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0화 (150/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5)

현대적인 전투 환경에서 격투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선 그 기술의 유무가 생사를 가르기에, 군대든 경찰이든 전문성이 높은 전투조직 치고 격투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이러한 기술들은 링 위에서 쓰이는 것과는 근본적인 지향점이 달랐다. 링 위의 기술은 정해진 환경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점수를 벌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게 목적이지만, 링 바깥에서 싸우는 자들의 기술은 다양한 환경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거나 무력화하는 게 우선이니까. 칼이 있으면 찌르고 총이 있으면 쏘는 게 기본이며 노리는 건 매양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급소들이다.

그래서 실전적인 무술은 그렇지 않은 무술들에 비해 단순해진다. 한 명을 상대로 여러 합을 겨룬다는 개념이 희박한 탓이다. 예컨대 미 해병대의 격투 프로그램은 모든 단계가 단락적인 기술들(Techniques)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중간에 낙제하지만 않는다면 우수생이 아니더라도 총 150시간의 교육만으로 검은 띠 유단자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유단자에게 요구되는 소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든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할 것. 또 하나는 각 기술의 치명적인 정도를 구분하고 상황에 따라 가려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그러나 이 같은 단순함이 깊이의 결여를 의미하진 않는다. 하나하나의 동작이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최적화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한 기술들은 단 몇 초 만에 생사가 갈리는 싸움 속의 짧은 연계와 임기응변을 통하여 결코 단순하지 않은 변화들을 만들어낸다.

고로 지금의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또 다른 최적화를 덧칠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내 턱을 치고 손목을 비틀어 넘어뜨린 수연이 드물게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위를 보며 쓰러져있던 나는 상체를 세운 뒤에 머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신경손상 및 심정지 등의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부터 「생명」을 회로에 올려둔 덕에 감전의 후유증 따윈 남지 않았다.

“괜찮아. 방금 쓴 힘이 어느 정도였지?”

“제 감각으로는 최대치의 절반가량이었습니다.”

“그래? 현 수준에서 한계까지 끌어낸다면 경태급의 능력자라도 맥을 못 출 것 같구나.”

“그 정도입니까?”

“신경이 마비되는데 저항할 재간이 없지. 저 유타에서 봤던 돼지새끼 같은 중대형 각성체에게도 통할 거다. 죽기 전에 유효타를 꽂을 기회가 있다면 말이지만.”

절반이니 뭐니 하는 건 내게 흘려 넣은 전류의 세기를 말함이었다. 손목을 붙잡았을 때 한 번, 턱을 올려칠 때 다시 한 번. 손목을 붙잡은 게 먼저인 이유는 수연이 시도한 기술이 반격기였던 까닭이다. 붙잡고 치고 비틀어 넘어뜨린 뒤 다음 일격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시퀀스로 묶이는 2초짜리 연계동작. 휴대한 무기를 뽑아들 틈조차 없을 만큼 좁은 간격에서 기습적으로 내질러오는 공격에 대응하는 정석들 가운데 하나다.

수연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선 내가 다시금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자, 잠시 제 손을 내려다보던 수연은 작은 한숨을 토하고서 눈길을 들었다.

“정말로 괜찮으신지…….”

“괜찮다니까. 방금 시도한 시퀀스는 근육의 수축을 감안해서 앞으로 엎어버리는 쪽이 더 빠르고 힘도 절약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럼 실제로 해봐야지. 준비해. 이번엔 최대로 힘을 써봐라.”

난 마력회로의 출력을 가감하고 신체강화가 차지하는 회로 점유율을 조절함으로써 다양한 수준의 적들을 가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애초에 싸움이 성립하지도 않는다. 압도적인 물리력의 격차는 기술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마니까. 게다가 마력장의 격차와 상대적 위축으로 인하여 원시마법의 사용조차 여의치 않게 되어버린다. 내가 수연의 마력장을 용인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못내 고민하는 기색이었던 수연은, 그러나 내가 다시 자세를 잡는 모습을 보고는 반사적인 응전태세에 들어갔다.

‘역시 잘 가르쳐놨단 말이지.’

목전에 적이 있다면, 싸움과 무관한 고민은 무조건 싸움 이후로 미룰 것. 이는 공정통제사 출신인 경태의 전임자가 부하들을 처음 교육할 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었다. 녀석은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조직의 원로로서 교육 실무에 관여하고 있다.

수연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맴돌던 나는, 감각을 교란하는 엇박자의 스텝을 밟아 수연의 간합(間合)을 기습적으로 파고들어갔다.

훅-

왼팔로 가드를 올리고 상체를 우로 비튼 채 파고들어, 팔뚝과 몸통의 방호가 제공하는 사각지대로부터 흐릿한 펀치를 내뻗는다. 안면을 수평으로 치고 들어간 펀치는 그러나 옆으로 밀고 뒤로 당기는 방어에 묶여 어깨를 넘어가버렸다. 자연히 내 자세가 무너진다. 나아가는 공격자의 힘과 끌어들이는 방어자의 힘이 더해진 결과. 여기에 손목을 타고 오르는 전기충격, 신경을 태우는 듯한 고통이 자세회복의 가능성을 말소한다.

동시에 수연은 오른손을 쓴 장타로 내 턱을 올려쳤다. 쿵 하고 골을 울리는 수직 방향의 타격. 그리고 다시 한 번 가해지는 전기충격. 같은 세기의 전류라도 뇌와 가깝기에 더 강력하다. 여기까지가 반 호흡 한 동작인 공방일체의 수였고, 다음 순간 내 눈높이는 바닥에 수렴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나의 숨결이 매트에 부딪혀 괴로운 소리를 자아낸다. 의지와 무관하게 나오는 신음이었다.

“윽…….”

아까의 충고에 따라 날 앞으로 굴려 엎어버린 수연은, 팔을 비틀고 무릎으로 등을 누르는 제압자세를 풀고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권총을 뽑아 뒤통수를 쏘든 칼을 뽑아 경동맥을 그어버리든 해서 확실하게 끝장을 낼 타이밍이었다. 무기가 없다면 머리통을 백팔십도 돌려버리는 수도 있다.

몇 초간 고통의 여운을 떨쳐낸 나는 몸을 일으키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문저항훈련을 마지막으로 받은 게 오래 전이라 고통을 인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느낌이 든다.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야 할 사냥감이자 사냥꾼으로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잘 해놓고 왜 그런 표정이냐?”

“역시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긴 뭐가. 결국은 내가 나를 위해 겪는 고통인데. 난 할 만해서 하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라.”

“그런 게 아닙니다, 형님. 제가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

나는 조금 당황했다. 수연이 대놓고 괴롭다고 하는 걸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힘들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말을 절대 입에 담지 않는 독종이었으니까. 조직에 처음 들어올 적부터 단 한 번도 무뎌진 순간이 없었던, 고문저항훈련의 일환으로 발톱 아래 줄줄이 바늘을 박았을 때조차 입에 천을 물고 비명을 삼켰던 서슬 퍼런 독기다.

‘이런 건 척수반사로 튀어나오게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드백을 주었다.

“알았다. 너라면 실전에서 습관적으로 힘을 덜 쓰는 일은 없겠지. 이제부터는 방전의 강도를 낮추고 여러 시퀀스 별로 타이밍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하자.”

“타이밍이라면, 능력 사용의 타이밍입니까?”

“음. 거듭 맞아보니 알겠더구나. 타격과 전기충격 사이에 짧지만 확실한 시차가 있어. 조금 빠른 건 그렇다 쳐도, 조금 느린 건 경우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새로이 얻은 원시마법 능력은 사용법을 처음부터 익혀야 하는 낯선 도구와도 같다. 그것도 마력을 느끼는 제6의 감각에만 의지하여 다뤄야 하는 도구. 기본적인 신체강화야 원래 쓰던 몸이 강해질 뿐이니 적응하기도 쉽지만, 그 외의 다른 능력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단순히 능력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데에도 일정한 숙련도가 요구되므로, 능력을 얻은 지 고작 나흘째인 오늘, 육체적 운동과 능력 사용의 정확한 일치를 꾀하는 경지에 이른 수연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축에 들었다. 이 또한 회로의 설계자인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바다.

이후 수연과 나는 약 20분간 칠십여 개의 시퀀스를 소화했다. 대부분은 내가 받아주는 쪽이었으되, 실전적인 연습엔 반격이 필수였으므로 수연 또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우드득-!

시간상 마지막이 될 공방에서, 수연의 어깨 관절이 빠지며 어긋나는 소리.

“흡-!”

눈에 힘이 들어간 수연은, 팔이 늘어나 꼬이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저돌적이기 그지없는 역습을 감행했다. 온몸으로 나를 들이받은 것이다. 폭주하는 짐승처럼. 내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순간 수연의 성한 쪽 손이 내 머리통을 콱 움켜쥔다. 엄지로 안구를 터트려 눈구멍을 손잡이로 삼는 수다. 그리고 가해지는 약한 전기충격.

공수가 역전된 가운데, 발을 걸어 날 넘어뜨린 수연은 내 위로 제 체중을 싣고 급소를 내리치기 직전에야 비로소 동작을 멈추었다. 말아 쥔 주먹, 접은 중지를 엄지로 밀어 쐐기처럼 내리찍는 주먹질. 겨냥한 급소는 이번에도 눈이었다.

먼저 붙잡혀 눌린 쪽의 눈이 실제로 상하지는 않았다. 본디 내 것이 아니었던 눈알 두 짝은 과연 부서지기나 하는 물건인지 의심스러운 것들이니까. 이는 스승새끼의 기억 속 모종의 사고로부터 도출된 결론으로서, 부하들도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좀 뻐근하긴 했지만.’

눈알이야 어쨌든 눈알 안쪽은 짓눌린 만큼의 뻐근함이 있었다. 수연은 고통으로 거칠어진 숨을 쉬며 내 위에서 제 몸을 치워주었다.

“터프해서 좋았다.”

“예.”

마력이 깃든 육체의 터프함에 적응하는 것도 각성능력자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수연은 성한 손으로 빠진 어깨를 쥐고는 제 위치로 힘주어 끼워 넣었다. 뿌득! 뚜둑! 마찰음을 내며 맞물리는 관절과 별개로, 주변의 살은 퍼렇게 물들어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출중한 각성능력자의 회복력으로도 반나절은 통증이 심할 부상이었다. 팔이 한 번 밧줄처럼 뒤틀렸으니 당연한 일.

무표정한 수연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통상시야로만 보더라도 단순히 힘들어서 흘리는 것과는 결이 다른 땀이었다. 나는 손을 까딱였다.

“와라. 내가 봐주마.”

물리적 간격은 제로에 가까울수록 상대의 마력장을 상쇄하기에 좋다. 이는 마력으로 빚어내는 방전의 전투적 활용이 우선적으로 격투기술과 맞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연은 순순히 다가와 다친 어깨를 내밀고는 자신의 마력장을 가능한 선까지 축소했다.

수연의 어깨에 손을 대고 영의 회로에 「생명」을 돌리기를 잠시. 시퍼렇게 부풀던 부기는 빠르게 가라앉아 본래의 색을 되찾아갔다.

“됐다.”

“감사합니다.”

까딱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수연. 나는 바닥에 떨어진 비녀 하나를 염동력으로 주워 건네었다.

“아까 들이받을 때 빠지더구나.”

“예…….”

비녀를 받은 수연은 은근히 첨예한 끝을 쪽진 머리에 꽂아 넣었다.

이 녀석은 항상 긴 머리를 틀어 한 뼘 남짓한 비녀 두 개를 비스듬히 교차하도록 꽂고 다니는데, 이유는 둘이었다. 협상장에서든 어디서든, 예쁜 여자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병신들을 농락하기엔 머리를 길러두는 편이 유리하다는 게 첫째요, 누구에게 의심 받는 일 없이 투척용 무기를 휴대할 수 있다는 게 둘째다. 밀도와 기계적 강도가 높은 플라스틱 계열 소재(폴리프탈아미드)로 만들고 속에 철심을 박아 넣은 비녀는, 수연이 능력자가 아니던 시절에조차 15미터를 날아가 송판을 관통하던 흉기였다.

다만 지금처럼 격하게 움직일 땐 종종 빠지기도 하는 까닭에, 비녀 외에도 아홉 개의 긴 핀을 더 써서 전투 중에 머리가 풀릴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어째서 핀을 아홉 개나 쓰는가 하면, 이것들은 또 비금속 재질의 락 픽(Lock-pick) 세트인 까닭이다. 각각의 핀 끝에 늘어진 실 같은 장식들은 손이 뒤로 묶이거나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 핀을 뽑을 수 있도록 해놓은 조치였다. 각각의 장식들은 고개를 뒤로 젖힌 다음 결박당한 손을 최대한 위로 올리면 딱 잡힐 만큼만 길었다.

‘누가 보더라도 머리장식에 신경 좀 썼구나 하고 말겠지.’

수연에게서 눈을 뗀 나는 훈련 중에 다친 다른 녀석들의 부상을 마저 돌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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