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역향 (11)
헬기를 타고 가로지르는 시가지 상공엔 매캐한 내음이 감돌았다. 방화로 인한 연기가 반이고 석탄을 때는 난로의 매연이 다시 반이다. 뿌연 어둠 아래 여기저기 버려진 차량들은 도시를 급하게 빠져나가려다 실패한 자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점차 무질서하게 변해가는 도로의 형상이 구획간의 빈부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샌 재비어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도 보았듯이, 가난한 자들의 거주지엔 직선으로 뻗는 길이 드문 법이었다.
도시가 공식적인 계엄선포도 없이 얼렁뚱땅 계엄 상태가 되어버린 탓에, 공단과 가까운 거주지엔 많은 주민들이 남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들이 믿는 바는 오로지 단단히 걸어 잠근 부실한 문 한 짝뿐. 간혹 어설프게 무장한 자경단이 보초를 서는 모습도 보인다. 부유한 자들이 일찌감치 몸을 피한 것과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물론 미리 계엄과 대피령을 선포했더라도 상황이 나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밥 먹을 돈도 부족한 사람들이 무슨 수로 차를 구하고 표를 끊어 도시를 빠져나가나. 비슷한 경우로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당시 봉쇄령을 내렸던 인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던 그 참상을. 그래서야 시민들의 혼란과 불만을 키워 흑해자당을 도와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계엄은 정부의 체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홍콩에서 시작된 정치적 혼란이 점점 더 확산되고만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때로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니까.
상황은 언제나 통제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게 꼭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파국이 목전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것을 주문했던 어느 대통령의 일화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전투상황이 아닐 때에도 내가 조종간을 장악할 필요는 없었다. 숙련도를 높이는 건 좋지만 나중에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조종석에 앉은 부하는 학교 건물 옥상에 부드럽게 기체를 착륙시켰다.
끄으어어어어-
덜 망가진 시체인형 하나가 착륙한 헬기를 향해 기어온다. 증식을 거듭한 불사암 덩어리가 몸 바깥까지 부풀어 오른 추악한 몰골이었다. 우둘투둘한 육종에 파묻힌 두 눈은 나와 내 애들에게로 고정된 채다. 마찬가지로 원래의 형태를 거의 잃어버린 혀가 가까스로 유의미한 발음을 완성했다.
“혁……며어어엉…….”
정수리에 팍 하고 붉은 점 하나가 찍힌다. 경태의 권총사격이었다. 인형의 뇌가 파괴되며 영적 회로의 기능이 정지된다. 인위적으로 고정시켜두었던 망자의 영혼이 바스러지듯 흩어진다. 그러나 영성을 머금은 암세포들은 여전히 살아서 마소와 마력을 양분삼은 증식을 이어나갔다. 며칠만 방치해도 꽤 커다란 덩어리가 만들어질 터였다.
그러나 그 며칠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자연이었다. 인형이 움직임을 멈추자 밤을 닮은 새들이 홰를 치며 날아들었다. 푸드덕거리는 거친 날개소리. 그리고 까악까악 우는 소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큰부리까마귀의 무리가 시체와 종양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개중 하나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며 부리를 벌려 외쳤다.
“혁명? 혁명!”
경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하다하다 이젠 까마귀까지 혁명을 외치네…….”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까마귀는 사람 말을 따라할 수 있다. 지능이 높고 장난기가 많은 새답게 사람의 반응을 즐기기도 한다. 복잡한 의미구조를 이해하진 못할지언정, 들은 사람의 반응이 가장 강렬하게 돌아오는 단어들을 골라서 익혀두는 것이다.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 정도는 뜻을 알고 말하기도 하고.
근래 들어 이 도시의 까마귀들이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혁명일 테니, 까마귀 부리에서 혁명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우리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통통 튀는 걸음으로 주변을 맴돌던 까마귀가 빼액 외친다.
“병신아(傻屄)!”
그러곤 푸드득 튀어 시체를 뜯는 제 동료들에게로 합류한다.
“…….”
난 까마귀들의 만찬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학교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교전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중국군의 최정예답게, 화남지검의 병사들은 시체인형들의 군세를 상대로 꽤나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것 같다. 시체인형의 약점이 머리라는 사실도 파악한 듯하고. 그러나 애초에 규모의 차이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기능이 정지된 인형의 숫자만으로도 전사한 병사들의 세 배가 넘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압도적인 다수를 상대로 이 정도면 선전한 거지.’
난간 너머 120미터 거리엔 층수 높은 빌딩 몇 개가 거센 불길에 타오르는 중이었다. 서로 엄호가 가능한 거리에 다수의 거점이 구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요새화된 거점들을 구축하고 그 사이의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은 방어전의 정석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단시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도로를 따라 쓰러진 인형들의 대열을 눈으로 좇던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군. 원탁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여러 블록 떨어진 대로에서 높은 음계의 배기음들이 아스라이 울려 퍼진다. 시체인형들이 뚫어놓은 돌파구를 향하여 바이크 돌격대가 북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저들이 자신들이 받은 도움의 실체를 알고는 있을까 의심스러웠으나, 생각을 길게 이어가진 않았다. 저들을 상대할 군경이 고생깨나 하겠으나 그 또한 당장은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훨씬 더 큰 사냥감의 냄새를 쫓는 중이므로.
“헬기는 여기서 대기한다.”
지시를 내린 난 애들을 동반하여 학교를 벗어났다. 무인지경이 된 거리를 가로질러 향하는 곳은 휴업 간판을 내건 호텔 건물. 학교 본관과의 간격이 채 백 미터가 되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공장과 가난한 자들의 거주지여서 그럴듯한 호텔이 들어서기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으나, 이 도시에선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본디 이 몰락한 제조업의 도시엔 비정상적으로 많은 숙박업소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미미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매출을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매출의 대부분은 윤락업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가로되 이곳 둥관의 이명(異名)은 환락의 도시였다. 제조업의 몰락으로 일자리를 잃은 여공(女工)들에게 있어서 성매매만큼 쉬운 돈벌이는 없었고, 넘치는 공급은 사람의 값어치를 바닥까지 깎아내렸다. 한때는 공적인 통계에 잡히는 것만으로도 도시 경제의 8분의 1이 매춘에 의존하고 있었을 지경. 인구 8백만이 넘는 대도시의 8분의 1이다. 형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둥관식 서비스(莞式服務)라는 말이 윤락을 뜻하는 은어로 통했다.
나는 그 밑바닥을 여러 번 경험한 사람이다. 업소들을 관리하는 광둥 삼합회와 이래저래 인연이 있었으니. 깡패들이 귀한 손님 접대한답시고 여자들을 끌고 나오면 그렇게 신경이 곤두설 수가 없었다. 성의를 무시하면 체면이 상한다고 여기는 놈들이었고, 남자 다루기에 도가 튼 여자들과 살을 부대끼면서 내 이상성을 감추는 것은 꽤 고역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한 번 한 번의 동침이 내 위장능력에 대한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베이징 중앙정부가 이 바닥을 청소하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공산당이 하는 짓이 다 그렇듯 근본적인 문제엔 손을 대지 않는 전시행정이었으므로, 길거리에 나앉았던 작부들은 오래지않아 포주와 뒷배만 달라진 사업장으로 복귀하여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휴업과 폐업을 알리는 간판들이 줄줄이 내걸린 풍경을 보건대, 그렇게 번영을 구가해온 이 도시의 주력산업도 올해 내내 계속된 경제적 한파를 견뎌내진 못했던 모양이다. 상반기엔 세기의 역병이 창궐했고 하반기엔 전 세계적 불황과 더불어 혁명의 열기가 들끓었으니까.
원래부터 당국의 감시를 벗어난 자금이 흐르던 그늘.
불법적인 사업을 영위하던 자들의 몰락.
외부인이 드나들어도 의심받을 일이 없는 장소들. 그러나 몰락했기에 당장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업장들.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조용히 스며들기에 이보다 나은 균열도 드물 것이다. 헐값으로 쏟아지는 매물들을 인수하고, 인형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을 손님으로 위장하여 공급하면, 겉보기로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어서 의심을 받을 만한 구석이 없다.
호텔에 도착한 나는 잠긴 문을 소리 없이 따고 내부로 진입했다. 외부에서의 관찰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있었던 까닭이다.
바로 후각정보다.
인간의 후각수용체(Olfactory Receptor)는 최대치로 잡아도 4백 종 안팎. 개와 비교하면 절반이고, 쥐와 비교하면 3분의 1이며, 코끼리에 비해선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냄새를 구분하는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인간의 광수용체(Photo Receptor)는 적색(R) 녹색(G) 청색(B)의 단 3종에 불과하지만, 이 삼원색의 조합을 통해 무수히 많은 색채들을 인지할 수 있다. 그 인지의 민감성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나, 색맹이 아닌 이상 하이 컬러(High Color : 준천연색)와 트루 컬러(True Color : 총천연색)의 간극을 확실하게 느낄 정도는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강화가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4백 종의 후각수용체는 어지간한 사냥개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밑천이었다. 신체강화술식을 정교하게 조율하여 후각적 민감성을 끌어올리자 인지의 범람으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시각정보의 처리능력은 황금기의 눈에 의해 강화되지만, 그 외의 감각들은 그렇지가 못한 탓이었다. 장시간 쓰기는 어려운 능력이라 하겠다.
그래도 첫 시도 치고는 고무적이다. 마법사로서의 나는 꾸준히 나아가는 걸음을 쌓아올리고 있다. 난 원탁의 첨병들이 남긴 체취를 좇으며 생각했다.
‘나라면 이곳을 불태우고 떠났을 텐데.’
자신감인가, 교만함인가. 어쩌면 무지의 소치일는지도 모르겠다. 런던 밖으로 나올 일 자체가 드물었던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이라면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들의 하수인들도 매한가지. 원래 잘 싸우는 자가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전쟁이다.
중국인과 영국인의 체취는 명확하게 다르다. 나는 보다 선명한 체취를 쫓아 층계를 올라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결이 다른 체취와 데오도란트의 잔향이 강해졌다.
사냥감들의 단서가 가장 진하게 고여 있는 공간은 최상층의 스위트(Suite) 룸이었다.
“뭔가 좀 알아내셨습니까?”
조심스러운 경태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무장인원 일곱이 있었다.”
무장여부는 화약과 윤활유의 냄새로 구분 가능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창틀 아래에 깔린 모직물엔 삼각대에 눌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창문이 난 방향으로 미루어, 창가에 관측장비를 두고 남화지검 중대가 요새화한 관화학교의 상황을 주시했던 모양이다.
‘학교의 낙성까지 확인하고 떠난 거라면…… 놈들과 나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의외로 크지 않아.’
내가 짐작한 시체인형의 유통과정은 이러하다. 여러 호텔을 전진기지 삼아 제물을 끌어 모으고, 이들을 생산거점으로 운반하여 인형으로 만든 다음, 다시 실어 와서는 호텔 객실과 주변의 쪽방촌에 차곡차곡 보관해두는 것.
말이 쪽방촌이지, 그 유명한 홍콩의 관짝 주택(Coffin House)보다도 주거 밀도가 높은 하류층의 거주지는 켜켜이 쌓아 올린 관짝들과 같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형들을 저장해둘 수 있었다. 물론 인형들의 마력장을 은폐하긴 어려웠을 터이나, 그건 인형들을 불사암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들로 꾸며버리면 그만인 문제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품속의 지도를 꺼내어 펼쳐들었다.
인형을 제조하는 거점은 직경 수 킬로미터 범위에 인가(人家)가 없거나 마력장 감지를 방해하는 요소가 산적한 환경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생술식을 사용하는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은폐할 수 있으니까.
‘그 많은 인형들을 물길로 실어 나르진 못했겠지. 그랬다간 항만 당국으로부터 밀수선이라는 의심을 받았을 테니.’
바다를 오가는 모든 배들은 항만 당국과 해군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무인도나 선박으로 지속적인 왕복수송이 이루어진다면 의심을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생산거점은 도심과 가까워 운반이 용이하면서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곳에 두어야 한다.
나는 오래지 않아 지도상에서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지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