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6화 (126/561)

#17. 반역향 (6)

시기적절한 방송 한 번에 많은 수가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었다. 항복, 쏘지 마, 같은 소리들을 목청껏 외치며 내 부하들에게로 투항하는 모습들. 개중엔 나에게 투항하는 무리도 있었다. 내게로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간 것이었지만.

그래도 일부는 마지막까지 항전을 택했다. 혁명에 대한 열정 내지 마약이 부여하는 공격성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능가하는 소수가 독전관(督戰官) 노릇을 수행한다. 당장 지금 나아가는 방향의 모퉁이에도 그런 놈이 하나 있었다.

“이 얼간이(二百五)들아! 설마 공안이 하는 말을 믿는 거냐? 항복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웃기지 마! 차라리 여기서 죽는 쪽이 덜 고통스러울걸? 동지들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

부패한 공권력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불신이 여기서도 힘을 발휘했다. 진정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이라면 사후에도 신원이 탄로나지 않도록 서로의 얼굴에 총을 갈기는 편이 더 현명할 터이나, 궁지에 몰려 사고가 마비된 무리에겐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 겨를이 없었다.

“쏴!”

카카카카캉! 러시아제 소총과 기관총의 복제품들이 이쪽을 향해 불을 뿜는다. 그러나 강력한 염동차장이 그 모든 사격을 방어해냈다. 정면으로 밀어내는 무형의 힘이 복도를 꽉 채우는 한 뼘 두께의 방탄결계를 형성하여, 평범한 소총탄은 손가락 한 마디 깊이조차 파고들지 못한 채 쏘아진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기관총탄은 그보다 조금 더 깊게 들어올 뿐이었고. 제가 쏜 탄에 맞아 피 흘리는 잡것들이 속출한다. 마법적인 도탄(跳彈) 효과다.

“오…….”

뒤에서 경태가 흘리는 소리. 경호가 불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도 바싹 뒤따르며 못내 신경을 곤두세우던 녀석이었다. 당연히 적들이 받은 충격은 훨씬 더 컸다. 다친 놈들이나 다치지 않은 놈들이나 감히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꿇어.”

심문할 포로는 많을수록 좋다. 내 한마디에 적들이 무기를 놓고 자세를 낮췄다. 간간이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들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무언가에 대한 초월적인 공포와 의문을 담고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소리를 높였던 독전관 녀석도 눈길 한 번 마주치자 경련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이 즈음이면 세계 어딘가에선 슬슬 생체강화 이외의 능력에 눈 뜨는 천재들이 등장하고 있겠으나, 이런 천재들에 대한 소문은 아직까진 뜬소문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아직은 내가 행사하는 힘이 크나큰 충격을 선사할 수밖에. 각국 정부가 그렇게 희귀한 사례들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을 것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면 그러한 노력들이 모두 헛수고임을 깨닫게 될 테지만.

마력장이 위축된 능력자는 연료 공급 감소로 인해 출력이 저하되는 내연기관과도 같다. 고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맞이한 적들은 자신들을 포박하는 내 부하들에게 뒤늦게나마 저항을 시도할 여력이 없었다.

한 놈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안 죽인다.”

당장은 말이지. 결국은 다 죽을 것이다.

어느 층의 갑판을 가든 적들의 반응이 대동소이했으므로 베크룩스를 조용하게 만드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예상보다 싱거운 싸움에 맥이 빠질 지경이었으나, 머리가 식고 나서 곱씹어보니 부상자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내 전의가 과하게 높았던 감이 있었다.

대량의 포로를 사로잡고 전투를 마무리한 나는 즉각 집중치료실로 이동하여 중상자부터 치료를 해주었다. 경태는 부상자의 상처가 느리게, 그러나 실시간으로 아물어 가는 광경을 관심 깊게, 한편으로는 경외를 담아 지켜보았다.

“형님의 마력장 반경이 지금 한 백 미터쯤 되는 거죠? 루저우가 그 정도 거리 바깥에 떠있으니까.”

“그래.”

“흠. 백 미터에 이 정도라……. 대충 감이 잡힐 것도 같습니다.”

“전보다 나아진 거지만, 성급한 정량화는 경계해라. 너희들의 저항력에 따라 달라질 일이기도 하니까.”

“참고하겠습니다.”

최근 들어 마법사로서의 단련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손을 아예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회로를 최적화시켰으니 전보다 나아진 건 당연한 결과. 정신적인 휴식이 절실할 때가 아니면 자각몽 속에서도 코드의 해석과 응용을 궁리했고.

나 자신이 가장 결정적인 비대칭 전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방침엔 변화가 없다. 이곳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한 뒤엔 한동안 자기강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당한 활동을 통해 부하들이 내 능력에 익숙해질 기회 역시 더 많이 만들어주어야겠지.

힘의 사용을 단계별로 규격화해두는 방안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다. 그래야 부하들이 나를 보조하기 편해질 테니.

나는 황금기의 지혜로부터 비롯된 술식인 「생명」을 거두며, 치료를 받은 부하에게 물었다.

“느낌이 어떠냐?”

날아갈 뻔한 어깻죽지를 가동범위의 한계 내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본 부하가 공손히 답한다.

“다치기 전보다 오히려 좋아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후 모든 부상자들을 완치시키는 데엔 15분 안팎의 시간이 들어갔다. 마력장이 없다시피 한 일반인들이 상대였으면 채 1분도 걸리지 않았겠으나, 내가 손수 각성시킨 부하들은 외부로부터의 마법적 침습에 대하여 상당한 저항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허나 적의 대대적인 공세를 붕괴시킨 현재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무방하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치료를 끝내고서 함교로 올라가니, 전반적인 상황을 통제하던 수연이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직전까지 전투를 치른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한 신색이었다. 다만 박살난 방탄유리와 천장에 비스듬히 박힌 총탄 자국들이 이곳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음을 웅변했다. 깨진 창으로 서늘한 겨울이 밀려들어온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너야말로.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훌륭하게 버텨줬다.”

날 가까이에서 수행하는 측근들에겐 아주 많은 능력들이 요구된다. 그중 하나가 전투에 관한 능력들이었다. 내 조직의 첫 번째 존재이유가 바로 런던의 원탁에 대한 보험이니까. 최악의 경우엔 최후의 한 사람까지 무기를 들고 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연은 제 역할에 대한 욕심이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많은 녀석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비서실장 및 기조실장이 받아야 할 전투 훈련은 모든 간부들이 의무적으로 받는 보수교육 정도가 전부였지만, 수연은 경호실을 비롯한 행동타격대, 국제사업부 밀수처 인력들이나 받는 종합전술훈련을 세 차례나 이수했다.

경태를 훈련시킨 교관들이 후한 점수를 주었을 정도인즉 그 능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전투상황에서 수연에게 내 빈자리를 맡길 수 있는 이유다.

‘수혁이 녀석에겐 부채감을 느낄 지경이란 말이지.’

싱가포르에서 수연에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죽은 강수혁이는 제 동생이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이 내게 목숨을 맡긴 배경엔 하나뿐인 혈육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고 싶은 욕망이 깔려있었을 터. 그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나로서는, 녀석과의 계약을 명시적으로 위반한 건 없을지라도 못내 부채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었다.

간혹 한 번씩 고개를 드는 이 부채감은 내게 실로 생경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 수연을 놓아줄 마음은 없다. 나는 이미 기회를 주었고, 수연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것을 거부했으니.

‘이런 인재를 어디서 다시 얻는다고…….’

가끔 그런 인간들이 있다. 세상의 불공평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온갖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짓말 같은 천재들이. 예컨대 전장에선 특수부대원으로 활약하여 무공훈장을 받았고, 전역 후엔 명문대 의대에 들어가 숨마 쿰 라우데(졸업생 상위 1% 성적)로 학업을 마쳤으며, 의사로 재직하던 중에 우주비행사로 지원하여 합격하기까지 한 어느 미국인의 사례처럼. 심지어 이 미국인은 가정환경이 유복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민자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흉기로 위협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내 행운은 그에 필적하는 천재를 한 세대에 둘이나 거두었다는 데 있다. 경태도 수연도 오직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니, 전임자들에 비해 파격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래에서 이렇다 할 잡음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꾸준히 배양해온 조직의 건전성과 실력주의에 힘입은 결과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실력주의는 국가 단위로 추구하기엔 해가 많은 이념이지만, 나 같이 조직을 경영하는 자가 써먹기엔 유익한 도구였다.

“헬기 편대는?”

내 물음에 수연이 답한다.

“흑해자당의 공세 역량이 바닥났다고 판단하여, 3기 1조로 서로를 엄호하며 가까운 간이 거점에서 재급유 및 보급을 실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우선 각자 3할씩을 먼저 채운 뒤에 추가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때 나머지 보급을 진행하라고. 본함의 엄호 및 사주경계에 1기를 남겨두었고 대장기의 재급유는 곧 완료됩니다.”

초계함에 대한 엄호를 끝내기로 한 시점에서, 잔존 편대의 탄약과 연료는 위험 수위까지 감소한 상태였다. 이에 수연이 차상급자로서 임의로 지시를 내린 것이다. 나와 경태는 선내에 진입하여 외부와의 교신이 불가능했으니까. 앞서 내가 교대로 급유를 실시하라고 내렸던 명령은 곧바로 발생한 강도 높은 교전에 의해 무의미해졌다.

애당초 베크룩스가 헬기 갑판 아래 보관 중인 항공유의 양 자체가 한정되어있었으므로, 재급유를 받을 여유가 있었다 한들 전 기체의 연료탱크를 다 채워주진 못했을 터였다.

수연이 물었다.

“불러들일까요?”

“아니. 내 판단도 너와 같다.”

내가 경험한 공세는 분명 흑해자당의 총력이었다. 이렇게 확신하는 건, 이보다 강한 전력이 있었다면 굳이 오늘까지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강 하류 일대엔 일찌감치 혁명정부가 들어섰겠지.

이 확신엔 또 다른 근거가 있으니, 바로 알 까심 장인들의 생산능력이다. 수공업자들이 찍어낼 수 있는 탄약의 양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니까.

이를 밀수로 극복하기도 만만치 않다. 마약이야 수백 킬로그램만 들여와도 대군을 중독시킬 수 있지만, 탄약은 같은 무게를 들여와 봤자 수백 명이 한나절을 쓰면 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항만은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 전보다 오히려 감시와 검문검색이 강화된 상황. 여차하면 초계함이나 구축함으로부터 포격이 날아드니, 바이크 돌격대 따위로 항만의 제어권을 탈취한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였다. 즉 흑해자당 입장에선 밀수의 총량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 그들이 마약과 탄약 모두를 만족스럽게 들여올 순 없었다.

또한 전술적인 면에선 알 까심이 복제하지 못하는 무기체계를 탄약보다 우선해서 들여오는 편이 낫다. 적외선 감지기가 들어가는 휴대형 대공미사일처럼.

오늘 이전까지 흑해자당의 중화기 사용이 드물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까지 무기와 탄약을 비축해두고 싶었겠지. 겸사겸사 군경을 방심시키는 효과도 거두고.’

요컨대 내가 판을 흔들지만 않았다면, 흑해자당은 더 긴 준비기간을 거쳐 오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세로 총체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베크룩스의 함수를 기준으로 대각선 전방을 보면, 여전히 교전이 진행 중인 초계함 루저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을 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숫자와 화력의 우세에 힘입어 벌써 승기를 잡은 상태였으므로.

군함의 내부 구조를 잘 모르는 흑해자당 공격대는 지형적으로도 불리함을 안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아래층 갑판으로 이동한 일군의 수병과 해군측 능력자들이 후방의 해치를 열고 올라와 기습을 가한 것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건대 길어도 앞으로 2~3분이면 결판이 날 듯하다.

이 시점에서 마음에 걸리는 건 오직 하나.

마음이 통했는지, 모니터를 응시하던 수연이 같은 우려를 입에 담았다.

“가장 위험한 변수가 아직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경 쓰입니다.”

수연이 보던 노트북 모니터는 대장기의 데이터 링크와 연결된 것이었다. 안테나 마스트가 복구되면서 데이터 송수신도 재개된 덕분에, 여기서도 전체적인 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파편화된 흑해자당 세력은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채 남쪽으로, 남쪽으로 밀려나기만 할 따름이다. 이쪽이 돌파 당했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랐겠지만. 후방이 뚫린 군경은 지금처럼 착실한 공세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라기보단 개인과 개인의 싸움을 무수히 많이 뭉쳐놓은 수준의 난전이 벌어졌을 터.

같은 화면을 본 경태가 의견을 더한다.

“그냥 개입할 기회를 못 잡은 게 아닐까요? 그 왜, 원탁에서 직접 파견한 정예라면 이목구비랑 피부색부터가 확 튈 테니 말입니다. 사진 한 장이라도 잘못 유출되면 외교적인 부담이 얼마랍니까?”

“글쎄. 원탁의 준비가 그렇게까지 허술할 것 같진 않다만…….”

홍콩의 가치는 멕시코에 대한 영향력이나 카르텔 기사단장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홍콩을 영국의 영향권으로 회복하는 데 혁혁히 기여한다면, 원탁내각은 영국 정부에게 그 기여에 비례하는 대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대놓고 드러날 위험이 있는 지금 개입하기보다는, 오늘 이후의 흑해자당을 도와 본격적인 게릴라전을 유도할 작정일지도 모른다. 광활한 산지와 삼림을 배후지 삼아 중국의 힘을 지속적으로 소모시키는 것. 중국이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분포하는 도시와 마을들 전부를 철통같이 지켜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게릴라들의 계속적인 침투와 암약과 음모와 테러가 대륙 전체에 만성피로를 선사하겠지.

‘큰 실패를 경험한 마오공과 흑해자당이 후원자 앞에서 조금 더 고분고분해지기도 할 테고. 아예 장기적인 지배력 강화로 꼭두각시를 만들기로 한 건가? 그렇다 한들 여기서 너무 크게 져버리면 곤란할 텐데…….’

나는 보류적인 태도로 말했다.

“재정비를 하면서 지켜보지. 과연 이대로 넘어갈지, 그렇지 않을지를.”

긴 기다림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오늘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흑해자당이 완전히 패퇴하기 이전에 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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