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역향 (12)
다링산(大岭山) 삼림공원은 둥관시 남서쪽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녹지였다. 예전이었다면 수려한 경관과 오래된 사찰이 많은 산행객들을 끌어들였을 법한 곳이지만, 잘 보존된 녹지가 곧 녹색의 마경 취급을 받게 된 근자엔 마력을 얻은 사냥꾼이나 은신처를 찾는 혁명가들 말고는 찾는 이가 없었을 것이었다. 사방에 뿌리내린 각성수들이 마력장을 느끼는 감각을 교란하는 가운데 회로가 열린 짐승들이 숲의 그늘을 배회하는 환경이니까. 능력자에겐 험지요 일반인에겐 사지(死地) 그 자체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인형을 제조할 수 있다. 간혹 들어오는 외부인들은 야생동물의 소행으로 꾸며 죽여 버리면 그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적을 자극하지 않고자 도보로 산기슭에 도달한 나는, 강해지는 두통을 인내하며 강화된 후각을 열어 산간에 떠도는 냄새에 집중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강렬한 악취였다. 비가 내리기 전후로 부는 바람의 내음, 혹은 물에 젖은 흙의 내음을 수백 수천 배로 응축시켜 놓은 듯한 냄새.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지나치게 강렬하면 악취가 되는 법이었다.
다음으로는 점성이 높은 다종의 매연과 더불어 온갖 산짐승들의 체취와 배설물 냄새가 밀려든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했다.
‘이게 바로 동물들이 인지하는 세계의 일부인가…….’
후각이 뛰어난 동물들은 감각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예컨대 어느 들쥐 한 마리가 산등성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한 번 맞는다 치면, 그 순간 이 쥐는 산중에 있거나 있었던 모든 생물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인지이긴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선 초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바가 그러했다. 정확한 방위와 거리를 산출하긴 곤란할지언정, 정보 획득의 범위는 황금기의 눈이 제공하는 시야보다도 오히려 넓은 것이었다. 특히 이곳처럼 시야를 방해하는 마력장이 많은 환경에선 더더욱 그러했고.
나는 수많은 후각적 정보들의 결 사이에서 마침내 호텔 스위트룸에 배어있던 체취를 가려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체취가 다수. 그들이 아직 이 산에 남아있는지, 아니면 벌써 거점을 버리고 떠났는지까지는 구분할 능력이 없었지만…….
제대로 찾아왔다는 게 어디인가.
가벼운 긴장감에 숨통이 조금 조여드는 느낌이 든다. 난 묵묵히 앞장서서 길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와 내 부하들의 존재감에 놀란 동물들이 분분히 흩어져 달아난다.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 이 산에는 침식으로 만들어진 종유동(鐘乳洞)이 많았다. 여기저기 뚫려있는 크고 작은 동굴들 가운데엔 한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곳들도 있었다.
투시가 닿는 범위를 꼼꼼히 훑으며 산을 타던 나는, 입구가 무너져 토사로 뒤덮인 동혈(洞穴) 안쪽에 썩은 비단과 오래된 금붙이들이 쌓여있는 것을 발견하곤 때 아닌 실소를 머금었다. 전란을 피하고 싶었던 지역 토호의 보험일까, 아니면 가경제(嘉慶帝) 시절 주장강 일대에서 악명을 드높였던 홍기방(红旗帮) 해적함대의 유산일까. 어느 쪽이든 생각지도 않았던 소득이라 우습다. 능력 면에서 내게 비견될 트레저 헌터는 없겠지. 바로 그렇기에 보물탐색으로 두각을 드러내선 안 되는 것이지만.
점점 짙어지는 체취를 좇아 도달한 곳은 역시나 또 다른 동굴이었다. 내부엔 호텔에서 감지한 일곱보다 훨씬 더 많은 하수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필시 인형술사 또한 자주 드나들었을 터이나, 어느 흔적과 어느 체취가 그의 것인지 식별하기 어려웠다.
내 걸음이 멎자 경태가 속삭이듯 묻는다.
“여깁니까?”
“그래. 하지만 비어있군.”
비었다는 한마디에 이제껏 팽팽한 임전태세였던 경태와 경태 이하의 녀석들이 몸에서 힘을 뺀다. 더러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경태가 실망한 목소리를 낸다.
“또다시 한 발 늦은 거로군요. 이번에야말로 원탁의 마스터인지 나부랭이인지를 보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글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까맣게 뚫린 동굴 입구에선 짙은 죽음의 냄새가 감돌았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생물이 죽음을 전후하여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회로가 열리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민감한 후각을 타고난 자들이라면 이 냄새를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다. 하물며 이전부터 다종다양한 군상들의 장례를 집전해온 내가 이 냄새의 정체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
‘장인정신인가.’
인형을 만드는 공정은 건강한 사람을 죽여 곧바로 인형화하는 것이라, 제조 과정에서 죽음의 냄새가 짙어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 동굴에선 정말 많은 인간이 죽어나갔다는 게 느껴진다. 서로 다른 무수한 죽음들이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 촘촘하게 분포하여, 단순히 인형의 수율(收率)이 나쁜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기준에 미달하는 인형은 폐기해버린 것이다. 도자기 굽는 명인이 불만족스러운 작품을 가차 없이 깨버리듯이. 자존심이 드높은 거장은 제 손으로 빚어내는 모든 것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마련이었다.
고로 여기에 고정적으로 배치되어있던 연놈들에겐 다채로운 죽음의 냄새가 깊게 배어있을 터. 계곡물로 멱을 감고 탈취제를 뿌리는 정도로는 빠질 턱이 없는 기운이다. 그러니 잡을 수 있다. 운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놈들이 항공편으로 철수하진 못했을 것이다. 접근 가능한 활주로도 없을뿐더러, 이 근방의 공역은 전시에 준하는 감시를 받는 중이니. 나조차도 가오슈센이 실권을 장악한 뒤에야 마음 놓고 하늘 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내가 지시했다.
“헬기를 불러. 여기서 가장 가까운 부두로 간다.”
경태가 무전으로 좌표를 통보하고서 5분이 지나지 않아 헬기 편대가 도착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녹차 밭이 있었으므로 착륙지점을 찾는답시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수고(樹高) 1미터 남짓한 작은 나무들이야 무거운 동체로 깔아뭉개면 그만. 대장기에 탑승한 나는 머리를 붙잡고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십니까?”
염려가 묻어나는 경태의 물음.
“……괜찮아.”
괜한 뜸이 들어가 안 하느니만 못한 대답이었다.
후각을 원상태로 되돌리고 나서도 숙취를 닮은 두통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뇌를 한계까지 혹사한 듯한 기분. 가뜩이나 피곤한 상태에서 인간에겐 까마득한 영역의 감각을 오랫동안 열어놓은 대가였다. 인지능력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시체로 하는 인형놀이가 예술인 줄 아는 놈의 생명관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뇌도 결국 회로의 일종이긴 하니까.
휴식은 짧았다. 부두에 도착한 나는 재차 후각을 강화하여 탐색을 개시했다.
‘여긴 아닌가…….’
부둣가의 공기엔 죽음의 기운이 배어있었으나, 이는 시가지로부터 먼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온 희미한 잔향(殘香)일 뿐. 산허리의 동굴에서 맡았던 숙성된 죽음의 냄새와는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났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부두는 이곳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너무 많아서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란 장제로(长堤路)를 따라 남하하며 눈에 들어오는 부두마다 수색을 진행했다. 도중에 해경 밀수방지국(缉私局)의 중대급 주둔지를 발견했으나, 건물은 완전히 비어있었고 정박지엔 남아있는 경비정이 없었다. 작은 도움이라도 받아볼까 싶었던 생각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얼마를 헤매었을까. 하구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강변에서, 녹슨 컨테이너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한 줄기 바람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임계점에 달한 두통이 사고를 둔하게 만드는 와중에도 심중에 차오르는 선명한 기대감.
“여기가 어디지?”
내 물음에 경태가 위치를 확인한다.
“후먼(虎门) 민영부두라고 되어있습니다.”
후먼? 어쩐지 익숙함이 느껴지는 지명인데……. 아, 호문. 호문이로군. 흠차대신 임칙서가 영국인들의 아편을 압수해 바다에 내다버렸던 장소. 이 사건, 호문소연(虎门销烟) 때문에 마약 못 팔아먹어 안달 난 영국놈들이 전쟁을 일으켰지.
하필이면 이곳에 단서가 남아있는 건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놈들이 일부러 여기를 철수지점으로 정했을 린 없으니. 기실 광저우 전체가 아편전쟁의 무대이다 보니 어디를 골랐어도 자그마한 우연 한 조각쯤은 있을 법했다. 그만큼 대영제국의 죄가 깊은 것이다.
컨테이너 사이에서 탐색을 이어간 끝에 타다 만 장초(長草) 한 도막을 주운 나는, 필터를 코 밑에 대어보고서 마침내 확신을 얻었다. 그윽한 죽음의 악취에 더해 중국인들에게서 흔히 맡을 수 없는 구취가 묻어있다. 눈을 확 찌푸린 난 담배를 던져버리며 지시했다.
“베크룩스에 연락해. 자정 이후 이 부두에서 바다로 나간 모든 선박의 동선을 추적해 보라고. 분명 그중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배가 있을 거야.”
이토록 늦은, 혹은 지나치게 이른 시간, 민간회사가 소유한 작은 부두로부터 바닷길로 나아가는 배가 과연 몇 척이나 있었겠나. 하물며 도시 전체가 광란의 밤을 겪고 있는 와중에. 수연이 관계당국을 닦달하여 결과를 내놓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지시를 내리고서 감각을 정상화한 나는 컨테이너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허기가 지는데도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량 보충보다는 머리를 비우고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편이 전투력 회복에 유익할 것 같은 느낌.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쪽이 화끈거린다.
두통이 약간이나마 가라앉는다 싶을 때 베크룩스의 회신이 들어왔다. 수연이 불러주는 정보를 경태가 복창한다.
“GPS 좌표 22.180326, 113.911128. 홍콩 근해에 정박 중인 15만 톤급 크루즈선. 약 27분 전 이 부두에서 출발한 소형 선박과 접선한 것을 확인. 선적은 홍콩이며 함명은 「다이아몬드 크라운」으로, 저명한 부호들이 해상대피소로 활용 중이라는 임검(臨檢) 기록들이 있음. 그간의 임검에서 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함. 같은 장소에 자매함인 「플라티나 크라운」이 함께 정박하고 있음. 좌표는 대장기에 별도로 업데이트하겠음.”
소수의 부호들이라…….
‘그 승객들도 이미 인형으로 전락한 신세일 확률이 높겠어.’
암세포를 심지 않은 인형들이 주기적인 유지보수를 받는다면 몇 달을 버티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몇 달이 무언가. 공을 들이기에 따라서는 몇 년, 몇십 년으로 늘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인형이 된 부호와 유지들을 장식처럼 세워놓고, 수행원을 가장한 원탁의 하수인들이 시체들의 권세를 등에 업었다 치면, 해경들은 제대로 된 검문검색을 실시할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 그냥 형식적인 문답만 주고받은 다음 문제없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십중팔구는 사실이겠지만, 해경 측에 임검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여기는 중국이다. 어느 간부가 감히 권력의 울타리를 걷어차고 들어갈 엄두를 내겠는가. 꽌시의 그늘에 거점을 마련한 침략자들의 현명함이라 하겠다.
어쨌든 적이 바다에 있는 지금이 기회다. 지금이라면 나 단독으로 단서를 거의 남기지 않는 공격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핵심은 전율하는 거인으로부터 얻어낸 힘. 물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마법.
흥분으로 혈관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심호흡을 하니 떨리는 숨결이 새어나온다. 맥박이 상승한 탓인지 기껏 나아졌던 두통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으나, 그래도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맑아졌다.
각성제를 복용하지 않고 버티기를 잘했지. 냉정해야 할 순간에 각성제의 약효에 사로잡혀 있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기사단장을 상대할 당시의 비정상적인 고양감과 공격성을 감안해보면.
전의를 다진 나는 다시 한 번 대장기에 몸을 실었다.
사냥감과 사냥꾼의 관계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각오처럼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