩍게 느껴지겠는가 말이다.

야지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오프로더의 더러운 승차감을 견디기를 네 시간.

나는 마침내 술타나의 사업장을 목전에 두었다.

사업장은 야생으로 가득한 밀림과 누렇게 흐르는 굵은 강 사이에 끼어있는 위치였다. 멀지 않은 거리엔 일시적으로 형성된 늪지와 강변을 따라 건설된 마을이 존재했다. 때마침 기도를 올릴 시간이어서,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에 오른 무아딘(muʾadh·dhin)이 아잔을 낭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의 무슬림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아쉬하두 안 라 일라하 일라-ㄹ라, 아쉬하두 안 라 일라하 일라-ㄹ라-!」

노래를 닮은 낭송이 쩌렁쩌렁 울려퍼지자, 내게 양해를 구한 크툿이 차에서 내려 양탄자를 깔고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오는 길에도 경험했던 일이다.

‘그러니 차가 더 느리게 가지.’

기도를 올리기는 술타나가 마중을 보내온 다른 인력들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서 술타나의 영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영지.

달리 대체할 표현을 찾기 어려울 이곳은, 정부의 행정력이 닿지 않아 전근대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땅이었다.

당장 눈에 띄는 건 마을의 규모가 내가 기억하는 과거에 비해 많이 커졌다는 점이었다. 다 합치면 5백 호는 넘어갈 듯한 가옥들. 마을과 마주보는 강 건너편엔 여지없이 기름야자 농장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마을 안쪽에도 약간의 기름야자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싹 베어낸 걸 보니 역시 각성체 수목이 문제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다음으로는 축력과 인력으로 돌아가는 발전기 및 기계설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본디 술타나의 사업장을 제외하면 전기를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었건만, 이제는 집집마다 전선이 들어가 있으니 실로 상전벽해의 변화라 하겠다.

마을과 사업장 주변엔 조립식 철근 콘크리트 블록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성벽을 대신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성체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조치다. 성벽 안쪽 높게 솟은 망루엔 대구경 엽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배치하여 주변을 경계하도록 해놓았다.

어느 왕실의 후예가 빈번히 행차하여 경영하기엔 초라하기 그지없는 영지. 이곳이 여러 영지들 가운데 하나임을 감안하더라도, 나머지 영지들의 수준이 다 엇비슷하니 왕가의 보석함이 가넷과 터키석 따위로만 가득한 꼴이었다.

그러나 범죄조직의 근거지 중 하나로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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