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5화 (155/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10)

“중앙에서 조만간 이능무력부와 이능산업건설부, 이능자원개발부를 묶어 이능총국(异能总局)을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들었습니다. 가오 부서기께선 초대 국장 및 부국장으로 누구를 예상하고 계십니까? 실로 엄청난 힘을 휘두르는 자리가 될 텐데요.”

공산자본가 하나가 이렇게 운을 띄우자, 내 가까운 자리, 가운데가 빈 커다란 테이블의 상석에 두 팔을 벌린 채 다리를 꼬고 앉은 가오슈센이 입 꼬리를 비대칭으로 끌어올렸다.

“어느 계파의 누구누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잠자코 지켜보다가 대세다 싶은 파벌에 올라타면 그만인 것을.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모셔갈 거다 이 말이야. 지금의 내겐 그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겠나?”

이 자신만만한 호언에 좌중은 과연 그렇다며 왁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가오슈센은 저가 낀 여자의 가슴골로 들어가 있던 손을 빼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중요한 건 예산이야, 예산. 이제 곧 제2의 대기금이 조성될 거라고. 기존의 대기금에 필적하는 수준의 압도적인 자금이. 우리는 그 예산을 최대한 끌어와야 해.”

이에 한 공산귀족이 동의한다.

“맞습니다! 기존 대기금은 가진 게 욕심뿐인 무능한 인간들에게 흘러들어가는 바람에 너무 많은 부분이 낭비되어버렸지요!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부서기님처럼 백미(白眉)의 능력과 충당애국의 정신을 겸비한 애국자만이 이능굴기의 대업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뒤질세라 다른 아첨꾼들도 저마다 찬동의 소리를 높인다.

대기금(大基金)이란 중국이 소위 반도체굴기를 위해 조성했던 무지막지한 규모의 국가기금으로서, 정식명칭은 「국가 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이라 한다.

처음 목소리를 높였던 하급귀족이 술기운에 흐트러진 발음으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나라에선 반도체 자급을 달성하겠다고 매년 수백억 위안의 예산을 집행하는데! 그동안 투자금만 받고 증발해버린 기업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다- 도둑놈들, 어? 무능한 도둑놈들의 소행입니다! 그나마 성과를 내던 칭화 유니는 최근 파산 위기에 놓였고, 우한 훙신은 공장조차 다 못 짓고서 망해버렸으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입니까? 근 20년에 걸쳐 당과 인민이 하나 되어 추진해온 사업이! 반쯤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 말이에요!”

여기까지 들은 좌중이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며 나랏돈 빼먹는 도둑놈들을 비난한다. 나는 린페이가 채워준 술잔을 홀짝이는 척 표정을 감추었다.

‘똑같은 새끼들이 염병들 떨고 있네.’

반도체굴기에 발을 걸친 공산귀족들이 매년 자기 주머니로 빼돌린 돈만 해도 한화로 10조 원은 거뜬히 넘어갈 것이다. 귀족들의 비밀스러운 금고가 매양 이런 식으로 손쉽게 채워진다.

다시금 되새기건대, 중국 공산당은 세계 최대의 범죄조직이다.

도취된 연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능굴기는 결코 반도체굴기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됩니다! 우선은 사영 이능엽사병단! 이는 사인(私人)에게 무력을 허하는 일이니, 예산 지원의 조건은 첫째가 병단의 장이 가진 애국심일 것이요, 둘째가 병단의 장이 지닌 실력이지 않겠습니까?”

이러면서 슬쩍 나를 스쳐가는 귀족의 시선.

“……이 둘만 확실하다면야 하나의 병단에 매해 십억! 아니, 백억 위안씩을 써도 전혀 아깝지가 않을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의욕만 앞서서 사방팔방에 투자했다가 결국엔 다 말아먹고 만 반도체굴기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의 범재보다 낫듯이! 하나의 출중한 집단이 만 개의 어중간한 집단들보다 낫겠지요!”

즉 표면적으로는 우리끼리 다 해먹는다 한들 결과만 잘 나오면 뭐가 잘못이겠느냐는 주장이고, 미리 애국심이 첫째라고 깔아둔 속뜻으로는 나더러 너도 국적 바꿔서 같이 해먹자고 던지는 은근한 유혹이다. 필시 여기 있는 모두가 사전에 주최자의 언질을 받았을 것이었다.

이게 너무 얕은 수작이 아닌가 싶어도, 옆에는 미녀가 있고 앞에는 술이 있으면 대가리가 안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정상적인 시력을 지닌 보통의 수컷 새끼들이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말이지만.

제 웅변에 취한 하급귀족이 왼쪽에 낀 여자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네가 듣기엔 어떠냐? 이 슈슈(叔叔)의 말이 맞는 것 같으냐?”

붙잡는 손은 억세고 당기는 힘엔 배려가 없어, 여자가 들고 있던 잔 속의 술이 바깥으로 반이나 쏟아진다. 여자는 찰나간 아픈 표정을 지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되돌리고서 잔을 번쩍 들어올렸다.

“예이! 슈슈의 말씀이 무조건 맞습니다! 저 웨이웨이는 우리 슈슈를 무조건적으로 믿는다구요!”

“그러취! 요 이쁜 것! 같이 한 잔 하자꾸나!”

“좋죠! 우리 교배(交杯/러브 샷)해요, 교배!”

두 사람이 팔을 서로 교차시키며 보란 듯이 잔을 비우자, 좌중의 나머지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 속에 한 잔씩의 취기를 더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셔야 하는 분위기’다. 내게 기대있던 린페이도 내 품속으로 파고들어 잔을 쥔 손을 내 목 뒤로 돌렸다. 그러고는 코가 닿을 듯한 거리, 두 숨결이 교차하는 상태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이, 이렇게 해도 될까요?”

“별걸 다 허락을 구하는구나.”

이 미인계의 자발적 도구가 희망하는 건 서로 몸을 포갠 채 상대의 어깨 위로 잔을 비우는 자세였다. 지금껏 마시는 듯 안 마시는 듯 홀짝거리기만 하던 잔을 내 어깨 위에서 단번에 비운 린페이는, 내 잔이 비기를 기다려 팔을 풀고 천천히 내려와서는, 귀 뒤로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그거 아세요?”

“무엇을?”

“옛날 주나라 시대엔 이 교배가 부부의 연을 맺는 의식이었대요.”

“음?”

“다른 말로는 합근(合卺)이라고도 했다는데, 합환주(合欢酒)를 담은 잔이라는 뜻이라나요. 합근의 근(卺)자는 또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연주하는 악기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대단하군.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지?”

“대학생 때 교양수업에서 배웠어요. 저 이래봬도 과 차석으로 졸업했거든요.”

“그건 정말 대단한데?”

“후후. 칭찬받았다.”

린페이의 수줍은 기쁨은 생체징후를 읽어도 진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뭐, 원래 가장 강력한 거짓은 진실이 섞인 거짓인 법이니까.

이럴 때면 내가 눈깔병신이라 다행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눈깔병신이 그래도 대가리병신 보다는 낫지 않은가?

내가 린페이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향을 즐기는 시늉을 하고 있으려니, 주최자가 손뼉을 쳐 주의를 모으고는 이러한 말로 분위기를 띄운다.

“동사장! 그러고 보면 당신이야말로 실제 만 명을 당해낼 한 사람이 아니겠소? 나를 도와 싸울 적마다 매번 일선에 나서서 반역도당의 무리들을 잡아 죽였으니 말이오!”

“별말씀을.”

“자, 너무 그렇게 겸양치 마시고! 이 기회에 대토벌 당시의 무용담이나 한번 들려주시구려! 여기 있는 모두로 하여금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 영웅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건지 깨닫도록 해주는 거요!”

유치한 자기자랑을 하라니, 까다로운 주문을 하시는군.

이럴 땐 경태의 평시 언행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된다. 녀석의 언행을 반의 반만 참고해도, 내 기준으로는 내가 어리숙했던 시절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했을 행동거지니까.

취기를 가장한 중언부언 약간과 경태스러운 어조 약간을 첨가하여 흑해자당을 죽이고 다닌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좌중은 아낌없는 탄성으로 호응해주었다.

이 같은 치켜세우기도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요령이다. 같은 자리에 시꺼먼 수컷들만 있다면 또 모를까, 수컷의 대가리를 마비시키는 데엔 화사한 암컷들의 찬사만한 게 드무니까. 멋져요. 대단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기고만장해진 수컷은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내리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만다. 아니, 나중에라도 후회할 정신머리가 남아있다면 다행이겠지.

나는 내게 같은 수법으로 당한 병신들이 끊임없는 자기합리화로 제 실수를 정당화하는 추태를 숱하게 보아왔다. 그놈의 체면이 뭐라고.

여러 세부사항들과 민감 정보들이 생략된 무용담을 끝내니 가오슈센이 앞장서서 요란한 박수를 친다.

“대단하오, 정말로 대단해! 어찌 그리 용감할 수 있는 게요? 나와 이 사람들에게도 그 비결을 좀 알려주시구려.”

“비결이라, 비결…….”

뜸을 들이던 나는 허세를 칠한 진심을 꺼내었다.

“나폴룬(拿破仑/나폴레옹)의 금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전투의 다음 날을 위해 신선한 전력을 아껴두는 장군들은 거의 언제나 패배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최후의 한 병사까지 투입해야 한다. 왜냐면 완전한 승리를 거둔 다음에는 더 이상 싸워야 할 적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호.”

“내게는 나 자신이 최후의 한 병사입니다.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하는 강하고 우수한 전력이지요. 그러니 목전의 싸움에 나를 더하여 승리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을 때에는, 주저 없이 나서는 것이 손해를 최소화하거나 이익을 최대화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앎을 실천하는 것 외에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실천이 쌓일수록 내 힘도 강해지지요.”

“크.”

여자가 먹여주는 음식을 씹어 삼킨 가오슈센이 과장된 움직임으로 끄덕인다.

“실천. 그래, 실천. 따지고 보면 비결이란 사실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알아도 실천을 안 해서 문제인 게야. 그거야말로 범인과 영웅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겠나? 응? 자네들은 어떻게들 생각해?”

이렇게 주변에 던지는 물음은 재차 나 한 사람을 띄워주는 적극적인 긍정들로 돌아왔다. 이때 주머니 속에서 징징 울리는 스마트폰의 수신 알림. 꺼내어 슬쩍 보니 수연으로부터 짤막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있었다.

「1번 패키지의 발송을 확인했습니다.」

1번 패키지란 내게 포섭된 세 경독 중 하나, 후샨량의 가족들을 말함이었다. 남은 둘, 장타이롱과 판하이산의 가족들도 이 밤이 지나기 전에 밀항선을 타게 될 것이다. 각 패키지는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아부다비에 도달하도록 계획이 짜여 있었다.

이후 기러기 아빠들과 나머지 가족들 간의 소통은 마카오에 해외법인을 둔 조직 산하 관광회사의 회원전용 게시판과 미주가 제공할 위성전화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사내가 내 병단 「화성맹룡대(花城猛龙队)」의 자문을 맡아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란 말인가? 응?”

화성맹룡대. 화성은 광저우의 이명이고 맹룡은 사나운 용을 뜻하니 이름을 풀이하면 광저우의 사나운 용들쯤이 되겠다. 상세한 사정을 모르는 하급귀족들은 내가 자문을 맡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잘 꾸며진 칭찬들을 던져주었다.

제 사병대를 자랑한 가오슈센이 내게로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동사장은 내 병단의 사업성을 어떻게 보시오?”

“……정부계약을 독점 수주한다면 돈이 안 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 미국만 하더라도 대사관이나 해외 군사기지 위탁경비에 지불하는 돈이 경비원 머릿수 하나당 50만 미원(달러)을 넘어갑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시설보안 계약의 대금조차 적게는 연 수백만 미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미원까지도 호가하는 거지요.”

허벅지 위의 린페이가 살짝 뒤척이듯 자세를 고치기에, 나는 그 몸을 적당히 받쳐주며 말을 이었다.

“흑해자당 잔당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게 되어버린 이 거대한 대륙의 사업 환경이 미국의 해외 거점들보다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일대일로 사업의 영향권에 들어있는 국가들에서도 조만간 보안 관련 수요가 폭증할 테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야 당연한 말씀이오. 중국의 자산은 우리 중국인들의 손으로 지켜야지!”

일대일로 사업에 참가한 국가들 치고 국민들의 반중감정이 강해지지 않은 경우는 없다. 말이 투자이지, 정치가들을 매수해서 국가 자체를 빚더미에 올려놓고는, 그 빚을 빌미로 채무국 전체를 집어삼키다시피 하는 게 일대일로의 실체니까.

하니 중국은 앞으로 민간군사기업(PMC) 내지 사설보안업체에 신세를 질 일이 많아질 것이었다. 이미 구축해놓은 패권과 확보해놓은 이권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무장한 능력자 집단의 주된 진로 하나가 거기에 있다.

“장차 베이징 중앙정부가 「다인코프」나 「드라켄 인터내셔널」 같은 세계 유수의 군사기업 육성을 목표로 삼는다면, 나중엔 군사작전 보조나 항공임무계약, 교육훈련 지원, 특정 지역의 치안유지 계약 등을 통해 매년 수백억 미원(달러) 규모의 고정수입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실제로 그렇게 지출을 하고 있지요.”

“수백억 미원! 듣기만 해도 꿈만 같구려! 하하!”

내가 언급한 「다인코프」나 「드라켄 인터내셔널」은 독자적인 항공작전 수행마저 가능한 초대형 사설 보안업체들이다. 특히 후자는 백 기가 넘는 초음속 공격기를 운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일개 사기업이 어지간한 개도국의 공군력을 압도하는 힘을 보유한 것이다.

웃음을 그친 가오슈센이 다시 한 번 묻는다.

“언젠간 분명 그렇게 되겠지. 다만 나는 형제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그대에게 지금 당장의 사업성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은 거요.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앞서나갈 무언가가 없겠소이까? 그리하여 중앙의 투자를 보다 큰 비율로 선점한다면, 동사장이 말한 미래를 그만큼 더 앞당기는 셈인데 말이오.”

“당장의 사업성이라.”

다른 귀족과 자본가들을 따라 품속의 여체를 희롱하며 산만하게 생각하는 흉내를 내던 나는, 이윽고 툭 던지듯이 제안했다.

“그럼 농장이나 경영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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