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역향 (8)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인 587함은 상류로 12킬로미터를 더 올라간 지점에 떠있었다. 함명은 지에양(揭阳). 여기까지 날아오는 과정에서, 나는 유혈로 얼룩진 수상경찰의 보트 몇 척이 느릿느릿 떠내려 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는 필시 초계함 지에양을 근접 호위하던 자들의 흔적일 것이었다. 앞서 루저우가 그러하였듯이.
지에양에게 할당된 방어지점은 진샤완(金沙湾)이라 불리는 물굽이로, 이름과 달리 금빛 모래(金沙)가 펼쳐진 만(湾)은 아니었다. 달빛과 화광이 이지러지는 강물 위에 고요하게 뜬 초계함은, 통상시야로 보더라도 호젓함보다는 음산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갑판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있는 데다, 주변의 육지에선 지옥도가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
지에양 후방의 미션 베이엔 한 쌍의 갈고리와 줄사다리가 걸려있었고, 탑승자가 없는 두 척의 함재정은 갈고리에 묶인 밧줄에 의해 계류된 상태였다. 칭위안에서 파견한 인원들이 도선(渡船)을 시도한 흔적이다.
초계함을 보는 내 침묵이 길어지자 경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형님, 안쪽 상황이 어떻습니까?」
“움직이는 머릿수는 많은데 살아있는 사람은 없구나.”
「……예?」
“마법이다. 설마하니 콧대 높은 원탁의 마스터께서 몸소 행차하셨을 줄은 몰랐군. 품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이런 난잡한 전장에 말이야.”
짧은 순간 경태와 부하들의 긴장감이 최대치까지 치솟았다가, 이내 완만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이미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으니까. 유령선이 된 배에 남아있는 건 대마법사의 마법일 뿐, 대마법사 그 자신이 아닌 것이다.
마른 입술을 적신 경태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심박을 유지하며 묻는다.
“형님께서 간부 보수교육 때 말씀해주신 내용이 기억납니다. 원탁은 죽은 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을 보유하고 있다고. 「소생」이라 부르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다. 정확히는 죽은 유기체가 산 것을 흉내 내도록 만드는 술식이지.”
“말하자면 좀비 같은 거라고 봐도 될까요?”
좀비? 한순간 아이티 계열 부두교의 좀비를 떠올렸던 나는, 경태가 말하는 게 미디어에서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형태의 좀비임을 깨닫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직접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을 거다.”
“직접 본다구요? 여기서 함교만 날려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안테나 마스트만 파괴해도 추가적인 바이러스 전파는 불가능해질 텐데요. 여차하면 형님의 힘으로 배 자체를 침몰시켜버리는 수도 있고요.”
“너희에게 경험을 쌓아주려는 거다. 겸사겸사 놈들이 쓴 USB 킬러도 확보하고.”
초계함 지에양의 함교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USB 하나가 꽂혀있었다. 이러한 USB 킬러는 본디 단순히 과전압을 걸어 시스템을 파괴 내지 다운시키는 장치를 뜻하는 것이지만, 보다 발전된 형태로서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거나 시스템 제어권을 탈취하는 등의 소프트웨어적 작용을 하는 것들도 존재했다. 인트라넷의 통신 계통을 조작하여 외부와의 연결점을 생성해주는 물건도 있다.
‘상품으로서도, 증거품으로서도 가치가 높겠지.’
내가 헬기를 하강시키는 가운데 경태가 질문을 더했다.
“그 원탁의 마스터 뭐시기가 가까이에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적어도 내 시야 안에는 없어.”
유타 주에서 전조도 없이 조우했던 마녀 그레이스의 예를 생각하면 조금 불안한 구석은 있었다. 허나 스승새끼의 기억에 없는 술식을 구사하던 그녀조차, 황금기의 눈이 허락하는 시야에서 존재 자체를 은폐하진 못했다. 그러니 꼼꼼하게 살피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다.
헬기를 착륙시킬 필요는 없었다. 파일럿에게 조종간을 넘긴 난, 기수를 초계함과 나란히 한 채 갑판 난간보다 조금 높게 정지비행을 하는 대장기로부터 갑판 위로 건너뛰었다. 경태를 비롯해 함께 진입할 부하들이 속속 철제 갑판을 밟는다. 전투원을 쏟아낸 세 대의 헬기에겐 낮은 고도에 머물며 주변을 경계하도록 지시했다.
“따라와라.”
수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매복하고 있던 시체들이 일제사격을 퍼부어왔다.
“혁명만세!”
카카카카캉! 좁은 통로를 울리는 요란한 총성들. 그러나 베크룩스에서 치렀던 교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총격은 염동력으로 전개한 방탄결계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심장이 뛰는 시체 여러 구가 부릅뜬 눈알과 손에 쥔 항일대도를 번뜩이며 육탄돌격을 감행해왔다.
“혁명만세! 혁명만세! 인민의 적들에게 죽음을!”
경태 이하의 대응사격이 줄지어 달려오는 시체들의 미간과 심장과 폐부를 관통했다. 그러나 오로지 머리에 바람구멍이 뚫린 것들만이 움직임을 멈췄을 뿐, 나머지는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린 끝에 비틀비틀 다시 일어선다. 울컥울컥 피가 새는 관통상들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고 있다. 이렇게 다시 일어선 시체들은 피를 문 채로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혁명만세!”
“뭐야 이게?!”
당황한 경태와 부하들이 재차 사격을 퍼붓는다. 눈치 빠른 녀석들답게 이번엔 전부 머리를 겨냥한 사격이었다. 한 발에 반드시 하나씩을 보내버리는 정확한 사격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폭이 좁다 보니 후열의 적들이 코앞까지 밀려든다. 이러는 사이, 나는 다른 행동 없이 폐쇄회로로 들어가는 비상전원을 차단하기만 했다.
“익, 형님-!”
경태가 내는 다급한 잇소리. 내가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경호실장의 본분을 다하려는 듯 전면으로 나서려 든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육박해 들어오던 시체들이 실 끊어진 인형들과 같이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다.
“……?”
사후경련을 일으키듯 펄떡거리는 시체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경태. 나는 현상의 이유를 말해주었다.
“내가 주문을 깬 거다. 마력의 흐름에 간섭했지.”
“어, 그렇습니까?”
무장한 시체들이 침 흘리며 달려들도록 내버려두었던 건 시체에 깃든 술식의 작용과 허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멕시코에서 이 술식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거니와, 스승새끼가 소홀히 했던 영역의 지식이기도 하니까. 스승 놈이 아직 원탁에 몸담고 있었던 무렵의 이 「소생」 술식은 곱게 죽은 벌레 시체 하나 움직이면 기적인 수준의 잡기(雜技)에 불과했다. 마소 고갈로 말미암아 효용을 상실했던 수많은 지혜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이야기.
생전의 스승새끼가 괜히 영적인 영역에 집착했던 게 아니다. 「세례」를 근간으로 삼는 영적 영역의 술식들은 다른 어떤 영역에 비해서도 연비가 우월했다. 한편으로는 영적인 영생을 추구하는 길이기도 했고.
「소생」의 근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는 복잡한 심경에 젖어들었다.
‘이것들도 나름대로 발전에 힘쓰고 있구나.’
교조적인 틀 안에서의 발전이긴 하지만, 그 깊이만큼은 대가(마스터)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스승새끼의 기억 속에 대략적인 얼개는 남아있는 과거의 원전(原典)이었다면 한눈에 파악을 끝낼 자신이 있었으되, 방금 목격한 술식엔 심화적인 응용과 개량이 더해진 상태였다. 예상은 했어도 달갑진 않은 현실.
빛과 진리의 원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지혜를 체득할지 가늠해보니 새삼스레 짜증이 깊어진다. 역시 주인 없는 핵탄두를 찾는 쪽이 편하지 않을까? 북한이 판매하는 스커드 미사일에 달아서 갈기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괜히 해보는 망상이었다. 핵탄두는 둘째 치고, 아무리 북한이라도 아무에게나 탄도 미사일을 팔진 않는다. 그 빨갱이 전제왕국이 전략무기를 판매하는 대상은 일단 그 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큼 체급이 있는 국가들이니까. 구입 즉시 발사 버튼을 누를 미치광이들에게 탄도 미사일을 팔아넘기는 건 국가 단위의 자살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규격이 다른 탄두를 미사일에 맞게 조정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 일을 맡길 기술자들은 또 어디서 구하면 좋단 말인가?
퍼덕퍼덕!
통로를 밝힌 어둡고 붉은 비상조명 아래, 쓰러진 시체들의 집단난교와 같은 경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에 점점 넓어지는 피 웅덩이가 어우러져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태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묻는다.
“형님……. 이것들 진짜로 뒈진 것 맞습니까? 시체 주제에 말을 하질 않나,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질 않나……. 심지어 마력장은 지금도 살아있는데요?”
“집중해서 느껴봐라. 마력장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
꿈틀거리는 시체들을 가만히 노려보던 경태가 대검을 뽑아들었다.
“혹시 해체해 봐도 됩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부비트랩처럼 터지거나 질병처럼 옮겨 붙거나 그러지는 않는 거죠?”
“그럴 일 없다.”
내 답을 들은 경태는 서로 뒤엉킨 시체들에게로 다가가, 가장 위에 있는 놈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거침없이 칼을 찔러 넣었다. 인간 도축에 능한 녀석이라 시신을 해체하는 손길이 신속하다. 뼈와 살을 여러 번 갈라낸 끝에 경태가 찾아낸 것은 덩이뿌리처럼 뭉친 두 개의 마력 종양, 즉 불사암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들을 떼어내자 시체에 남아있던 마력장이 사그라졌다. 경태는 비위가 좀 상했는지 미간을 좁힌 채로 물었다.
“혹시 시체를 움직이는 술식은 이 암세포 덩어리들을 동력원으로 쓰는 겁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과급기나 보조동력원이라 해야겠지. 그게 없어도 술식 자체는 유효하니까.”
소생술식을 특기로 삼는 자는 원탁의 일좌를 차지한 대마법사, 서(Sir) 웨스트버튼이다. 생명은 영성이 깃든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간.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에 심취한 이 제국주의자는, 오직 진리를 깨우친 자들만이 저급한 생체기계의 틀에서 벗어나 우월한 존재로 거듭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진정한 자유의지는 깨우친 자들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깨우치지 못한 자들을 죽이는 데 아무런 죄책감이 없지. 그런 인간들은 그냥 생화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들일 뿐이니까. 생존과 번식만이 존재의 이유인 무가치한 기계들.’
그의 소생술식은 그러한 신념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수단이었다. 두뇌 또한 하나의 부속에 지나지 않으니, 마력만 충분하다면 황금기의 지혜가 죽은 두뇌의 재가동마저 가능케 하리라고.
“가지.”
나는 다시 앞장서서 나아갔다. 함교로 올라가는 가파른 층계에서 또 한 번의 집단 습격이 있었으나, 이번엔 처음부터 머리를 노린 부하들의 사격이 혁명을 부르짖는 시체들을 신속하게 몰살시켰다. 내 의도적인 방관 속에 두 번째 교전을 치른 경태는 움직이는 시체들의 전투력을 이렇게 평가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최소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 같진 않네요. 행동은 단순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하다못해 견착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마약 먹은 동네 바보들을 상대하는 기분입니다.”
뭐, 완벽하게 재가동시키기엔 뇌가 너무 복잡하고 정교한 부품이었겠지. 그러니 다른 방향으로의 강화를 모색한 것일 테고. 자체적으로 마소를 흡수해 마력으로 전환하는 불사암을 보조동력원으로 연결한다는 건 대단히 참신한 발상이었다.
계속해서 증식하는 암세포가 시체 인형의 수명을 줄이는 부작용이 있겠지만.
안쪽의 선실엔 시체들이 먹다 남긴 진짜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남은 살점이 적은 유해들은 본디 이 초계함의 승조원들이었을 터이고, 비교적 온전하면서 신선한 시체들은 우리가 오기 전 한 발 앞서 진입한 수색대일 것이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습격은 함교에서 이루어졌다.
“혁명만세!”
이곳에 매복해있던 시체들은 앞서 싸웠던 것들에 비해 완성도가 높았다. 제물이 된 인간의 자질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어설프게나마 은엄폐를 하며 총을 쏴대는 꼴들을 보니, 비록 적의 작품이지만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교전이 종료된 후, 나는 잠시 마법적 관찰 결과를 곱씹었다.
‘근시일 내로 어찌어찌 흉내를 내볼 법은 한데.’
물론 웨스트버튼 경의 술식과 내 흉내 사이엔 아주 커다란 격차가 존재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 내가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함교의 유리창엔 많은 금이 가있었다. 초계함의 승조원들이 움직이는 시체들을 상대로 벌였던 절망적인 방어전, 그리고 방금 우리가 치른 교전이 남긴 흔적이다.
곱씹기를 끝낸 난 함교 콘솔에 꽂힌 USB 킬러를 뽑아들었다.
그 순간, 함교 후방에서 콰아아아-!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
반사적으로 돌아선 나는 레이더 마스트와 보일러 연돌 사이의 미사일 발사대로부터 하늘로 솟구치는 대함미사일들을 볼 수 있었다. 터보제트 엔진의 강한 추력에 힘입어 먼 광점으로 빠르게 수렴하는가 싶었던 미사일 네 발은, 시가지 상공에서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선회하여 이 배를 노리고 쇄도하기 시작했다.
USB를 분리하는 게 증거인멸의 트리거였던 것이다!
“이런 미친……!”
네 방위를 점하여 미세한 시차로 날아드는 네 줄기의 살의. 그 속도는 마하 0.9에 무게는 근 0.7톤이었다.
생각할 여유는 고작 몇 초에 불과했다. 때늦은 최선은 적시의 차악만도 못하다. 이를 악문 난 마력장을 확장시키며 초계함 위로 얇고 단단한 염동차장의 돔을 뒤집어씌웠다.
“모두 엎드려!”
내 외침과 거의 동시에 첫 번째 대함미사일이 작렬했다.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어둡던 함교가 강렬한 빛과 그림자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