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35화 (135/561)

#17. 반역향 (15)

내 사격실력은 명백히 경태 녀석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 거리에서 가속하는 비행체를 백퍼센트 명중시킨다는 보장이 없으니, 사냥에 성공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면 아직 이륙하지 않은 헬기를 노려 초탄을 날리는 게 최선이었다. 인형술사의 염동차장에 탄도가 휘어질 것도 고려해야 했다.

다음 표적은 맞은편 다이아몬드 크라운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또 다른 헬기였다. 공격자를 기만하기 위하여, 인형술사와 꼭 닮은 외모에 똑같은 옷을 입은 대역이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헬기에 오르려던 참이다. 콰우웅! 방아쇠를 당기자 목전의 해수가 격렬히 요동친다. 매섭게 날아간 차탄은 막 떠오르려던 헬기의 기관부를 파괴하여 그 자리에 도로 주저앉혀주었다. 이로써 적에겐 여분의 헬기마저 없어지게 되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추가지원이 도착하기까지는 최소 십여 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탄창에 남은 잔탄은 하나. 나는 이걸로 인의 장막 너머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인형술사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빠른 조준과 신속한 격발. 어두운 물속에 큼지막한 총구화염이 타오르고, 훅 뱉어진 굵은 탄피가 느린 회전운동을 하며 천천히 가라앉는다.

20밀리 저격탄의 파괴력이면 사람의 몸통쯤은 몇 개라도 우습게 뚫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날린 초공동탄은 겨우 한 겹에 불과한 인의 장막을 관통하지 못했다. 인형술사를 근접 경호하던 시체인형은, 방탄 플레이트가 박살나며 단단한 몸뚱이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지자, 그 즉시 괴기스럽게 끓어오르는 살덩이로 화하여 총탄에 실린 힘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문자 그대로의 불릿 스펀지(Bullet Sponge)가 된 것이다. 이때 순간적으로 번뜩인 마력회로의 흐름은 한 번의 관측만으론 해석이 불가능한 고난도의 술식을 담고 있었다.

과연 거장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솜씨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시간을 벌어 운신의 폭이 넓어진 데 만족한다.

남서쪽 바다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우연찮게 나를 도와주었던 각성체 상어의 최후를 알리는 조종(弔鐘)의 울림이다. 외곽 경계를 맡고 있던 정예들이 황망히 내부로의 포위를 좁혀오고 있었으나, 이 시점에선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의 무리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미 로켓 추진 폭뢰의 최소사거리 이내로 진입해버렸으니까. 수면과 가까운 심도에서 다시 한 번 공기구체를 만들어낸 나는, 육박해오는 하수인들을 향해 강한 기화폭발을 연속으로 때려 박았다. 동시에 시체들이 처박힌 해저면으로부터 여분의 20밀리 탄창들을 수습하여 이어질 전투에 대비한다.

이러는 와중에 배후에선 드디어 대마법사의 마력장이 부풀어 올랐다. 인형술사가 더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감추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력회로의 출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속은 여전히 나의 영역이었다. 내가 구사하는 거인의 술식은 원탁의 마스터 입장에선 미지의 힘 그 자체일 터. 몰려드는 하수인들의 반수를 죽이거나 무력화한 나는, 나머지를 마저 섬멸하는 대신 플라티나 크라운을 향해 급속 접근했다.

이어지는 건 대마법사와 대마법사가 마소에 대한 장악력을 두고 벌이는 순수한 힘겨루기.

서로 다른 두 마력장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내 마력장이 찌그러지는 만큼 인형술사의 마력장도 찌그러진다. 나와 인형술사 사이에 낀 마소의 흐름은 서로 다른 장악력의 틈바구니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난류로 급변했다. 혈관에 도는 피가 쇳물처럼 달아오른다. 이 순간 고조되는 전의는 위험한 사냥감과의 대결에 임하는 사냥꾼으로서의 흥분이었다.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의 마력장 안쪽은 내 술식을 원격으로 투사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한 마력장이 배 전체를 집어삼킨 상태. 그러나 머무는 심도를 낮추어 치명적인 거리까지 접근한 나는, 마침내 내 장악력을 선저(船底) 아래 10미터 지점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닥쳐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며 심중의 적의에 날을 세운다.

쿠르르르릉!

선체 아래의 수중에 기화폭발이 작렬했다. 방호를 굳힌 채 단단히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정신이 번쩍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적과의 간합을 너무 줄여놓은 대가. 즉사만 면하면 부상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 살을 내어주고 뼈를 치겠다는 각오로 사용한 술식이었다.

통상시야가 핏빛으로 물든다. 황금기의 눈이 상한 게 아니라 눈꺼풀 안쪽의 모세혈관이 터진 탓이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이미 한 번 토해서 더는 쏟아낼 것이 없음에도 여러 번의 구역질이 새롭게 올라왔다. 뼈와 내장과 근육이 모두 비명을 질러 몸 자체가 순수한 고통으로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힘겹게 정신을 추스르고 나니 쇳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찢어지는 플라티나 크라운의 모습이 보였다. 폭발이 빚어낸 버블제트가 선체에 커다란 파공을 뚫어놓았고, 상하 방향으로 반복해서 가해지는 변형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배의 가장 중요한 뼈대인 용골이 부러진 탓이었다.

이렇게 되면 침몰은 순식간이다.

여기저기 스파크를 튀기며 갈라지는 선체에서 전투와 무관한 여자들이 버둥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이미 죽은 인형이나 귀족가문의 사용인들이 아닌, 광둥 지역에 흔한 피부색을 지닌 남방 계통의 동양인들이다. 옷차림으로 미루어 둥관에서 둥관식 서비스에 종사하던 윤락여성들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몰골들은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꾀죄죄하다. 오랫동안 한 가지 옷만 입고 지냈던 모양이다. 발목엔 예외 없이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의 하층 선실들은 모두 이런 수인(囚人)들로 가득했다. 숫자가 물경 2천은 될 듯하다. 이 많은 수를 무슨 목적으로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닐 것이었다. 배의 주인부터가 사람으로 인형을 만드는 대마법사잖은가.

‘운이 좋으면 살겠지.’

나는 여자들에 대한 관심을 껐다. 살려놓으면 뭔가 쓸모 있는 증언을 청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목전의 싸움에 전념해야할 순간이니. 만약 생존자가 나온다면 공안을 통해 사건정보로 접할 수 있을 터.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한눈을 팔 여유가 있었던 건 인형술사의 대응이 굼뜨기 짝이 없었던 덕분이었다. 기울어가는 갑판에 서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생사를 건 사투에 임하는 사람이라기보단 다음 수를 고민하는 체스 플레이어의 모습에 가까웠다. 긴장한 추종자들은 경애하는 가주의 사색을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숨 막히도록 경직된 의사결정구조가 엿보인다.

정적인 겉보기와 달리 인형술사의 대뇌변연계 편도체엔 전기적, 화학적 변화의 광채가 이지러지고 있었다. 시냅스와 뉴런에 오가는 격렬한 생체신호의 정체는 분노인가, 두려움인가. 마력장의 마찰과 마소의 격류가 시각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으되, 시시각각 진해지는 에피네프린의 색채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상황에 대한 각오라고는 눈곱만큼도 되어있지 않은 품새가, 평생을 숨고 또 숨으며 살아온 나 자신과 너무도 대조적으로 느껴져서.

퉤!

회복을 마친 나는 입안에 고여 있던 피 한줌을 뱉어내곤 반대편 다이아몬드 크라운의 선복을 일격에 파쇄했다. 이번 공격엔 어떤 부담도 따르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크라운은 이미 내 사정권에 들어와 있었고, 대마법사의 마력장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했으며,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술식을 투사할 수 있었으므로.

두 척의 배가 침몰하는 이때, 인형술사의 시선은 만 안쪽의 백사장을 향하고 있었다. 작은 까마귀(小鸦) 섬에 배치되어있던 추종자들이 남쪽 해변으로 나와 급하게 경계선을 구축하는 광경이 보인다. 현실적으로, 만을 둘러싼 이 무인도 이외엔 그들의 주인이 몸을 피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남쪽에 보다 넓은 큰 까마귀(大鸦) 섬이 있긴 하나 배치된 인원은 오히려 적고 이동해야 할 거리는 여섯 배에 달했다. 즉 백사장으로의 피신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였다.

인형술사 또한 자신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망설이고 있는 건 선택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일 터. 이대로 가면 다음 수에 체크메이트를 당하는 게 아닐까. 심중에 그런 두려움을 품고 있겠지.

한편으로는 내 저격이 걱정스럽기도 할 것이다. 홀로 비행을 시도하는 순간 머리통이 터지는 건 아닌가 하고. 실제로 나는 저격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 사이즈의 고속비행체를 단발에 명중시킬 자신은 없으나, 일단 맞기만 한다면 이 싸움은 여기서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의 장벽에서 갓 솟구쳐 오르는 순간을 노린다면 가능성이 마냥 희박하진 않으리라.

자, 어쩔 테냐.

가라앉는 배의 기울기는 점점 더 급경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격전에 조예가 깊은 자라면 내가 초탄으로 헬기를 먼저 노렸다는 사실로부터 내 사격실력이 정상급 저격수엔 미치지 못함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원탁의 마스터는 사격전처럼 천박한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추종자들 중엔 내 실력을 간파한 이가 있겠지. 그러나 모든 면에서 초월적이어야 할 선지자가 추종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우스운 일. 또한 추종자가 선지자의 무지를 짐작하여 허락 없이 입을 여는 것은 불경 그 자체다.

이것은 스승새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탁의 조직문화와 눈앞의 현실이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황금기의 눈을 안구 대신 박아 넣은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를 상대할 때 누리는 이점 중 하나는, 상대가 구축하려는 술식을 시각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 술식의 정체를 모른다 할지라도, 상대가 곧 모종의 능력을 투사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바로 지금처럼.

원탁의 마스터가 비행을 준비한다. 회로에 흐르는 마력장의 광채와 마력장의 변화가 강력한 힘의 응축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끼릭, 끼릭, 끽. 압력 높은 트리거가 격발 직전까지 당겨진다.

다음 순간, 한 손으로 탑 햇(Top hat)의 챙을 붙잡은 인형술사가 마침내 신형을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콰웅!

흐린 별빛들을 배경으로 피와 살이 폭발한다. 납탄에 맞은 새가 깃털을 뿌리듯이, 초공동탄에 맞은 인형술사는 어두운 바다 위로 자신의 박살난 육체를 흩뿌렸다. 그러나 팽글팽글 도는 핏빛의 추락은 해수면에 부딪히기 전에 다시 솟아오르는 비행으로 바뀌었다. 철커덕! 노리쇠를 당겼다 놓은 나는 그 비행궤도에 예측사격을 가했다. 인형술사의 모자가 난폭한 기세로 찢어져 바닷바람을 탄다. 나는 잇소리를 내며 곧장 다시 노리쇠를 당겼으나, 잿빛 머리칼을 엉망으로 나부끼는 인형술사는 노리쇠가 전진하기도 전에 백사장에 낙하하여 몸을 굴렸다. 내 위치에선 사각이 나오지도 않거니와, 기다리던 추종자들이 곧바로 인의 장벽을 만들어낸다. 목숨 바쳐 주인을 지키려 하는 모범적인 충견들이다.

염병. 이번에야말로 좀 쉽게 끝나는가 했더니…….

인형술사의 팔 한 짝이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찢어진 단면에서 새어나오는 피가 아래로 번져나가는 잉크와도 같다. 첫 번째 사격으로 거둔 성과였다. 허나 인형술사는 육체적 손실을 빠르게 복구했다. 대구경탄에 터져나간 어깨가 재생되면서, 몸이 떨어져나간 만큼 수축했던 대마법사의 영혼이 점차 정상적인 밀도를 되찾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격탄을 명중시킨 보람이 없었다.

가라앉는 두 척의 크루즈에선 원탁의 하수인과 잘 만들어진 인형들이 파도를 향해 뛰어드는 중이었다. 이걸 일일이 잡아 죽이는 건 시간효율 면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떻게 할까. 다음 행동을 고민하던 나는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큼직큼직한 마력장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까 죽은 상어와 같이 피 냄새를 맡은 포식자들이었다. 개중엔 육중한 바다악어 각성체까지 하나 끼어있어 나로 하여금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인형술사와 그 패거리 입장에선 이러한 마력장이 대형 수중생물의 것인지 적성세력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나하나 확인할 만한 형편도 아니고. 필시 마녀의 교단과 배신자의 세력이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터.

이러한 환경적 요소의 영향이 없는 싸움터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환경이라.

뇌리에 모종의 영감이 스친다. 나는 수면에 이는 파도의 방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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