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용쟁호투(龍争虎闘) (3)
후샨량은 지원자들의 수준이 낮다고 보았으나 내 예상에 비해서는 의외로 양호한 편이었다. 사병 욕심을 내는 공산귀족들의 무능으로 말미암아 한 차례 거덜이 나고, 집집마다 찾아가 혁명 아니면 죽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흑해자당에 의해 또다시 거덜이 나버린 게 이 지역의 각성 능력자 인력풀이건만, 그럼에도 지금 드문드문 강화계수 5.0 이상의 괜찮은 능력자들이 나오는 걸 보면 과연 땅은 넓고 사람은 많다 해야 할 것이었다. 15억 인민이 단결하면 온 세상이 무릎 꿇으리라 어쩌고 하는 이능굴기의 표어가 결코 과장이 아닌 셈. 이런 쪽으로 중국과 경쟁 가능한 나라는 인도가 유일하다. 이제껏 중국이 보여주었던 패권주의적 행보에 더하여, 상반기에 역병과 함께 퍼진 차이나포비아가 세계 각지에서 점점 더 강해져만 가는 이유였다.
지구력 시험, 무호흡 운동한계 시험, 근골격계의 내구한계 시험 등에서 연달아 좋은 성적을 얻은 소수의 응시자들은 벌써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또한 그런 자들 사이에선 통성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인맥 만들기다. 개중 하나를 들어보면 이러했다.
“뭘 감추겠소. 허위안(河源)의 파부대호(波斧大虎) 장준(張浚)이 나요. 당과 인민의 앞날에 내 도끼질을 보태고자 올라왔소.”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감추고 자시고 할 것이 있나? 지난 싸움에서 도끼를 던지거나 휘두르는 재주로 재미를 보았다는 어느 사내의 자기소개에, 불독처럼 생긴 여자 하나가 사교적인 감탄성을 흘린다.
“과연. 기도가 범상치 않다 했습니다.”
“당신은?”
“후이저우(惠州)의 쑤후이후이(徐慧慧). 친구들은 나를 묘도룡(妙刀龙)이라 부릅니다.”
“주무기가 칼이요?”
“설마. 총을 주로 쓰긴 하지만, 어쩌다 한 자리에서 흑적 모가지 셋을 칼질 세 번으로 따버렸더니 그런 별호가 생깁디다.”
“오, 대단하시오. 한 자리에서 셋이라니, 보통 솜씨가 아니시구려. 앞으로 고수끼리 마주칠 일이 잦을 성싶은데, 서로 도와가며 잘 지내보도록 합시다.”
한쪽은 호랑이이고 한쪽은 용인가. 어느 쪽이든 행동과 말투가 적잖이 어색하다. 머릿속에 이상화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고서 현실의 자신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 경태는 어쩐지 듣고 있기가 괴로운 기색이었다. 나는 이 녀석이 새삼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설마 허구하게 보아온 대륙 특유의 허세 때문은 아닐 테고.
‘이들에겐 이런 게 그냥 전통문화인 거지.’
내가 북미에서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라이언 닐슨 단장을 설득할 때 입에 담았던 중국의 벤처 사업가,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무림식 경영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집무실 명칭은 도화도(桃花島)이고 그의 회의실 명칭은 광명정(光明頂)인데, 둘 다 어느 유명한 무협지에 나오는 공간적 배경을 따온 것이라 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스스로에게 풍청양(風淸揚)이라는 별호를 붙였는데 이는 그 소설의 주인공에게 무술을 가르친 어느 늙은이의 별호라고 했고, 부하 직원들에게도 소설 속 인물들의 별호를 쓰도록 지도했으며, 태극권을 수련하여 자기 자신을 무림인이라고 여기는 측면도 있었다.
마윈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워낙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하는지라, 나는 사업 관계로 교류하는 중국인들로부터 그에 대한 일화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대개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녹아있는 이야기들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한 생각은 이 짱깨새끼들의 역사가 참 짧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놈의 마오쩌둥과 홍위병들이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유산들을 깡그리 부수고 불태워버렸으니, 최소한 문화적인 면에서는 저 미국보다도 근본이 없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하고.
마찬가지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선 스타워즈가 신화가 되었고 대부는 전설이 되었다. 여기선 무협이 스타워즈와 대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마피아들이 대부를 보며 자신들의 행동을 끼워 맞췄듯이, 이 땅에선 엽사들이 무림의 고수들을 모범으로 삼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산당이 망쳐놓은 나라라 하겠다.
지원자들 중에도 경태와 비슷하게 괴로워하는, 혹은 경멸적으로 조소하는 이들이 보였다. 딱 봐도 사회적 계급이 다른 부류다.
“어휴 씨발……. 방구석에서 썩어가던 띠아오쓰(屌丝) 새끼가 이능 좀 얻었다고 나대는 꼬락서니 좀 봐라. 가난하고 못 배워먹은 새끼들은 저런 게 문제라니까.”
“누가 아니래? 진짜 오글거려서 못 봐주겠구만.”
띠아오스란 하층 계급의 낙오자, 그중에서도 사람 구실을 못하는 남자들을 뜻한다. 한국의 흙수저와도 의미가 통하는 표현이지만, 그보다 더 경멸적인-혹은 자조적인-어감을 담고 있다. 한쪽에서 이런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낄낄대니, 범상한 자들보다 귀 밝기 마련인 능력자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파부대호인지 뭔지 하는 별호로 자신을 소개했던 사내가 살벌한 표정을 짓고서 따진다.
“어이, 거기.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너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닌데? 왜 남의 대화를 함부로 엿듣고 지랄이지? 혹시 양친께서 가정교육을 무협지로 시켜주셨나? 아니면 양친이 아예 없으시다거나.”
“이 미친놈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18대 조상을 어쩌고 하는 게 가장 독한 욕설인 나라에서 면식도 없는 사이에 부모를 들먹이는 건 대놓고 한판 붙어보자는 뜻이다. 파부대호 장준이 팔을 걷어붙이며 다가서기에, 이번에도 안전요원으로서 내 부하들이 개입해 뜯어말린다.
이와 비슷한 말썽이 시험장 곳곳에서 빚어졌다. 인성 테스트를 따로 치를 필요가 없는 연놈들이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애초에 남의 목숨으로 밥 벌어먹겠다고 나서는 연놈들 치고 성격이 좋은 경우는 드물지.’
까놓고 말해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면 아무리 강한 힘이 생겼다 한들 칼 밥을 먹겠다고 생업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 모인 것은 광둥 일대의 밑바닥들이다. 그리고 더러운 것들은 매양 아래로 고이기 마련이었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성공적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범죄조직들은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일 때 인성을 중요하게 살피는 편이다. 특히 신의가 있는가 없는가, 조직의 규율을 준수할 만한 인간인가 아닌가를. 난 그렇지 않은 조직들이 오래 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저 멕시코 카르텔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 새끼들은 툭하면 분열이다 내전이다 지들끼리 총질을 해대는 게 일상이니까. 세 개 파벌로 갈라져 솥발의 형세를 이룬 로스 제타스만 해도 언제 다시 통일될지가 요원한 마당이다. 각자가 우리야말로 로스 제타스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며 흡수 통일을 이룰 기회만 노리고 있으니.
반대로 「은드랑게타」나 「라 코사 노스트라」 같은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어찌 오늘날까지 그 성세를 안정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는가? 조직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사회로서 완성도 높은 규율과 그 규율을 지키는 전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조직의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견실한 조직문화라 하겠다. 그 조직의 반사회성이야 어쨌든 내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라 코사 노스트라의 열 번째 계명이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은 조직원이 될 수 없다, 였지…….’
그밖에도 아내를 존중으로 대하라, 술집과 클럽에 드나들지 말라, 약속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라 등등의 계율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일반 사회와는 다른, 자기들만의 도덕관념을 공유하는 기생적 사회조직인 것이다.
내가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조직문화의 내적 건전성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범죄조직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며, 그러한 조직의 경영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합리성에 기초해야 한다.
따라서 내 기준으로 사람이 유치한 건 허용범위지만 인성이 터진 건 괜찮지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모으는 건 위장을 위한 구색 맞추기 내지 보조적인 역할 정도나 맡길 현지 인력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엽사병단의 잠정적 후보군으로 점찍은 그룹엔 저가 무림인인 줄 아는 것들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었다.
“등평도수가 무슨 뜻이지?”
흑적들과 싸울 적에 포산(佛山)의 화디허(花地河)를 등평도수로 건넜느니 어쨌느니 하는 대화가 지원자들 틈에서 오가기에 물었더니, 경태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그것도 무공 이야기입니다……. 간단히 말해 물 위를 달리는 기술이죠.”
내가 이름을 못 들어본 도하장비인가 싶었는데 그런 거였나. 잠시 생각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구나. 능력만 따라준다면 폭이 좁은 물길쯤은 달려서 건널 수도 있겠어. 그 전에 충분한 도움닫기가 선행되어야겠지만.”
“예에, 뭐…….”
타고난 몸뚱이만 가지고서 물 위를 달리는 건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다. 지금의 나조차 순수한 신체강화만으론 해내기 어려울 터.
허나 한껏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물결을 밟고 서너 걸음 정도를 달리는 건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기 이전의 인간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육체적 한계를 초월한 원시마법 각성자들에게 폭 일이십 미터의 물길을 달음박질로 건너는 건 손쉬운 일일 것이다. 같은 서너 걸음을 뛴다고 한들 주파하는 거리가 현격하게 달라질 테니까.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원시마법 능력자들의 평균적인 능력이 더욱 상향되고 나면, 걸출한 신체능력보다는 요령을 더 요구하는 잡기(雜技)의 하나로 통하게 될 테지.
이렇게 시험을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식사를 할 때가 되었다.
“기왕 온 김에 나와 반주나 한 잔 합시다.”
후샨량은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자는 내 제안을 공손히 받아들였다.
“예, 동사장님.”
가오슈센이 후샨량을 이곳으로 파견한 표면적인 이유는 시험과정을 참관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을 어떻게 가려 뽑는가를 보고 배워서 훗날 자력으로 인원을 보충해야 할 때 전범(典範)으로 삼고자 하노라고.
그러나 그 진의는 당연히 제 부하로 하여금 선발 과정을 감독케 하는 데 있었다. 가오슈센 본인은 마력회로가 열리지 않았으니 이능을 보유한 세 측근 중 하나를 자신의 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 최소한 보는 눈이 있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신중을 기하리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보라. 후샨량은 이미 명목상의 주인이 시킨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관심이 없어야만 했다.
“오, 이건 놀랍군요.”
경기장 주차장에 늘어선 백오십 대의 대형 케이터링 트레일러들을 보고 놀라움을 표하는 후샨량. 이는 가식이 묻어나지 않는 순수한 감탄이었다. 뷔페식 식사를 이용하는 중국 하층민들의 일반적인 매너를 고려해도 절대로 못난 꼴이 벌어지지 않게끔 준비한 거니까. 거기에 요리사 하나하나가 수준 높은 숙수들이기까지 하다.
“대체 돈을 얼마나 쓰신 겁니까?”
“돈은 중요치 않소. 사업은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일인데, 먹을 것에 인색하게 구는 자에게 누가 남으려 한단 말이오? 호사스러운 식사는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탈락하는 자들의 입에서도 험담보다 많은 동경이 나오도록 만들어줄 테지.”
까놓고 말해 이만큼 싸게 먹히는 평판 작업이 어디에 있나. 한평생 이런 호사를 누릴 일이 없었던 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폰을 꺼내어 사진과 영상을 찍기에 바쁘다. 시험과정에 대해서는 촬영을 통제하던 내 부하들도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후샨량이 아첨을 더하여 동의했다.
“현기가 느껴지는 말씀이십니다. 안 그래도 인생역전을 위해 엽사를 꿈꾸는 인민들이 많은데, 그런 인민들이 이런 대우를 보면 눈이 뒤집힐 것 같군요.”
“그런 거요. 들어갑시다.”
지원자들을 위한 테이블은 야외에 두었으되 나와 내 부하들을 위한 식탁은 여러 동의 대형 텐트 안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둥근 탁자의 상석에 앉은 나는 오른편에 후샨량을 앉히고서 먼젓번과 달리 술부터 한 잔 권했다.
“받으시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올리겠습니다.”
사람 수만큼 병을 갖춰둔 라오자오떠취(老窖特曲)는 물처럼 맑고 향이 진한 술이었다. 이 자리에서 다 마셔버리겠다고 놓아둔 건 당연히 아니다. 이 땅에선 먹고 마시는 건 무엇이든 남기는 게 미덕일 뿐. 더불어 잔을 비운 뒤에 비어버린 잔을 다시금 채워놓고서, 나는 젓가락을 놀리며 여상한 어조로 물었다.
“한 가지 묻겠소. 내가 그대들에게 또다시 공적을 만들어준다면, 이번엔 셋 중에서 누가 받을 차례요?”
막 향우구육을 한 점 집어먹으려던 후샨량은 내 질문을 듣고서 조용히 식기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