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8화 (148/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3)

이 새끼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잠시 의아해졌던 나는, 이어지는 샤히디의 설교를 듣고 새어나오는 실소를 참아야만 했다.

“외간남자가 정숙한 여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음은 예의가 아니다. 그녀에겐 아직 남편이나 아들이 없으므로 당신은 그녀를 바투르의 딸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녀의 아버지 굴람 바투르는 흠결이 없는 무슬림이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이 애송이가 말하는 건 일부 근본주의 이슬람교도들의 지랄 같은 예의범절이다. 요컨대 여자는 이름이 아니라 남자와의 관계성으로 칭해야 한다는 거지.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누이, 누구의 어머니 같은 식으로. 알라조차 학을 떼고 지옥으로 보낼 빡대가리들은 이게 여자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당연하게도 세속적 신앙이 더 보편적인 위구르에선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예의다. 양대 망명정부 중 하나인 세계 위구르 의회에선 여자가 대통령을 역임할 정도로 개방적인 게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신앙인 것을.

어렵게 웃음을 삼킨 나는 표면적인 정중함으로 물어보았다.

“정숙한 여인이라고? 내가 들은 바로는 그대가 강제수용소에 있던 시절, 그녀를 두고 변절자라 비난하며 손가락질했다던데? 그대는 어찌 변절한 여인을 정숙하다 말하는 거요? 신과 민족을 저버린 여인도 정숙할 수가 있소?”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그녀에게 직접 들은 것인가!”

“그렇다면?”

“알라시여! 당신은 그녀가 죄를 짓게 만들었다!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같은 여자를 보내어 질문을 하고 답을 받았어야 한다! 남자인 당신이 직접 대화를 할 것이 아니라!”

“놀랍구려. 뜻밖이기도 하고.”

“무엇이 말인가!”

“그녀를 이렇게까지 ‘존중’하고자 하는 그대의 모습이.”

내가 표준 중국어로 말하는 존중엔 은근한 비아냥이 담겨있었으나, 샤히디는 화를 내는 대신 입을 다문 채로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웅변했다.

번민하던 그는 한참만에야 다시 입을 열어 괴로운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는 당신에게 오해를 살 것 같으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겠다. 그녀, 바투르의 딸은 수용소에 갇혀있던 모두를 위한 희생양이었다.”

“희생양이라. 결백함을 알면서도 무고를 했단 말이오?”

“……당시의 우리에겐 배신자가 필요했다. 당장 눈에 보이고, 당장 손가락질을 할 수 있고, 당장 욕과 저주를 퍼부어줄 수 있는 그런 배신자가. 수용소의 힘겨운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무너져가는 모두의 의지를 분노와 경멸로 새롭게 벼려내기 위한 일이었지.”

“그게 뜻대로 되기는 했소?”

“물론. 사람은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리는 다시 하나로 뭉쳤다. 개중 가장 나약했던 동포들조차 바투르의 딸이 받는 취급을 보며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할 정도였다. 다른 동포들의 경멸어린 시선과 은밀하게 도는 수군거림이 그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즉 우리의 영혼을 짓밟으려 애쓰던 한인 간수들은 그 같은 변화에 많이 실망했을 테지. 나는 그들에게 우리를 죽이기는 쉬워도 굴복시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해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당당한 거 아니오? 멀쩡한 여인을 죄인으로 몰아 놓고서.”

“다시 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 남자들보다 정신력이 약하고 남자들처럼 싸울 능력도 없는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투쟁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위구르인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숙명이다.”

“그래서 그대에겐 잘못이 없다고?”

“아니. 나는 분명히 죄를 지었다. 허나 내 죗값은 신과 민족을 위한 투쟁으로 갚으려 한다. 결국 어떻게든 희생을 한다는 점에서 그녀와 나는 같은 처지인 것이다.”

“바투르의 딸은 생각이 다를 것 같은데. 그녀의 억울함은 누가 보상해주지?”

“그녀는 바투르의 딸이기 이전에 위구르의 딸이다. 위구르를 위한 희생에 다른 보상은 필요치 않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녀가 그 많은 고난들을 겪고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위대하신 알라께서 신성한 책을 통해 이르시기를 「나는 목에 있는 핏줄보다도 더 사람과 가까우니, 언제든지 나를 불러내라. 누가 나를 들먹이며 부르든 나는 그 소리를 다 듣는다.」고 가로셨으므로, 그녀의 목에 있는 핏줄보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임하시는 알라께선 그녀의 억울함을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요컨대 보상은 사후에 받으면 된다?”

“그렇다. 그게 바로 알라의 정의이고, 무슬림과 무슬리마의 올바른 믿음이다. 알라 후- 아크바르. 나는 그녀의 영혼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리라 확신한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입을 열었다가 소리 없이 닫기를 수차례.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아주 없지는 않았는지, 샤히디는 못내 불편한 표정으로 변명 같은 합리화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어차피 내 행동이 없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건 또 어째서요?”

“굴람 바투르의 딸이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허?”

“우리는 경험이 많다. 알라의 은덕을 입어 아름다움을 타고난 자들이, 결국 한인들에게 영혼을 팔아 부당한 호사를 누리며 공산당의 대변자가 되어 민족 탄압을 정당화하는 일을 너무도 많이 경험했단 말이다.”

“그래서 그녀도 그럴 것이라 믿었소?”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타락은 정해진 운명과도 같으리라고. 한인 간수들이 바투르의 딸을 매일같이 따로 불러내는데, 불려간 그녀가 무엇을 겪고 돌아오는지는 뻔하지 않겠느냐고. 벌써 한참 전부터 더럽혀진 여자라고…….”

들숨을 깊게 마신 샤히디는 이어 한숨을 내쉬듯 이야기했다.

“내가 그녀를 비난하기도 전에, 수용소의 모두가 이미 그녀의 배신을 예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희생양은 그녀가 될 수밖에. 당신이 궁금해한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의 전말이 이러하니,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오해는 무슨 놈의 오해.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느린 박자로 작은 박수를 쳐주었다. 짝, 짝, 짝. 샤히디는 감정이 울컥 치미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를 조롱하는 것인가?”

“설마. 정확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종류의 말들이었건만 조롱은 무슨.”

“……뭐?”

“진심으로 말하는데, 그대를 만나 정말로 다행이오. 내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더라면 이거야말로 신의 인도하심이라 믿었을 거요.”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극단주의 꼴통들의 틈바구니에서 도태당하지 않으려면 바로 이런 정신머리가 필요할 것이기에.

‘무엇보다 무고한 희생양을 만드는 데 거리낌이 없는 독선과 교만함이 마음에 들어.’

장차 이 인간이 핏빛 명성에 힘입어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에 합류한다면,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다른 동지들, 특히 권위상 자신보다 윗줄에 있는 박힌 돌들의 존재를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보통은 속으로 울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겠지만, 나와의 커넥션을 손에 쥔 이 인간에겐 상황을 타개할 최선의 방법이 있다.

차도살인(借刀殺人).

타인의 손을 빌려 행하는 비밀스러운 숙청.

슬슬 때가 되었다 싶을 즈음 이쪽에서 살짝 운을 띄워주기만 해도, 알림 샤히디는 제거하고 싶은 간부들 및 자신의 경쟁자와 그 계파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팔아넘길 터였다. 대의를 위해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믿으면서. 메리옘 바투르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아주 약간의 가책만을 느끼며.

그럼 나는 그 정보를 받아 공안으로 넘겨줄 것이다. 세 경독은 놀라겠지. 대체 이런 고급 정보를 어떻게 손에 넣으셨느냐고. 순서상 내가 샤히디에게 위구르인들의 이름으로 핏빛 명성을 만들어준 다음이니, 위구르 독립투사들을 잡아 죽이는 공로는 공산당 최상층의 주목을 받아 세 경독에게 엄청난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한편 부작용 없는 숙청의 단맛을 본 샤히디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살생부를 적어나갈 게 확실하다. 오직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독재자에겐 끊임없이 반대세력이 생겨나기 마련이잖은가.

독재자는 자신의 지도력을 공고히 할 수 있어서 좋고, 나는 내 꼭두각시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어서 좋은 일. 이거야말로 각자의 이익이 상대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호혜적 공생관계 그 자체라 하겠다.

또한 이로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의 가교가 마련될 테니, 한때 수연이 건의했던 것처럼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아부 투라이피에나 아부 사야프 따위의 필리핀 이슬람 반군들에게 선을 댈 이유도 사라진 셈이다.

이렇게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데, 샤히디가 또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더라면……이라. 당신은 설마 무신론자인가?”

“그게 문제가 되오?”

“무신론자에겐 영혼이 없다. 사람으로서는 차라리 이교도들이 낫지.”

“무신론자나 이교도나, 디마슈끄(다마스쿠스)의 모스크에 마리얌의 아들 이싸(예수)가 내려오는 날이면 어차피 다 뒈질 것들 아니오?”

“…….”

수니파 이슬람의 종말론에서 이교도와 무신론자는 재림예수의 향기만 맡아도 즉사할 죄인들이다. 또한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을 신이라 떠받들던 자들의 십자가를 때려 부수고 그들에게 베풀던 자비(지즈야)를 철폐하며 이 세상의 모든 돼지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이교도와 무신론자 사이엔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라 해서 다 죄가 가벼운 것도 아니지. 예컨대 비역질을 일삼는 저 신드 땅의 일부 타락한 무슬림들이 무신론자보다 나을 게 뭐요? 같은 무슬림인 그대가 한번 말해보겠소?”

내 연이은 물음에 샤히디는 그저 인상만 구겼다.

신드(Sind)는 파키스탄의 옛 수도이자 인구 2천만의 대도시이기도 한 카라치가 있는 지방을 말한다. 파키스탄은 수니파 이슬람이 지배적인 국가로서 종교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동성애를 중죄로 규정하고 있으되, 실상은 동성애에 대한 선호도가 세계 1위를 찍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즐기는 건 동성애가 아니라고 합리화한다.

“정말이지…….”

한참 만에 샤히디가 한숨을 내쉰다. 극단주의 무슬림이라면 귀동냥으로라도 파키스탄과 아프간 일부 지역의 타락을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정말이지, 말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군. 신께서는 어찌 당신처럼 불경스러운 무신론자에게도 특별한 힘을 내려주셨을까. 그것도 믿는 자인 나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 힘을…….”

이 애송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각성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내가 거두기도 전부터 회로가 열려있었다. 아직 발아 단계에 불과한 회로는 그 출력이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있었으나, 타인의 마력장을 느끼기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고로 샤히디는 여섯 번째 감각을 통하여 나와 내 부하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회로의 출력을 제한하고 있을지라도 이 애송이가 만만하게 볼 정도는 아니다.

“그런 자가 당신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시오.”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란 말인가? 이걸?”

쓴웃음을 머금으며 제 손을 내려다보는 샤히디.

“나와 형제들이 한인들의 노예로 지내던 어느 하루, 돌연히 내게 기적 같은 힘이 깃들었다. 마치 사막의 한복판에 샘솟는 샘물처럼, 고단한 몸을 적셔주며 날로 조금씩 조금씩 크기를 더해가는 이 신비한 힘이. 나는 이것이 알라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애송이는 또 한숨을 내쉬고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힘으로도 철문을 깨고 나갈 순 없었고, 오래지 않아 한인들 역시 같은 힘을 지닌 간수들을 투입하더군. 심지어 그들의 힘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구원에 대한 기대가 산산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지…….”

난 툭 던지듯이, 대수롭지 않게 흐름을 끊었다.

“그렇게 실망하기엔 다소 이른 것 같군.”

“이르다고? 하긴, 무신론자인 그대는 결코 나와 내 형제들이 느낀 절망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놈의 무신론자 타령은 그쯤 해두시오. 그대가 모르는 곳에서 세상은 격변을 맞이하고 있으니.”

“격변……?”

“그렇소, 격변. 당신과 내가 얻은 이 힘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깃들고 있는 지금, 세계 각국의 정세는 돌이키지 못할 변화를 맞이하고 있소. 국가 간의 관계도 그러하지. 힘이 없어 짓밟히던 자들에게 갑작스레 힘이 주어지니, 짓밟던 자들은 그 불만을 급하게 밖으로 돌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단 말이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 영 비협조적으로 굴던 서방진영이 갑작스럽게 일치단결하여 대중전선을 형성한 배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외부의 적을 만들어 국론을 뭉쳐야 하는데, 공공의 적으로 삼기에 가장 이상적인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던 것이다.

‘중국산 폐병 덕분에 혐중 여론이 극에 달한 상태였으니 더 그러했지.’

그 폐병,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후에 불사암이 생겨났다는 이유로 불사암을 폐병과 연관 짓는 비논리적인 혐오 또한 존재했다. 위정자들은 그러한 기류에 재빨리 영합한 것이다.

난 그 신속한 행동들을 보며 역시 정치를 한다는 연놈들의 생존감각엔 남다른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자기들이 문자 그대로 X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터. 「이 망할 초능력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충격을 완화시킬 시간부터 벌고 봐야겠다…….」 딱 이 정도의 절박한 위기감이었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각국 정부가 이미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해있었던 것도 신속한 행동에 보탬이 되었을 테고.

이 세상에 모순과 착취가 없는 국가란 없다.

나는 도구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그대가 믿는 신이 실존한다면, 그의 뜻이 이 혼란 속에 있을지도 모르지. 투사로서 훈련을 받는 동안 스스로 알아볼 기회가 있을 거요. 내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를.”

내 말을 들은 애송이는 눈을 찌푸린 채 머리만 모호하게 기울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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