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60화 (160/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15)

파키스탄 사람 고하르 라왈은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받는 입장에선 무엇 하나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지 않았나. 결정은 아름다움의 아버지가 내리겠으나, 나는 그의 결정이 긍정적일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다라-아담-켈에서 한 손에 꼽는 공장의 장이자 부족의 원로쯤 되고 보면, 내 조직의 존재를 풍문으로라도 들어보았을 터. 살아있는 사람 하나와 특수화물 세 개를 보냄으로써 이쪽의 능력을 증명하는 동시에 부족 차원의 빚을 지웠으니, 빚을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부족사회의 전통 때문에라도 그는 내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연놈들이라도 부족 공동체의 폐쇄성을 뚫기는 어렵지. 부족들이 자발적으로 협조를 한다면 또 모를까.’

단순히 난이도만을 비교하자면 차라리 CIA를 엿 먹이는 편이 차라리 쉬울 것이다. 실제로 파키스탄 정보부는 CIA를 여러 차례 엿 먹인 전적이 있다. 홈그라운드에서의 능력만큼은 세계일류라고 불러줄 만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다라-아담-켈의 부족장들과 파키스탄 정보부는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보부와 정부의 이해관계마저 일치하지 않으니, 최악의 경우에도 내 부하들이 발을 빼고 흔적을 지울 기회 정도는 주어질 것이다.

각설하고, 사업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움의 아버지는 지금 제법 애매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선에 나선 기술자인 고하르 라왈이야 모스크의 파괴자들을 징치하는 성전을 운운하였으나, 그것은 다만 동기부여를 위한 명분일 뿐. 파슈툰 족 기술자들의 해외진출은 부족자치권 축소에 따른 지역기반 무기제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나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기술자들이 피해를 입고 말았고, 세계의 정세를 보건대 기존의 사업이 다시 번창할 날이 올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아름다움의 아버지는 부족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실적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 올발랐음을 증명할 실적을.

내 제안이 여기서 등판한다.

다라-아담-켈의 5대 공장 모두가 사업을 공유한다면 아름다움의 아버지가 감수해야 할 정치적 부담은 큰 폭으로 경감된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게 된다는 건,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입장에서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러니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바가지를 쓸 걱정은 없겠지.’

아름다움의 아버지는 다섯 공장 모두가 만족할 대가를 받아내려 할 터이나, 그렇다고 값을 너무 높게 부르다가 계약 자체를 망칠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것이었다. 화물운송을 끝낸 부하들에게 그대로 협상까지 맡기더라도 괜찮으리라 예상하는 근거다.

그리고 내게는 값을 깎을 좋은 수단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보험업.

거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가는 시점에서, 저들은 이미 우리 측의 화물운송 능력을 확인한 상태. 그런 그들에게 유사시 기술자들의 탈출 루트를 제공하겠다고 하면 필시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여줄 터. 사업의 위험성이 감소한다는 건 곧 위험비용이 감소한다는 뜻이다.

여기엔 한 가지 계산이 더 존재한다.

언제라도 화물을 실어 나를 채비를 갖추고 있으려면, 최소한 그 화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게 아니겠는가?

고로 보험에 가입한 기술자들은 내게 자신의 ‘발송지’를 알려줘야만 하고, 그 발송지는 곧 흑해자당의 거점과 일치할 것이었다. 그리고 발송지를 통보한다 함은 연락망을 구축한다는 뜻이며, 나는 그 연락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공산귀족과 경독들을 통해 입수한 군경의 작전정보를 미리 알려줘서 흑해자당의 신뢰를 사고 연락망의 존재를 공인받는다거나.

혹은 가끔씩 흑해자당의 거점을 노출시켜 경독들을 키워줄 양분으로 삼는다거나.

여기서 군경의 작전정보를 미리 알려준다는 것이 반드시 해당 작전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군경의 실패를 사영 엽사병단이 만회하도록 할 수도 있잖은가? 즉 내 사영병단의 전과를 챙기는 것.

기술자들과 흑해자당에겐 이렇게 변명하면 된다. 내 정보망으로는 군경의 움직임만 알 수 있을 뿐, 제멋대로인 민간 엽사들의 움직임까지 예측할 수단은 없노라고.

사로잡힌 기술자를 빼내어주는 일은 이 그림을 완성하는 최후의 한 획이라 할 것이다.

사업을 하려면 이렇게 스스로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출혈을 강요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객들의 호감과 신뢰를 얻어내는. 마치 저 미국의 모 IT 기업과도 같은-

“우우읍! 우우!”

손발이 이어지는 구속구를 채우고 재갈을 물려놓은 실험체들이 무릎을 꿇은 채 눈알을 굴려 나를 바라본다. 저마다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은 두려움이 전부다. 재갈에 막힌 건 필시 풀어달라거나 살려달라는 말이었겠지. 아니면 무엇이든 말할 테니 고문은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거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손을 모으고 지켜보던 경태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길게 하십니까?”

“그냥. 이것저것.”

나는 손에 쥔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인체실험에 들어가기 전, 선행한 동물실험을 복기해본다는 것이 어쩌다 보니 사업의 타당성을 곱씹어보는 쪽으로 사고가 흘러버렸다.

“별로 볼 만한 구경거리는 아닐 텐데, 그래도 보고 싶으냐?”

“그 검의 효과가 아무래도 궁금해서 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없어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마력장의 변화라거나.”

“……뭐, 마음대로 해라.”

달칵. 흑단 지팡이를 비틀어 상아빛 칼날을 끄집어내자 세 실험체들의 아우성이 격렬해졌다. 그래봐야 욱욱거리며 재갈을 씹고 침을 흘리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난 첫 번째 실험체의 어깨에 제례검의 끝을 푹 찔러 넣고는, 남는 손으로 실험체의 정수리를 움켜쥐고서 영의 회로에 대한 간섭에 돌입했다.

우우우우우-!

칼 꽂힌 실험체가 격한 경련을 일으킨다. 칼에 찔린 창상(創傷)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여기에 원래라면 불가능할 마력회로 성형(成形)을 억지로 가하는 고통이 더해지니 그야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 수밖에. 울룩불룩 솟아오르는 근육과 핏줄들, 치솟는 체온과 혈압, 온갖 색채로 번뜩이는 신경망은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고통 그 자체였다.

죽을 것 같으면 생명술식으로 숨을 붙여두고, 심장이 멎어도 전기충격과 생명술식으로 소생시키기를 반복하며 마력회로 가공을 이어나가길 10여 분.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벌써 죽었나.”

첫 번째 실험체의 사인은 회로 파열이었다. 생체적인 죽음이야 어떻게 살려낸다고 쳐도, 영의 회로가 붕괴하여 영혼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은 답이 없다. 꿇은 채로 죽은 실험체의 정수리를 놓고 제례검을 뽑아내니, 균형을 잃은 시신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그 충격에 후두둑 쏟아져 나오는 누런 이빨 여러 개. 이는 생체조직이 파괴되는 와중에 재갈을 씹느라 잇몸이 뭉개져버린 탓이었다. 붉은 칼끝으로부터 투둑 툭 핏방울들이 떨어진다.

실험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역시 종에 따른 차이를 무시하긴 어렵다는 것. 사람의 회로에 대한 간섭은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는 게 이상적이다.

약 반 시간 후, 남은 두 실험체를 마저 죽여 쓰러뜨린 나는 미지근한 불만족에 젖은 채로 검을 거둬들였다.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고.’

메리옘의 그룹에서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여섯은 오늘 내로 최종적인 세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결정을 그들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권능을 허여함이 너희를 죽일 수도 있음이니, 세례를 받을지 말지는 너희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라고. 세례를 받지 않더라도 너희가 나의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한다고.

이 말을 꺼냈을 당시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여섯 명 모두가 생각해볼 것도 없이 세례를 받겠다고 입을 모아 외친 것. 난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내가 다시 찾을 때까지 생각을 해보라 하였으나, 입을 모을 때의 표정들이 워낙에 간절하였으므로 한 사람이라도 입장을 바꾼다면 놀라운 일일 것이었다.

이렇게 책임회피를 하긴 했지만, 피는 이어지지 않았을지언정 저가 동생들로 여기는 그룹에서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메리옘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는지.

쓰기 좋은 도구가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조금 녹슬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 나로서는 못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세례의 시일을 뒤로 미루지는 않는다. 미룬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까닭. 그들 여섯의 회로는, 회로구조의 비효율성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출력과 견고함을 더해갈 테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해지는 내 능력이 그러한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처음부터 회로를 내가 설계한 경우라면 그 합리적인 구조 덕분에 일이 훨씬 쉽겠으나, 제멋대로 뚫린 회로에 손을 댄다는 건 이렇듯 어렵고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불운한 여섯은 평균적인 자연각성 능력자들과 비교해도 회로구조가 나쁜 편에 속했다.

이대로 세례를 감행한다 치면, 예상되는 성공률은 대략 절반 언저리.

“형님. 나가서 몇 명 납치해올까요?”

내가 바라보자, 경태는 조용히 덧붙인다.

“실험체 말입니다.”

“아니.”

메리옘이 녹슬지 모른다고 경태 이하에게 괜한 녹을 더하는 건 소탐대실이다. 꾸준한 관리로 녹을 갈아낸다 한들, 계속해서 갈아낸 칼은 언젠가 그 수명이 다하고 만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도 결코 처음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고.

공들여 관리해야 마땅할 칼을 그저 잘 든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데나 막 써버리다간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가는, 저 미국의 특수전사령부를 보면 알 수 있다. 귀중한 정예자원들이 죄책감과 PTSD로 무력화되거나, 혹은 명령을 우습게 아는 쾌락살인마 집단으로 전락하여 통제 자체가 어려워지거나.

타산지석이 있으면 당연히 보고 삼가야지. 규율을 잃은 범죄조직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

“느낌이 아무래도 부족하신 것 같은데요. 납치가 내키지 않으시면 엽사 선발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가짜로 꼬셔다가-”

나는 고개를 저어 경태의 말을 끊었다.

“됐다니까. 이것들이나 치워라.”

“옙.”

지시를 받은 경태는 제 아랫것들을 시켜 사망한 실험체들을 치우도록 했다.

이후 나는 대학도시로 이동하여 일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엽사 선발과정을 감독했다. 감독이라곤 해도 대개의 옥석은 초기에 다 가려냈으므로, 사실상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실제로 한 일은 외관상 티가 나지 않는 마법사로서의 자기수련이었을 뿐. 어쨌든 가오슈센에게 성의는 보여야 할 게 아닌가.

일몰 이후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유역의 무인도로 향했다. 일찍이 메리옘에게 회로를 열어주었던 섬. 세례를 받을 당사자들과 메리옘은 미리 도착하여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헬기에서 내리자 경계를 서던 부하들은 까딱이는 목례를 했고, 무슬림 및 무슬리마들은 바닥에 엎드려 예를 표했다.

주변 해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깔끔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내 본업을 아는 가오슈센과 수상분국의 후수광은 해역 통제 요구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무명회사가 또 뭔가를 바닷길로 빼돌리는구나 짐작하는 눈치들이었지. 속으로는 일말의 의심이 있을지라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입장들인 것이다.

“고개를 들어라.”

내 말에 메리옘과 불운한 여섯이 허리를 편다.

“그래, 마음이 달라진 사람은 없나?”

물음을 던져도 여섯으로부터 돌아오는 건 오직 침묵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고,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내 아래에 머무는 자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의례조차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가?”

약간의 정적이 더 이어진 뒤에, 여섯 중 하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원합니다.”

이 한마디를 내뱉고 숨을 고른 뒤에 다시 이어가는 떨리는 말.

“고통은 각오했습니다. 죽음도 각오했습니다. 죽든 살든 저희는 결국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제 목숨을 거룩한 분께 맡깁니다.”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한 티가 나는 말이었다.

종교적 열기에 취해 스스로를 산 제물로 바치던 자들의 생체징후가 이러했을까? 불운한 여섯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죽음을 앞둔 인간들답지 않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린 것들이 제법…….’

나이는 가장 많은 놈이 스물이고 가장 어린 년은 열다섯이었다. 전력화를 거치고 나면 그제야 모두가 성인이 될까 말까 하겠지. 나는 이 용감한 어린 것들이 내 명령에 따라 런던공략에 일조하는 미래를 그려보았다.

책임은 이만큼 미뤘으면 됐다. 메리옘이 알라의 처사에 분개하기는 하였으되, 시험과 시련은 어느 종교의 교리에서도 빠지는 경우가 없는 요소들이다. 난 턱짓으로 어린 것 하나를 가리켜보였다.

“붙잡아라.”

부하들이 다가와 어린 것에게 재갈을 물리고, 팔과 어깨를 단단히 붙잡는다. 지팡이에서 칼을 뽑은 난 나를 올려다보는 어린 것의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부디 살아남기를 바란다.”

칼끝이 어린 것의 몸을 찌르고 들어갔다.

재갈을 문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비명은 짐승의 울음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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