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9)
중국의 경제성장은 첩들이 이끈다는 말이 있다. 농담이 아니라, 첩살이를 하는 여자들의 씀씀이가 실제로 소비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경제규모가 큰 대도시들의 총 소비액 중 약 5분의 1에서 6분의 1 가량이 첩들과 관련된 영역의 지출만으로 채워지므로, 그 액수는 어중간한 국가의 GDP에 필적한다.
이걸로도 모자라 LA와 밴쿠버 등지의 고급주택가마다 첩들만 모여 사는 거리가 형성될 지경이니, 첩들의 소비력이 북미의 경제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속으로 조소했다.
‘요즘은 남자 첩들의 숫자도 급증하는 추세라지…….’
남편들이 첩을 만드는데 아내들이라고 첩을 만들지 말란 법 없다. 중국은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이고, 공산주의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사상이 아닌가?
근래 베이징에서 돈과 권력을 두루 가진 여자들이 선호하는 기둥서방의 유형 중 하나는 승가(僧伽)에 든 중놈들이었다. 세속의 사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의 유서 깊은 사찰들은 여성 전용 호화클럽으로 변모했고, 잘생긴 낯짝에 의지하여 절간을 차지한 대머리 호스트 중놈들은 승복 차림으로 벤츠와 아우디를 끌고 다니는 판이다.
타락한 종교는 진실로 인민의 아편이라 하겠다.
여하간, 그러한 첩들의 영향력은 비단 경제적인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배금주의자들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고, 굳이 돈을 쓰지 않더라도 베갯머리송사를 통해 보다 직접적인 형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 언젠가 미주가 가오슈센의 전 비서를 장기적으로 이용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제언이었다.
개중에서 영향력이 가장 빼어난 부류를 꼽으라면 역시 연예계와 방송가, 그리고 극장가에서 활동하는 첩들이 되겠다. 어지간히 강한 권력자가 아닌 이상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하기 어렵고, 많은 권력자들이 동시에 욕망하는 대상인지라 권력자들과의 관계로부터 주어지는 힘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로 나는 무대에 서거나 설 차례를 기다리는 배금주의의 꿈나무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혹시 연예계나 방송가로 진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경력이 있거나 이미 출도(데뷔)한 사람이라면 더 좋겠는데.”
내 요구사항을 들은 고독들 중 일부가 반색한다. 개중 몇몇은 번쩍 손을 들거나 손나팔을 만들어 목소리를 돋우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나섰다.
“저요! 저를 뽑아주세요, 선생! 전 총물보도(宠物报道)에서 탐방 기자(报告人)를 맡았던 적이 있어요!”
“전 베이징 전영학원(电影学院/영화 아카데미) 공연과 출신이에요! 4년 전에 졸업했답니다!”
“선생께선 혹시 제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으신가요?! 제가 생활 라디오(生活广播)에서-”
“이쪽이요! 이쪽을 봐주세요! 여기서 제일 예쁜 사람이 저예요!”
이 같은 반응에, 앉아서 지켜보던 귀족과 자본가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젊음의 활기와 풋풋한 모습들이 보기 좋다느니 운운하는 개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앞서 나를 맞이했던 관리인, 금빛 명찰을 단 옥사나가 무대 위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섰다. 그러곤 순서를 정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준다. 난 가로로 긴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고독들의 자기소개를 경청했다. 눈으로는 상품가치와 생체징후를 분석하면서.
이곳 광저우가 제아무리 2부 리그라고는 해도, 광둥의 인구만 1억을 넘는 고로 외모만으로는 누구 하나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속에 독을 품은 동물들의 화려함.
‘사실 외모가 가장 크긴 한데.’
타락한 공산귀족들이 계급독재로 다스리는 땅에서, 진실 된 인간성이란 선전용으로 만들어지는 영상과 뉴스 속에나 존재한다. 중국 정부가 인민의 민도 순화를 위해 주기적으로 미담을 찍어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그럼에도 나는 생체적 징후들에 집중하여 본성의 실루엣을 보고자 했다. 아무리 독물(毒物)이라도 최소한의 유대관계는 형성할 수 있어야, 특정 정보의 교차검증용 소식통으로 삼든 가오슈센의 착각을 유도할 미끼로 쓰든 할 게 아닌가.
가오슈센이 이 자리를 만든 진짜 목적을 짐작하는 나로서는, 그에게 거짓된 약점이라도 하나 쥐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둔 여자라는 약점을. 그래야 가오슈센이 제 약점을 쥔 동업자에 대한 근심을 덜겠지. 오늘 이후로도 종종 연락을 하고 뒤를 봐달라는 청탁을 해주는 정도면 배 나온 공산귀족을 속여 넘기기에 충분하지 않을는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가오슈센은 내게서 자기가 이해 가능한 인간의 면모를 발견할 것이다.
‘근시일 내로 아예 임신을 시켜버리면 가장 확실한 인질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나 자신이 고아 출신이니까.
지금이야 그깟 애새끼가 죽든 말든 신경 끌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애가 세상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못내 마음이 쓰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구속력이며, 나 하나만큼은 예외이리라는 확신은 섣부른 자기 과신일 뿐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는 인간이 어디에 있나?
이렇게 내 자식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진다.
가족이 있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난 이내 같잖은 상념을 흩어버리고서 의식을 무대 위로 되돌렸다.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피던 나는 마침내 마음을 정하여 손가락을 까딱였다.
“거기 너. 이리로 와라.”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던 독물들이 일제히 반색한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몇 번의 손짓을 더했다.
“너 말고. 그 뒤에. 그래. 너.”
내가 말하는 사람이 자신임을 깨달은 여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함으로써 기쁨을 연기했다. 그러나 두개골 안쪽의 신경신호는 겉보기만큼 요란하지 않았다. 대뇌 내측 두정엽의 설전부(Precuneus)도,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도 활성화의 정도가 약하다. 도파민과 세로토닌보다는 아드레날린의 색채가 더 크게 번지는 중이다.
무대에서 내려와 내 가까이에 이른 여자가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자세로 감사를 표한다.
“절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나는 내 옆자리를 툭툭 두드려보였다.
“앉아.”
“네!”
심장이 빠르게 뛰는 동물이 내 옆에 다소곳이 자리 잡는다. 나는 그 허리에 팔을 감아 끌어당겼다. 나를 향한 미소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으되,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허리가 찰나 간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골랐군.’
그래,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야망도 있고 독기도 있지만 고독으로서 완성되려면 아직 버려야 할 순수가 남아있는.
“난 끝입니다. 이제 부서기께서 고르시지요.”
내 말에 가오슈센이 의아해했다.
“내가 아까 몇 명이라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런 데서 사양하실 필요는 없소이다마는.”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한 번에 하나를 깊게 음미하는 쪽을 좋아하는지라.”
“아하. 꽤나 고상한 취향이셨구려!”
실은 반대다. 촉이 좋은 사냥꾼들을 상대로 내 이상성을 감추는 데엔 하나보다는 여럿을 끼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편이 유리하니까. 그래도 지금의 내겐 그러한 유불리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험이 있다. 이런 쪽으론 영 형편없는 애송이였던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거두었다 하겠다.
이쪽에서 오가는 대화를 유심히 듣던 무대 위의 여자들이 웃으며, 또는 시무룩한 울상을 지으며 입을 모아 애걸한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네?”
“그래요! 팔은 둘인데 여자가 하나면 남는 쪽이 서운해하잖아요! 만민이 평등하듯 좌우도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재청이요! 하나는 너무 적소! 넷으로 합시다!”
“저는 자리가 없으면 선생의 발아래 앉아도 좋다고 입찰해봅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필요하다면 서로를 잡아먹는 데 거리낌이 없을 독사들이 손뼉을 치며 자연스럽게 율동을 맞추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내가 끝끝내 반응을 하지 않으니 시들해진 독사들은 결국 다음 사냥감을 노리게 되었다. 다음이라곤 해도 행사의 주최자인 가오슈센의 선택을 받을 차례였으므로, 적자생존의 치열함은 내 차례와 다르지 않았다.
연회에 참석한 모든 귀족과 자본가들이 선택을 마치기까지는 자연히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틈틈이 가느다란 눈으로 내 행동거지를 엿보는 가오슈센의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나는 옆자리에 앉혀놓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류린페이라고 합니다, 선생.”
“무슨 글자를 쓰나?”
“방울방울 떨어질 린(淋)에 향기로운 꽃 페이(菲)를 써요.”
“물에 젖은 꽃이라. 외모에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다. 실제로 향기가 좋기도 하고.”
“칭찬에 감사드려요.”
“본명인가? 아니면 예명?”
“본명이랍니다.”
“양친께서 이름을 잘 지어주셨군. 앞날을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패턴인데도, 린페이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차마 들어주기 민망할 만큼 처참한 말들을 입에 담았어도 똑같은 미소를 지어보였겠지. 요컨대 이건 형식이다. 난 눈앞의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술 좋아하나?”
“저는-”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일단 나부터가 술을 별로 즐기지를 않으니까. 물론 좋다는 사람을 못 먹게 막는 악취미는 없지.”
“……다음 날 괴롭지 않을 만큼 마시는 건 좋아합니다. 특히 좋은 분께서 옆에 계실 때는요.”
“알았다. 오늘 하루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보지.”
“큭.”
가지런한 치열 사이로 새어나오는 웃음. 알게 모르게 뻣뻣함이 남아있던 린페이의 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대화는 한 번의 끊어짐 없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내게 여자의 비위 맞추는 재주는 없었으되 협상장에서 써먹던 화술과 많은 독서로 얻은 지식이 있었으며, 이 여자에겐 내 환심을 사겠다는 적극적인 목적의식이 있었으므로. 이를 본 가오슈센은 매우 흡족한 기색이 되어 좌우에 낀 여자들과 시시덕거렸다.
선택의 시간이 끝나자 드디어 질펀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최초의 건배 이후 나는 먹고 마시는 틈틈이 남은 용건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 했으나, 자리 자체가 짜고 치는 사기도박과도 같아 대화는 매번 엉뚱한 방향으로 새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쪽으로 숙련도가 높은 귀족과 자본가들이 전문적인 산만함으로 이야기를 흘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정색을 할 수도 없고.’
내가 노골적으로 주제 전환을 재촉한다면 가오슈센은 비뚜름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일이 중한 것도 한두 번이지, 당신에게 나는 항상 일보다 중하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식으로. 더욱이 계파에 속한 아랫사람들 앞이었으므로 체면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린페이는 내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자리들과의 건전한 온도차가 신경 쓰였는지, 머뭇머뭇 조심스러운 손길을 내 배 위로 미끄러뜨렸다. 그러더니 눈을 조금 크게 뜨며 감탄을 흘린다.
“와……. 단단하네요. 관리를 열심히 하시나 봐요.”
“별거 아니다. 그냥 필요한 만큼 하고 있을 뿐이야.”
생존에 필요한 만큼이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내 말에, 린페이는 왁자지껄한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상체를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별게 맞는 것 같아요.”
이에 나는 소리를 줄인 속삭임을 돌려주었다.
“나 역시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만, 그게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큭.”
아까에 이어 두 번째로 새어 나오는 큭이다. 입김에 살갗이 간지러웠는지 어깨를 움츠리는 건 덤이었다.
“저,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옮겨도 될까요?”
“어디로?”
“……여기로요.”
자신감을 얻은 린페이의 손길이 내 허벅지로 흘러내린다.
“여기에 앉으면 시중을 들어드리기 더 편할 것 같아서요. 그, 저한테도 더 좋고…….”
“원하는 대로 해라.”
“예.”
수줍은 웃음을 꾸미며 내 위로 조심조심 타고 오르는, 아직은 독도 독니도 여물지 않은 따뜻한 인간 한 마리. 이 동물은 저의 첫 사냥이 예상만큼 위험하지 않은 데 크게 안도하는 느낌이다. 아차하면 성난 사냥감에게 치여 죽는 건 야생과 문명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기대오는 체중은 허리의 가늘기만큼이나 가벼웠다. 동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혹한 자기관리의 한 단면일 것이다.
나와 린페이의 물리적 간격이 제로에 가까워지자, 가오슈센을 비롯한 면면들은 이제야 쌀이 익었다고 판단했는지 느릿느릿 본론에 들어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이능굴기에 관한 잡담을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