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2화 (152/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7)

미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내가 오늘도 엽사 모집과정 감독을 위해 광저우 대학도시로 진입할 때의 일이었다.

“겨우 넷이라고?”

「예.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더군요.」

수연으로부터 미주를 경유하여 가오슈센에게 전달된 내 전언,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힌 이능보유자들 중에서 열 명 정도만 이쪽으로 보내달라는 요구에 대하여, 시 공안국의 실세인 공산귀족이 지금으로선 네 사람이 한계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이제 「광둥 대토벌」이라 불리는 지난 전투에서 산 채로 사로잡힌 이능보유 불온분자의 머릿수가 얼만데, 고작 넷이라니.

잠깐이나마 ‘이 새끼가 실적에 눈이 멀어 봬는 게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를 그렇게 찬밥 취급할 만큼 가오슈센이 지능 떨어지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간 공적을 넘치도록 쌓은 공산귀족에게 권력이 부족할 리도 없으니,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베이징에서 시(市)급 수감시설의 수용현황까지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이능굴기」는, 대외적으로는 이능보유자를 대대적으로 육성하여 전력화하는 국책 공정(국가 프로젝트)쯤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지 거기서 그칠 리가 있나. 이능(초능력) 발생의 원인과 원리를 규명하는 공정, 이능을 산업·경제·군사·과학 분야에 접목하는 공정, 이능전력을 해외에 투사하여 국제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공정, 그리고 경독 후샨량이 내게 귀띔했던 것처럼 외국의 이능보유자들을 체계적으로 영입하는 공정 등이 하나로 묶여 「이능굴기」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정을 이룰 것이었다.

이중에서 이능의 원인과 원리를 규명하는 공정은 실험체로 삼을 이능보유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작금의 미국이 그러하듯 돈을 주고 임상실험대상자를 모집하겠으나, 중국 같은 나라는 그렇게 쓸데없는 예산낭비를 할 이유가 없었다.

사흘 전부터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목적지로 이송되는 반역자들의 존재가 그러한 공정이 진행 중이라는 증거였다.

‘뭐, 돈 주고 지원자를 모은다는 새끼들도 떳떳한 처지가 못 되지만.’

예를 들어 프랑스만 하더라도 저가 오늘날까지 상전 노릇을 하는 구 식민지 출신 국가들의 각성능력자들 중에서 지원자를 뽑고 있는데, 몸값을 후려치는 건 기본이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한다는 ‘종합적인 고용계약’을 체결하여 실험체와 용병을 동시에 확보하는 중이다. 말로는 합법적인 선을 지킨다는데, 가난과 혼돈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땅에서 과연 기본적인 연구윤리들이 준수될지가 의문이었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수화기 너머의 미주가 머뭇머뭇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음?”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면 좋을지…….」

“말해봐.”

「네 명 중에서 한 명은, 제가 가오슈센에게 미리 빼달라고 당부해두었던 인간……입니다.」

잠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던 나는, 곧 말뜻을 이해하곤 관자놀이에 손을 댔다. 죽은 갑수의 복수와 관련된 일인 것이다.

“그것 참 공교로운데……. 아니, 공교롭다고 할 것도 아니군. 보낼 사람이 그렇게 없는 상황이면 차라리 당연하다고 해야겠지.”

「예.」

“혹시 그날 현장에 있었던 새끼들 가운데 하나인가?”

「아뇨. 유감스럽게도 실행범들은 모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전부 하나의 돌격대 소속이었다는데, 진술을 토대로 해당 돌격대의 동선을 추적해보니 육군과 해군이 합동으로 화력집중점을 찍었던 강변의 매복지에서 끝나더군요.」

“함포사격에 노출되었다면 신원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겠구나.”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들어온 시체들을 일일이 확인해봤지만, 사지가 온전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체를 보관할 냉동고가 부족하여 부패도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고요. 대부분 흑해자 아니면 농민공 출신이어서 DNA 등록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난 악취 가득한 임시 시신보관소에서 썩은 물이 흘러나올 만큼 부실한 중국제 시체가방들을 하나하나 열어 확인하는 미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역겨움보다는 분노와 허탈함을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유감이다. 그럼 잡힌 놈은 교사자냐?”

「비슷합니다. 자기가 습격 계획 수립에 관여한 사람 중 하나라고 자백했습니다.」

“흠…….”

내 짧은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미주가 약해진 음색으로 말한다.

「형님께서 뭔가 실험을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데려가서 볼일을 보신 다음 돌려주셔도 무방합니다. 아니면 형님께서 제 대신 끝내주셔도 괜찮고요.」

“무슨 소리야? 그 인간의 처우에 관한 권리는 오롯이 너에게 있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그게 내 결정이었다. 최대한 오래 살려둔 채 고통을 주고 싶다면, 그때는 내 도움을 받아도 좋겠지.”

「감히 거기까지 바라진 않습니다. 저는 단지 제 사적인 감정으로 형님과 조직에 너무 많은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여…….」

“됐다니까 그러는구나. 산 채로 회를 치든 피부를 벗기고 혀와 눈알을 뽑아 지지든 네가 좋을 대로 처리해. 이쪽으로는 나머지 셋만 보내도록 하고.”

「무슨 실험을 하시는진 모르겠으나, 셋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시간을 더 주신다면, 음, 이송 일정을 고려할 때 대략 열흘쯤 뒤에는 추가로 사형수를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흘? 그때쯤이면 아마 인도네시아나 한국에 가있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길게 끌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떻게든 변통을 해야지.”

「……형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만 네 실망이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사람에게 칼을 대기 전에 동물을 상대로 감을 좀 잡기는 해야 할 성싶다. 수준이야 어떻든 엽사를 자칭하는 능력자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는 만큼, 시가보다 높은 가격을 부른다면 채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필요한 실험체들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에 따라 메리옘이 다소 슬퍼할 수도 있겠군.’

내가 실험을 서두르는 건 메리옘의 동생들 때문이다.

대토벌로부터 이틀째 되던 날 밤, 나는 가오슈센과 공안국 수상분국장 후수광의 협조를 얻어 주장강 하구 쟈오이완(交椅湾) 일대의 선박 통행을 일정 시간 통제했다. 이는 멀지 않은 곳에서 메리옘의 동생들에게 「세례」를 내려주기 위한 조치였다.

메리옘의 회로를 열어줄 적 그러했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세례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이는 경태를 위시한 부하들에게 맞춤형 회로를 뚫어주며 획득한 경험과 노하우 덕분이었다.

그러나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능력을 각성한 여섯은 그러한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회로를 교정해주기에도 때가 늦어, 그럭저럭 균형이 맞는 하나를 제외하면 능력자 구실을 하기도 애매했다. 힘은 일반인보다 좀 나은 수준에 불과한데 그 힘을 쓰려고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수준.

이 여섯이 세례가 불가능하다는 내 말에 얼마나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던지. 개중 둘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동생들의 정신 상태에 대한 메리옘의 우려는 겪으면 겪을수록 정확함을 더해나가기만 한다.

본연의 음색을 되찾은 미주가 이어서 보고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가오슈센 부서기가 오늘 저녁 형님의 일정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용건도 말하던가?”

「예. 첫 번째는 광둥삼합회의 자산 및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사업장들의 지분 분배비율을 확정짓는 일입니다.」

“아, 그거.”

다른 일이 많아 잊고 있었다.

“실무적인 논의는 얼마나 진행되었지? 대충 결론은 났고?”

「기조실장의 지침에 의거, 카지노나 기타 잡다한 사업장들의 지분을 양보하는 대신 라이센스 정킷들의 지분과 운영권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잠정적으로 도달한 합의에 따르면, 우리의 몫은 오문(澳門) 유희오락공사의 지분 1%, 아시아 게이밍 홀딩스의 지분 51%, 호 엔터테인먼트 컴퍼니의 지분 51%, 모피어스 코퍼레이션의 지분 38%…….」

기조실장은 비서실장과 함께 수연이 겸직하고 있는 자리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지금은 수연을 기조실장이라 부르는 게 맞는 것이다. 미주가 나열하는 이름들은 오문 유희오락공사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삼합회와 연관된 정킷 기업들의 것이었다.

‘잘됐어. 그렇잖아도 자금세탁에서 다이아몬드 카지노와 원주민 카지노 연합에 의존하는 비중을 줄여야 할 참이었으니.’

라이센스 정킷(License Junket)이란 카지노와 VIP 고객들을 연결해주는 마카오 특유의 합법적 중간 조직들인데, 계약을 맺은 카지노에서 VIP들이 거는 모든 판돈의 1.25%를 수수료로 받는 동시에 VIP 고객들의 카지노 계좌를 관리하는 입출금 창구 역할까지 수행하여, 마카오 경제의 보이지 않는 실세들이라 할 만 했다.

단순히 금전적인 이익만을 고려하면 카지노 자체를 확보하는 편이 낫겠지. 훨씬 더. 그러나 정킷의 강점은 특유의 은밀한 사업성이다. 애초에 중국 대륙의 VIP들이 정킷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 은밀함에 있으므로, 철저한 보안과 비밀주의야말로 정킷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정킷이 관리하는 카지노 계좌들은 위안화와 홍콩달러를 기본 결제수단으로 삼는데,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와 고정 환율로 묶인 화폐라 자금세탁에 대단히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VIP 고객들이 정킷을 이용하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금이 일단 도박용 칩으로 바뀌고 나면 그 흐름을 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매 게임이 벌어질 때마다 섞이고 섞이고 또 섞이는 칩들이 본디 누구의 것이었는지, 출처는 또 어디인지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그건 도박판에 낀 당사자들조차도 모를 일이다.

국가가 카지노를 허가한다는 건 그러한 부작용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세수를 확보하고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이 부패한 대륙에서조차 명목상으로는 그러하다.

나는 미주의 보고가 일단락되기를 기다려 질문했다.

“노파심에 묻는 것이지만, 인수할 정킷들의 재정 상태는 점검해봤겠지? 우리 전에 경영권을 쥐고 있던 것들이 칩 발행량을 가지고 농간을 부렸을 게 뻔한데.”

「본사에서 장부를 받아 검토한 결과 큰 부실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전에 기조실장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삼합회 소유 정킷의 VIP가 과연 어떤 자들이었겠으며, 삼합회 떨거지들이 그런 자들을 상대로 장난을 쳐봐야 얼마나 칠 수 있었겠느냐고. 그러니 너무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고들 것 없이 속도전으로 일을 진행하라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과연.”

내가 생각이 짧았다.

더군다나 가오슈센에겐 거래의 공정함을 지킬 이유가 둘이나 있다. 하나는 나와의 관계. 다른 하나는 미주와의 관계. 설마하니 공산귀족쯤 되는 인간이 마음을 둔 여자에게 사기를 치진 않겠지. 호감을 얻고자 더 퍼준다면 모를까.

실무진 사이에서 결론이 났다면 요식행위로나마 우두머리들끼리 만나 계약을 완성할 차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방금 게 첫 번째라면 다른 용건은 뭐지?”

「두 번째 용건은 「이능굴기」 사업의 추진에 관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용건은 형님께서 중국을 떠나기 전 제대로 한 번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승리들을 기념하는 자리를 겸해서요. 제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뭐, 알겠다. 오후 여섯 시 이후로 시간을 정해서 통보하라고 해.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다는 말도 전하고.”

「예. 자정을 넘기지 말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음.”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수고가 많다.”

「별말씀을.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끊자.”

「예.」

통화가 종료된 뒤, 나는 내가 새로 얻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무를 숲에 숨기듯이, 검은 돈은 더 많은 돈 속에 숨겨야지.’

마카오의 카지노 경제규모는 약 4백억 달러로, 환락의 도시로 이름 높은 라스베이거스의 세 배를 넘어가는 규모다. 음지에서 움직이는 자금까지 포함한다면 다시 몇 배가 더해질지 모를 노릇이고. 비록 관광업의 쇠락과 국제적인 불황으로 예전과 같은 수익성을 기대할 순 없겠으나, 내 수중에 들어올 정킷들은 주 고객층이 고객층인 만큼 크게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었다.

또한 그 고객층은 잠재적인 꽌시의 연결망이기도 했다. 이 대륙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고객층의 두께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

마지막으로 마카오의 중심인 코타이 스트립의 4분의 1이 라스베이거스 자본의 소유이니, 정킷을 도구삼아 그들과 사업상의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 국제적인 자금이동이 훨씬 더 쉽고 빨라질 터였다.

이 정도면 사업적인 측면에선 훌륭한 성과라 자평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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