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4화 (144/561)

#18. 용쟁호투(龍争虎闘) (7)

이어지는 보고도 부동산과 약간의 관련성이 있었다. 조직의 사장단 가운데 하나, 명목상 한 관광개발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간부가 발언한다.

「「라즈베리 프로젝트」를 위한 부지 확보를 완료하였기에 보고 드립니다.」

라즈베리 프로젝트는 미국 땅에서 가져온 미친 개미의 무기화 연구를 위한 계획이었다. 조직 내에서도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보고를 하는 당사자조차 부지 선정 및 매입 실무를 맡았을 뿐 계획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건 일대일로 보고를 받도록 하지.”

내 말에 수연이 화상회의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써서 보고자 외 다른 간부들에게로 이어지는 음성 연결을 해제했다. 음성 연결로부터 배제된 간부들은 못내 당황하는 눈치들을 감추지 못했다. 조직의 최초 설립 이래 최상위 간부 그룹에게까지 비밀로 진행되는 계획은 이제껏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매우 잦아질 테니, 간부들도 여기에 적응해야 할 것이었다.

“됐나?”

내 물음에 수연이 “예.”하고 끄덕인다.

“됐다는군. 이제 말해도 좋아.”

「크흠……. 일단 지도를 보시지요.」

다른 간부들만큼은 아니어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인 보고자가 헛기침을 하고서 나에게만 보이는 화면에 지도를 띄워놓는다.

「확보한 부지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무인도 매물로, 면적은 23만 843평입니다. 전체 면적의 80% 가량이 계획관리지역이어서 시설물 구축에 거의 제한이 없다시피 하고, 한때는 사람이 거주하던 섬이라 식수원이 존재하며, 송전탑이 있어서 전기를 끌어오기도 편리합니다. 열악하긴 하지만 차량 진입이 가능한 도로도 존재하지요. 법적으로 사실상 현황도로에 속하긴 합니다만, 섬을 통째로 사버리면 오가는 사람이 없을 테니 큰 문젯거리는 아닙니다.」

“혹시 사진을 볼 수 있나?”

「물론입니다. 잠시만.」

보고자가 지도를 치우고 사진을 띄운다. 진입로의 형태를 확인한 나는 끄덕끄덕 납득했다.

“임의로 끊어도 별말이 나오지 않겠군.”

「그렇습니다. 원래 있던 길을 뭉개버리고 선회교나 도개교를 놓아도 무방하겠지요.」

사실상 현황도로란 사유지에 난 길임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주민들의 이용권이 보장되는 도로를 뜻한다. 내 땅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끊어버리면 민원을 처맞고 마는 골칫덩이인 것이다.

“다리를 놓는다면 선회교가 좋겠어. 도개교는 시인성이 좀 더 높으니까 말이야.”

「바로 건설에 들어갈까요?」

“음. 그리고 창고와 숙소, 사육장 같은 건물이 들어설 만한 터를 미리 좀 닦아놔. 우선은 대충 1천 평 정도면 괜찮겠군. 주인 없는 땅이랍시고 텃밭 같은 걸 박아놓은 인간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 나중에 괜한 말이 나오지 않게끔 잘 처리해두도록.”

「염려 놓으십시오. 헌데 사육장이라면 뭘 기르는 사육장입니까?」

“터만 닦는데 거기까지 알 필요가 있나?”

「실례했습니다.」

“아니다. 궁금할 수도 있지.”

사육장을 지어 기를 동물은 흑사병의 보균체인 야생 마멋과 그 아종들이다. 수연의 지휘를 받는 팀 두 개가 각각 몽골과 미국에서 보균체를 확보하고자 발품을 파는 중이었고. 확보 그 자체보다는 들여오기가 더 까다롭겠으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어디 다른 곳에 팔아넘길 상품이 아니기에 밀수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장갑차도 밀수하는 마당에 그깟 마멋 수십 마리가 대수라고.

“매매가는 얼마였지?”

「75억입니다.」

“본사의 도움이 필요한 문제는 없고?”

「섬의 극히 일부, 975평의 땅이 국유지로 등록되어 있긴 한데, 이미 국유지 매입신청이 통과되어 감정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이라 돈 몇천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 외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우선 사항이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속도에 중점을 두고 진행해.”

「예.」

여기까지 말하고서 나는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23만 평이면…… 대충 칠팔십 헥타르쯤 되나?’

수단에선 60만 헥타르를 4억 3천에 샀는데 한국에선 그 수천분의 일 크기의 외진 무인도 하나에 75억이나 줘야 한다니. 국가 간의 빈부격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입지 자체는 좋았다. 외부인의 무단침입은 현지인들만 경계하면 충분할 터. 염전노예로 악명 높은 고장을 연고도 없는 타지 사람들이 미쳤다고 찾아오나.

굳이 한국에서 부지를 물색한 이유는 내가 종종 직접 찾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내 모든 동선의 중심에 한국의 본사가 있으니 개미 실험장도 본사에서 닿기 좋은 거리에 두어야 하는 거지. 헬기를 이용한다면 본사에서 신안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터였다. 경비행기를 띄울 경우엔 그 이하가 될 것이고.

장소를 섬으로 정한 건 외부인의 침입을 경계하기 이전에 개미들이 기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사방이 물이니 검역만 철저히 한다면 흔적이 남을 일은 없을 테지.

설비가 마련되는 대로 먼저 착수해야 할 것은 개미의 증식과 확산에 관한 실험이다. 풍부한 먹이가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환경에서, 즉 생존을 위한 탐색이 불필요한 상황에서 미친 개미들의 영토 확장은 얼마만큼 둔화되는가. 무제한적인 열량이 주어진다면 개체수의 증가는 얼마나 빠르게 일어나는가. 그렇게 개체수가 늘어난 후엔 먹이의 공급을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줄여야 가장 폭발적인 영역 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한마디로 런던 공략을 위한 예행연습이다.

‘런던의 부동산도 미리미리 확보를 해두어야 할 것인데. 비밀을 유지하려니 속도를 내기가 어렵구나.’

시기가 다소 이르긴 하지만, 미리부터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놔야 거사 이후의 추적을 피하기에 유리하다.

예행연습으로서의 확산 실험은 적어도 수십 번 이상 반복해야 비로소 쓸 만한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런던 공략은 정교한 타임 테이블에 기반하여 진행되어야 하니까.

그러자면 매번 실험을 할 때마다 이미 개미에게 점령당한 섬을 초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테지만, 그까짓 것은 내게 걱정할 거리가 못되었다.

그냥 마력을 태우는 불로 땅 속을 깊게 구워버리면 끝나는 일이잖은가?

여기서 파생되는 의문 하나가 있다. 불을 다루는 원시마법 능력자가 늘어날 앞날엔, 런던의 능력자들 역시 나와 같은 방식으로 손쉽게 해충을 구제하지 않겠는가 하는.

허나 이 또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들에겐 개미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투시력이 없으며, 그들이 구워야 할 것은 무인도가 아닌 런던의 지표 아래이기에. 땅 밑에 뭐가 있을지 모를 대도시에서 무턱대고 불을 쓰는 건 대참사를 야기하기 십상인 우행이다. 설령 뭐가 있는지 안다 한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지저의 불을 정확히 제어하기란 평범한 능력자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리라.

쉽게 말해, 황금기의 눈을 가진 대마법사가 아니고선 흉내조차 내지 못할 방법이란 뜻.

미친 개미의 플랜 B로서, 런던 현지에 둔 아지트에서 쥐벼룩을 길러놓는 것도 괜찮겠다. 흑사병 본연의 숙주인 만큼 오염된 먹이를 제공했을 때 페스트균의 생존율이 높을 테고, 벼룩의 특성상 질병을 확산시키는 속도도 더 빠를 것이다. 대량으로 증식시킨 벼룩을 작은 카트리지에 담아 사방 천지에 뿌리고 다니는 거지…….

「왜 한숨을……. 뭔가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겠습니까?」

무의식중에 한숨을 내쉬었나보다. 화면 속의 보고자가 내 눈치를 살피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아니. 수고했다. 다음 소식을 기다리마.”

「예.」

런던에 대한 세균전은 아직 쓰겠다고 확정한 계획이 아니었다. 다른 수가 없을 경우에 대비한 보험 같은 것이었지. 그런데 그런 보험에 대해서 벌써부터 플랜 B를 구상하고 있는 건 조금 웃기지 않는가. 보험을 위한 보험도 아니고.

게다가 AI 기계학습 감시가 일상화된 런던에서 대대적으로 벼룩을 풀고 다니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지는 일이다. 60만 대가 넘는 감시 카메라, 확률계산에 따른 범죄발생 예측 매핑(Mapping), 자동화된 SNS 감시, 고도의 안면인식 및 개개인에 대한 추적과 분석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위험평가 등. 이러한 감시 시스템의 허점에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으로는 베이징의 선배 격 되는 마경을 치고서 추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어렵다.

거사 이후의 내가 여전히 끝없이 숨고 도망쳐야만 하는 신세라면, 런던 공략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삽질에 불과하다. 나 한 사람의 평온조차 건지지 못한 채 무가치하게 대량학살을 했을 뿐인 일이 되겠지.

그건 별로 좋지 않다.

수연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처음으로 돌려놓으면서 보통의 회의가 재개되었다. 다음 의제는 한국 내 능력자 단체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오후 특수공인능력자격법과 특수목적수렵법, 병역법 개정안 등이 한꺼번에 임시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여당의 박수중 의원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오는 8일에 법안 및 시행령을 공포하고, 같은 날 고위험수렵기능사와 특수공인능력기능사의 첫 번째 시험 일정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기세로군.”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압력이, 내부적으로는 각성 능력자의 병역이행과 관련된 논란과 항의시위들이 있었잖습니까. 나날이 악화되는 치안이나 북한의 각성 능력자 전력 과시도 골칫거리였고요.」

보통 하나의 법이 만들어지는 데엔 빨라도 반년 안팎의 시일이 소요된다. 헌데 각성 능력자들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한반도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고 난 다음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엔 필연적인 혼란이 빚어졌다.

‘도쿄 올림픽 즈음에도 뭐가 뭔지 감을 잡지 못하고들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이번에 제정 내지 개정된 법안들은 문자 그대로 날치기에 가깝게 통과된 셈이었다. 벼락치기로 짜낸 법조문들이 과연 제대로 구성되어 있기나 할지, 사전영향평가나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등의 단계들을 정상적으로 거치기는 했는지 의문일 지경.

오늘이 5일이니 법안 공포까지는 앞으로 사흘이 남았는데, 국회통과 후 사흘 만에 법안을 공포하는 것도 절대로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고조되는 위기의식에 국회 과반수를 점유한 다수여당의 독주가 합쳐진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안이 실제로 시행에 들어가면 필시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오겠지.

그래도 무법적인 혼란보다는 좀 나으려나?

“기능사라……. 고위험 사냥 분야와 특수능력 분야를 분리해서 시험을 치겠다는 건, 사냥 쪽은 응시자의 각성 여부와 무관하게 각성체 사냥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만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맞습니다.」

“구체적인 자격요건은 나온 게 있나? 응시자격이나 통과기준, 우대사항 같은 것들 말이야.”

「아뇨. 그건 시행령이 나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워낙 급하게 만들어진 법안인지라 국무회의에 올라간 지금도 대통령령을 덕지덕지 추가해서 보완할 생각에 여념이 없다더군요. 공포 후에도 당분간은 계속 이런 식이 되겠죠. 다만 박 의원이 자기도 전해들은 거라면서 귀띔해주기를, 묘한 조건이 하나 추가될 가능성이 높답니다.」

“뭔데?”

「그, 국무회의에서 남성의 경우엔 병역을 이행한 자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뭐?”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자 보고자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면제는 이행으로 쳐주지 않는다 하던데, 사실이라면 우리 회사로선 조금 곤란해질 듯합니다.」

나는 이제껏 유망한 부하들의 병역을 곧잘 면제로 처리해주었다. 머릿수에 비례하여 돈과 인시(人時)가 들어가긴 했지만, 그러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복무기간만큼 교육훈련을 시키는 게 낫지.’

해외의-주로 미국의-교육시설로 보내어 실전적인 전투능력과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응능력을 배양케 하고, 어학연수를 겸하여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며, 전투훈련이 끝나면 조직 산하 항공학교에 보내거나 밀수선 항해에 투입함으로써 전문적인 밀수 인력을 육성하는 것. 이 과정에서 싹트는 유대감과 자부심, 그리고 소속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자산이다.

조직의 정예를 체계적으로 육성해내는 능력 면에서, 내 조직은 다른 어떤 조직들에 비해서도 우수하다고 자부한다. 범죄조직의 우두머리 치고 나만큼 인재육성에 비용을 투자하는 인간이 또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나만큼 절박한 처지들이 아닐 테니까.

또한 나는 유망하지 않은 부하들이라도 웬만하면 면제를 받도록 힘써주었다.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에서 한정된 인력으로 하여금 2년 가까이 삽질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낭비도 이런 낭비가 다시없을 일이었으니. 조직원들의 충성심 향상은 부수적인 소득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와 예기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오게 생겼으므로, 조직의 수장으로선 당황스러운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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