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33화 (133/561)

#17. 반역향 (13)

비록 적의 위치를 확인했다곤 하나 헬기를 타고 곧장 쳐들어갈 순 없었다. 그게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짓과 무엇이 다른가? 저 남쪽 먼 하늘에 조기경보기(E-3D)라도 한 대 떠있다 치면, 헬기가 아니라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접근해도 위험할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대장기를 착륙시킨 지점은 두 척의 크루즈가 숨어있는 섬 그늘로부터 북북서로 5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의 간이 이착륙장이었다. 이 이착륙장은 쉬비(石壁) 교도소에 딸린 부속시설이었기에 공안 소유로 등록된 헬기가 착륙하더라도 의심을 살 여지가 없었다. 물론 그게 헬기 여러 대가 떼 지어 몰려다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대장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 모두에게 좀 더 북쪽에 있는 홍콩국제공항에서 재급유를 받으며 대기할 것을 지시했다.

조건상 여기서 공격에 나서도 좋은 건 오직 나 한 사람뿐이다. 고로 부하들에게 바라는 건 유사시의 퇴로 확보 정도였다.

대장기에서 내린 나는 백사장을 따라 넓게 펼쳐진 교도소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홍콩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많이도 가둬두었던 교도소는 대대적인 습격을 받아 반쯤 폐허에 가깝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무너진 곳도 많고 불타버린 곳도 많다.

교도소 반대편의 해변에선 낡고 오래된 관제묘(關帝廟)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수염을 길게 기른 관우의 목상(木像)에 화려한 금칠을 해놓고서 부디 재물운을 내려주십사 간구하는 배금주의적인 사원. 관우와 재물운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복신앙에서 합리성을 찾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드물 것이었다.

난 써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좀 우습군.’

우스운 건 나 자신이다. 사냥에 집중해도 모자랄 순간에, 어떻게 긴장을 좀 풀어보겠다고 한눈을 팔고 있는 나.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라.”

난 품속에 갈무리해두었던 USB 킬러를 꺼내 경태에게 건네주었다. 침몰한 초계함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물에 한 번 푹 빠졌던 물건. 그러나 뭍으로 나오자마자 물을 다루는 힘으로 일체의 물기를 빼냈으니 고장이 나진 않았을 터다. USB를 받은 경태가 입맛이 쓴 표정을 짓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형님 곁을 지키지 못하니, 경호실장으로서 참 면목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착실하게 공격을 준비한다면 경태 이하의 전력을 써먹을 구석이 분명히 있을 테지. 그러나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꽤 긴 시간을 들여 준비했을 시체인형의 병단이 이 새벽에 그 효용을 다했으니, 인형술사가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무를지가 의문인 상황이었다. 어떤 사냥에서든 가장 어려운 게 바로 사냥감을 포착하는 일인 법.

‘런던 밖에서 원탁의 마스터를 사정권에 넣을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줄 알고.’

과욕은 당연히 경계해야 할 바이지만, 마냥 몸을 사리기만 해선 잡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말 것이다. 잠재적인 위험과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사냥꾼과 사냥감에게 주어진 끝나지 않는 숙제다.

수중에서 본격적인 파괴 활동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허나 내겐 내가 길러온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물 밑에 머무는 나를 위협할 만한 상대는 흔치 않으리라고. 격노한 대왕고래 각성체나 대잠전 특화 함대 따위가 갑작스럽게 난입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가정이었다.

복장을 정돈하고 불필요한 장비들을 떼어놓은 난, 깊게 숨을 들이쉬고서 회로에 마력을 돌려 염동력과 물에 대한 지배력을 동시에 활성화했다.

“다녀오마.”

이어지는 입수. 포말이 하얗게 이는 수면 아래로 몸을 던졌음에도 차가움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밀려난 바닷물이 수중에 머무는 공기구체를 빚어낸다. 구체의 직경은 약 3미터 가량.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을 분해해서 보충할 수 있고, 운신은 염동력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잠시 제자리에 머물며 두 술식의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한 나는, 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영적 회로의 처리능력에 충분한 여유가 남음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파도 아래로 울려 퍼지는 낮고 웅장한 엔진 소리. 거대한 파나맥스(Panamax)급 화물선의 디젤 엔진이 내는 소음은 해저면에 부딪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저주파였다.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최단 항로가 걸쳐있었으므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배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배들의 선복 아래를 지나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축구장 세 배 크기의 선체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경험은 나 같은 사람조차도 약간의 호흡곤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다이아몬드 크라운과 플라티나 크라운이 닻을 내리고 있는 곳은 소어구 군도(索罟群岛), 그 중에서도 샤오야(小鸦/작은 까마귀)라는 섬의 오목하게 들어간 만이었다. 해발고도 백 미터 안팎으로 야트막하게 오르내리는 능선이 남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관측을 막아주고, 유일하게 열려있는 남쪽은 군도를 이루는 다른 섬들이 시야를 차단해주는 지형. 주된 뱃길들이 다 비껴가는 동시에 고깃배들조차 잘 찾지 않는 좋은 자리다.

어선들이 왜 이곳을 꺼리는가 하면, 채 1평방킬로미터가 되지 않을 작은 섬의 한쪽에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까닭이다. 섬에 가까워지면 해경이 목적을 확인한다 어쩐다 귀찮게 구니까 애초에 접근 자체를 하지 않는 것.

‘쓸 만한 건 없나.’

저장시설의 내부를 투시한 나는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정말로 오염도가 낮은 물건들밖에 없어서. 중국놈들이라면 저준위 폐기물이랍시고 위험한 걸 가져다 놓을 법도 하련만.

침투는 만만치 않았다. 섬 위는 물론이고 수중에도 촘촘하게 배치되어있는 경계 인력들 때문이었다. 다이버 장비를 착용한 능력자들이 물속에서도 쓸 수 있는 무기와 통신기, 통신 중계용 라디오 부이(Buoy), 유선 조종 드론, 수중생물 접근거부를 위한 지향성 음파 발생장치 등을 휴대한 채 특정 심도에 머물며 인의 장막을 형성하고 있는 것. 수중으로부터 가해질 기습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일이 쉬우리라 예상하진 않았으되, 장막의 밀도는 내 예상을 많이 웃돌았다. 수심이 얕다 보니 깊이로 극복하기도 곤란했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선택지는 둘이었다.

하나는 미친 척하고 경계선 바깥에서부터 다 폭사시키며 들어가는 정공법이다. 간단하고 속 편하지만 인형술사를 잡을 확률은 낮아진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경계선 내부로 파고든 다음, 인형술사가 가장 탈출하기 어려울 순간을 기다려 녀석이 탑승한 배를 파괴하는 방법.

예컨대 놈이 하층 갑판으로 내려간다거나 했을 때 선복 아래에 기화폭발을 일으켜 배의 용골을 쪼개버리면, 제아무리 대마법사 웨스트버튼이라 할지라도 빠져나갈 방도가 마땅치 않다. 헬기는 기울어지는 갑판으로부터 바다로 굴러 떨어질 테고, 달리 탈출수단이 없어 구명보트를 타거나 염동력으로 비행을 시도한다거나 하면 나는 놈에게 일방적인 손실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놈이 침몰하는 선체에 갇혀 수면 밑으로 끌려 내려오는 경우다. 이 경우 사냥의 성공률은 백 퍼센트에 수렴하게 된다.

고민을 길게 만드는 건 두 크루즈선의 갑판에 방수포로 덮어놓은 다연장 폭뢰투사기들의 존재였다. 어떻게 된 게 영국놈들이 러시아제를 가져다 놨다. 이는 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자체유도가 가능하며 사람까지 추적할 수 있는 흉물이었다.

난 초계함 루저우와 베크룩스가 더불어 치렀던 방어전을 회상했다. 사방에서 폭뢰가 터지기 시작하면 평형감각을 파괴하는 무진장한 굉음 때문에라도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에 내가 일으킬 기화폭발들의 여파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이고. 수중에서 폭발을 무기로 쓴다는 건 그런 의미다.

소음을 줄인다고 회로를 낭비하고, 가까이 떨어지는 폭뢰의 기폭을 막는다고 또 회로와 주의력을 낭비하다간 정작 핵심 표적을 노릴 여력이 부족해지겠지. 배수량 15만 톤짜리 크루즈의 자기방어능력은 신속하게 거세하는 편이 유익하다.

‘그래도 첫 번째 방법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은데…….’

원탁의 마스터가 몸소 행차했다 함은 곧 그가 거느린 전력의 핵심이 다 움직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세력을 일소할 수만 있다면 인형술사를 놓친다 한들 손해는 아닌 셈. 웨스트버튼이 이후 세력 회복에 전념하더라도 몇 년 안에는 복구하지 못할 끔찍한 손실이었다.

아울러, 외부로 노출된 원탁의 구성원이 폭사당할 뻔한 경험은 나머지 마스터들의 행동을 보다 신중하게 만들어줄 것이었다. 다들 「황금기의 심장」을 둔 본거지로부터 멀리 나오길 꺼리게 될 테지. 혹은 두셋씩 뭉쳐서 나오거나. 어느 쪽이든 내겐 나름의 이득이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고의 기회를 포착하기까지의 기다림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는 게 두 번째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이니까. 여기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광저우에서 벌어지는 대사건의 방관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인형술사 사냥이 우선이라곤 해도 광저우 쪽을 아예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속으로 손익을 저울질하던 난 정면 돌파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쪽도 대어를 잡을 확률이 없는 건 아니잖은가.

결심이 섰다면 남은 건 실천뿐이다.

경계선의 적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머릿속에서 수차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 나는, 나를 둘러싼 공기의 구체에 소음 차폐를 위한 염동차장을 채워 넣은 뒤, 마침내 적에게 선전포고를 하듯 마력장을 팽창시켰다.

죽어.

경주마의 전력질주와도 같은 마력장의 급속팽창은 대마법사의 전매특허다. 경악하는 적들을 겨누어, 명징한 살의를 담아 구축하는 거인의 술식. 마력에 묶인 물의 상전이(相轉移)가 혼탁한 수중에 파괴적인 확산을 일으킨다. 백색 수증기의 폭발이 원탁의 하수인 둘을 집어삼키고,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충격파로 휩쓸었다.

나 또한 그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거리를 최대로 벌려두었으면 괜찮았겠지만, 그건 인형술사가 도주를 택했을 때 넉넉한 시간을 허락해주겠다는 뜻과 같았으므로. 상대와 나의 간합(間合)을 재는 건 싸움의 기본이다.

콰르르르르르-!

염동차장을 뚫고 들어와 골수를 울리는 강렬한 폭음. 나는 한순간 시야가 울렁거리는 어지럼증에 사로잡혔다. 파장이 긴 굉음이 귓속의 전정기관(前庭器官)까지 파고든 탓이다. 삐이- 하고 울리는 날카로운 이명. 이내 균형감각을 되찾은 나는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서 정면을 노려보았다.

틈이 생겼다고 곧바로 찌르고 들어가선 곤란하다. 하나뿐인 길은 지나치게 뻔한 공격로니까. 들어가는 건 폭뢰를 어디로 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게 만들어준 다음이어야 이상적이다.

적들의 경계선에 두 번째, 세 번째 폭발이 잇달아 작렬했다. 새하얀 확산이 번질 때마다 한 자릿수의 죽음과 두 자릿수의 몸부림들이 더해졌다. 뒤쪽에 속하는 것들은 평형감각 상실이 기본이었고, 뇌진탕과 내장파열을 입은 비율도 적지 않았다. 눈, 코, 입, 귀 모두로 피를 흘리는 연놈들은 초인의 회복력으로도 생존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토록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원탁의 충실한 하수인들은 본능에 가까운 충성심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했다. 통신기기로 보내는 짧고 간명한 신호들. 낯설고 거대한 마력장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겠지.

그리하여 내가 영의 회로에 네 번째 기화폭발을 장전하는 순간,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크라운의 갑판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대마법사의 호위를 맡은 정예들답게 굉장히 신속한 대응이었다.

투학-!

무겁고 단단한 것이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 정체는 로켓에 실려 날아든 폭뢰였다. 초탄에 이어 좁은 해역에 격자를 그리듯 떨어지는 여러 발의 후속탄들. 소형 추진기가 달린 유도폭뢰들이 피잉 핑 날카로운 탐색 음파(액티브 소나)를 방출한다. 각각의 폭뢰가 하강나선을 그리며 쏘아대는 음파는 목표를 찾아 헤매는 기계적인 살의였다.

그러나 탐색수단이 이뿐이었다면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공기구체는 음파를 반사하는 게 아니라 흡수하는 영역이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그와 별개로 폭뢰에 깃들어있는 마력이었다.

‘미친 새끼들! 일회성 무기에 탤리스만을 박아?’

너무 미미한 마력이라 다른 마력장에 가려져 멀리선 눈치채지 못하였으되, 모든 폭뢰의 유도장치엔 마력이 감도는 자그마한 탤리스만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일찍이 북미의 악마숭배자들이 썼던 구슬형 마력탐색기. 그것을 보다 정교하게 개량하여 전자장비와 연동시킨다면 지금 내가 보는 물건이 나올 것이다. 명백히 마스터 클래스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이었다. 명품까진 아닐지언정 원탁의 거장들 이외엔 달리 만들 수 있는 자들이 없다.

마스터급 마법사의 인시(人時)를 이딴 식으로 낭비하다니. 나는 원탁의 사치스러움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치명적인 거리에 떨어진 폭뢰가 없었으므로 장전한 술식을 취소하지 않았다.

콰르르르르!

쿠구궁!

내가 공격을 강행함과 거의 동시에, 가장 가까운 지점의 폭뢰가 주홍빛 번뜩이는 폭발을 일으켰다. 뼈를 타고 찌잉- 흐르는 진동. 두개골이 폭발에 공명하는 느낌이었으나 어지럼증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유도폭뢰라곤 해도 아래로 가라앉으며 표적을 쫓는 식이라, 거리를 좁혀오는 데 한계가 뚜렷했으므로.

그러나 이 최초의 폭발은 적들이 내 대략적인 위치를 어림잡을 단서였다. 다이아몬드 크라운의 갑판에서 또 한 차례 로켓 여럿의 발사섬광들이 점멸한다. 그 옆에 뜬 플라티나 크라운 역시 발사기에 덮은 방수포를 걷어내는 중이다.

하. 일이 이런 식으로 꼬이나?

나는 이를 악물고 닥쳐올 충격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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