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9화 (159/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14)

흑해자당의 최종공세가 전 방면에 걸쳐 붕괴 수순에 접어들고, 팔일철기의 중장갑 충격기병들이 기습적인 돌파와 전과확대에 여념이 없을 무렵, 하늘에서 전장을 가로지르던 나는 아주 특별한 사냥감이 죽기 직전의 위기에 몰린 현장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알 까심」의 야전정비 기술자를.

그를 발견한 장소는 흑해자당 측 전선의 후방, 즉 흑해자당 진영의 종심(Depth) 깊은 곳에 위치한 대형 자동차 정비소의 인근 도로였다. 흑해자당의 임시 야전정비소 역할을 수행하던 이 정비소는 내가 상공에 도달했을 땐 이미 한 차례 충격기병의 공격에 휩쓸린 다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까심의 기술자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각성 능력자가 아니었던 덕분이다.

이때의 팔일철기대는 흑해자당의 이능보유자들을 잡아 죽이는 데만 전념하는 중이었다. 신속한 사태종결을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도 반역자들의 주력을 분쇄하는 게 먼저라고 본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최선의 판단이었지.’

가뜩이나 복잡한 시가전 환경에서 작전 명령까지 복잡함을 더했다간 빠른 진압은 꿈속의 망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타인의 마력장을 감지해내는 능력자 특유의 감각에 의지하여, 닥치는 대로 내달리며 적의 능력자들만 우선적으로 사냥토록 하는 것은 팔일철기의 기동성과 충격력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었다.

또한 이는 팔일철기의 첫 데뷔가 최대한 강렬하기를 바라는 상층부의 희망사항에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길가에 널린 복층 건물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어버리는 중장갑 기병대의 돌파력은 그때까지의 전황을 단번에 바꿔놓았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시가지에 형성된 전선을 단 10분 만에 6킬로미터나 밀어버린 위업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그렇게 속도전을 추구하였기에, 흑해자당의 궤주를 이끌어낼 순 있었을지언정 능력자 집단 이외의 고가치 표적을 섬세하게 찾아낼 여력은 없었다.

내게는 돌아가는 형편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 새소리를 지껄이는 새끼가 있다!”

“혹시 이거 알라쟁이(绿绿) 아니야? 생긴 게 왠지 그쪽 같은데?”

내 눈에 띄었을 때, 기술자는 일군의 약탈자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던 참이었다. 이 기세 흉흉한 약탈자들은 헬기가 접근하는데도 해산할 생각을 않았는데, 자기들이 정부의 편이라 생각하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급조한 타도흑적(打倒黑贼)의 깃발 아래 모인 이들은 도리어 공안 헬기가 내려오자 함성을 지르며 환영하기까지 했다.

기실, 친정부적인 기치는 약탈의 면죄부에 지나지 않았다. 전장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어낸 빈민들이 이때다 하고 한몫 챙기고자 몰려나왔을 뿐인 것이었다. 헬기를 보고 도망치지 않은 것도 기껏 모아서 차에 실어놓은 값비싼 재화들을 포기하기가 아까워서였고. 재화 위로 옷가지 따위를 재빨리 덮어씌우긴 했으나, 보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무의미한 짓이었다.

안 그런 척해도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이 무리는, 내가 약탈엔 간섭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괴롭히던 알라쟁이를 내놓으라 요구하자 기쁘게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충당애국! 충당애국! 인민의 군대와 공안의 승리 만세!”

“결국엔 당이 이기는구나! 믿고 있었다고, 젠장!”

“더러운 외국인들을 몰아내고 노동자와 인민의 나라를 이룩하자!”

그리하여 내게 신병이 넘어온 기술자는,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절규하며 구슬프게 흐느꼈다. 가까운 자리에 먼저 맞아죽은 동료들이 있었던 까닭. 난 그 세 구의 시체를 보며 조금 더 빨리 도착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느꼈었다.

하나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예상 밖의 소득이긴 했지만…….

약탈자들은 연신 알라를 부르짖는 무슬림의 절규를 비웃었다.

“거 새소리 참 시끄럽네. 입 닥쳐, 이 알라쟁이 새끼야!”

새소리(鸟语)란 중국인들이 자기네가 모르는 외국어를 경멸적으로 이르는 표현이었다. 의미 모를 언어가 새 우는 소리처럼 듣기 싫다는 뜻. 여기에 새는 곧 금수(禽獸)의 금(禽)이기도 하니, 새소리의 속뜻은 짐승의 언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들 사이에 만연한 외국인 혐오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엔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뺏어가거나 돈 많다고 거드름을 피운다는 이유로, 자국 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세계를 휩쓸 적엔 외국인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그리고 이제는 전 세계가 부당하게 중국을 핍박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혐오를 재생산해 온 것이다.

특히 요즘은 정부가 그러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부추긴다는 게 문제였다. 관영 CCTV의 앵커가 제 웨이보에 대놓고 ‘외국인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한다.’고 적자 엄청난 호응이 일었을 지경.

꼭 대외적인 갈등 때문이 아니더라도, 하류층의 민심이 흑해자당과 마오공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로선 하류층의 입맛에 맞는 구호와 정책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약탈자들에게 건조하게 경고했다.

“여기 이들에 관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있다면 자진해서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될 테니까.”

증거인멸은 이러한 경고 한마디로 충분했다.

나는 부하들에게 살아있는 무슬림은 물론이거니와 죽은 시체들까지 함께 회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증거인멸을 위해서라면 그냥 태워버리는 것만으로도 족했으나, 기술자의 호의를 얻으려면 간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르게끔 해줘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장례를 치르는 날이 오늘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교양 있는 무슬림들은 얼마간의 표준아랍어(푸스하)를 구사할 줄 안다. 왜냐면 그것이 쿠란에 적힌 언어이며, 믿는 자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교양이니까. 고로 나는 파키스탄 기술자에게 메리옘을 통역 삼아 내 의사를 전달했다. 처음엔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기술자의 영어 실력은 너무나 형편없었던 까닭이다. 아마 죽은 동료들 중에 통변 담당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니면 흑해자당 측에서 따로 사람을 붙여주었거나.

기술자는 내 저의를 의심했으나, 이슬람의 규율에 따르면 장례는 최대한 빠르게 치러야 하는 행사였기에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알라훔마 이그피르 리-아인나 와 마이티나-, 와 샤히딘나- 와 가이빈나-, 와 사기리나- 와 카비리나-, 와 다카리나- 와 운단나아…….”

「알라시여 우리 모두를 용서하여 주소서.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함께 있거나 함께 있지 못하거나, 젊거나 늙었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스스로 이맘 역할을 맡은 기술자의 기도는 실시간으로 통역되어 내 귀에 꽂힌 인이어 리시버로 흘러들어왔다. 통역자인 메리옘은 급조한 부르카로 머리부터 발목까지 전신을 가린 상태. 그 안에 마이크를 달고 목소리를 낮추었으니,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으면 겉보기로는 눈에 띌 것이 없다.

냉동 탑차에 보관되어있던 시체들은 염습을 거쳤음에도 지저분한 곳들이 많았다. 신앙의 적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얻은 상처는 닦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처들마다 산 사람은 맡을 수 없는 상서로운 향기가 흘러나와, 천사들이 성전을 벌이다 죽은 전사의 영혼을 쉬이 식별케 해준다고.

매장이 생략된 불완전한 장례가 끝난 이후, 나는 별도의 선실에서 메리옘과 함께 알 까심의 기술자를 마주했다.

피부 하얀 파슈툰족 기술자의 이름은 고하르 라왈이었다.

「아직 그대를 믿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목숨을 구해주고 동료들의 염과 장례를 치르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겠다. 전사들의 영혼은 알라의 품에서 합당한 안식을 찾을 것이다.」

신앙의 적들에게 직접 맞서 싸우지 않았어도, 지하드에 기여한 자들에겐 전사라 불릴 자격이 있다. 이렇게 말한 라왈은 자신의 말을 옮기는 메리옘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쪽은 당신의 아내인가? 교양이 굉장히 깊은 숙녀분이신데. 내 생전에 푸스하를 이 정도로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자는 처음 보았다.」

비록 식민지에 세워진 대학이라곤 하나 학부 중퇴에 해당하는 메리옘의 교양은, 여성인구의 절반이 문맹인 나라에서 온 사람에겐 높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메리옘이 잠시 멈칫 했다가 통역하는 질문을 듣고서 나는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는 아니오.”

「하긴, 무슬리마는 무릇 자신이 태어난 땅의 신실한 남자와 인연을 맺어야 하는 법이지.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태어난 땅의 남자들을 욕보이는 일이니까. 하면 이 여인은 어이하여 외간남자인 그대와 함께 다니는 것인가?」

“굳이 말하자면 내가 이 여자의 후견인(마흐람)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겠소. 비록 피를 나눈 혈족은 아니요만,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 자세한 것은 묻지 말아주었으면 하오.”

「후견인이라니? 여기서 지내며 듣자니 당신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하던데.」

“아니오. 그러나 무슬림을 존중하기는 하지.”

「존중이라…….」

라왈은 짧게 뜸을 들이고서 말을 이었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그렇더군. 먼저 이 배에 타고 있던 신앙의 형제자매들이 말하기로는 당신이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도 하고, 또 샤히디라는 자는 당신과 협상을 벌여 성전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노라 하고. 내가 들은 게 사실인가?」

협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과대포장이 못내 우스우면서도, 나는 내색 않고 조용히 긍정했다.

“그렇소.”

「왜지? 왜 구해주었고 왜 지원을 약속한 것이지?」

“그것이 내게도 이익이 되니까.”

「어떤 면에서?」

“미안하지만 거기까지는 밝힐 수 없소. 양해를 바라오.”

대화가 잠시 끊어진다. 파슈툰 사람의 녹회색 눈이 의심과 불안을 담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날 따로 불러낸 것은 내게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인가?」

“맞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나는 그대들 알 까심이 이번 시련을 이겨내고 흑해자당에 대한 무기 및 장비 공급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를 바라오. 아니, 이어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확대하기를 바란다고 해야겠구려.”

「불가능한 요구다.」

“거절이 너무 빠르신데.”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어째서요?”

「첫째로 모스크를 파괴하는 자들이 국경지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이래 내 고향에서 사람을 추가로 보내기가 어렵게 되었고, 둘째로 이미 온 사람들도 많은 피해를 입어 기존의 생산량과 품질을 유지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며, 셋째로 내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맙지만 내게는 그런 큰일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까닭이다.」

“패주한 흑해자당과 연락할 수단은 있소? 유사시에 대비한 비상연락망이라든가 접촉수단 같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없다.」

있군. 하기야 탈레반과의 악연이 깊고 정부 차원의 통제에도 수시로 대응해야 하는 부족공동체 출신 장인들에게 그 정도의 준비성이 없었을 리가 있나.

모스크를 파괴하는 자들은 당연히 중국 공산당을 말한다. 그들이 국경지대의 감시를 강화한 데엔 내가 가오슈센에게 건네었던 조언의 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밀수는 내 조직의 전문분야가 아닌가. 난 도구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성의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군.”

「성의라니?」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 당신과 당신 동료들의 관을 다라-아담-켈(درہ آدم خیل)로 보내드리리다. 앞으로 보름 이내에.”

「뭐라고? 보름? 그게 가능한가?」

“그렇소. 그 시점에서 당신은 강화된 국경통제가 내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지.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이 살아서 고향 땅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확실한 증거이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날 고향으로 돌려보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당신이 밝힌 목적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인데.」

“틀렸소. 당신네 알 까심의 최고 결정권자가 그곳에 있지 않소? 그러니 고향에 도착하거든, 「아름다움의 아버지」께 질문 하나만 전해주시길 바라오.”

아름다움의 아버지, 아부 알 까심은 알 까심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별칭이다. 모든 공장들이 각기 다른 부족과 가문들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다라-아담-켈의 특성상, 아름다움의 아버지는 알 까심의 수석기술자인 동시에 최고경영인이자 부족의 존경받는 원로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원로는 당연히 다른 부족들의 원로들과 연결되어 있겠지.’

입을 다물었던 고하르 라왈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그 질문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기에?」

“간단하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 까심 하나만이 아니라, 다라-아담-켈의 5대 공장 모두가 움직이려면 얼마의 자금이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여쭈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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