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9화 (129/561)

#17. 반역향 (9)

완벽한 방어는 꿈도 꾸지 않았다. 불가능하니까. 내 선택은 미리 터트려 피해를 줄이는 것이었다. 급히 펼쳐 함 전체를 감싸는 염동력의 힘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콰장창-!

충격파에 박살난 유리창이 수천 조각으로 갈라져 비산한다. 염동차장에 격돌하여 탄두가 터진 미사일은 질량과 관성과 폭발의 여파로 초계함을 강타했다. 찢어진 미사일 파편들이 선체 외벽을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왔고, 발아래로는 가벼운 지진 같은 충격이 흘러 지나갔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미사일의 작렬까지 연이어 견뎌낸 나는, 별안간 핑- 도는 현기증에 방탄결계를 유지하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원인은 출혈. 유리조각들이 남긴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자상들 때문이었다. 길게 베여 피가 새는 목덜미를 누르며, 난 아무런 방해 없이 선체에 꽂히는 네 발째의 미사일을 노려보았다.

술식을 구축할 시간이 5초, 아니, 3초만 더 주어졌더라면……!

주홍빛 화염의 파괴적인 팽창이 천둥 같은 굉음을 동반하여 초계함을 꿰뚫었다. 배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전율한다. 엎드린 채 재난을 견디던 부하들이 중심을 잃고 나뒹군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시야가 세 바퀴나 돈 다음에야 간신히 몸의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일어서고 보니 찢어진 이마가 지끈거린다. 구르다 부딪힌 콘솔 모서리엔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귓가엔 찌잉 하는 이명이 맴돌았다. 천장의 마감재가 무더기로 떨어져 나왔고, 평평하던 바닥은 눈에 띄게 뒤틀렸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위이이익-! 위이이익-!

건조한 화재경보가 날카롭게 울리는 가운데, 불길 번지는 자리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자동소화장치가 하나도 눈에 띄질 않는다. 정말 단 하나도.

그렇겠지. 표면적인 성능과 무관한 물건이니 군납비리를 저지르기 얼마나 좋았겠나? 품질 면에선 차라리 나 같은 상인에게 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내 회사는 단 한 번도 고객에게 불량품을 인도한 적이 없으니까.

알루미늄 장갑재에 붙은 불은 금속성 화재답게 격렬한 기세로 초계함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끄려면 아주 강력하고 광범위한 술식이 필요할 미치광이 같은 불길이다.

“혀, 형님?”

피칠갑을 한 내 몰골을 본 경태가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겁먹지 마라. 안 죽는다.”

“하지만 형님부터 치료를 하셔야-”

“그만.”

스스로에 대해선 대충 심한 출혈만 막아놓은 난 경태 이하로 부상이 깊은 부하들의 치료를 우선시했다. 조직의 핵심전력들을 이토록 허무하게 잃어버릴 순 없었다. 시시각각 죽음에 가까워지는 중상자들부터 호전시켜 시간을 벌고, 그 뒤에 나머지 치료를 베풀어줄 작정이다. 완치시킨다기보다는 일단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먼저였다.

개중엔 눈을 다쳐 시력을 상실한 녀석도 있었지만, 「생명」 술식은 안구처럼 자연회복이 불가능한 기관도 문제없이 재생시킬 수 있었다. 그저 자연회복을 가속시킬 뿐인 자연각성 능력자들의 생체강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라 하겠다. 단점이 있다면 마력회로의 처리능력을 과도하게 잡아먹는다는 것. 이름 그대로 여분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술식이니 감수할 만한 단점이다.

초계함 근처에 떠있던 헬기들로부터 다급한 무전들이 날아들었다. 나와 경태 이하의 안위를 확인하는 질문들. 화재가 더 확산되기 전에 치유를 끝내고 탈출해야 하건만. 집중을 방해받은 난 괜한 짜증을 삼키며 침착하게 답신했다.

“이쪽은 무사하다. 함선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한 뒤 계속해서 경계에 임할 것. 추가적인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

살펴보니 헬기 중에선 폭발에 휘말리거나 파편에 맞은 기체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함교에 설치된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직……칙……7함……지지직……당소 589…….」

나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교신했던 589함, 초계함 칭위안의 함장이었다.

「지지직……되었다……직……지직……들리는가?……조금 전……직……미사일이…….」

미사일? 이쪽에서 발사된 걸 감지한 건가? 아니, 아직 레이더고 뭐고 시스템 복구가 끝나지 않았을 텐데? 이 같은 불길함을 느끼는 순간, 경계에 임하던 헬기 중 하나로부터 비명 같은 경고가 전해졌다.

「경고! 미사일 접근 중! 6시 방향! 총 네 발!」

고개를 번쩍 들어 후방을 살핀 나는, 하류 방향에 뜬 네 개의 광점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탁하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 폭이 좁은 마름모꼴의 대형을 형성한 미사일들. 대함미사일 특유의 초저공비행이 비행궤적 좌우로 분수 같은 물살을 일으킨다. 눈으로 어림잡은 거리는 대략 3.5…… 아니, 3킬로미터쯤. 나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철저한 새끼들 같으니.

이번엔 대응시간에 여유가 있었으나, 빠르게 번지는 불과 아직 자력 행동이 불가능한 부하들이 문제였다. 통로를 따라 매캐한 연기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심각한 건 연기 따위가 아니라 어뢰발사기와 연료탱크로 번져가는 불 그 자체였지만. 난 신경질적인 염동력으로 수밀문을 폐쇄했다.

화재, 미사일, 그리고 중상을 입은 부하들. 하나하나는 대응 가능한데 한꺼번에 밀어닥치니 내 마력회로의 처리능력을 초과해버린다.

가장 급한 건 역시 미사일 쪽이었다. 난 외통수에 몰린 심정으로 함체 후방에 방탄결계를 구축했다. 함체와 염동차장 사이의 간격은 먼젓번의 세 배가 넘었다. 간격이 넓어진 만큼 폭발의 여파는 급감할 것이다.

발화억제? 그걸 썼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볼 게 뻔하다. 터지지 않는 미사일은 무지막지한 운동에너지로 함체를 파고들 테니까. 함체가 요동치는 와중에 충격과 마찰에 노출될 탄두의 폭발을 백 퍼센트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콰쾅! 콰콰콰쾅! 쿠르릉!

3킬로미터를 10초 만에 날아온 미사일 네 발이 연속으로 염동차장을 두들겼다. 그러나 예상대로, 연이은 폭발이 함체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기껏해야 미사일 파편들이 후방 갑판과 구조물 몇 개를 긁고 지나간 정도. 주기되어있던 대잠헬기가 충격을 받아 흔들거린다.

다음으로 닥쳐오는 고비는 통제불능의 화마(火魔)였다. 함체를 작살낼 유폭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난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부하들을 보며 생각했다.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까?’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함선이 유폭을 일으키기 전에 충분한 거리까지 피신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거리를 벌리긴커녕 터지는 순간 지척에서 충격파를 맞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치료에 몰두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마법적 방호를 두르고 폭발 충격을 버텨보는 편이 나았다. 근거리에서 맞는 충격파는 공기중에서보다 수중에서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 여긴 그나마 수밀문과 격벽이라도 있다. 방침을 정한 난 「생명」의 회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한편 충격 흡수용 염동력 방호를 준비하며 외쳤다.

“모두 최대한 내 곁으로 붙어! 유폭과 침수에 대비해라!”

내 명령에 운신이 가능한 녀석들이 그렇지 못한 녀석들을 돕는다.

잠시 후, 우현의 3연장 어뢰발사기가 벌겋게 달궈지며 연쇄적인 파국이 시작되었다. 격벽 안쪽에서 터진 세 발의 어뢰가 그렇잖아도 너덜거리던 선체에 치명적인 균열을 더했고, 연료탱크로부터 새어나온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후방구획 전체가 진홍빛 화염을 채운 풍선처럼 부풀었다. 마지막으로 좌현의 어뢰들이 폭발함으로써 선체의 근간인 용골이 부러져, 검붉게 타오르던 초계함은 마침내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매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염동력으로 격벽과 수밀문을 밀어대며 힘겹게 충격을 상쇄한 나는, 이제 급속히 침몰하는 배의 함교에서 침수를 막으며 다친 부하들을 치료해야 했다. 연료탱크에서 유출된 디젤유가 강물 위로 퍼져나가며 화마의 영토를 급속히 확대하고 있었다.

난 염동술식과 생명술식, 두 개의 마법에 회로를 분배하며 지시했다.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은 먼저 탈출해! 동쪽 하중도의 강변공원에서 다시 집결한다!”

“하지만-”

“명령이다. 나가!”

배가 수면 아래로 잠기고 나면 아래로 빨아들이는 힘이 발생하는 고로, 나갈 수 있는 놈들은 빨리 나가주는 게 도움이 된다. 계속해서 넓어지는 물 위의 불도 변수였고. 재합류 지점을 동쪽, 즉 강의 상류 방향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이 불길에 있었다.

“알겠습니다.”

경태를 비롯한 몇몇 부하들이 입술을 씹으며 명령에 복종했다. 여러 장비를 착용한 채로 물살을 가를 만큼 상태가 호전된 녀석들이다.

함교를 제외하면 제대로 폐쇄된 수밀문이 드물었으므로, 침수는 빠르고 신속했다. 함수가 끄트머리까지 물에 잠기는 데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을 지경. 갑판이 50도 가까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바람에, 난 늘어진 부하들이 쭉 미끄러지는 꼴을 봐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물살이 사주에 부딪혀 깊어지는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강의 깊이가 50미터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염동력으로 버텨야 할 수압이 겨우 5기압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 방탄유리가 사라진 자리에 염동차장의 막을 씌우고, 찌그러진 수밀문과 갈라진 격벽의 빈틈을 막아 물의 유입을 차단한다. 물 자체에 구속력을 발휘하는 것보단 이쪽이 더 경제적이었다. 염동력은 거리가 가까울수록 효율이 증가하니까.

영적 회로의 남는 부분으로는 생명술식을 돌린다. 부하들의 몸에 박혀있던 파편이 차오르는 살에 밀려나오고, 혈액 생산량이 늘면서 부족한 혈류가 채워졌다. 끊어진 혈관과 신경들이 스스로 이어지고 깨진 뼈가 다시 들러붙어 원형을 되찾았다.

술식을 돌리는 내내 부하의 마력장을 억누르는 건 제법 까다로운 일이었다. 마력회로의 출력을 한계까지 빠듯하게 쓰고 있으려니, 보다 강한 힘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진다.

이내 기절해있던 부하 하나가 의식을 회복했다.

“회장님?”

“정신이 드나?”

“그 모습은 대체……?”

“신경 쓰지 마라. 보기보다 괜찮으니.”

나는 여전히 급한 출혈만 막은 상태 그대로였다. 이대로도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이 없으므로. 내 너덜너덜한 꼬락서니를 보고 소스라쳤던 부하는 이어 창틀 너머의 강물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퍽-

가까스로 유지되던 비상전원이 끊어지면서 함교에선 인공적인 불빛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곧바로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진 않았는데, 이는 수면 위에서 여전히 일렁이는 화염의 물결 덕분이었다. 허나 점점 더 멀어지는 수면의 빛이 부하들을 위한 조명으로서는 불충분했기에, 난 회로의 처리능력 약간을 절약하여 허공에 자그마한 빛을 띄웠다. 마력을 태우는 불의 광채였다. 빛을 보고 모여든 물고기들이 염동력 장막의 저항에 부딪혀 머리를 돌린다. 관리가 안 되는 수족관 같은 풍경이었다.

이윽고 발밑에서 둔중한 충격이 올라온다. 착저(着底/Bottoming). 갈라진 선체가 드디어 강바닥에 닿은 것이었다. 기울어있던 갑판은 배가 가라앉는 속도로 평형을 되찾아갔다. 선수가 진흙 위로 내려앉으며 다시 한 번 충격이 올라왔다.

모든 처치가 끝나기까지는 체감 상 거의 5분이 더 소요되었다. 내 몸까지 회복시키고서 생명술식의 운용을 중지하니 마력회로에 걸려있던 부하(負荷)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남은 건 뻑뻑한 피로감뿐.

‘이걸로 한숨 돌렸나…….’

이런 생각이 들자 수심 50미터 아래에 있는 와중에도 허기가 밀려들었다. 꾸준한 출혈을 몸이 버텨내는 과정에서 적잖은 열량이 소모되었을 터. 마력에 의한 생체강화가 신체의 에너지 효율을 현격히 높여주긴 하지만, 그 향상된 효율로 소비하는 에너지의 최대치 또한 큰 폭으로 증가한다. 낮은 연비의 백 마력 엔진과 높은 연비의 2천 마력 파워팩 중 어느 쪽의 연료 소비가 더 크겠는가.

나는 잡념을 떨치며 고단한 몸을 움직였다. 방탄유리 조각들을 비롯해 상처마다 박혀있던 각종 파편들이 빠른 속도로 밀려나온다. 갓 재생된 살은 주변과 비교할 때 약간의 색상 차이가 존재했다.

이로써 어떻게든 치명적인 위기는 넘긴 셈이다. 휴대한 전자기기들의 전원을 끄고 부하들을 준비시킨 나는, 마지막으로 블랙박스를 파괴한 뒤 물을 막고 있던 염동력을 거두었다.

어둑한 함교에 거센 물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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