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1화 (151/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6)

부하들이 새벽 식전부터 이렇게 힘을 소진해도, 생체강화에 따른 자연회복 가속이 있기 때문에 하루의 활동에 지장은 없다. 더 이상의 운동이 불가능한 실패지점까지 육체를 혹사한들 길어봐야 반나절 내로 회복이 끝나는 것이다.

한계까지 운동을 하고 나서 이삼 일은 쉬어줘야 몸이 축나지 않는 비각성자들에 비하면, 이러한 회복력은 분명 대단한 이점이다. 일반인들이 연 단위로 행해야 하는 육체적 단련을 각성능력자들은 빠르면 한두 달 만에 해낼 수 있는 셈이니까. 물론 신체강화의 수준이 내 부하들만큼은 될 때의 이야기지만.

‘지나치게 강한 능력은 오히려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지.’

마법적인 근력강화는 합연산이 아닌 곱연산으로 이루어진다. 즉 기본적인 근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강화계수가 높게 나와도 최종적으로 발휘하는 힘은 기대에 영 못 미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강화계수가 높아질수록 근육에 부하를 주기도 어려워진다는 점.

고로, 이론상, 강화계수가 까마득하게 높은 신체강화 능력자는 근육에 부하를 가할 방법이 없어 불치병과도 같은 근손실을 겪게 된다. 몸을 아무리 치열하게 굴려도 가만히 누워 숨만 쉬는 사람보다 못한 운동부족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한 빈혈과 비만, 심혈관계 질환, 극심한 만성피로, 호르몬 분비 이상 등은 해당 능력자를 사실상의 반병신으로 만들어놓을 터.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사로잡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식사 시간, 이 말을 들은 경태가 크게 우물거리던 걸 꿀떡 삼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생각은 해봤지 말입니다. 저희야 뭐 능력을 얼마간 조절하는 게 가능하고, 정 뭣하면 형님께 기대는 방법도 있겠지만, 둘 다 불가능한 자연각성 능력자들은 언젠가 그렇게 저주 받은 천재가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난 경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다 좋은데, 밥은 꼭꼭 씹어서 삼켜라. 지금이 전투상황은 아니지 않으냐.”

“에이, 형님두. 지금이라면 농담이 아니라 쇠를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될 것 같은데요 뭘.”

“내 말에 너무 서둘러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한두 번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만.”

“하하. 알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다. 내가 이 녀석들과 겸상을 하기가 벌써 여러 해인데, 나는 다만 밥상머리에 상급자를 둔 부하들의 식사가 불편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아랫사람들을 밥 먹는 일로 불편하게 만드는 상급자가 어찌 질 좋은 충성을 받겠는가.

함께하는 식사는 연대감 유지를 위한 소통과 자유로운 의견개진의 시간이기도 했다.

“제가 능력의 색다른 활용방안을 좀 고민해봤는데 말입니다.”

“색다른?”

“예.”

두 번째로 채워온 식판을 내려놓으며 경태가 입을 열었다.

“로켓 엔진이라는 게 연료공급계통을 제외하면 그냥 연소 체임버(Chamber)와 분사노즐이 남을 뿐인 물건이잖습니까? 그러니 그 추진계통만 뚝 떼어 몇 개의 하드 포인트(Hard Point : 부가요소를 장착하는 지점)에 부착한 특수 전투복 같은 게 있으면, 연소 체임버에다가 마력을 태우는 불을 꽉 채워서 분사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허.”

“이거 진짜 실용적인 아이디어 아닙니까? 쌩으로 도약하는 힘에다가 그런 식의 보조 추력이 더해지면, 음, 제대로 쓰려면 지금보다 능력이 더 강해져야 하겠지만, 어쨌든 지형을 극복하는 능력이 탁월하게 향상되지 않을까요? 염동력 없이도 짧은 비행을 해내는 겁니다! 경사가 90도를 넘는 절벽을 달려서 등반할 수도 있겠죠!”

경태의 사고는 틀을 벗어나 있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을 보게 된 기분. 내 표정을 본 경태는 칭찬을 받은 리트리버처럼 신이 났다.

“그리고 또, 노즐 대신 터빈을 달아놓으면 추진 장치로서는 좀 약해질지 몰라도 소형 발전기 노릇을 겸할 수 있을 겁니다. 발전효율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일반적으로 휴대하는 전자장비들 정도는 충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걸요?”

짐의 부피가 곧 휴대 가능한 짐의 한계를 결정하는 능력자들에게, 휴대하는 도구들의 유틸리티성은 중요한 스펙으로 여겨질 것이다. 발전기를 겸하는 추진기는 그러한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좋은 물건이었다.

‘능력자와 관련된 시장의 성장쯤은 예상했지만…….’

예컨대 수연과 같은 전기능력자가 더 많아지고 평균적인 출력 또한 상향된다면, 전 세계의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엄청난 호황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렇게 돈을 처발라도 부족하던 인프라가 단번에 완성되는 셈이지 않은가? 능력 각성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는 확률적인 사건이므로, 시장규모의 확대는 터무니없는 수준이 될 게 뻔하다.

1센티미터. 단 1센티미터의 공중방전을 장시간 유지할 역량만 있다면, 만들어내는 전류의 세기가 1암페어에 불과할지라도 그 전기능력자는 걸어 다니는 충전소 흉내를 낼 자격이 있다. 공중방전의 거리가 2센티미터에 이르면 급속충전시설보다 빠른 충전 속도를 자랑할 테고.

사실, 1센티미터의 방전이라는 건 상당히 강한 축에 드는 힘이다. 공기는 절연체이며, 상온에서 1센티미터의 공기절연을 파괴하려면 약 3만 볼트의 전압이 필요하니까. 1암페어의 전력에 3만 볼트의 전압이면 시간당 30킬로와트의 전력량이 나온다. 이는 석유로 돌리는 휴대형 발전기 열 대와 맞먹는 출력. 누가 이걸 약하다 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형성되는 ‘인적자원’ 인프라가 비단 자동차 시장에만 영향을 미칠 리는 없다.

‘일단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나라들부터 똥줄이 타겠지.’

이제껏 인프라가 열악해서 산업경쟁력이 낮았던 후진국들이 인적자원만 가지고 공장형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그 혁명적인 변화는 선발주자들의 악몽일 수밖에. 사실 지금도 순수하게 물리적인 노동력만으로 비슷한 흉내를 내는 사례가 하나둘 등장하는 판국이었다. 다른 연료의 투입 없이 아동노동만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인력발전소의 출현이라든가.

선발주자들은 과연 어떻게 사다리를 걷어차고 어떻게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켜낼는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피어오를 혼돈과 전쟁의 불씨들.

난 그 더러운 불씨들을 기다린다.

잠시 즐겁게 주절대던 경태는, 내 반응이 시들해지자 잽싸게 화제를 바꾸었다.

“그 제례용 검 말입니다. 영혼을 뽑아 저장해두는 칼이라고 하셨던. 그거 혹시 따로 이름 같은 건 있습니까?”

“이름? 글쎄. 웨스트버튼 그 인간이 원래 뭐라고 불렀을지는 모르겠다. 스승새끼의 기억에도 없는 물건이고……. 한데 갑자기 이름은 왜?”

“왜긴요. 그렇게 신비한 힘을 가진 검이면 응당 그럴듯한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죠. 이를테면 진명황의 집행검 같은.”

“진명……뭐?”

“진명황의 집행검이요.”

“뭐냐, 그건?”

“젊은 세대의 트렌드입니다, 형님.”

“요즘 애들은 그렇게 요란한 걸 좋아하나?”

“그렇다던데요.”

“……?”

“실은 저도 어디서 들은 거라서요. 잘은 모릅니다. 하하하하!”

제가 말해놓고 제가 재미있다고 웃는 싱거운 녀석이 못마땅했는지, 젓가락을 내려놓은 수연이 조용한 시선과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란다.

“형님 앞에서 영양가 없는 소리는 삼가라니까.”

“그게 말이죠, 하루는 제가 제 언행을 진지하게 돌이켜봤단 말입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누님, 이건 절대 헛소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가만히 스스로에 대해 반추해본 끝에 제가 무엇을 깨달았느냐? 바로 이 김경태는 언제나 영양가가 충만한 남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누님의 기준이 너무 높다 보니 거기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있었을 뿐이죠.”

“…….”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오르고 또 올라서 오르지 못할 산이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테니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누님. 하하하!”

“하…….”

수연은 이걸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되어 싱글거리는 경태를 응시했다. 전에도 몇 번 생각했지만, 수연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은 꽤 괜찮은 재주였다. 경태가 없었으면 수연 녀석이 희미한 감정이라도 보여주는 빈도가 지금의 절반이나 되었을까 싶다.

경태가 보여주는 가벼움은 어제까지의 무거움과 대조적인 면모이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입에 대지 않을 만큼 풀이 죽어있는 걸 내가 눈치채니, 제 딴에는 그것도 나름 신경 쓰고 있는 품새다.

수연의 눈길이 내게로 돌아왔다.

“형님. 마침 저도 그 검의 활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뭔데?”

“그게 영혼을 뽑아내는 도구라면, 형님이나 원탁의 대의원들 같은 대마법사를 상대로도 동일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까?”

“아니.”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낚싯대 하나로 고래를 낚아보려는 짓이나 다름없어. 조사(釣師)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고래만한 질량을 한 가닥 낚싯줄에만 의지해서 끌어올릴 순 없는 것 아니냐. 줄이 질량을 견뎌낸다 한들 낚시꾼의 손이 찢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거기에 영혼을 담고 있을 그릇으로서도 너무 작고.”

“그렇군요.”

“왜 그게 궁금하지?”

“언젠가 형님께서 교육하시기를, 마법이 깃든 물건은 살아있는 유기물로부터 뜯어낸 영혼을 사물에 정착시키는 방식으로만 제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대마법사의 영혼을 뜯어내어 접붙인 도구가 있다면, 저희 같은 일반적인 능력자들도 부분적으로나마 대마법사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탁의 대마법사들을 제물로 삼아 다른 대마법사들을 사냥할 도구를 축적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원탁과 우리의 강약을 뒤집는 일도 가능한 게 아닌가 하고.”

“그것 참 달콤한 꿈이구나.”

“예. 아쉬운 일입니다.”

만약 마도구 제조가 대마법사의 영혼을 뽑아서 쓴다고 대마법사의 힘이 담긴 물건이 나오는 식이었다면, 나는 런던 공략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능력자들을 갈아 넣는 것만으로도 원탁의 무장 수준이 현격히 높아졌을 테니까.

산 것의 영혼을 뜯어 무기물에 정착시키는 과정엔 불가피한 손실이 뒤따른다. 그 같은 이식의 효율이란 외연식 증기기관의 열효율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것.

그러므로 당대의 대마법사들이 제작하는 마도구들은 수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번처럼 유도 기뢰에 마력장 감지기를 처박는 식이면 위협적이지.’

그러한 위협의 핵심은 익숙함의 장막으로 가려지는 의외성에 있다.

생각해보면 고대의 제례검을 전투용으로 쓰지 못할 것은 없다. 칼을 쥔 사람이 나라면, 최소한 마력장을 억압하는 기능 하나는 대마법사를 상대로도 먹힐 공산이 크니까. 또한 영혼을 뽑아내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의 충격을 줄 수는 있을 것이었다. 상대가 회로에 돌리던 술식을 깨버리는 정도의 효과는 기대해도 좋을 터.

어쨌든 지금으로선 칼의 사용법에 익숙해지는 쪽이 먼저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식사를 하고 나면 가오슈센에게 연락을 넣어봐라. 감옥에 수감된 이능보유자 중에 죽어도 무방한 연놈들이 있다면 이쪽으로 신병을 넘겨달라고.”

내 지시에 수연이 머리를 기울인다.

“칼의 기능을 시험해볼 실험체들입니까?”

“맞다.”

“머릿수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많이는 필요 없어. 한 열 명쯤? 그 이상을 내어주려면 가오슈센도 좀 무리를 해야 할 거야. 베이징에서도 인체실험에 쓸 마루타들을 올려 보내라고 할당량을 줬을 테니.”

“대가를 바란다면 무엇을 내줘야 하겠습니까? 돈으로 조율할까요?”

“보관 중인 유물 중에 적당한 도자기나 하나 골라서 보내. 송나라 시절 물건이라고 하면 좋아 죽으려고 할 거야.”

“알겠습니다.”

각성체 동식물을 대상으로 연습을 하더라도 감을 잡기엔 충분하겠지만, 실험체로 쓸 인간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효율이 낮은 수단을 이용할 이유가 있을까?

팔려올 죄인들이 정녕 죽을죄를 지었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버려두면 어차피 고문실을 거쳐 실험실로 끌려가 철창 안의 원숭이 신세로 죽을 목숨들이 아닌가. 그렇게 죽는 것과 내게 칼침 몇 번 맞고서 맞이하는 최후 사이엔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터였다.

최소한 난 오래 괴롭힐 마음이 없고 죽이기 전까지 끼니만큼은 제대로 먹여줄 것이므로, 고통의 총량을 비교하면 내 쪽이 그나마 ‘인도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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