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36화 (136/561)

#17. 반역향 (16)

중국의 남쪽 바다는 사시사철 대만해협을 빠져나오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느리고 잔잔한 물결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일고 있었다.

판단이 섰다. 인형술사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음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전장을 동쪽으로 크게 우회한 나는, 작은 까마귀 섬과 녹나무 머리(樟木頭)라는 또 다른 섬 사이의 물목을 최대속도로 주파함으로써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점유했다.

다음은 물의 상전이다. 바라는 건 거인의 영지를 가득 채웠던 운해(雲海)와도 같은 안개. 나는 그 거인만큼 큰 안개를 만들 수도 없고 광범위한 안개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도 없지만, 일단 짙은 안개가 끼기만 하면 지상에서도 기화폭발을 퍼부을 수 있게 된다. 물의 수증기화가 아닌, 수증기의 수소폭명기화를 통하여. 덤으로 적들의 가시거리를 극단적으로 축소시키는 효과도 있겠고. 항공지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 터였다.

술식을 구축하며 회로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자, 너른 해수면이 내 의지에 반응하여 희뿌연 색채로 일어난다.

이렇게 빚어지는 바다안개는 공기에 비해 따뜻한 온도를 머금고 있었다. 해수가 원래 공기보다 따뜻하기 마련이거니와, 마법도 결국은 에너지의 작용인 만큼 작용하는 현상에 열을 더하는 측면이 존재했다.

따라서 안개는 느릿느릿 상승하며 작은 섬을 집어삼켜갔다. 이미 만들어진 안개인지라, 인형술사가 전개한 마력장은 하등의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이에 인형술사는 둥글게 퍼지는 염동력 충격파로 안개를 몰아내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야를 트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양적으로 끝없이 더해지는 안개는 섬 전체를 바람이 부는 속도로 다시 뒤덮는다. 환경적인 우위가 나에게 있는 고로, 술식의 효율도 내 쪽이 월등했다.

애당초 매질(媒質)을 불문하고 세상 만물의 운동량(Momentum)에 간섭하는 염동술식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마법이다. 특정 물질에 대해서만 지배력을 행사하는 거인의 술식보다 연비가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금기에서 비롯된 지혜답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생명」보다는 가볍지만.

거친 착륙으로 의관(衣冠)이 엉망이 된 인형술사는, 여러 번의 헛수고를 반복한 끝에 안개를 실어오는 해풍에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그러고는 지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다음 수를 고민하는 체스 플레이어라기보다는 오지를 헤매다 막다른 길을 마주한 조난자 같은 느낌. 파르르 떨리는 수염이 그러한 인상을 강화했다. 본디 하얗던 수염엔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뭍에 오르는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대량의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라면 국지적인 열대요란(熱帶搖亂)을 빚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규모가 너무 작아 태풍의 씨앗이 되기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작은 무인도 하나를 호우와 강풍으로 덮어버릴 순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소나기만큼이나 짧을 기상이변. 내가 목적을 이루는 데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작은 까마귀 섬에서는 방어전을 치를 준비가 한창이다. 거인의 술식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그 요체를 어림잡은 원탁의 마스터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방어진지를 구축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바람을 막아줄 장애물이 많은 숲에 깊은 참호를 지그재그로 파고 들어앉으면 기화폭발에 따르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인형술사의 마력장 바깥에서만 작렬하는 폭발은 매양 수평적인 충격파만을 빚어낼 터이므로.

침몰하는 크루즈로부터 탈출한 하수인들이 속속 해변에 도착하여 방어선 구축에 가세한다. 하나하나가 초인적인 힘을 지닌 능력자 및 시체인형들이었기에, 맨손으로 땅을 파는데도 여러 대의 중장비를 굴리는 속도가 나왔다.

‘그래봤자 버티기밖에 더 되나.’

버티기라도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나는 내 손으로 유도한 환경적 변화에 힘입어, 인형술사는 순수한 화력의 우세로 밀어버릴 작정이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섬을 중심으로 급격히 하강한 기압은 주변 해역의 수증기까지 빨아들여 낮은 고도에서 구름층의 발달을 촉진했다. 내 술식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1의 힘으로 10 이상의 결과를 낳는 도미노 효과였다. 안개는 거꾸로 흐르는 폭포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 결과는 명백히 내 기대를 넘어섰다.

솨아아아-!

안개로 가득한 남국의 겨울바다에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은 숨쉬기조차 벅찰 만큼 밀도 높은 강우다. 그 비를 맞으며, 나는 마침내 파도 부서지는 섬의 가장자리에 상륙했다. 젖은 옷자락이 강한 바람에 깃발처럼 나부낀다. 체감온도가 곤두박질쳤으나 내 몸은 뜨거운 열로 가득하다. 전신에서 모락모락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내 대적(大敵)이 급하게 구축한 참호선엔 물이 빠질 만한 구석이 없었다. 더욱이 산비탈 아래에 자리를 잡은 터라,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과 토사를 모조리 감당해야 하는 판이었다. 그리하여,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되, 적들의 방어진지는 시작부터 총체적인 기능마비에 직면했다.

아, 생사를 건 싸움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나!

인형술사의 낯짝이 창백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기념비적인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적들의 사격이 쏟아진다. 원탁의 마스터가 직접 통제하는 집단 사격은 대충 쏘는 제압사격 치고 정확도가 높았다. 그러나 산비탈의 숲과 황량한 지형은 내게도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난 흥분으로 떨려오는 몸을 다스리며 영의 회로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물의 분해. 수소와 산소 기체가 혼합된 폭명기의 생성. 그리고 점화.

콰르르릉!

물을 머금은 숲이 둥글게 폭발했다. 무수한 이파리들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흩날리고, 깊은 땅울림이 작은 섬 전체를 뒤흔든다. 정상 부근의 바위를 방패로 삼고, 염동력 방호를 추가로 두른 나는 산의 사면에 계속해서 기화폭발을 작렬시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노리는 건 산사태였으나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다. 다만 쓸려 내려가는 토사의 양이 확연히 늘어 적의 참호선을 한층 더 무의미하게 만들어주기는 했다.

이제 원탁의 하수인들은 기화폭발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자리가 적게 되었다. 마법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적들의 피해가 착실하게 누적된다.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숲도 급격하게 황폐화되어, 헐벗은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뿌리가 들리거나 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회로가 확실하게 열린 나무들만이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 그러한 각성수들은 흔들리는 마력장으로 무언의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방어에 전념하는 인형술사의 염동력은 그리 넓은 범위를 보호하지 못했다.

가르르륽-!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한 무리의 사냥개들이 충격파에 맞아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정확히는 개가 아니라 개를 가지고 만든 시체인형들이었지만. 살아있을 적보다 아둔해진 머리로는 충격파를 피해 이리저리 튀는 달음박질이 불가능했다.

‘왜 바다엔 저런 게 없었지?’

인형의 재료가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상어 따위를 인형으로 삼아두었으면 나는 바다에서 보다 까다로운 싸움을 치러야 했을 터.

그러나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시체인형의 뇌는 살아있을 때의 지식을 기초로 작동하는 생체기계다. 훈련이 되지 않은 동물을 인형화해봐야 명령어가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때 수평선 저편으로부터 헬기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격이 대당 1억 달러를 넘어가는 다목적 중형헬기 네 대. 레이더 반사면적(RCS)을 최소화하고자 외장을 싹 갈아치우다시피 해놓았으나, 내부를 투시하는 나는 그 원형과 소속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십중팔구 영국 왕립해군의 코만도 헬리콥터 전대(CHF)다.

헬기 내부엔 각성 능력자로만 구성된 전투부대가 탑승하고 있었다. 특수부대 기준으로는 1개 대대를 채우고도 남는 규모.

대응이 예상보다 많이 빠르다. 근래 항공모함을 포함한 영국 합동원정군(JEF)이 남사군도 일대에서 인민해방군 함대와 숨바꼭질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근방에서 긴급출격으로 떠서 여기까지 왔다고 보기엔 소요된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여러모로 대비는 해두었다 이건가?

그러나 당장은 소용없다. 헬기만큼 악천후와 기화폭발에 취약한 탈것이 또 어디에 있다고.

계속해서 기화폭발을 때려 박으며, 난 오히려 헬기 편대가 곧장 섬으로 진입해 들어오기를 바랐다. 지금이라면 단 한 수로 모조리 격추시킬 수 있으니까. 아니, 내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폭우와 강풍에 못 이겨 추락해버릴 확률이 높다.

역시나, 헬기 편대는 감히 섬 인근 공역으로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포식자를 두려워하는 날벌레 무리처럼 하릴없이 주변 하늘을 맴돌 따름.

콰앙!

20밀리 라이플이 불을 뿜는다. 내가 조준한 것은 엄폐물 밖으로 나온 팔꿈치 하나. 중구난방으로 몰아치는 강렬한 후폭풍에 몸을 가누지 못한 인형술사의 팔꿈치였다. 퍽 끊어진 팔뚝이 흙투성이가 되어 땅을 구르고, 듣기 좋은 비명이 그 뒤를 이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섬이 이미 충분히 젖어있었기에 공세를 이어가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내 마력장은 지저(地底)로도 뻗어있다. 땅에 스민 물의 상변이가 다시금 섬 전체를 잡아먹는 안개를 자아낸다. 내 입장에선 공기 전체가 폭탄으로 가득한 셈이었다. 마력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언제라도 원격으로 폭파 가능한.

신체적 결손을 복구하는 인형술사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벌어진 입에서 기다랗게 늘어지는 진득한 침. 나는 인형술사의 고통이 순수한 아픔만은 아님을 짐작했다. 열량 소모가 너무나도 심각한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나처럼 수시로 열량을 보충해두지도 않았을 테니.

원탁의 마스터가 보여주는 필멸자적인 면모는 추종자들에게 공황을 선사했다. 선지자에 대한 추종자들의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조직의 건전성이 중요한 것이다.

“대화를 하자!”

인형술사, 대마법사 웨스트버튼이 초월적인 성량으로 소리쳤다.

“거기에 있는 것을 안다, 크로우허스트 경! 대화를! 대화를 하자!”

크로우허스트라. 안개를 관통하는 정밀한 사격으로 말미암아 이쪽의 투시력을 눈치 챈 모양이다. 대마법사답게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대화? 내가 왜?

아니지……. 이건 이용할 수 있겠군. 어떻게든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해서, 다른 술식을 구축하기 전에 머리통을 쏴버리면 그만이니. 보다 나은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고.

잠시 공격을 멈추자 안개 속 작은 섬에 생경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부상을 입은 원탁의 추종자들이 여기저기서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들을 냈다. 나는 용인발음(Received Pronunciation) 진하게 묻어나는 고색창연한 왕실영어에 스승새끼의 말투를 담아 인형술사에게 회답했다.

“웨스트버튼 경. 그대와 내가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상호간의 거리가 채 백 미터도 되지 않았으므로, 기본적인 성량의 한계가 높은 생체강화 능력자로서는 목소리를 조금만 키워도 충분히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헐떡이며 엄폐물에 기댄 인형술사가 눈을 감고 지친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그렇게 숨을 돌리고서야 다시 외쳤다.

“거꾸로 묻겠네! 우리가 왜 이렇게 죽고 죽이는 싸움을 치러야만 하는가!”

“나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는데?”

“그것은 물론 비극이었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배신이었고! 하지만! 그건 마법사로서의 우리가 서서히 죽어가던 시기였기에 비로소 벌어졌던 일이 아닌가! 기근이 심한 땅에서 벌어지는 식인은 법정에서도 정상을 참작해주는 법일세!”

정신 나간 궤변에 실소가 나온다. 욕망에 눈 먼 살인을 살아남기 위한 식인과 동급으로 놓다니. 하나 나는 사냥감을 꾀어내야 할 입장이었으므로 다시금 질문을 돌려주었다.

“그래서 어쩌잔 말이지?”

“나와 함께 원탁으로 돌아가세! 내가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 중재할 것을 약속하지! 황금기의 눈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원탁내각의 다른 대의원들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줄 것일세!”

“과연 그럴까?”

“그럴 것이고말고! 생각해 보시게! 갑작스럽게 돌아온 마법의 시대가 갑작스럽게 끝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신적인 존재로 거듭나야만 하네! 그러려면 황금기의 눈이 필요하고! 그 눈이 원탁 밖에 머무르는 1분 1초가 우리 모두에게 돌이키지 못할 손실이 되고 있음을 왜 모른단 말인가!”

웨스트버튼은 이제야 비로소 팔의 재생을 완료했다. 먼젓번에 비해 확연히 느려진 속도였다.

“그러니 함께 가세! 자네도 궁금하지 않은가? 아이테르(마소)가 풍부한 지금, 그 눈으로 보는 「황금기의 심장」과 「정수」,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진리의 조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과 깨달음을 선사할는지!”

그래. 좀 궁금하기는 하지. 신이 되겠다고 설치는 너희처럼 절실한 건 아니지만.

“좋아.”

“받아들이는 건가!”

“대신 조건이 있다. 그대가 인질이 되어줘야겠어.”

“…….”

“웨스트버튼 가(家)의 가솔들은 들어라. 이 순간부터 모든 형태의 저항 및 통신 행위를 금한다. 무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지시를 어길 경우 대가는 그대들과 그대들의 주인이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 웨스트버튼 경, 그대는 마력장을 축소하고 혼자서 앞으로 나오도록. 지금부터 10초를 주지.”

“10초라니, 잠깐!”

“진심을 보이시게. 이대로 싸움을 계속하면 그대는 어차피 죽어.”

여기까지 말한 나는 큰 소리로 줄어드는 수를 세기 시작했다. 상대가 떠드는 말은 완전히 무시해버리면서. 번뇌하던 인형술사는 결국 자신의 마력장을 제로에 가깝게 축소시키고는, 이제껏 의지해왔던 엄폐물 밖으로 떨리는 몸을 드러냈다. 안타깝게 만류하는 추종자를 뿌리치고서. 이는 내가 2를 세었을 때의 일이었다.

20밀리 라이플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물에 젖은 강철의 냄새가 이 순간처럼 향기롭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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