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34화 (134/561)

#17. 반역향 (14)

마법적 방호를 강화하는 찰나, 파도치는 수면에 다섯 발의 폭뢰가 착탄했다. 아까보다 수량은 줄고 정확도는 증가한 범위공격. 하얀 물거품을 끌며 거칠게 입수(入水)한 폭뢰 다섯은 나선으로 채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모두 내 존재를 포착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피라냐 떼처럼 일제히 대가리를 돌리는 단단한 폭탄들. 유도장치와 연동된 탤리스만은 극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내 마력장의 중심을 지향하고 있다. 각각의 폭탄이 원뿔형으로 방출하는 탐색 음파가 한데 어우러지며 높고 날카로운 협주를 빚어냈다. 착탄으로부터 이제 겨우 한 호흡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피신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새로운 술식을 구축하기에도 그러했다. 가까스로 빚어낸 발화억제로는 거리가 가까운 순서로 두 발의 기폭을 막았을 뿐이었다. 술식의 출력엔 여유가 있었으되 세 발 째에 대해선 범위설정이 빗나가버렸다.

다음 순간, 나와의 거리를 가늠하던 기폭장치들이 폭탄 안에서 강렬한 점화의 불꽃을 튀겼다.

콰쾅! 콰콰콰쾅!

날 둘러싼 공기구체가 극심하게 찌그러졌다. 공기와 맞닿은 물의 표면이 허옇게 전율하며 거친 폭음을 뱉어낸다. 구체 내에 꽉 채워둔 농밀한 염동차장으로도 그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하여, 고강도의 저주파에 직격당한 나는 신체강화를 제외한 모든 마법의 제어를 상실할 뻔했다. 파장이 긴 저주파는 고주파보다 침투력이 월등하게 강하다.

쿠궁! 쾅!

발화억제가 흐트러진 틈에 터지는 나머지 두 발. 정신이 아찔한 가운데 진탕이 된 속으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웩, 쏟아낸 위액이 중력을 거슬러 옆으로 쏟아진다.

옆으로? 아니, 착각이었다. 위아래를 구분하지도 못할 만큼 일그러진 감각이 낳은 착각. 신체강화에 기반한 회복력이 망가진 감각을 빠르게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여기에 난 생명술식을 더하여 회복을 가속화시켰다.

이러는 사이에 제3파가 엄습했다. 유성우처럼 수면에 내리꽂힌 폭뢰들이 나선형 탐색 패턴에 돌입한다. 이번엔 자그마치 스무 발이다. 한층 강한 효력사를 먹일 심산이었겠으나, 전번에 비해 오히려 조금 멀어진 탄착군. 내가 앞서 발화억제로 가까운 기뢰 두 발의 기폭을 지연시킨 탓에 내 위치를 오판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1파보다는 훨씬 가까워, 감당하는 입장에선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번에도 방어를 보강하며 급하게 구축한 발화억제 술식으로 가까운 것들의 기폭만 지연시킨다. 내 정확한 위치를 더더욱 오판하도록.

곧이어 스무 개의 폭탄이 연속적인 폭발로 파괴적인 공명과 격류를 만들어냈다. 수심이 깊지 않은 탓에 충격파의 일부가 바닥에 반사되어 올라오고, 해저면의 개흙이 훅 번지듯 일어나 물결을 타고 모래폭풍처럼 솟아올랐다.

2백 데시벨 이상의 소음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난 폭음에 연달아 노출되어 멍해진 정신을 추슬렀다. 코와 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턱 끝에 맺혀 뚝뚝 떨어져 내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공격이 끊어진 틈을 타 수중의 적들이 반원형으로 산개하여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고르고 골랐을 능력자들이라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돛새치까진 못되어도 청상어에는 버금갈 듯한 빠르기. 폭뢰 사격은 중지된 상태다. 폭뢰의 수량이 무한하지 않으니 만약에 대비해 아껴두겠다는 것일까?

나는 접근하는 놈들의 일각을 기화폭발로 뭉개버렸다. 적들 사이의 간격은 벌어지고 적과 나의 간격은 큰 폭으로 줄었으므로 처음처럼 강렬한 일격을 날리긴 곤란하게 되었지만, 위력을 줄여 보다 빠르게 연속공격을 가할 수는 있었다.

다섯 번의 기화폭발이 아홉 개의 몸뚱이를 찢어발기자, 나머지 연놈들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정확한 내 위치를 모르는 채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쐐액! 쌔새새색!

굵직한 대구경탄(50구경)이 물을 가르는 소리는 물 밖에서 듣던 파공성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혼탁한 바다 속에 수십 개의 사선들이 그어진다.

사치스러운 새끼들.

원탁의 하수인들이 갈겨대는 건 수중사격용 초공동탄(Supercavitating Bullet)이었다. 노르웨이의 특산품인 이 특수탄은 수중에서도 60미터 거리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적들은 일반적인 철갑탄보다 수백 배는 더 비싼 이 특수탄을 아낌없이 퍼부어댔다.

이는 오로지 마력장을 느끼는 감각에만 의지하여 쏘는 제압사격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간혹 섞여있는 더 강력한 탄환(20밀리)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쭉쭉 그어지는 사선의 길이가 2백 미터를 넘을 지경. 수중에서 이 정도면 살벌한 위력이다. 눈 먼 탄환에 맞을 낮은 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방어를 굳히는 데 영적 회로의 처리능력을 낭비하도록 만들었다.

‘20밀리는 아직 시제품조차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제국주의자들의 주문 제작인가, 아니면 초능력을 보유한 해적들의 출몰이 개발사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로 작용한 것인가.

나는 회로에 새로운 기화폭발을 장전하며 대어의 동태를 살폈다. 전투개시로부터 이제 1분은 지났을까?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테일 코트를 걸치고 모자를 쓰는 대마법사의 모습이 보인다. 귀족의 품위는 신사의 품위보다 엄격한 것. 자글자글한 얼굴에 떠오른 언짢은 감정, 지팡이를 들고 걷는 느리고 차분한 걸음걸이는 결코 싸움터를 거니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원탁의 하수인을 폭사시키면서, 난 원탁의 마스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온도차에 기막힌 심정을 느꼈다.

정말 잘나신 인간이로군.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

저 인간이 자신의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하여 내 존재를 감지하려 들었다면 적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몇 초라도 더 빠른 위치 파악과 몇 초라도 더 빠른 기뢰 투사. 무릇 싸움을 아는 자라면 그 몇 초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도 알 것이다.

그러나 저 인간에겐 지금 자기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듯했다. 이쪽이 마녀 그레이스인지 배신자 크로우허스트인지를 모르고, 달리 무엇을 더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이상 함부로 나서지 않겠다는 심산이겠지. 애초에 커다란 크루즈를 왜 두 척이나 준비해두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은닉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레이스를 상대로는 효과적인 기만책이었다.

예상은 하였으되 현실로 깨닫는다. 저놈은 투사였던 적이 없고 투사가 될 의지도 없다. 귀족의 사냥이란 말에 올라탄 채 사냥개들을 풀어놓고 아랫것들을 부리며 느긋하게 움직이는 여흥일 뿐이었다.

콰쾅!

파도 아래 새로운 폭발과 새로운 죽음이 더해진다. 내가 터트려 죽인 하수인의 낯짝 절반이 물결을 따라 흔들흔들 가라앉았다.

‘변치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 써(Sir) 웨스트버튼.’

그간 스승새끼의 기억을 토대로 내리는 모든 판단엔 불가피한 의혹이 묻어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옛 정보를 토대로 한 추론에 불과하다고. 오늘날의 그들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이때 적들의 움직임이 흔들렸다. 남서쪽으로부터 접근하는 커다란 마력장 때문이었다. 시야가 탁한 해류와 모래폭풍에 구애받지 않는 나는 새로이 출현한 마력장의 중심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상어?

피 냄새를 맡고 온 듯한 각성체 상어 한 마리가 체급에 비례하는 존재감을 투사한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폭음 탓인지 일정 거리 이내로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는데, 그러한 배회가 오히려 적들의 경계감을 키워 과잉대응을 하도록 만들었다.

플라티나 크라운의 갑판에서 폭뢰로켓의 화염들이 줄줄이 솟구친다. 상어가 배회하는 해역으로 두두둑 떨어지는 스무 발의 폭뢰들.

이건 나에게 주어진 기회다. 상어가 한 줌의 핏물이 되어버리기 전에, 적들의 대응능력이 분산된 틈을 타 최대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 잠시나마 흐트러진 하수인들의 대열에 두 번의 기화폭발을 연속으로 꽂아 넣은 나는, 폭발이 작렬한 자리로 급속히 육박하여 비교적 멀쩡하게 죽은 다이버의 무기를 강탈했다. 염동력에 붙잡힌 무기와 탄약이 전동 윈치에 감기듯 내 손으로 빨려들어 온다.

동시에 난 본능적인 판단으로 숨을 한껏 들이쉰 뒤 마력장의 반경을 최소화했다. 공기의 구체마저 없애버리고, 자세제어를 위한 최소한의 염동술식과 신체강화만을 회로에 남겨두는 극단적인 자기 은폐. 내 존재감이 지워지자 하수인들의 당혹감과 긴장감이 더불어 높아진다. 가파르게 빨라지는 심장박동들은 그러한 동요를 반영하는 지표였다.

쿠웅!

총성은 공기 중에서보다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총구의 머즐 브레이크에서 강렬한 연소가스가 부글부글 뿜어지고, 쫙 뻗어나간 대구경 초공동탄이 어느 불운한 하수인의 목젖을 뚫고 지나간다. 저항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주 쉽게. 신체에 가해지는 반동을 물과 염동력이 받아주는 상태에서 가하는 조준사격은 그 명중률이 뭍에서의 저격에 필적했다.

쿠웅! 쿠웅! 쿠웅!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추가되는 죽음들. 물속에서 치르는 사격전은 무중력 공간에서의 전투와 흡사했다. 가스를 머금은 탄피들이 느린 속도로 배출되었다.

쿠웅! 다섯 발째의 사격으로 약실이 개방된 채 고정된다. 탄창 하나를 다 비운 시점에서 호흡은 아직 여유가 많았다. 비각성 일반인이 힘들어하지 않을 수준으로만 몸을 움직인다면, 지금의 나는 한 번 들이쉰 숨으로 반시간 이상의 수중활동을 감당할 수 있었다. 탄창을 교체하고 노리쇠를 전진시키는 순간에도 적들은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였다. 개흙이 짙게 떠도는 조류 속에서 평범한 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관이었으니까.

서남쪽으로부터 천둥을 닮은 폭음이 잇달아 밀려온다. 상어를 노려서 쏜 유도폭뢰들의 연쇄폭발이었다. 내게 쏘아진 1파가 그러했듯 상어를 노린 1파 또한 정확도가 낮아, 폭발의 간접적인 영향만을 받은 상어는 즉사를 면할 수 있었다. 다만 소음에 따른 충격을 받아 방향감각을 상실했는지, 단말마의 몸부림처럼 해저면을 향해 내리꽂히는 헤엄을 친다.

그 위로 두 번째 폭뢰 세례가 쏟아졌다. 아마도 세 번째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말인즉 내게 주어진 작은 행운의 유효시간이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공기구체를 없애버린 지금 폭뢰의 가까운 폭발에 노출되면 최소가 중상이다. 세 개, 네 개째의 탄창을 삽시간에 소진한 나는, 무기를 버린 다음 적들의 죽음으로 비어버린 공간에 마력장을 전개하여 염동술식을 강화했다. 이렇게 확보한 추진력으로는 나 자신을 투사체처럼 사출하여, 적들의 경계선에 생겨난 커다란 균열을 4초 만에 통과했다.

내게 사살당한 적들은 중성부력에 근접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뜨거나 가라앉는 속도가 슬로우 모션처럼 느렸다. 반면 시체들이 놓친 화기들은 피탈방지끈으로 묶인 경우만 아니면 굉장히 빠르게 가라앉았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염동력으로 끌어 내 손으로 급하게 가져왔다. 20밀리 구경의 대물 저격총을.

총구 직경 20밀리는 인간이 휴대 가능한 총기의 한계점이었다. 이는 초인적인 근력을 지닌 능력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구경이 20밀리를 초과하는 총포는 부피가 너무 커서 다루기가 벅찬 까닭이다. 뒤뚱뒤뚱 어거지로 끌고 다니다간 좋은 표적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터. 그래서 20밀리는 총과 포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한 총기답게 위력은 들고 다니는 대포라고 부르기 충분하다. 아니, 평범한 사람은 도수운반조차 버거워할 지경. 원탁의 하수인들이 가져온 이 남아공제 라이플은 특히 더 그러했다.

고속기동을 이어나간 끝에 마침내 로켓 추진 폭뢰의 최소사거리 안쪽까지 파고든 나는, 파도 아래 5미터 지점에 정지하여 저격탄을 날리기 위한 자세제어에 돌입했다. 단창에 필적할 만큼 길이가 길고 어지간한 초등학생만큼이나 무거운 라이플이 플라티나 크라운 최상층 갑판에서 이륙할 채비를 마친 새까만 도색의 헬기를 겨냥한다.

탄창의 용량은 단 세 발. 눈으로 어림잡은 거리는 약 0.5킬로미터.

수중사격용 초공동탄은 물 밖에서도 이상 없이 날아간다. 수면을 빠져나갈 때 탄도가 꺾인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는 염동력으로 총구에서 수면에 이르는 가느다란 공기의 관을 만듦으로써 해결 가능하다. 여기에 빛의 굴절을 무시할 수 있는 시야가 더해지면, 수중에서 배 위를 저격하는 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 된다.

나는 조준을 완료한 즉시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콰우우웅-!

총구에서 뿜어진 압력이 가까운 물의 팽창과 수축을 빚어낸다. 초공동탄은 헬기 위쪽의 외판을 뚫고 들어가 엔진 터빈을 박살냈다.

시체인형과 추종자들이 형성한 인의 장벽 사이로, 강한 바람을 맞으며 헬기를 향해 다가가던 인형술사의 발걸음이 멎는다.

인형술사의 낯짝에 노여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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