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1화 (141/561)

#18. 용쟁호투(龍争虎闘) (4)

이제까지 나와 내 부하들이 이룩한 성과들은, 비밀엄수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가오슈센의 지휘 하에 세 경독이 활약한 내용으로 재포장되어 위쪽으로 보고가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전과를 줄 것인가는 거의 전적으로 내 의사에 달린 문제였다. 가오슈센이야 실무를 담당한 게 누구이든 지휘책임자는 자신이므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한 사람만 눈에 띄게 밀어줬으면 의심을 품긴 했겠지.’

그를 내가 사적으로 포섭하려 든다고. 허나 설마 경독 셋이 담합하여 내게 줄을 대었으리라곤 의심하지 못하는 품새였다.

여기엔 공산귀족으로서의 현실인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당내정치에서, 이들에겐 나 가오슈센 이외의 선택지가 없으리라는 그런 확신.

이는 사고의 틀을 당내정치에만 한정지어 놓으면 정확한 판단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계파에 속한다 함은 해당 계파의 정치적 부채와 은원관계들을 공유한다는 뜻이니까. 사실상의 운명공동체로 묶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대륙의 관료들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꽌시의 무게다. 고로 세 경독에게 있어서 과거의 가오슈센은 유일한 선택지였고, 상황이 나아진 지금도 대안이 거의 없다시피 한 최선의 선택지였다.

나는 다만 가오슈센과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후샨량은 식기를 내려놓고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여태껏 내 일방적인 결정으로 고르게 전과를 분배받아 왔는데, 하필 홀로 있는 자리에서 다음은 누구 차례냐는 질문을 받았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기회인가? 시험인가? 혹시 나에게만 베풀어지는 호의는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런 호의를 받을 만한 무언가를 해낸 것이 있는가? 등등.

난 그에게 손짓했다.

“대답 좀 늦게 한다고 공적이 어디로 도망가는 게 아니니, 일단 좀 들고서 말씀하시오. 많은 이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나는 내 아랫사람들의 끼니에 지대한 관심이 있소.”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

후샨량이 제 접시에 담아놓은 향우구육은 나도 좋아하는 요리다. 본사에 머물 땐 구내식당의 총주방장에게 가끔 한 번씩 내어오라 하는데, 적어도 하루 하고도 반나절의 시간을 주어야만 제대로 만들어진 것을 맛볼 수 있었다. 돼지고기를 삶고, 튀기고, 하루를 차갑게 숙성시킨 다음 간장과 향신료를 더해 쪄내면 그제야 비로소 완성되는 요리. 마지막 찌는 단계에선 고기와 같은 두께로 썰어 가볍게 튀긴 토란을 잘린 고기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데, 토란이 돼지기름을 빨아들여 느끼함은 줄이고 아삭한 식감을 더하므로 그 조화가 제법 일품이었다.

이런 요리를 따뜻할 때 즐기지 못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후샨량은 내 손짓에 따라 식사를 재개했다.

몇 번의 젓가락질로 음식을 음미한 그는 입가의 기름을 닦아내고서 신중한 질문을 던졌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떤 종류의 공적인지를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부하에게 손을 까딱여 준비된 물건을 내오도록 했다. 후샨량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부하가 가져온 작은 하드 케이스를 열어보였다.

“이거요.”

케이스 안의 내용물은 멕시코에서 노획한 초소형 정찰드론과 그 컨트롤러였다.

“이게 무엇인지요?”

“노르웨이제 초소형 정찰 드론이오. 미군이 「주머니 속의 정찰수단」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물건이고, 영국군도 미군이 납품받는 것과 동일한 사양을 주문해서 쓰고 있지. 비단 미국과 영국만이 채택한 장비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들이 도입한 물량과는 성능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오. 해킹에 대한 저항능력, 통신범위 확장, 자동화 비행, 정확한 좌표측정능력, 보다 향상된 야간투시능력 등. 미영 양국의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지.”

“그럼 이건 영국놈들이 쓰던 겁니까?”

“맞소.”

“대체 어디서 이런 걸……. 설마 그들의 특종부대가 이 광저우에 침입했었다거나……?”

“유감스럽게도 이 근방에서 노획한 전리품은 아니오. 그저 내 본업으로 입수한 밀수품일 뿐. 허나 출처 따윈 얼마든지 세탁할 수 있는 게 이 바닥의 생리잖소? 윗선에서도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거요.”

많이 해봐서 익숙한 일일 텐데? 라고 덧붙이며, 나는 술잔을 쥐고 눈높이로 들어보였다. 제 잔을 마주 들어 가볍게 홀짝인 후샨량은 돼지고기와 토란을 겹쳐 으적으적 씹어 삼키며 눈을 굴렸다. 이 증거를 가지고 연출 가능한 많은 시나리오들이 뇌리를 스치고 있을 게 뻔했다.

대화는 술이 거의 줄지 않은 서로의 잔에 예의상의 첨잔(添盞)을 해준 다음에야 이어졌다. 후샨량이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는다.

“이 드론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까?”

“내가 아는 조달 단가는 약 20만 미원(달러)이오. 하나하나가 박사들의 수제품이거든. 그러나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밀수시장에 내놓는다면 부르는 게 값일 테지. 당신네 국안부가 상대라면 난 한 세트(套装) 당 4백만 미원까지도 무난하게 받아낼 자신이 있소.”

“4백만 미원?! 이 작은 것이 그렇게나-”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는 후샨량. 케이스에 고정된 시선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떨리고 있다. 겉보기엔 애들 장난감처럼 생긴 게 그 가격이라니 놀랍기도 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역설계로 빼낼 수 있는 기술의 가치를 포함하는 가격이오. 그래서 나도 원래는 어딘가에 팔아넘길 요량으로 가지고 있었지. 그러나 그렇게 금전적인 이득을 보는 것보다는 내 계자 된 세 사람의 출세를 위해 베푸는 편이 나을 것 같더군.”

내부에 든 부품들의 시리얼 번호는 벌써 다 지워놓은 상태다. 차별화된 기능들이 곧 정품인증과도 같기에, 그런 식으로 손을 써놔도 무리가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침을 삼키는 공안 경독의 눈에 욕망이 깃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받기 전에 나름대로 준비를 해둬야만 하는 물건이로군요.”

“바로 그렇소. 그대들은 공안의 조사방식에 해박한 만큼, 상층부에게 의심을 받지 않을 현장과 시나리오와 알리바이를 조성해둘 수 있겠지. 필요하다면 그 방면에 밝은 내 부하를 조언자로 붙여줄 수도 있고.”

“음…….”

짧은 침묵이 흘렀다. 술은 그대로 두고 차와 음식만 번갈아 입에 대기를 잠시. 욕망의 갈피에서 방황하느라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던 후샨량이 결국 내 속을 직접적으로 물어온다.

“불민한 질문입니다만, 공로를 받을 차례를 물어보셨던 건 일종의 시험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난 말로는 편하게 먹으라면서 행동으로는 먹기 불편하게 만드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오. 그건 내가 아주 싫어하는 행동이지.”

스승새끼만 해도 밥 먹는 것 가지고 지랄하는 게 참 좆같았다.

“실례했습니다. 하면 진의를 여쭤도 될는지요?”

“진의라고 할 것까지도 없소. 내가 언제까지고 이 땅에만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조만간 실제로 자리를 비울 예정이니, 앞으로 나 없는 자리에서 공로를 분배한다고 치면 이처럼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게 아니오?”

“아…….”

“최종 재가는 이곳에 머무를 박미주 부장으로 하여금 내리도록 할 요량이오만, 그 녀석에겐 이능엽사병단의 경영권까지 쥐여 줄 참이라 인력을 추가로 붙여준다 해도 업무 부담이 만만치 않을 거요. 그러니 그대들 세 사람의 상호협력이 중요하오. 한 배를 탄 동지들로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모두를 대변하는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간부님을 실망시켜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간부님이라 하는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나는 드론이 들어있는 하드 케이스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려보였다.

“이건, 내가 이 도시를 떠난 후에도 그대들에게 꾸준히 공적을 쌓아줄 한 방도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예. 무명회사는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대단한 조직이었군요.”

꼭 사람을 죽여 대가리를 따는 것만 공적이 아니다. 거짓으로 판을 짜는 데 필요한 소품을 가져다주기만 해도 그 소품의 가치에 비례하는 공적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품을 조달하는 건 나와 내 조직이 특기로 삼는 분야였다.

‘경쟁자를 담그는 데도 쓸모가 있고.’

결정적인 소품은 결정적인 혐의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다. 가택수색에서 혐의를 입증할 물건이 나왔다는데 뭘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아울러, 박 부장의 엽사병단 역시 그대들을 음양으로 도와줄 수단이 될 거요. 양으로는 표면적인 청렴함을 유지하면서 음으로는 이능보유자들만으로 이루어진 한 개 사설병단을 움직일 수 있다면 출셋길에 적잖은 도움이 될 테지. 때때로 병단이 세운 공적을 양보 받는 건 덤이고. 어찌 생각하시오?”

“동사장님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듭시다.”

나는 고기 한 점을 집어먹고서 다시 한 번 잔을 들어보였다. 이번에도 난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정도로만 마셨으나 후샨량은 가득하던 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속이 편해진 티를 내는 것이었다. 숯불향이 진하게 밴 본토의 차슈는 향이 독한 백주와의 궁합이 좋았다.

각각의 잔은 비워진 만큼 곧바로 채워졌다. 잔을 매만지던 난 새롭게 운을 띄웠다.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무엇입니까?”

“그대들의 진로.”

“경청하겠습니다.”

“난 그대들이 다시 진급하기 전에 상층부가 그대들과 가오슈센 부서기를 떼어놓으려 시도하리라 예측하고 있소. 혹은 이미 간접적으로라도 제안이 들어왔을지 모르겠군. 어느 쪽이오?”

“정확하십니다. 부서기님께도 반드시 나쁜 이야기만은 아니지요.”

가오슈센과 세 경독은 현재 다음 승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공적이 부족한 탓은 아니다. 다만 지난 승진으로부터 채 한 달도 흐르지 않은 시점이기에, 당장 다시 승진을 시키기가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더욱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세 경독의 다음 승진은 가오슈센의 팔다리를 분리하기 좋은 기회일 테지.’

가오슈센 입장에서 자기 사람을 다른 부서로 보내놓으면, 당장 본인이 믿고 쓸 인력은 줄어들지언정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범위는 늘어나니 일장일단이 있다 하겠다. 계파의 정치력 확대는 이런 식으로도 이루어진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과 실력에만 집착하여 측근 모두를 붙잡아두려고 발버둥 치면 그때야말로 윗사람들의 경계심과 불안감을 자극하게 된다.

따라서, 어차피 상급 부서로의 진출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쯤은 충분히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가오슈센은 많은 이들이 올라타고 싶어 안달이 난 배였다. 새로운 심복들을 육성할 힘이 남아도는 것이다.

“난 그대들 중 한 사람쯤은 국안부 계열로 진출했으면 좋겠소. 그러기 위해 누구에게 인사를 하고 누구에게 상납을 해야 하는지는 그대들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하오.”

“국안부라…….”

“가능하겠소?”

사실 정말로 가능성을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가오슈센이 훼방을 놓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세 경독은 지금 가고 싶은 부서를 골라서 갈 수 있는 입장이니까.

국안부는 국가안전부의 줄임말이다. CIA와 자웅을 겨루는 중국의 정보기관. 휴민트(HUMINT/인적 첩보자원) 한정으로는 CIA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턱을 쓰다듬던 후샨량은 오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동사장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희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좋군.”

“꾀하는 바가 있으십니까?”

“내가 그쪽으로 공적을 쌓아줄 수단이 많아서 그렇소.”

“과연. 형제들과 논의하여 최대한 빠르게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란 간시옹디, 즉 의로 맺어진 형제들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내 의도가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음을 알 것이니 경독들 나름대로 주판을 튕겨보고서 역할을 배분하겠지.

어쨌든 이들이 경험한 난 보상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고민이 길어질 이유가 없다. 계속해서 놀라운 수익이 발생하는 투자상품은 투자자의 위험감각을 마비시키기 십상이었다.

간장을 뿌리고 파채를 올린 생선찜(清蒸桂鱼)을 덜어 먹은 후샨량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젓가락을 쥔 채로 슬쩍 상체를 기울여 왔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요?”

“「해외 고급인재 영입계획(海外高层次人才引进计划)」에 대해선 들어서 알고 계실 겁니다.”

“「천인계획(千人计划)」 말이오?”

“그렇게도 불리지요. 정식명칭은 아니지만.”

말이 고급인재 영입계획이지, 해당 계획의 진정한 실체는 타국의 연구 인력들을 매수하여 다양한 분야의 핵심기술들을 도둑질하는 국가공정이다. 체면상 공공연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이기에 중국 내에선 언급 자체가 금기였다. 언론에선 실수로라도 다루는 일이 없고, 인터넷에는 일체의 검색결과가 존재하지 않으며, 관련된 내용을 SNS에 쓰기라도 했다간 공안이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린다.

이는 한국에선 보통 천인계획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천인계획은 인재 영입의 목표치를 명시한 중간단계의 명칭, 즉 계획 속의 계획에 지나지 않았다. 백인계획으로 시작해서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천인계획, 만인계획으로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인재육성과 관련된 프로젝트(공정)마다 서로 다른 천인계획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갑자기 그걸 거론하는 이유가 뭐요?”

“그게 조만간 이능보유자를 대상으로 확대된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풍문이라곤 해도 신뢰도는 상당히 높지요. 계획이 확대되거나, 아예 새로운 천인계획 구상에 시동이 걸리거나.”

“그런데?”

“동사장님 정도면 적당한 신분을 하나 만들어다가 우리 중국으로 귀화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감히 동사장님과 능력을 겨룰 자는 없을 테니 자연스럽게 계획 초기의 모범사례로 꼽히실 테고, 몇 년 안에 권력 중심부로의 진출까지도 가능하실 겁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보상이 뒤따르겠지요. 타국 이능보유자들의 더 많은 중국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요.”

“타당한 관측이긴 하오만, 행동의 자유를 잃을 테니 하책 중의 하책이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권력은 많은 걸 가능케 하는 힘이고, 동사장님께는 상층부를 구워삶을 재력과 탁월한 식견이 있잖습니까? 요즘 한국은 이능보유자들의 처우 문제를 놓고 이래저래 시끄럽던데, 나중을 고려하면 역시 그런 소국보다는 대국에 확고한 입지를 마련해두시는 편이 좋지 않을지…….”

“그쯤 해두시오. 난 관심 없소.”

“허나-”

“그만.”

선을 넘으려던 후샨량이 아쉬움 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쉽기야 아쉽겠지. 내가 이 나라에 속박되면 본인들이 지는 위험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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