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역향 (17)
더 앞으로, 더 앞으로.
되풀이되는 내 요구에 따라, 인형술사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속을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 걸음이 마치 지팡이 없이 걷는 장님과도 같아 방향 유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인형술사가 나아오는 경로는 직선처럼 보이는 지형지물에 수렴하게 되었다. 그 지형지물이란 토사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오래된 담벼락이었다.
나는 굳이 인형술사의 경로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원탁의 추종자들이 초조하게 바라보는 방향과 인형술사가 실제로 걷는 방향이 큰 폭으로 어긋나게 되었으니까. 어찌되었건 내 마력장의 중심으로 가까워지는 경로이긴 했다.
오래된 담벼락은 오래된 도교 사원의 일부였다. 그리하여 안색 파리한 원탁의 마스터는 숲과 세월에 잡아먹힌 사원의 퇴락한 앞뜰에 이르게 되었다. 깨진 기왓장들 사이에 떨어져 썩어가는 현판의 글씨를 보건대, 옛 어부들이 조업을 나가기 전 바다의 여신 마조(媽祖)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핵폭탄을 탈취한 그 여신이시군.’
내가 떠올린 건 대만에 전해지는 괴상한 전설이었다. 2차 대전 말기, 미군이 대만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소탕하고자 핵을 투하하였으나, 서쪽 바다로부터 붉은 옷을 입은 여신이 날아오르더니 폭탄을 낚아채어서는 자신이 나온 바다로 던져버렸다고. 이른바 「핵탄을 받아낸 마조(媽祖接核彈)」의 전설이다. 과거 이 설화를 토대로 대만 서쪽 해역을 뒤져보자던 미친 새끼 하나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인형술사는 무너진 본당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곤 허공에 대고 말한다.
“이쯤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 그쯤이면 된다. 거기에 가만히 있어라. 라이플을 거꾸로 쥔 나는 식육목의 짐승처럼 소리 죽여 전진했다. 탄창을 제외한 무게가 30킬로그램에 달하는 대물 저격 라이플은 신체강화 능력자가 휘두를 둔기로서도 적합했다. 어쨌든 맨주먹을 쓰는 것보단 확실하게 적을 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가 하면, 적의 교신을 금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적들의 정보전달은 교전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멈춰있다. 경황이 없던 와중에 이루어진 인형술사의 회유 시도도, 내가 내건 조건도 아직은 전파를 타지 않았다.
그러니 인형술사의 죽음은 조용해야 한다. 포성에 가까운 총성보다는 둔기로 때려죽이는 소음이 훨씬 더 가볍지 않겠는가? 가벼운 소음은 차단하기도 수월하다. 그렇게 적막한 살해에 뒤이어 안개 속 곳곳에 고립된 하수인들을 마저 죽이고 나면, 인형술사 살해에 얽힌 진상이 이 작은 무인도 밖으로 빠져나갈 일은 없다.
전율하는 거인의 숲에서처럼, 마법적 구속력에 사로잡혀 소리를 잡아먹는 농밀한 안개가 퇴락한 사원을 무겁게 내리누른다. 그런데도 초조해하며 귀를 기울이던 인형술사는 가까워지는 내 발소리를 들었다.
“크로우허스트 그대인가?”
“아니.”
“뭐?”
뿌드득. 굵은 총열을 움켜쥔 손아귀에서 마찰음이 난다. 살과 쇠가 부대끼는 소리. 다음 순간, 나는 근육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힘으로 둔기를 휘둘렀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수직 베기다. 인형술사는 정수리에서부터 아래를 향해 뭉개졌다.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저항은 미미했다. 마치 공업용 해머로 케이크를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인체가 너무도 부드럽게 뭉개지는 탓에, 난 둔기가 땅을 치기 전에 제동을 걸어야만 했다.
피가 흐른다. 모서리가 둥글어진 포석의 틈바구니마다 피 흐르는 길이 만들어졌다. 낡고 부서진 제단 아래 해묵은 섬돌이 핏빛으로 젖어든다. 먼 곳에서 온 제국주의자는 이교의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처럼 죽었다. 이끼로 뒤덮인 신상이 대마법사의 죽음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죽은 것인가?
원탁의 마스터가 이렇게나 간단하게 살해당한다고?
과도한 흥분상태가 비정상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 내 손으로 죽여 놓고도 실감이 나질 않아, 나는 인형술사의 남은 유해를 편집증적으로 자근자근 밟아 으깨었다. 으직. 으직, 으직, 으직……. 확인사살은 아무리 철저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 발은 이내 정강이 어림까지 붉게 물들었다. 더는 으깰 것이 남아있지 않게 된 시점에서, 심장은 전력질주를 한 직후처럼 거세게 뛰고 있었다.
완전히 평탄화 되어 그로테스크한 추상화처럼 펼쳐진 인형술사를 내려다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감에 가까운 성취감과 골수를 찌르는 희열을 느꼈다.
상대는 원탁의 마스터였다. 마력장을 완전히 거두었어도 회로에 저장된 마력만으로 비장의 한 수를 쓸 능력이 있는. 고로 사로잡아 끌고 가서 심문을 한다든가 하는 사치스러운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말의 방심이 파국으로 이어질지 모를 상대였으므로,
게다가 대마법사에겐 자신의 회로를 파열시킬 능력이 있다. 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살이었다.
인형술사의 유해로부터 건질 전리품은 몇 개 없었다. 마력이 깃든 인장반지와 외알 안경 하나, 그리고 어느 은행의 비밀계좌를 열어줄 카드가 하나. 찢어진 테일 코트도 인간의 영혼을 갈아 넣은 아티팩트(Artefact)였지만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애당초 대마법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 자체가 흔하질 않지.’
그러고 보니 지팡이가 꽤 특이한 마력 패턴을 띠고 있었다. 속에 칼날을 품은 소드 스틱(Sword Stick). 배에서 탈출하는 인형술사를 초공동탄으로 명중시켰을 때 끊어진 팔과 함께 바다 위로 떨어졌으니, 돌아가는 길에 주워가면 될 것이다.
몸이 떨려왔다. 긴장이 풀린 탓에 체급을 불려 몰려드는 피로다.
아직 마무리를 지어야 할 연놈들이 남아있건만.
스스로의 나태함을 꾸짖으며, 난 염동력으로 주변의 표토를 긁어 인형술사의 잔해를 파묻었다. 그러곤 마력을 태우는 불로 지표 아래를 뜨겁게 구워버림으로써, 훗날 상륙할 조사단이 살해방법을 짐작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대마법사의 최후.
미지는 공포의 원천이다. 원탁은 두려움을 알 것이다.
인형술사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이때까지도 각자의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버려진 개들이 떠나간 주인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하염없이.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경애하는 선지자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야말로 추종자들의 발을 묶어두는 족쇄였다.
그러므로 나는 단순노동에 가까운 처형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작렬한 기화폭발로 인해 적의 대열은 수 시간에 걸쳐 일제사격을 주고받은 전열보병의 대열과도 같았고, 그렇게 듬성듬성 흩어진 원탁의 하수인들을 상대로 난 장작을 패는 나무꾼처럼 둔기를 휘둘러댔다. 마력회로의 최대출력을 생체강화에 때려 박는 대마법사의 근력 앞에서, 하수인들의 몸뚱이는 썩 단단한 것이 못되었다.
이번에도 포로는 잡지 않는다.
‘웨스트버튼이 제 추종자들의 몸과 영혼에 무슨 짓을 해놓았을 줄 알고?’
나는 이미 불릿 스펀지로 화하는 인형을 보았다. 추종자에게 「세례」를 베풀 적에 비슷한 수작질을 부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추종자의 영혼에 트로이의 목마처럼 작동하는 모종의 마법적 트랩을 심어두었다면?
회로를 새겨줄 때의 성공률을 도외시한다는 전제 하에, 이는 내게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부하들이 죽거나 폐인이 될 위험을 감수하기 싫었다.
너무도 아깝지 않은가?
또한 그런 식의 인력소모는 조직 전반의 충성심을 녹슬게 한다. 이를 만회할 방법은 종교적 광신이 유일한데, 그 같은 광신은 조직의 건전성을 좀먹는 질병이니 선택지로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지직, 지지직-
부서진 장작처럼 죽은 어느 추종자의 시체 옆에서, 피에 젖은 무전기가 증원의 도착을 예고한다.
「……듣고 있는가? 섬의 동남쪽 돌출부로 폭스하운드가 상륙한다. ETA(도착예정시각)까지 앞으로 약 2마이크. 선망에 대기 중인 통사는 누구든 현재 상황을 확인해주길 바란다. 귀소 측의 0A는 무사한가? 스타라이트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가?」
폭스하운드는 병종(兵種)으로서의 보병을, 제로 알파(0A)는 최고 책임자를, 스타라이트는 의무관 내지 의료지원을 뜻한다.
상륙한다는 보병전력의 정체는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한 개 소대 규모의 최정예 왕립해병(45 코만도)들이었다. 싣고 온 병력 전체를 투입하긴 꺼려지니 일단 소대 하나를 정찰 삼아 보내어 전장 상황을 파악하겠다는 의도겠지.
열심히 헤엄쳐온 한 개 소대의 정예해병들은 상륙하기 좋은 해변을 두고 일부러 바위절벽을 기어올랐다. 총구가 하늘을 향하도록 라이플을 세워놓고 그 가상한 노력을 지켜보던 나는, 해병들이 조금 더 깊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한 명도 남김없이 충격파로 쳐 죽였다.
저격탄을 날리기도 부담스러운 거리를 둔 채 정지비행을 하던 헬기 편대는, 조용하던 섬에서 다시금 백색 폭발이 작렬하자 미련 없이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사라졌다. 왜 정말로 미련이 없겠느냐마는, 그만큼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 섬을 떠날 차례다.
부하들이 기다리는 북쪽이 아닌 남쪽 바다로 뛰어든 나는, 오래지 않아 인형술사가 놓친 지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을 품은 지팡이는 버려진 그물망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었다. 중국 어선들의 조업 방식이 방식이라, 개흙이 들고일어난 해저면은 온갖 어구(漁具)들을 모아놓은 폐기장을 방불케 했다. 지팡이를 뽑은 나는 그물에 끼어 죽은 흰돌고래의 유해를 보며 냉소적인 감상을 느꼈다. 홍콩 주권 반환운동의 마스코트가 바로 이 흰돌고래였으니까.
지팡이를 얻은 뒤엔 침몰한 두 척의 크루즈를 보다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 거인의 술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위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역산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기록이 남았을 법한 매체들을 부수거나 회수한 건 덤이다.
이후 내가 교도소 인근의 헬기 이착륙장에 도달할 때까지도 작은 까마귀 섬은 적막에 잠겨있었다.
“형님!”
경태가 황망해하며 얼른 다가온다. 사주경계에 임하는 다른 부하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비척거리는 품새가 걱정스러웠던 모양. 난 대충 손을 내저어 불필요한 부축을 거부했다. 안전한 곳에 이르니 열병 같은 흥분이 기어 올라왔다. 술자리에서 뒤늦게 올라오는 취기와 같이. 아까 느낀 희열이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의 안색을 살핀 경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이보다 더 괜찮을 수가 없을 만큼.”
입에서 기괴한 웃음이 샌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듯한 낯선 웃음이.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서 후련하게 내뱉듯이 말했다.
“원탁의 마스터를 죽였다.”
“…….”
“가자. 남은 밤을 매듭지으러.”
기분만큼은 모든 걸 다 끝낸 듯한 기분이지만, 실상은 원탁의 구성원 중 하나를 처치했을 뿐이다. 베크룩스는 수연의 지휘 하에 여전히 싸우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헬기에 올라탄 나는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썼다.
대장기는 오래지 않아 둥관시 공역으로 재진입했다. 도시의 야경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이 야경이, 내게는 점 하나만 더 찍으면 용이 될 수 있는 그림처럼 보였다. 이럴 때 흥분으로 손이 떨려 최후의 점을 못 찍는다면 그만큼 우스운 일이 다시없을 것이다.
난 에너지 팩을 입에 물고서 묵직한 흑단 지팡이의 손잡이를 비틀어보았다.
딸깍!
지팡이의 몸과 손잡이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기자, 사아악- 하는 마찰음과 함께 광택이 없는 상아빛 칼날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칼집을 얼마나 정교하게 짜맞추었는지 안으로 침투한 바닷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경태가 묻는다.
“그게 뭡니까? 뭔가 되게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데요.”
당분을 섭취하니 몸에 바로 기운이 돌아오는 게 체감되었다. 그만큼 소모가 심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칼날에 마력을 불어넣어보았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대마법사. 도구의 기능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이건…… 제례용 검이로구나.”
“제례용 검이면, 뭐냐 그, 산 제물을 죽일 때 쓰는 그거요?”
“그래. 제물의 영혼을 뽑아 저장해두는 칼이다.”
칼날의 재질 자체도 오래된 뼈를 가공한 것이었다. 필시 황금기를 살았던 어느 초월적 존재의 뼈를 재료로 썼을 테지. 혹은 이미 가공된 형태로 발굴이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스승새끼의 기억 속에 있는 원탁의 능력을 감안할 때 후자일 확률이 높겠다.
소생술식을 쓰려면 살아있는 것을 죽인 다음 흩어지려는 영혼을 즉시 고정시켜야만 하는데, 이런 도구가 있다면 인형제조공정의 수율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검 자체가 소생술식의 코드를 품고 있는 진리의 조각이다.
요컨대 이건 아티팩트를 넘어서 성유물(렐릭)이라고 해도 좋을 물건이었다. 모든 성유물의 세 정점인 황금기의 「눈」과 「심장」, 그리고 「정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등급을 구분하자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
나는 검을 다시 지팡이에 수납한 다음 좌석 뒤쪽에 고정시켰다.
귀한 물건이라곤 하나 당장은 쓸 데가 없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