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용쟁호투(龍争虎闘) (2)
사영 이능엽사병단의 입단시험은 광저우 대학도시(大学城) 중심부에 위치한 대형 체육센터(体育中心)에서 진행되었다. 대학도시 내 열 개의 대학이 공유하는 이 체육센터는 그 규모가 올림픽 경기장에 준하는 수준이어서, 수천에 달하는 입단 희망자들을 수용하고도 휑하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여백이 남았다.
모집공고를 보고 모여든 입단 희망자들은 대부분 흑해자당과의 전투에서 후방지원을 수행했던 엽사들이었다. 광저우 공안국의 명성에 이끌렸거나, 혹은 애국주의의 물결에 편승하여 뚜렷한 소속도 없이 푼돈만을 받고 공안의 지휘에 따랐던 자들. 물론 그러한 헌신의 이면엔 떠오르는 영웅 가오슈센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줄을 대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을 것이다. 돈과 권력을 좇는 중국인들의 감각을 무시해선 안 된다.
지원자들 중엔 다른 병단에 속했던 자들도 제법 있을 것이나, 그러한 이력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었다. 농민공들의 포병대와 흑해자당 바이크 돌격대에게 호된 일격을 얻어맞고서 정신 못 차리고 달아났던 경험은 그냥 없는 셈 치는 편이 나았으니까. 그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건 천만다행이나, 자랑스러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안전요원으로 분한 내 부하들이 지원자들을 통제한다.
“줄을 서십시오!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입단 자격을 박탈하겠습니다!”
인조잔디가 깔린 경기장 중앙에선 한창 1차 선별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나란히 늘어선 열 개의 캐노피 천막 아래 근육의 양과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의료기기들이 설치되어있고, 각각의 천막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시험 방식은 간단하다. 근육의 양과 상태를 확인한 다음, 이 근육에서 나올 수 있는 정상적인 힘의 범위를 산출하고, 이를 지원자가 실제로 발휘하는 힘과 비교하여 「근력 강화계수(强化係數)」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상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의 중간값이 4백 뉴턴(N)이고, 어떤 능력자가 실제로 발휘한 힘이 8백 뉴턴이라면, 이 능력자의 근력 강화계수는 2.0이 되는 식. 주어진 육체로 낼 수 있는 힘의 두 배를 발휘한다는 뜻이었다.
시험을 참관하러 온 후샨량 경독이 의문을 제기했다.
“감히 동사장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게 과연 좋은 시험방식인지 모르겠습니다. 뭐랄까, 너무 간단해 보인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나치게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냥 감으로 뽑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이오.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정확하지. 아직 정식으로 도입한 나라가 얼마 없긴 해도, 조만간 국제표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소.”
물론 내 안목을 능가하는 시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내 눈에 의지해서만 뽑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황금기의 눈을 가진 자가 있다고 광고할 일 있는가? 가오슈센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이 가능한 방식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국제표준이라…….”
생각에 잠겨있던 후샨량은 다분히 관료적인 관점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엔 좋겠군요. 어찌되었든 결과를 숫자로 비교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보고서를 쓸 땐 그런 숫자들이 중요하지요. 워누들이 고안한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게 좀 그렇지만…….”
워누, 즉 왜노(倭奴)는 일본인을 가리키는 멸칭이다. 최근 중국이 일본과도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보니 이런 멸칭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후샨량의 말처럼 강화계수를 산출하는 시험방식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도화했다. 이능력 각성이 거의 필연적으로 육체적 강화를 동반하니, 그 강화의 정도를 산출하면 해당 능력자가 지닌 능력의 실질적인 크기를 알 수 있으리라는 것.
강화계수 0.8에서 1.2까지는 일반인으로 간주한다. 설령 각성 능력자라 할지라도 1.2를 넘지 못하면 능력자로서 공인을 받을 자격이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이는 내가 보기에도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회로가 열렸다고 무조건 쓸 만한 능력을 얻는 건 아니니까. 생체강화의 균형이 심하게 안 맞으면 최악의 경우 일반인만도 못한 쓰레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1.175라니! 납득할 수 없소!”
시험이 진행되던 천막 중 한 곳에서 몸을 제법 단련한 듯한 사내 하나가 목소리를 높인다.
“내 악력이 862……. 이걸 뭐라고 읽어? 엔? 그냥 엔이라고 읽으면 되나? 아무튼 862N이나 되는데 왜 앞사람보다 강화계수인지 뭐시기인지가 낮게 나오느냔 말요! 그 사람은 나랑 비슷한 악력을 가지고 1.8을 받았는데! 이거 순 사기 아니야?!”
악력이 862뉴턴이면 어지간한 운동선수 이상이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강화계수 1.175면 능력자로서는 잔챙이 중의 잔챙이였다.
‘지능은 유인원보다 조금 나은 레벨인 듯 하고.’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뒷받침되는 고로 엽사 노릇을 하려면 못할 것까진 없겠으나, 능력자로서의 힘이 성장하지 않는 한 어느 병단을 가더라도 말단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당신들 돈 받았지?! 그렇지?!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냐고!”
사내가 난동을 부릴 기미를 보이자 내 부하 둘이 천막으로 들어가 강제로 끌어낸다. 힘의 차이가 워낙 큰지라 사내의 저항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의 있소!”
다른 천막에서 중늙은이 하나가 시끄럽게 외친다.
“이렇게 얄팍한 시험으로 그 사람이 가진 기의 깊이를 어찌 측량한단 말이오? 나는 무당파 남태화맥(南太和派)의 도장(道長)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니 이런 자질구레한 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소!”
그러더니 품속에서 웬 종이를 한 장 꺼내어 흔들어댔다.
“보시오! 이것이 남태화맥에서 발행한 증서요!”
세상은 넓고 미친 인간은 많다. 화려하게 금박을 입힌 증서엔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천박함이 있었다. 큼지막이 찍힌 붉은 도장이 그러한 느낌을 강화한다.
내가 아는 무당파는 그냥 관광객을 끌어들이고자 인위적으로 조성한 어트랙션에 불과하다. 무당산 산줄기를 따라 도사들도 있고 도관도 있으나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도맥(道脈)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다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럴듯한 양생법 하나쯤은 전해졌을지도 모르지.’
큰 쓸모는 없을지언정, 효과가 있기는 있다는 점에서 근본도 모를 사이비들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예컨대 저 인도의 요가수트라가 그렇듯이. 근 반년 간 세계 각지에서 정통 요가에 입문하는 수행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저런 바보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궁금하군.”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내 말에, 곁에 있던 경태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형님. 혹시 쉬샤오둥이라고 아십니까?”
“사람인가?”
“격투기 선수입니다. 중국 전통무예의 고수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면서 명성을 얻었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쉬샤오둥이 자칭 고수라는 인간들을 떡이 되도록 패줄 때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고수들은 첩첩산중에 은거하고 있다는 거죠. 고아한 공부(功夫)를 한 고수들이 하찮은 돈이나 명성 따위를 위해 속세로 나오겠느냐는 겁니다.”
“…….”
“쉬샤오둥이 벼르는 상대 중에 소림사의 이룽이라는 무승이 하나 있는데, 이 무승은 자기가 금강불괴(金剛不壞)를 익혔다고 주장합니다. 몸에 칼도 창도 안 박히게 만들어준다는 무공을요. 그런데 이걸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칼도 창도 안 박히는 몸뚱이라. 의화단이 떠오르는군.
“쉬샤오둥이 이 이룽에게 여러 번 도전장을 보냈지만, 이룽은 매번 그 도전을 거부했습니다. 자기는 이제 세속의 명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거죠.”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내가 묻자 경태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한때는 이룽도 반짝 이름을 날린 격투선수였거든요. 보다 보면 재미도 있고 해서 조금은 관심을 뒀었지 말입니다. 딱히 배울 점은 없었지만요.”
한마디로 공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딱한 군상들이 얼마든지 더 나타나리라는 예언이었다. 생각건대 개개인의 지능 문제라기보다는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자국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가운데, 이성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반국가주의로 몰아 다수의 폭력으로 짓밟아버리기를 반복하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마비된 멍청이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지.
결국엔 이 또한 공산당의 업보였다. 통치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애국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게 바로 공산당의 제국주의자들이니까. 독재정권에게 있어서 애국주의에 경도된 시민들만큼 통치하기 쉬운 집단은 없다.
그런 토양이 조성되어 있었던 만큼, 마법이 돌아온 시대에 미신과 미망이 다른 나라들 이상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건 인과적 필연이라고 보아야 마땅했다.
“헛흠.”
후샨량이 조금 어색한 헛기침을 한다. 한국어로 오가는 대화에서 잠시 소외되어 있었던 탓이다. 어쩌면 쉬샤오둥이니 이룽이니 하는 이름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더라도 무당파 운운하는 인간이 소란을 일으킨 후이니 대화의 내용을 대충 짐작했을 것이었다.
“지원자들 수준이 썩 높아 보이질 않는군요. 이래서야 춘절 전에 출범이나 가능할는지 원.”
춘절이 오기 전 병단 창설을 완료하는 건 후샨량이 아니라 후샨량을 이곳으로 보낸 가오슈센의 희망사항이었다. 중국 중앙 텔레비전의 춘절전야제(춘절연환만회)에서 자기 병단이 얼굴을 내밀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
춘절연환만회, 줄여서 춘만(春晚)이라 하는 이 프로그램의 위상은 타국의 평범한 명절 특집방송 따위와 비교를 불허한다. 중국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당이 추진하는 각종 사업을 홍보하고 그 당위성을 주지시키는 역할도 수행하는데, 사영 엽사병단도 그러한 사업의 하나인 만큼 가오슈센에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가치를 따지면 수천억은 거뜬히 넘어갈 기회지.’
일단 춘만에서 소개가 된다 치면 앞으로의 지원은 따 놓은 당상이다. 국가적으로 홍보한 사업의 대표주자가 실패로 주저앉는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춘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뒷짐을 지고서 후샨량을 응시했다.
“가족들은 어떻게, 춘절을 고향에서 쇠기로 한 거요?”
내가 운을 띄우지 않았으면 본인이 먼저 꺼냈을 이야기다. 후샨량은 괜스레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동사장님께서도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다가오는 춘절은 매우 위험한 시기가 될 테니까요. 흑적들은 정부가 국내의 안정을 과시하는 걸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이면 백 여기저기서 테러가 빈발할 텐데, 열차라도 마음 놓고 탈 수가 있겠습니까?”
“없지.”
“게다가 저희는 인민영웅 지정이 유력한 가오슈센 부서기님의 주변인물들이라 위협의 정도가 더합니다. 춘절을 함께 보내지 못할 것은 아쉬우나, 가능하다면 이번 달 내에 아내와 피붙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보낼지는 생각해봤소?”
“저희끼리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아부다비가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부다비라……. 나쁘지 않지. 안전하고, 조용하고.”
근래 사막을 끼고 있는 나라들은 식생(植生)이 희박한 환경을 세일즈 포인트 삼아 피난처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식생이 희박하다 함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각성체 야생동물의 출몰이 그만큼 드물다는 뜻이니까. 이러한 장기 피난처 마케팅은 관광산업의 쇠퇴를 만회하는 수단이 되어줄 수 있었다.
아랍 에미레이트 연방(UAE)은 그러한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국가였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있고, 우수한 치안과 인프라를 자랑하며, 현 시점에서 이란을 제외하면 딱히 척을 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 친미국가에 속하는데도 중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어서, 두바이엔 아랍권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체류 비자는 저희가 신청하면 되겠습니까?”
후샨량이 묻기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 없소. 사업상 알고 지내는 이마라티 브로커들이 있으니, 일단 도착하기만 하면 필요한 모든 절차를 알아서 처리해줄 거요.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하지.”
“감사드립니다, 간부님.”
“동사장이라고 부르라니까. 시일을 정해 박 부장에게 말하도록 하시오.”
중국은 UAE와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지만, 그 기간은 30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지 유력자를 브로커로 활용하면 법으로 규정된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고서도 10년짜리 비자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쪽도 만만찮게 부패한 나라인 것을.
“그대의 아들이 올해 열네 살이 되는 걸로 아는데, 맞소?”
내 물음에 후샨량이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식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이 없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새삼스러운 경계를 드러내진 않는다. 세 경독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그런 위치였다.
“맞습니다.”
“피난이 길어지면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도 있겠구려.”
“아이의 장래를 고려하면 그러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사람도 피난이 아니라 유학을 보내는 셈 치자더군요.”
“그러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군.”
“저희는 그저 동사장님의 아량에 기댈 뿐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아들이 여기로 갔으면 좋겠다 싶은 대학은 있소?”
“음, 그런 걸 벌써 입에 담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냥 생각만 해보는 건데 뭐 어떻소? 그리고 자식의 역량을 부모가 모르면 달리 누가 알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판을 깔아주자, 후샨량은 아버지의 욕심으로 이 대학 저 대학의 이름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의 분교는 피하는 게 좋겠다. 소르본 대학의 분교가 그렇게 좋다더라. 기숙사 생활을 한다면 두바이 쪽도 괜찮으니, 영국 대학들의 분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등등. 여러 대학들의 이름이 줄줄줄 흘러나오는 걸 보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참 열심히도 알아본 모양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제 아들놈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 하나는 똑똑한 녀석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만 찾으면 어떤 대학이든 골라서 갈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공부를 안 하는 자식이 정말로 머리가 좋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겉으로나마 끄덕끄덕 동의해주었다.
자식이 부모의 등골을 파먹는 동안에는, 아무리 더럽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삶이었다.
못난 자식의 아버지는 내 그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