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용쟁호투(龍争虎闘) (1)
광저우 일대의 혼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일군의 기병대였다.
현대화된 병종으로서의 기병은 보통 전차와 장갑차를 끌고 다니는 기갑기병(機甲騎兵, Armored Cavalry)이나 헬기를 타고 다니는 공중기병(空中騎兵, Air Cavalry)을 뜻한다. 오늘날의 전장에서 옛 기병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기갑과 헬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란의 막바지에 나타나 광저우 광역권을 제압한 기병대는 문자 그대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들이었다.
이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모두가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만이 아니라 기수를 태운 전마(戰馬)들까지도.
말의 생체질량은 아무리 가벼워도 사람의 네다섯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이다. 고로 자질 좋은 각성체 전마의 힘은 북미 남부의 대표적인 생물재해인 「티-호그」를 가볍게 능가할 수 있었다. 번식력과 개체 수를 계산에 넣으면 멧돼지와 혼종돼지 진영의 압도적인 우세가 되겠지만, 하나하나의 개체 단위로 비교하면 그러하리라는 말이다.
흑해자당의 총공세가 좌절된 후 사흘이 흐른 오늘, 그 기병대는 번화가의 대로를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었다. 사실상의 개선식이다. 광역권 외곽엔 여전히 적잖은 무질서가 남아있었으나, 도심부의 질서를 회복한 것만 해도 어디인가. 또한 일전에도 곱씹은 바 이러한 싸움은 분위기와 기세가 중요한 것이니 행사를 기획한 상층부에게도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고 하겠다.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현장의 질서유지를 책임지게 된 가오슈센은 못내 불만을 드러냈다.
“피 흘리며 싸운 건 우리인데 환호와 관심은 저들이 다 독차지하는구려. 가만히 앉아 남의 성취를 누리는 꼴(坐享其成)이 참으로 보기 싫소이다. 도둑놈들 같으니.”
글쎄……. 싸움터에선 차려진 밥상을 잘 먹는 것도 능력이다. 전술용어로 표현하면 전과확대쯤이 되겠지. 전과확대란 말 그대로 전과(戰果)를 확대한다는 뜻. 베이징에서 내려온 저들 기병대는 이 역할을 아주 탁월하게 해내었다.
공안의 현장지휘본부는 기병대의 행진이 가장 잘 중계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난 여러 화면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적당한 위로를 입에 담았다.
“그래도 중앙정부는 부서기의 노고를 알고 있잖습니까. 숙부께서 드디어 혐의를 벗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숙부인 가오닝후이를 거론하자, 가오슈센이 한결 누그러지는 걸 곁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뭐, 현재로선 절반의 신원(伸冤)에 불과하오. 영어(囹圄/감옥)에서 풀려나셨을 뿐 완전한 복권은 아직이니, 감위주임직을 되찾으셔야 비로소 완전한 설치(雪恥)가 이루어졌다 할 것이요.”
신원은 억울함을 푼다는 의미이고 설치는 치욕을 씻는다는 뜻이다. 이 인간의 숙부에게 부패가 없었을 리 없는데 억울함은 무어고 치욕은 또 웬 말인가 싶지만, 모두가 외눈박이인 나라에선 눈깔 하나 달린 인간이 정상인 것이었다.
가오슈센은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헛기침과 함께 덧붙였다.
“오해하지 마시오. 내 동사장의 노고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니. 언제 사형을 선고당하실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정말 많이 나아진 거지. 숙부께서도 그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 달라 하시었소. 형편이 더 나아지거든 만나자는 말씀도 하셨고.”
“조만간 그렇게 될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앙으로 올려 보낸 금품이 얼마입니까?”
“그야 그렇지.”
끄덕끄덕 동의하는 가오슈센. 그러나 영혼이 없는 대답이었다. 기병대가 투입된 이후, 추가적으로 터는 데 성공한 공산귀족의 금고가 없었기 때문. 지형을 가리지 않는 각성 능력자 기병대의 기동성은 나로 하여금 행동에 신중함을 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독자적인 지휘체계를 구축하고 타 부서와의 정보 공유를 억제하는 터라 더더욱 그러했다.
내게도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중계방송에서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벅찬 음색을 꾸며 정해진 대본을 읽는다.
「우리 인민해방군의 새로운 자랑 「팔일철기(八一鐵騎)」 부대는 세계 최강의 이능보유자 전투부대로서, 당과 인민이 하나 되어 준비해온 「이능굴기」의 본격적인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천하제일의 기병대가 조국을 수호하는 한 중화의 국체는 언제 어느 때라도 흔들림 없이 굳건할 것입니다.」
팔일은 인민해방군의 모태가 된 홍군(紅軍)의 창설일자를 뜻한다. 정확히는 그 계기인 난창 봉기가 시작된 날짜이지만, 둘을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니 내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일전에 중앙에서 뭔가 비장의 전력을 준비 중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아무래도 그게 이건가 봅니다.”
내 말에 가오슈센은 아까보다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고 보니 그렇구려.”
일단 각성체 말을 모으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이 좀 넓은 나라인가. 그러나 그렇게 모은 말을 전마로 조련하는 건 보통 어려운 과업이 아니었겠지.
‘기존의 훈련방식을 그대로 쓸 순 없었을 테니.’
일반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원래부터 기마병을 실전부대로 배치하고 있는 나라였다. 내몽골이나 위구르 자치구처럼 지형이 험하고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선 차량보다 말을 타고 다니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반쯤 의전용이라고는 하나 21세기에 마상쌍검술을 단련하는 군대가 있다고 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황무지를 오가는 영세한 밀수업자들은 실제로 칼에 맞아 목이 달아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위구르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중국은 기마병의 전통을 보전하고 있는 국가였다.
그러나 각성체 군마를 훈련시키는 데 그 전통이 얼마나 쓸모가 있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아예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았겠으나, 군마를 훈련시키는 것, 각성자들이 기마술을 익히는 것, 그 각성체 군마와 각성자 기수가 호흡을 맞추는 것 모두가 이제까지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을 터. 중앙정부가 이 「팔일철기」의 투입을 최대한 늦춘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데뷔전은 성공적으로 치렀군.’
중국의 힘을 과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최정예 기병대가 시작부터 체면을 구겨선 곤란하다. 그러니 이곳 광저우 광역권에 대해서도 미루고 미룬 끝에 승리가 확실하고 충격이 극대화될 시점에서 병력을 투입한 거겠지.
「아, 팔일철기대 3중대장 취텅후이(曲同辉) 소교(少校)가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공식발표에 따르면 그가 타고 있는 흑마(黑馬)는 맨몸에 기수만 태운 상태에서 불과 2.9초 만에 백천미가속(百千米加速/제로백)을 해내는 명마라고 합니다. 최대속도는 자그마치 시속 140공리(킬로미터)에 달한다는군요. 사흘 전 흑적들이 일으킨 대대적인 폭란(暴乱)에서, 취 소교는 이 흑마를 타고 대열의 선두를 달리며 마흔아홉 명의 반역자들을 사살 또는 참살하였습니다.」
2.9초 만에 시속 100킬로미터를 찍는 게 사실이면 치타보다도 근소하게 빠른 가속이다. 그게 기수를 태우고서 찍은 기록이면 더욱 대단한 것이고. 어지간한 슈퍼 카의 가속성능으론 저 말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지.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직접 지켜본 바, 팔일철기대의 대부분은 결코 좋은 기수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승마는 사냥과 짝을 이루는 귀족적인 취미이고, 내게는 귀족인 스승새끼의 기억이 있다. 고로 나는 승마술을 전문적인 영역까지 익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
‘기본기를 익히는 데에만 2년은 잡아야지.’
드물게 그 기간을 반년 이하로 줄이는 천재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천재들의 이야기일 뿐. 그러한 천재들도 숙련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연 단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2년이 아니라 20년을 타고도 때때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마는 게 승마의 기술이었다. 반평생을 안장 위에서 보낸 숙련자들 사이에서조차 기량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전문적인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본 팔일철기대의 기수들 과반수는 말을 통제한다기보다는 말에 얹혀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떻게든 낙마를 면하면서 화력을 투사하는 데 만족하는 것.
그런데도 흑해자당의 전열과 시체인형들의 군세는 철기대의 기병돌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2층 높이의 장애물을 가볍게 넘어버리는 전천후적 기동력과 중기관총 사격을 견뎌내는 방어력, 그리고 체급에 비례하는 화력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바이크에 올라탄 흑해자당의 기병대와 전마에 올라탄 공산당의 기병대가 격돌하는 장면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나로서도 꽤나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하겠다. 공산당의 중장기병들은 악명 높은 바이크 돌격대를 너무도 간단히 뭉개버렸다.
가오슈센이 나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린다.
“향후 성과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쪽도 저런 걸 좀 구해야겠군…….”
나는 이제야 화면에서 눈을 떼었다.
“저런 거라면, 이능을 보유한 전마들을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흑적들이 산과 들로 흩어져 달아났으니, 앞으로의 싸움에서 활약을 이어나가려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겠소? 공안국의 예산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니, 개인 자산을 써서 내 엽사병단을 강화하는 수밖에.”
벌써부터 예산의 한계 운운하는 것으로 미루어, 예산을 빼돌려다가 제 사병대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지금까지 위에다 먹인 돈이 있는 만큼 여간해서는 목 달아날 일이 없을 테지만.
“혹시 무명회사가 말을 구해줄 수도 있겠소? 우수한 능력자를 알아보는 능력은 우수한 전마를 골라내는 데도 통할 게 아니오?”
“가능은 합니다만 값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서 감정에 드는 비용을 많이 깎아내더라도, 말 자체의 가격만으로 두당 수백만 위안씩은 잡아야겠지요. 감당할 자신은 있으십니까?”
“수백만 위안? 그래봐야 한낱 가축인데 뭐가 그리 비싸단 말요?”
“그것도 낮게 잡은 겁니다. 이능이 없던 시절 경주마들의 몸값이 그 정도였으니, 세계적으로 손꼽는 수준의 이능을 품은 명마라면 수천만 위안을 호가할 것 같군요.”
“수천만…….”
황금을 숭배하는 공산귀족의 낯짝이 대번에 창백해진다. 위안화 가치가 많이 하락한 지금도, 천만 위안이면 한화로는 25억이 넘는 거액이다. 자칫 말 한 마리의 몸값이 강남의 아파트 여러 채와 맞먹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각성체 말을 몇 억쯤 되는 가격에 인수한다고 치자. 그래봐야 군마와 기수의 교육비용을 고려하면 결국은 1기당 비용이 쉬이 일이십 억을 넘어갈 터.
가오슈센은 잠시 질린 기색으로 화면 속 팔일철기대를 응시했다. 공산당의 기병대가 얼마만큼의 돈지랄인지 이제야 깨달은 눈치.
‘그래봐야 기병 하나에 기갑차량 한 대 값이라고 치면 합리적인 투자지.’
각성체 전마를 탄 능력자 기병의 역할과 기갑차량의 역할을 동일하다고 볼 순 없겠지만, 전술적인 가치로는 충분히 대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갑차량에 쓰는 만큼의 돈을 기병 육성에 투자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장갑차 한 대에 70억씩 쓰는 일본 같은 나라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고.
“그보다, 이제 슬슬 허가가 나올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내 물음에 가오슈센이 의아한 기색을 드러낸다.
“허가? 무슨 허가 말이오?”
“내 사영(私營) 이능엽사병단의 운영 허가 말입니다.”
오늘은 사실 이걸 재촉하려고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다. 중국 땅에 우리 조직이 경영하는 민병대가 있으면 각성체에 관한 국가사업을 수주하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무기 밀수 및 비축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적어도 피지 같은 남태평양 외딴 섬에 쌓아두는 것보단 훨씬 더 효율적이겠지. 중국을 떠나기 전에 확답을 받아놔야 할 일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공산귀족은 과장된 탄성을 흘리고서 이렇게 말했다.
“아아. 그거. 말씀드리는 걸 잊었구려. 허가는 벌써 나왔소이다. 파견 감독관도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골라놨고.”
“그렇습니까?”
“물론이오. 내가 누구요?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정말로 그냥 잊고 있었을 뿐이라오. 동사장도 아시겠지만 내가 워낙 바쁘지 않았소?”
“이해합니다.”
그래, 이해한다. 허가를 일찍 내주면 알짜배기 지원자들을 내가 다 독점하고서 자기 병단엔 쭉정이만 내어줄 게 걱정이었으리라. 공산귀족의 머뭇거림은 너무나 뻔한 단서였다.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가오슈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엽사들을 선별하는 일은 잘 되어 가오?”
“염려 놓으십시오. 심사는 내가 직접 감독할 생각이니. 부서기께선 내가 중국을 떠나기 전에 병단의 출범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응? 중국을 떠나신다고?”
“나는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언제까지고 이곳에 발이 묶여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돌아오긴 할 테지만 말입니다.”
“으음. 그렇다면야…….”
가오슈센은 내가 광저우를 떠나리라는 사실을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