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3화 (143/561)

#18. 용쟁호투(龍争虎闘) (6)

국가를 불문하고, 농업투자와 농장경영은 범죄조직들의 주요한 관심사들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멕시코의 미초아깐 주에 근거지를 둔 마약 카르텔들은 아보카도 농장들을 지배함으로써 매해 수확철마다 마약매매만큼이나 높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 오죽하면 아보카도를 「녹색 황금」이라 일컫고, 과카몰리 소스 하나가 팔릴 때마다 멕시코의 카르텔들이 실탄 꽉 채운 탄창을 하나씩 받는다는 소리가 나돌까.

또한 이탈리아 반도의 농업을 생산부터 유통 단계까지 장악한 마피아들은 이것만으로도 매년 이탈리아 국가총생산의 1% 안팎에 해당하는 매출액을 기록한다. 한화로 환산하면 20조를 가뿐히 넘기는 거액이다.

비슷한 부류인 동유럽의 마피아들 역시 대대적인 농장경영을 통해 배부른 소출을 얻고 있기는 마찬가지. 남미와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 도서지역에도 범죄조직과 연결된 농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차있다.

그러면 어째서 농업인가.

한국의 농촌을 보면, 외노자들을 데려다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부려먹는 고용주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돈이 아니라 상품권으로 급여를 주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하면 세금을 덜 낸다는 식으로 꾀어 노동자들로 하여금 상품권 ‘깡’을 하도록 유도하는 농민들의 조직범죄다.

이런 악질적인 촌로(村老)들은, 자기들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조차도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 같은 범죄자들만도 못한 측면이 있었다.

흉년이 들면 나라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고 일손이 모자라면 군인들을 데려다가 쓰는 것도 당연한 줄 아는 이 ‘순박한’ 범죄자들은, 보다 건전하고 상식적인 다른 농민들의 그늘에 숨어 약자의 이름으로 안정적인 범죄활동을 영위해나가는 중이다. 보는 입장에선 그 안정성이 부러울 지경.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지역유착형 범죄인지라 경찰들마저 “여기선 그렇게 하는 것.”쯤으로 대강 넘어가버린다.

여하튼, 이러한 노동력 착취를 더욱 체계적이고 더욱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마피아와 같은 거대 범죄조직들이다.

이탈리아? 중동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남미? 그냥 총으로 협박해서 사람을 쓰고 농장을 강탈하면 된다. 아프리카? 부패한 정부와 군벌의 힘을 빌리면 대놓고 노예를 부릴 수도 있다. 동남아의 낙후된 도서지역들? 거긴 그냥 치안부재의 무법지대잖은가. 특히 파푸아뉴기니는 마경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범죄조직이 힘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들이 도처에 조성되어 있는데, 마약장사만큼 각국 정부들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도박에 비견되는 수익성과 정부 정책에 따른 안정성마저 있는 데다, 원래 하던 인신매매 사업과의 시너지효과까지 있으니 암흑계의 사업가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나. 원산지 위조를 통한 가격 뻥튀기는 덤이다.

‘범죄조직들이 난민들을 일부나마 제어해주면 치안당국 입장에서도 싫지만은 않은 일이지.’

요즘 유럽이 이슬람 난민들로 좀 몸살을 앓고 있는가. 그러니 이독제독이다. 마피아의 폭력성은 난민들 틈바구니에 낀 광신도들의 분노조절장애를 효과적으로 다스려줄 수 있었다.

치안 당국은 그저 눈만 감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아프리카라…….

내가 여의도 김씨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자제하라 권했던 배경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현지 사정 외에도 얼마간의 개인적 호오가 포함되어 있었다. 솔직히 달가운 투자처는 아니란 말이지. 엮이는 놈들의 면면도 면면이고.

난 지나간 보고의 내용을 곱씹었다.

“수단에서 토지개발권을 딸 적에 농어촌 공사가 후원하는 컨소시엄과 경쟁이 붙었다고 했었나?”

질문을 받은 김재환이 화면 속에서 약간의 지연을 두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 그렇습니다. 미쯔비시-스미토모 컨소시엄이랑 사우디 국부펀드, 그리고 웽푸인지 한푸인지 하는 중국계 기업도 입찰을 하긴 했는데, 우리 다음으로 높은 가격을 써낸 곳이 KRC와 국민연금의 자금을 지원받은 한국 기업들의 컨소시엄이었습니다.」

KRC는 한국 농어촌 공사의 약자다. 김재환의 보고엔 우리의 취득가만 포함되어 있을 뿐 농어촌 공사와 국민연금의 컨소시엄이 입찰한 금액은 빠져있었는데, 난 그 액수가 궁금해졌다.

“그게 얼마였지? 그쪽에서 제시한 가격 말이야.”

어째서인지 머뭇머뭇 뜸을 들이던 김재환은, 수연이 다시금 마이크를 두드리자 체념한 기색으로 답했다.

「……3만 5천 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0만 헥타르에?”

「예.」

3만 5천 달러면 한화로 채 4천만 원이 안 되는 작은 금액.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겨우 이 돈 쓰자고 국가기관들이 지원까지 해주는가 싶겠지만, 이는 컨소시엄이 발을 걸친 무수히 많은 거래들 중 하나일 뿐.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수억 헥타르의 토지를 두고 경쟁을 벌이려면 어떻게든 덩치를 불리는 게 최선이었다. 토지매매에 앞서 해당 국가의 정부 및 현지 유력자들과 조율을 할 적에 협상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거래가 체결되기에 앞서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가는 뇌물의 규모가 표면적인 거래액수보다 훨씬 많기도 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액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 돈으로는 환산하지 못할 외교력 또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컨소시엄들의 초장기적인 활동에 비하면, 5개 국가에 걸쳐 순수하게 돈으로만 1,470만 달러를 쓴 김재환의 투자는 하찮은 피라미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린 40만 달러를 써서 냈다고? 차위 입찰자의 열 배가 넘어가는 금액을?”

「에, 그것이, 그러니까, 저희는 막판에 낀 처지라 현지 관료들과 부족장들에게 먹인 뇌물이 많지가 않았고, 상대적으로 정보를 얻을 인맥도 부족해서……. 원래 줬어야 할 뇌물이랑 땅값의 합계라고 봐주시면 실질적인 손실은 생각보다 적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정도는 되어야 현지 딜러들이 미리 이야기가 된 다른 입찰자들의 뒤통수를 칠 마음을 먹을 것 같아서…….」

점점 더 풀이 죽어 웅얼대는 꼴을 보니 내가 또 책망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나는 손을 내저어 오해를 해소했다.

“아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예?」

눈을 껌벅이던 김재환이 멍하니 되묻는다.

「잘됐다니, 뭐가 말씀이십니까?」

“그런 게 있다. 네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예에…….」

화면 너머로 나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던 김재환이는, 내 기분이 정말로 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는지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깟 40만 달러쯤은 내 자존심 값이라고 치면 그만인 것을.’

60만 헥타르는 서울특별시 면적의 열 배에 달하는 광대한 땅이다. 그 땅의 개발권을 겨우 40만 달러, 한화로 약 4억 3천 남짓한 돈에 샀다고 치면 이건 저렴한 정도가 아니라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는 수준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내가 아니었으면 공식적으로는- 즉 수단의 국고에 들어가는 돈으로는 그 10분의 1에 못 미쳤을 터라, 나 같은 입찰자가 늘어날수록 원주민들에겐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되는 셈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국가를 불문하고 이런 사기극 같은 거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부패한 관료와 토호들에게 있어서 국가의 공유지와 부족 공동 소유로 등록된 토지 등은 먼저 주워서 파는 사람이 임자인 땅이었다. 그 땅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의 반대를 힘으로 짓밟아버리고, 같은 땅을 노리는 경쟁자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며, 서류를 구비하여 행정적인 구색을 맞춰놓고, 필요하다면 총질을 해서라도 소유권을 확고히 한 뒤 국제시장의 브로커들에게 매물로 내놓는 것. 대개는 투자를 유도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핑계를 댄다.

현실을 말하자면, 순서상 브로커들이 현지의 딜러들에게 의뢰를 넣는 게 먼저인 경우가 더 많다. 내 고객이 이 땅을 사고 싶어 하니 그쪽이 식탁을 차려주면 고맙겠다. 가격은 이쯤이면 되겠는가? 아, 물론 수고비는 따로 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잖은가. 이 돈을 어떻게 쓰든 그쪽의 자유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 고객과 완전히 무관한 것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부패관료와 토호, 군벌화 된 부족 등으로 이루어진 현지 딜러들의 역할이란, 한마디로 국제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용역깡패들과 같았다. 거래가 성사된 뒤엔 토지의 실질적인 경영과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기도 한다. 손에는 총을 들고 등에는 정부와 외세를 업은 난폭한 마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깊고 어두운 유착관계.

이러한 토지수탈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비용과 책임을 여러 단계의 하청으로 분산시켰다는 것이 하나요, 토지의 소유권 대신 50년·100년 단위의 개발권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전략을 변경한 것이 둘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는 대신 연기금이나 민간 사업자를 앞세우고, 명목상의 소유권을 현지인들의 손에 남겨둠으로써 토지수탈이 구체적인 통계로 잡히는 일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열에 한국도 끼어있음은 제법 흥미로운 일이라 하겠다.

‘아니. 단순히 끼어있는 정도가 아니지.’

옛 대우 그룹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대형 사고를 쳐서 민중혁명을 촉발해버린 이후, 교훈을 얻은 한국 정부는 주요 선진국 및 산유국들의 예를 본받아 한층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제3세계에서의 토지 확보를 이어왔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 일본, 아랍권의 산유국들, 그리고 제국주의의 원조 격 되는 서구권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토지수탈의 선두 그룹에 진입할 수 있었다.

부동의 1위인 중국의 지랄이 워낙에 독보적이어서 별로 눈에 띄지 않기는 하지만, 중국보다 낫다는 게 딱히 자랑할 거리는 아닐 것이다.

구입한 땅에 문제가 생기거든 한국의 외교력에 기댈 수 있으리라는 김재환의 기대엔 이러한 배경이 깔려있는 것이었다. 해외의 농지 확보는 식량안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국가시책으로 밀어주는 일이니까.

“김재환이.”

「예, 회장님.」

“국내에 둔 자금의 운용은 오롯이 네게 주어진 권한이고, 그런 네가 어련히 조사를 해서 투자를 할 테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권고하마.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제3세계의 토지개발권에 대한 신규투자는 가급적 삼갔으면 한다. 남수단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어.”

「외국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방 및 자산압류조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당사자들도 후회하고 있을 텐데요. 그 짓을 하는 미친놈들이 또 나오겠습니까?」

“사람들이 합리적으로만 행동한다면 네가 파산을 할 일도, 자살시도 여섯 번을 내리 실패한 끝에 내 아래로 들어올 일도 없었겠지. 그렇지 않으냐?”

내가 이렇게 말하니 조용히 있던 수연이 오류를 정정해주었다. “일곱 번입니다.”하고. 화상회의에 참석한 조직 중역들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스쳐지나간다.

외국인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다는 분노와 두려움은 대중으로 하여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집단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할 정권이나 부족 지도자들 입장에선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우행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회장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가오라는 게 있는데 그걸 또 그렇게 끄집어내시다니…….」

투덜대던 김재환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다 알아보고 내리는 결정이긴 합니다만, 회장님께서 그렇게까지 염려를 쏟으시니 더욱 신중하게 투자처를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 예를 들어 탄자니아처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나라도 있고-」

또 말이 길게 이어지는데 안 하겠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지 않는다. 타고난 겁은 많은 주제에 제 능력에 대한 자부심은 남달라가지고는, 타인이 제 업무에 참견하는 걸 달갑게 여기는 경우가 없었다. 설령 그 타인이 조직의 수장인 나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이렇다고 버리고 저렇다고 버리면 남는 인재가 많지 않은 법이었다. 모든 면에서 나쁘지 않은 배우자를 찾는 인간들이 대부분 결혼에 실패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그러니 능력과 충성심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대충 맞춰가며 쓰는 거지. 이렇게 모난 녀석은 어디에 끼워야 아귀가 맞을까를 고민해가면서. 모난 곳을 함부로 깎아버리면 업무능력과 의욕까지 같이 깎여나갈 수 있음을, 난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김재환의 주절거림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친 뒤에, 나는 새로운 지침을 더해주었다.

“이미 확보한 토지에 대한 재투자는 넉넉하게 해도 좋다. 호구 잡힌 수준으로 돈을 써도 어차피 아프리카이고 어차피 제3세계이니까. 결국엔 높은 확률로 남는 장사가 되겠지. 정치적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무작정 쫓아내기보다 어떻게 새로 줄을 대보려고 들 것이고.”

「저기, 회장님. 제 전문영역은 투자이지 자선사업이 아닙니다만…….」

“나 역시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고려나 해보라는 뜻이지. 뭣하면 전담 팀을 따로 꾸려서 예산을 할당할 테니, 너는 그저 내 뜻이 이렇다고 참고만 하면 된다.”

「그러시다면야.」

어쩐지 옆자리에서 냉기가 감도는 느낌이 든다. 내 말에 꼬박꼬박 대꾸하던 김재환은 자신을 찌르는 곱지 않은 시선을 인지하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화면 너머로 시선의 방향을 용케 알아차리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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