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7화 (147/561)

#19. 다만 신께서 구하실 것이다 (2)

“이렇게 커다란 배를 여러 척 가지고 강한 부하들을 거느린 당신은 당신이 한 말들을 지킬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 당신이 가진 것 없는 우리에게 탄로 날 게 뻔한 거짓을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그러나.”

샤히디가 묻는다.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를 돕는 게 당신에게 무슨 이익을 주나? 대체 어떤 이익이 있기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저 강대하고 지독한 한인들을 적으로 삼으려 하나?”

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답했다.

“내가 바라는 바는 두 가지요. 첫째는 당신들로 인하여 중국이 골머리를 앓게 되는 것 그 자체이고, 둘째는 그대들과의 인연을 토대로 보다 많은 알라의 전사들과 우정을 쌓게 되는 것이지. 단순히 이익이 되는 거래로만 이어진 얄팍한 관계를 넘어, 보다 거대한 목표를 함께 도모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그런 우정을.”

“우리를 보증인으로 삼아 알라의 전사들을 소개받고 그들의 신뢰를 얻겠다는 말인가?”

“이해가 빠르시군.”

“그렇게 신뢰를 얻어서 무엇을 하려고? 설마 무슬림도 아닌 당신이 지하드에 관심이 있나?”

“그대에게 지금 거기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대와 그대의 형제들로 하여금 한인들을 무더기로 죽이게 하여 내 진심을 증명할 거요. 만약 내가 한인들의 앞잡이, 공산당의 주구라면 이렇게 불필요한 비용과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당신들을 속일 이유가 없지. 당신 말마따나 가진 게 신께서 내려주신 몸뚱이뿐인 약자들은 그냥 힘으로 밟아버리는 쪽이 더 빠르고 간편하니까. 내 말이 틀렸소?”

생각에 잠긴 채로 잔을 만지작대던 샤히디는, 주스가 든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멈칫 나를 바라보았다. 난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한 손짓으로 마실 것을 권했다.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던 그는 민망한 머뭇거림 끝에 화가 난 사람처럼 사과주스를 들이켰다.

“후.”

잔을 내려놓은 샤히디가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돌린다.

“우리의 명성이 위대한 독립투사들에게 닿기 위해선 적어도 아크수(아커쑤) 의거(義擧)에 필적할 대사건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아크수 의거?”

“모르는가? 29인의 용사들이 아크수의 탄광을 공격하여 50명이 넘는 한인들을 무찌른-”

“몰라서 되물은 게 아니오. 겨우 그깟 일로 대사건이니 뭐니 하는 게 이상했을 뿐이지.”

내 말에 샤히디는 왈칵 화를 냈다.

“겨우라니! 당신은 알라의 이름으로 위구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모독할 셈인가!”

“유감이지만 사실이 그렇잖소? 경찰 다섯을 제외하곤 기껏해야 잠에 취한 광부들 수십을 더 찔러 죽였을 뿐인 작은 사건인데. 공안과 군대에 쫓기며 마지막까지 칼과 총을 놓지 않은 기개야 높이 살 만하지만, 성과만 놓고 보면 솔직히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해야겠지. 그걸 대사건이라 일컫는 건 당신네 위굴라르의 비참함만 부각시킬 따름이오.”

“당신은 모른다! 그 광부들은 단순한 광부들이 아니었어!”

“그랬겠지. 신장 땅의 한인들은 예외 없이 건설병단 소속인 것을. 평생에 걸쳐 군사훈련을 받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소집되어 군복을 입고 당신들을 패거나 죽이는 자들. 그러면서 자기들은 군대가 아니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들. 그들이 무고한 민간인이었노라 말하는 건 공산당 아니면 현지사정에 어두운 외국인들 정도일 거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인들 중엔 무고한 민간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위구르 자치구라 하면 자치의 주체가 위구르족일 것 같지만, 실상은 신장생산건설병단 XPCC와 현지 한인들의 식민정부가 통치하는 땅이며, 이 땅의 모든 한인들은 성인이 될 때 병단에 속하도록 불문율로 정해져있는 까닭. 천이백만 남짓한 한인 인구로 유사시 삼백만의 진압병력을 뽑아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요컨대, 신장 땅에서 나고 자란 위구르족에겐 ‘한인 비전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기 짝이 없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나이 어린 아이들 정도일까. 그러나 열 살만 넘어가도 패악질을 몸에 익히는 게 신장 땅의 한인들인지라, 그런 구분조차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악을 배우고 행하면 그만큼 순수한 악이 또 없지.’

근자의 한국 대중들만 하더라도 촉법소년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던가. 나름 민주적이어서 사법행정이 그런대로 공정한 국가에서조차 그러한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더없이 선명하게 갈라져있는 식민지의 사정이야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므로 위구르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중국인이란 죽은 중국인뿐이다.

샤히디는 제 부모에 대한 욕을 듣기라도 한 사람처럼 분에 겨워 부들거렸다.

“카피르! 명예를 모르는 불신자 같으니!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용사들의 업적을 폄하하는가!”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기세인 샤히디를 보고 부하들이 반응하려 하기에, 나는 손을 들어 진정시키며 차분한 말을 이어갔다.

“폄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오. 그래봐야 비무장 상태의 적들을 기습하여 자그마한 전과를 거두는 데 그친 일이니까. 하다못해 그럴듯한 거물이라도 하나 사냥했으면 좋았겠소만, 그렇지도 못했고. 무언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것도 아니고. 대관절 높이 평가할 여지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어떻게 그따위 망언을……!”

“망언? 그럼 샤히디 그대가 한 번 말해보시구려. 목숨을 버린 스물아홉 용사들에게 있어서 오십 남짓한 한인들의 죽음이 과연 충분한 보상이 되었겠소? 한 사람당 두 명도 안 되는 꼴인데? 당신이 그렇게 경애하는 독립투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고작 둘 남짓한 한인의 죽음에 불과하겠느냔 말이오.”

샤히디의 분노에 당혹감이 뒤섞인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계산으로는 둘 정도가 아니라 수백수천을 더 죽여야 비로소 수지타산이 맞을 성싶은데, 그대의 계산은 좀 다른가 보오?”

“그건, 음…….”

“다르냐고 물었소.”

“……다르지, 않다.”

“여기선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는군. 다행스러운 일이오.”

“…….”

“알림 샤히디. 그대는 나를 시시한 자로 만들지 마시오. 나는 분명 아주 많은 한인들의 목숨을 거둘 기회를 주리라 약속했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고작 수십을 가지고 많다고 할 만큼 실속 없는 인간이 아니지. 거리와 거리마다 시신이 즐비하고 모든 방향에서 살려달라는 비명이 메아리치며 백만을 넘어가는 인간들이 공포에 질려 공산당의 압제자들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는 되어야-”

나는 숨을 돌리고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 기준으로 많은 목숨인 것이오. 알아듣겠소?”

샤히디의 목울대가 꿀렁인다. 조금 전까지 가득하던 분노는 다른 감정들에게 자리를 빼앗겨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두 손으로 하관을 감싼 채 침묵하던 그는 잠시 후 내 시선을 피하며 자신감 없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중국은 강대한 나라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게 정말로 가능한가? 투사들의 아버지, 위대한 디아 알 딘 유수프의 마지막 전투조차도 당신이 말하는 규모에는 한참 못 미친다.”

“디아 알 딘? 신앙의 빛?”

“당신은 푸스하(표준 아랍어)도 아는가?”

“아니. 그래도 몇몇 존칭들을 알아들을 만큼의 교양은 있지. 그대가 말하는 신앙의 빛이 자이딘 유수프이고 그대가 거론한 전투가 커쯔러쑤 무장봉기라면, 난 그것 역시 무가치한 희생이었다고 평하겠소. 대체 그 결과로 얻은 게 뭐란 말요? 투사들의 아버지씩이나 되는 인물이 몸소 싸우다 죽었으면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론 손해만 잔뜩 보았잖소?”

협상에 임하기 전 상대에 대해 조사를 하는 건 기본이다. 위구르 독립단체들 가운데 무장투쟁 노선을 채택한 유일한 단체가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모임인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인데, 중국의 꾸준한 공작으로 고사 직전에 내몰린 이들의 활동은 굵직한 것만 따지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샤히디가 무엇을 입에 담든 그것은 내 사전조사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맞은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러나 샤히디가 되살리려 애쓰는 분노는 꺼지기 직전의 잔불과도 같아, 분노보다는 차라리 서글픔에 더 가까웠다. 따라서 힘들게 꺼내는 말은 질타보다 부탁에 더 가까운 어조였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

“그렇소?”

“나는 숙부께서 들려주신 그날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날, 고결한 디아 알 딘은 바린의 모스크에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 신의 이름으로 지하드를 선포했다. 그는 그를 따르는 투사들과 더불어 압제자들을 상대로 삼 주야에 걸친 사투를 벌였지. 비록 고결한 자는 그 싸움에서 순교하고 말았지만, 그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 위굴라르는 투쟁의 정신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도 신과 민족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숭고한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깨달았어야 할 주민들 태반이 곧장 수용소로 끌려간 걸로 아는데.”

“…….”

“아닌가? 내가 뭔가 잘못 아는 거요? 봉기 직후 그 인근 지역 전체가 초토화 당했잖소. 사람이 없어지면 깨달음도 없어지는 거지.”

“불신자여. 세상엔 결과와 무관하게 의도로 평가받아야 하는 일이 있지 않겠는가?”

“글쎄올시다. 「의도는 좋았다.」 「비록 실패했어도 시도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건 내가 아주 경멸해 마지않는 마음가짐이오. 어떻게든 현실에 맞는 실천을 모색하는 대신 뜬구름 잡는 이상에 현실을 끼워 맞추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과격한 행동의 대가를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치르도록 만드는,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절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얼간이들의 선민의식이자 정신승리지.”

이렇게까지 무자비한 독설을 퍼부었음에도, 샤히디는 주먹을 쥐고 숨을 몰아쉴 뿐 추가적인 반론을 입에 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게 본인과 본인의 주변인들이었을 테니.’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원들이 뭔가 일을 벌일 때마다 고난을 치르는 건 매양 그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었다. 그러니 주민들 입장에선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는 새끼들이 가만히 좀 있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될 수밖에.

장담하는데, 알림 샤히디의 숙부라는 자도 그날의 거사 이야기보다는 그 이후의 시달림에 대해 더 많이 한탄했을 것이다. 그 거사를 기점으로 중국 당국의 식민정책이 상상을 초월하게 가혹해졌으니까.

그 이후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의 활동은 지리멸렬하기 그지없었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버스에 불 지르고 기차역에서 칼부림 좀 한다고 민족의 독립에 보탬이 될 리가 있나. 그따위 테러엔 실익도 없고 비전도 없다. 오늘만 사는 아마추어들의 역량 낭비일 따름. 당과 건설병단의 간부급을 노린 테러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투르키스탄 전사들의 무계획성을 역설한다.

약자의 공격은 정교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 한 번을 치더라도, 오랜 인내와 역량 축적을 통해 적의 중추와 심장부를 겨냥해야만 하는 것. 그래야 두려움을 알아야 할 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알게 해줄 수 있다. 그렇게 얻은 명성으로 이슬람 세계의 주목을 받아 돈 많은 지하드 성애자들의 후원을 끌어내면 그때야말로 다음 거사를 준비할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고.

한마디로, 위구르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과거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터진 것과 같은 기념비적인 폭탄 한 발이다.

“그럼…….”

샤히디가 묻는다.

“그럼 그들이 달리 무얼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남는 거라곤 신께 기도를 올리는 일밖에 없었을 텐데?”

“글쎄. 과연 정말로 대안이 없었을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백번 양보해서 실제로 대안이 없었다고 한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인 행동은 그냥 안 하는 편이 낫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뭐,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나? 아무런 이득도 없이 동포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만 하는 일이 비뚤어진 자기만족이 아니면 뭐요? 자아도취적인 순교로 본인만 천국에 가면 그만인 이기적인 행동이지.”

“샤이탄(사탄)의 혓바닥 같은 자가 이젠 순교자들마저 모욕하는가!”

“샤이탄이라니, 말조심하시오. 나는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그대와 그대의 민족을 도와주겠노라 말하는 자요. 그대의 동포들이 이제껏 신앙의 형제들에게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도움을 줄 사람이지. 마땅한 존중을 보이길 바라오.”

“…….”

마른세수를 하던 샤히디는 날 충혈 된 눈으로 바라보며 맹세했다.

“만약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당한 복수와 심판의 주인이신 만물의 주 알라의 이름으로- 그분께 영광이 있으시길, 당신은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바라는 바요.”

계약 성립이군. 내가 손을 내밀자, 미간에 주름이 깊은 샤히디는 제 손을 가만히 내려 보다가 힘들게 악수에 응했다. 나는 손을 거두고서 느긋하게 말했다.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사소한 질문 하나만 합시다.”

“뭐지?”

“카라마이의 강제수용소에서 메리옘 바투르와 그대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이오.”

“메리옘 바투르?”

“그렇소.”

메리옘의 이름을 들은 샤히디는 눈을 치켜뜨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신은 그녀를 그런 식으로 불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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