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13)
나의 거짓된 사제는 알라를 혐오하는 불신자다.
“부디 시험해보시길, 존귀한 분이시여.”
메리옘은 내가 제 동생들의 신앙을 시험해보기를 원했다.
“제가 올렸던 말씀 그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하여 내게 저와 제 무리의 도구적인 잠재가치를 어필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본인의 위치와 역할을 재확인하며, 그럼으로써 저와 제 동생들의 자그마한 신앙공동체(움마)가 나로부터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신께선 유일하고도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세상에 누구도 대등한 자가 없는 거룩한 분의 사자이십니다. 신성한 가르침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에 우선하기에, 저희들의 규범은 오직 존귀하신 분의 말씀으로만 채워질 것입니다.”
기독교의 바이블이 그러하듯이, 신성한 책 쿠란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의 구절들이 많다. 이럴 때 교리를 해석하는 제1원칙은 무조건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올바르다고 가정하는 것. 사이비 교주로서의 메리옘은 이를 확대 적용하여 인세에 내려온 구세주- 즉 마흐디(ٱلمهدي)인 나의 가르침이 기존의 모든 가르침보다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 가르침에 모순되는 부분이 생긴다 한들 이 역시 나중에 내린 가르침이 더 올바르므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정신 나간 논리다.
“귀하신 분의 미천한 종, 바투르의 딸 메리옘이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시험의 장은 돼지고기를 올린 식탁이었다.
“먹어라. 그것은 너희에게 허락된 것이다.”
단지 이 한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식탁에 둘러앉아 나를 바라보던 젊거나 어린 위구르인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이 돼지고기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앞서 메리옘이 이는 돼지고기임을 주지시켰음에도 일말의 혐오감조차 내비치지 않으면서.
다만 식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낯빛이 어둡던 일부가 있었으니, 바로 내게 세례를 받지 못한 불행한 여섯이었다.
‘직접 해보니 제국주의자 새끼들이 이 짓거리를 왜 그렇게들 즐겨하는지 알겠군.’
추종자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며 말 한마디로 가치관을 바꿔버리는 것은 극한의 지배력이자 권력 그 자체였다. 그런 짓거리를 혐오하는 나조차도 가슴 속 한구석이 간질간질할 지경이건만, 나르시즘과 선민의식의 결정체인 원탁의 대마법사들이 자기신성화를 즐기는 건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스승새끼 또한 보육원 시절의 나에게 자신을 신처럼 숭배할 것을 요구했었다. 내가 그 새끼와 비슷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기분이 꽤나 더러워지지만, 적어도 나는 일부러 광신도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니, 원탁의 제국주의자들과 나를 구분하는 선은 여전히 분명하게 그어져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선이.
“이제부터 이 세상의 먹고 마시는 것들 가운데 너희에게 허락되지 아니한 것은 없다. 너희가 나의 보살핌을 받는 동안에는 목으로 넘어가는 그 어떤 것도 너희의 영혼을 더럽히지 못한다. 그러니 너희는 자유롭게 먹고 자유롭게 마시되 단지 너희의 건강을 해하는 것들만을 멀리해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다.”
메리옘이 미리 일러준 그대로를 말하니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내 은총을 찬미한다. 메리옘은 내 옆에서 내 말들을 위구르어로 통역했다. 다들 수용소 출신이어서 표준 중국어는 기본으로 익히고 있었으되, 아무래도 유창하지 못한 몇몇이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위구르인들을 수용한 여객선에서 메리옘의 그룹이 기거하는 구획을 둘러보았다. 기도실 겸 학습실로 쓰는 선실엔 치열한 공부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난 두 발짝 뒤에서 나를 뒤따르는 메리옘에게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무엇을 써놓은 거지?”
보드엔 내가 읽지 못할 위구르 문자들이 줄지어 적혀있었다. 아랍문자와 비슷하지만 드문드문 다른 특성들이 눈에 띄는 글자들. 메리옘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심판의 날에 이르러 이 땅에 구세주가 내려올 때에, 최후의 전쟁이 다가오는 세상엔 어떤 징조들이 나타나는가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시아파의?”
“예.”
“그런 거라면 나도 들어는 둬야겠군. 해석이 어떻게 되나?”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도를 올리지 않고, 온 세상에 거짓이 만연하며, 무고한 자들의 피가 흐르는 한편 억압당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목줄을 자랑스러워하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정을 지시했다.
“여자가 남자처럼 옷을 입고, 여자가 사업을 일으켜 남자와 우열을 겨루고 어쩌고 하는 내용은 빼버리도록. 너희는 성별을 불문하고 내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학습시간에 정정하겠습니다.”
“진도는 잘 빠지고 있나?”
“오래 걸리진 않을 듯합니다. 기본 문자부터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없었기도 했고요.”
“빨리 마칠수록 좋아. 위구르어 다음엔 표준아랍어와 영어도 배워야 하니까. 너희가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
“예. 은혜로우신 분께서 실망하실 일이 없게끔 하겠습니다.”
민족말살정책이 진행 중인 식민지 출신 치고 메리옘은 교육을 아주 잘 받은 편에 속했다. 일단 위구르어를 제법 깊이 있게 구사한다는 점부터가 그러하다. 몇 번에 걸친 면담-내지 그룹의 현황보고-의 갈피에서 들은 바, 카라마이로 끌려가기 전엔 신장대학에서 「중국 소수민족의 언어 및 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고.
나는 그러한 회고와 더불어 지나가듯이 들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네가 다니던 대학의 총장이 사형을 당했다고 했던가?”
“예.”
“국가분열을 획책한 혐의로?”
“……예.”
“그는 어떤 사람이었지?”
“동포들에겐 많은 손가락질을 당하던 분이었습니다. 자치구 공산당 부서기를 겸하고 계셨고, 동포들의 눈에 보이는 배신자들 중에선 계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으며,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공산당의 대변인 역할을 맡곤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숨겨진 민족주의자였다?”
“적어도 공산당과 한인들은 그리 말하더군요. 이면에서 불온활동을 조장해온 두 얼굴의 반역자라고.”
식민지 조선으로 치면 을사오적의 한 사람쯤 되는 인간이 비밀리에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있었다, 뭐 이런 건가.
“혹시 그가 조장한 불온활동이 네가 나중에 수용소로 끌려간 이유와 관련이 있나?”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위구르어 교육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다. 아무리 막나가는 중국이라도 국제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언어는 곧 민족의 영혼인 만큼, 공산당의 제국주의자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탄압을 하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러니 대충 사정은 알겠다. 배움 자체를 죄로 삼진 못하더라도, 배우는 자를 죄인으로 만들 방법 따위 얼마든지 넘쳐나는 것.
그런 맥락에서 메리옘의 그룹에 까막눈이 하나도 없었던 건 솔직히 의외였다. 가장 못 배운 사람조차도 오탈자가 난무하는 수준으로나마 모어를 문자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 말엽의 조선에서 조선어 문해(文解)가 가능한 청년층 이하 인구가 열에 서넛 꼴밖에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모어를 지켜내려는 위구르인들의 노력엔 실로 비범한 구석이 있다 하겠다.
내가 메리옘에게 그룹에 대한 위구르어 교육을 요구한 건, 소수언어에 기초한 암호체계만큼 보안유지에 도움이 되는 수단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 분야의 시초는 미군이다. 2차대전기의 미군은 나바호족 원주민들을 통신병으로 투입함으로써 통신보안의 강화를 꾀한 바 있다. 이제껏 존재했던 모든 음성암호들을 통틀어, 이제껏 단 한 번도 외부인의 해독을 허락하지 않은 건 이 「나바호 코드 토커」 프로그램이 유일하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비밀엄수가 생명인 범죄조직들도 소수언어 기반 음성암호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우아틀어 방언에 은어를 섞어 쓰는 로스 메히끌레스, 휀카(фенька)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버린 브라츠키 크루그 등이 그 예.
위구르어 기반 음성암호가 나바호 코드 토커만큼 강력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런던 공략의 보안성을 강화하는 데엔 도움이 될 것이다. 학부생 딱지조차 떼지 못한 메리옘의 앎이 깊어봐야 얼마나 깊겠느냐만, 식민지의 3등 시민으로서 대학 진학에 성공한 걸 보면 자질 하나는 훌륭한 수준일 터이기에.
“어쩌면 그는 네게 열등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누구를 이르심인지요?”
“알림 샤히디 말이다.”
내 입에서 샤히디의 이름이 나오자 메리옘의 표정이 삭막하게 가라앉는다.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자극하고 거기에 공감해주는 것은 타인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효과적인 방편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의 충성심을 원활히 관리하자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러한 유대감을 쌓아두는 편이 좋았다.
메리옘이 건조하게 묻는다.
“그 이교도가 귀하신 분께 무엇을 말씀드렸습니까?”
“수용소에서 널 무고했던 게 제 딴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더군.”
이렇게 운을 띄운 나는 샤히디가 늘어놓았던 궤변과 자기변호의 무더기들을 이 자리에 고스란히 풀어놓아 주었다. 억울함에 대한 보상은 사후에 받으면 된다는 부분까지 들은 메리옘은, 내 앞에선 이때까지 드러낸 적이 없었던 살의를 담아 말했다.
“저는 그가 믿는 신을 증오합니다.”
“그러냐.”
“예. 그 신은 저를 버린 신이고 동생들을 버린 신입니다. 또한 믿는 자들의 땅을 인세의 지옥으로 만든 신이자, 자기를 믿지도 않는 한인들에게 힘과 번영을 허락한 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신의 어디를 봐서 자비롭다고 하겠습니까?”
“…….”
“그간의 경험으로 절실하게,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그를 믿는 자들에게 내리는 고통엔 어떠한 당위성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당위성을 대신할 뭔가가 있다면, 아마도 가학적인 즐거움뿐이겠지요. 저는 그런 악한 신의 천국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신의 존재를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후우. 한 차례 감정적으로 쏟아낸 뒤 길게 내쉬는 숨으로 화를 가라앉힌 배교자가 나를 바라보며 끝맺는 말.
“저는 다만 당신께서 구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목숨을 주셨고 당신께서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 잘난 천상의 알라가 아니라, 여기에 계시는 당신께서. 적어도 저 한 사람에겐 당신께서 알라보다 위대한 분이신 이유입니다.”
이건 트라우마 스위치가 눌렸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신앙고백은 정신적 불안의 작용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혹은 기존의 신앙을 저버린 데서 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의식적인 자기세뇌로 죽이고 또 죽이는 과정일 수도 있겠고.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깨달았는지, 메리옘은 조금 당황하는 기색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감히 목소리를 높이는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주시길.”
“아니다. 이해한다.”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으므로 나는 대강 끄덕여준 후에 발걸음을 옮겼다.
학습공간으로 쓰이는 선실의 한쪽엔 여러 개의 태블릿과 이어폰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메리옘의 그룹에 속한 위구르인들이 ‘받아쓰기’를 한 종이들이 쌓여있었다.
지금의 메리옘에게 내가 맡긴 역할들 중 하나는 다른 그룹에 대한 감시를 돕는 것이었다.
감시를 맡은 부하들이 뜻을 알고 싶은 위구르어 대화의 녹취록을 전달하면, 메리옘에게 모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그 녹취록을 청취하며 종이에다가 받아쓰기를 하는 것. 그러면 이제 메리옘은 그 종이들을 보면서 틀린 문법과 철자들을 바로잡아주고, 핵심적인 내용들을 간추려 내 부하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각 그룹들의 동향과 상호작용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들을.
선실 내부를 슥 둘러본 나는 의례적인 격려를 던져주었다.
“잘 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지금처럼만 해라. 언젠가는 너희가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비밀스러운 입과 귀가 되어줄 날이 올 테니까.”
“영광입니다.”
메리옘이 또다시 머리를 조아린다. 만에 하나라도 떳떳하지 못한 일감에 거리낌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여 발걸음을 했는데, 작업현장을 앞두고도 그런 기색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자칫하면 중독되어버릴 것만 같은 위험한 지배력이었다.
이렇게 거듭 확인했으니 오늘 또 다른 임무를 맡겨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닷새 전부터 이 배에 가둬둔 특별한 포로 하나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