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5화 (125/561)

#17. 반역향 (5)

조급함이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강물로 뛰어내려, 물을 기화시키는 폭발로 수중과 수상에 있는 모든 잡것들을 갈가리 찢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짓을 벌이고서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내 존재감을 감지했을 초계함의 능력자들을 죽여 살인멸구를 해야 하고, 이를 목격한 수병과 장교들 역시 몰살시켜야 하며, 수중 음향수집 데이터와 블랙박스까지 철저하게 파괴해버려야 한다. 차라리 초계함을 격침시키는 게 나을 지경이니 본말전도도 이만한 본말전도가 없다 하겠다. 다른 걸 다 내어주더라도 베크룩스만은 지켜내야 할 상황이 아니고선 고르지 못할 선택지였다.

난 위험을 감수하고 전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전기(全機), 지금부터 초계함 엄호에 전념한다! 5분 내로 끝낸다고 생각해라!”

베크룩스는 적들이 무더기로 갑판에 오르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버텨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상황까지 대비해서 내장을 뜯어고친 배이니까.

갑판이 함락당할 위기에 처한 초계함 루저우는 최후의 버티기에 들어갔다. 외부 스피커를 통해 함장의 다급한 명령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전 승조원은 선체 내부로 들어올 것! 반복한다, 전 승조원은 선체 내부로 들어올 것! 흑적(黑贼)들이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모든 문을 폐쇄한다! 서둘러!」

선체에 달라붙은 진드기들을 우리가 쓸어주길 바라며 내리는 명령이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이런 지시가 냉정하게 이행되기를 바라는 게 무리였다. 억지로 갑판을 사수하던 수병들은 후퇴 허가가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를 이탈해 좁은 문으로 몰려들었다. 계급고하를 불문하고 저마다 내가 먼저 들어가겠노라 몸싸움을 벌이는 난장판.

「닫아! 닫으라고!」

현대적인 군함의 경우, 함선 내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수밀문(水密門)의 폐쇄상태는 함교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적들이 끝끝내 갑판에 올라왔는데도 문이 닫히질 않으니 함장의 목소리가 더욱 급해질 수밖에. 그러나 수밀문과 복도의 너비는 한 사람이 지나가면 끝이었고 그 좁은 공간에 수십의 수병과 간부들이 끼어 서로를 밀쳐대는 중이니,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더 나빠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쾅쾅쾅쾅! 내가 쏘는 중기관총의 총열이 불그스름한 빛을 머금었다. 과열이고 뭐고 사격을 쉴 틈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탄도는 아직 안정적이어서, 내가 조준한 놈들이 어김없이 핏빛으로 터져나간다. 아무리 능력자라도 철갑이나 모래주머니를 차고 헤엄을 칠 순 없기에, 물에서 갓 나온 공격대는 전부가 맨몸에 가까운 상태였다. 예광탄이든 철갑탄이든 일단 맞기만 하면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찢어줄 수 있다.

‘지금의 나조차 급소에 맞으면 즉사를 면키 어려운데.’

한 발 한 발에 실린 1만 8천 줄(J)의 운동에너지는 농담거리가 아니다. 근골강화가 평균 이상인 능력자라면 이 에너지를 몸으로 전부 받아내면서 도리어 더 큰 피해를 입고 말 것이다.

위력이 이러하니 흑해자당 공격대는 갑판에 올라와서도 사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기껏 올라와놓고 다시 물로 뛰어드는 녀석도 있다.

대함미사일 발사대 아래의 그늘은 얼마 없는 안전지대의 하나였다. 무턱대고 쏘다간 미사일이 터질 것이기에. 이 자리에 몰린 흑해자당 공격대는 도끼질로 마스트 후방의 외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전투함의 상부 구조물 외판은 능력자들이 온 힘을 다해 내리찍는 도끼질을 오래 견딜 두께가 못되었다. 더욱이 함교 뒤쪽은 바깥으로 노출되는 방향도 아니어서, 가장 두꺼운 곳조차 1센티미터를 밑돌았다.

도끼날이 벌려놓은 좁은 틈을 통해 총격전이 벌어진다. 당사자들은 필사적인데 멀리서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 행태였다.

난 흑해자당을 의도적으로 발사대 아래에 몰아넣고서 뒤를 향해 소리쳤다.

“콘솔! 592함에 통보! 미사일을 발사할 것!”

「무슨 미사일을 쏘냐고 되묻습니다!」

“당연히 대함미사일이지! 발사화염으로 다 구워버리라고!”

「시가지에 떨어지면 큰 피해가 발생할 거랍니다! 인민을 지키는 게 군인의 본분이라는데요?」

“최대 사거리가 120킬로미터인데 시가지는 무슨! 남쪽으로 쏘면 재수 없는 어선이나 한 척 박살나고 말겠지! 뒈지기 싫으면 당장 쏘라고 해!”

설령 시가지에 떨어지더라도 상관없다. 광둥 경제의 심장부인 광저우와 달리, 이곳 둥관에선 보다 너그러운 파괴가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없는 부촌이나 여전히 가동 중인 외국기업 소유의 공장에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대단히 희박한 확률이었다.

미사일의 자동 표적탐색 기능에 민간 선박이 잡히는 것까진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은 군인의 본분이니 어쩌니 했어도 죽기는 싫었는지, 결국 함장은 발사 명령을 내렸다.

푸화악-!

발사대에서 앞뒤로 커다란 화염이 뿜어졌다. 작은 휴대형 로켓의 후폭풍으로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커다란 아음속 대함미사일의 후폭풍은 오죽할까. 난 단 한 발의 발사를 주문했을 뿐이건만 함장은 싣고 있던 미사일 전부를 연속으로 발사해버렸다. 위험한 자리에 있던 놈들은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무더기로 쓰러졌다.

발사된 미사일 네 발은 우리가 머무는 고도의 절반가량까지 차례로 치솟은 후 머리를 돌려 남쪽으로 날아갔다. 터보제트 엔진의 불길과 굉음이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 굉음이 사라진 자리로 덜 구워진 능력자들의 목청 좋은 절규들이 올라왔다.

이때 전방갑판에선 한 무리의 흑해자당 공격대가 선내로의 진입에 성공한 참이었다. 너도나도 먼저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수병들이 마지막까지 문을 닫지 못한 탓이었다.

안으로 침입한 공격대는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보다 안쪽에 자리 잡은 수병들과 총격전을 주고받았다. 힘 센 능력자들이 날붙이에 시체를 꿰어 방패로 삼으니 수병들의 개인화기로는 뚫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사람 몸을 한 번 관통하면서 약해진 총탄으론 근골이 질긴 능력자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그 능력자들이 마약까지 복용한 상태였으므로, 한 탄창을 다 써야 하나를 겨우 쓰러뜨릴까 말까 하다.

저걸 내려가서 처리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껏 가만히 침묵하던 함포가 갑자기 포탑을 돌리는 게 보였다. 180도 회전한 함포는 훤히 열려있는 문짝 안쪽을 겨냥했다.

---!

나와 내 애들의 사격을 피해 안으로 몸을 디밀었던 놈들은, 커다란 함포가 자신들을 겨누자 손가락질과 함께 들리지 않는 고함들을 질러댔다. 하지만 단지 잠깐의 당황이었을 뿐. 설마 배 안쪽으로 포탄을 갈기겠나 싶었는지, 곧 침착함을 되찾고는 비웃음을 머금고서 도발적인 몸짓들을 해보였다. 블러핑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조롱이었다.

그러나 포술장은 공갈로 끝낼 심산이 아니었다.

뻐엉-!

함포가 정말로 불을 뿜는다. 발사될 탄두가 없는 공포탄 사격. 본디 불순한 무리들에게 포성으로 겁만 줘서 해산시키고자 실어왔을 이 포탄은, 그러나 화약의 충격파가 미치는 범위 내에선 실제로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었다. 샷 건으로 쏘는 공포탄조차 1미터 거리의 사람을 죽이는데, 구경(口徑)이 압도적인 함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뻐벙! 뻥!

출입구 좌우가 퍽 찌그러지고 그 안의 인간들이 충격파에 직격 당했다. 가장 바깥쪽에 있던 놈은 몸뚱이가 갈가리 찢어지다시피 했다.

공포탄이 탄두가 없는 포탄이라곤 해도 쏘아져 나가는 게 전혀 없지는 않다. 화약 연소 잔여물이나 탄피 끄트머리의 금속 분말 등이 연소 가스와 함께 사출되는 것. 커다란 함포쯤 되면 이렇게 사출되는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가 작은 구경의 실탄사격에 버금간다.

공포탄 일곱 발을 연속으로 쏜 함포는 다시금 침묵 상태로 돌아갔다. 냉각이 불충분하게 이뤄진 상태에서 무리한 사격을 감행한 대가였다.

그러나 그렇게 무리를 한 보람이 있어, 전방 갑판과 이어진 좁은 복도는 동맥경화 환자의 혈관과도 같은 꼴이 되었다. 터지거나 으스러진 인간들이 한데 뒤엉켜 복도를 꽉 막아버린 것이다. 과도한 압력에 노출된 탓에 눈알이 빠진 경우도 부지기수다. 죽은 자들의 덩어리 사이에 살아서 낀 소수가 힘없이 팔을 허우적거린다. 앞쪽에 있던 몇몇은 죽음을 피했지만, 이 꼴을 보고서 사기를 유지하긴 어려웠다.

기가 질린 공격자들이 무기와 방패막이 시체들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항복한다. 방어자들은 그 항복을 받아줄 정신조차 없어보였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토악질을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복도에 틘 혈흔들이 길었다.

‘훌륭하다!’

난 속으로 포술장이 발휘한 기지에 찬사를 보냈다. 부패한 당이 사유화한 군대에도 인물은 있구나, 하고.

초계함 루저우의 마지막 급소는 후방 갑판 아래의 격납고였다. 크레인으로 보트를 내리거나 보급품을 반입할 용도로 뚫어놓은 격납고 좌우의 미션 베이(Mission Bay)는 흑해자당 공격대가 기어들어가기 좋은 구멍이었다. 위치가 헬기 갑판 밑이어서 나와 내 애들의 사격으로부터도 안전했다.

콰쾅!

초계함 주변을 맴돌던 마지막 보트가 샛노란 화염과 물기둥에 휩싸였다. 헬기 일곱 대의 화력을 집중시킨 결과였지만, 제압을 서두르다 보니 이쪽에서도 추가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우선은 응급처치로 대응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시간을 끌면 과다출혈로 쇼크가 올 수 있는 상황. 나는 헬기의 고도를 낮춰 격납고 안으로 포화를 퍼부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칫하면 탄약 컨테이너나 항공유 탱크 따위가 터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 베크룩스로 물러난다!”

이만큼 도와주었으면 됐다. 마침 초계함의 기관포 사격지원도 끊어진 참이었다. 장전된 탄약이 바닥난 탓. 예비탄약이 격납고에 있을 테니 빠른 재장전을 바라기도 무리다. 그러니 이젠 베크룩스에 들러붙은 버러지들을 긁어낼 때였다.

우리가 일제히 물러나자 루저우의 함교로부터 항의가 날아왔다.

「592함으로부터 입전! 본함 후방 하부 갑판에서 교전 진행 중! 광저우 공안 직승기 편대는 후방갑판으로 전투원을 투입할 것!」

“남은 적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이젠 도선(渡船)한 적의 수가 너희 머릿수보다 적을 거라고!”

애새끼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떠먹여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주제를 모르고 명령조로 요구하는 것도 건방지기 짝이 없다.

베크룩스는 곳곳에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예광탄 사격으로도 화재가 발생하는 마당에 그 이상의 중화기들이 사용되고 있으니 오죽이나 위험한가. 미리 불타기 쉬운 것을 제거하고 요소요소마다 난연성 방탄 재질로 도배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배의 반절이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

부하들의 기체가 무장 여객선 바깥에 붙은 놈들을 빠르게 제거했다. 이젠 수중에도 남은 적이 없게 되었다. 적들이 준비한 머릿수가 이제야 바닥난 것이다. 나는 대장기를 베크룩스의 헬기 갑판 위로 이끌었다. 동시에 고도를 낮추며 강습을 준비했다.

“파일럿! 조종을 이관한다! 착륙지점을 치워줄 테니 곧바로 내려와!”

파일럿에게 조종간을 넘긴 나는 총 한 자루 쥐고서 수직으로 거의 삼십 미터 가량을 뛰어내렸다. 염동력을 활용한 감속으로 소리 없이 착지한 나는, 먼저 착륙해있던 헬기를 밀어 난간 밖으로 굴려버렸다. 앞서 로켓에 맞아 부상자 다수가 발생했던 3번 기체였다. 독한 탄내가 나는 동체가 요란한 금속음을 내며 물결 위로 떨어진다.

이어 대장기의 착륙을 기다리지 않고 내부로 돌입했다. 뒤따라 뛰어내린 경태가 빠른 걸음으로 내 뒤에 달라붙었다. 나는 휴대용 무전기로 함교에 통보했다.

“사령이 베크룩스에 알린다. 현시각부로 상층 갑판으로부터 지원이 들어간다. 전 인원은 오인사격에 주의할 것.”

난 무장 여객선 내부의 전체적인 상황을 빠르게 투시했다. 백여 미터 바깥에 떠있는 루저우 탓에 마력장 전개가 제한되기는 하지만, 적을 놓치거나 교전 상황이 새어나갈 우려만 없다면 숫자만 많은 애송이들 쯤은 순식간에 정리해버릴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부상자의 존재는 시간제한과도 같았다. 직접 데리고 다닐 정도의 부하들은 하나하나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한 자산들이니.

“비켜. 이제부터 경호는 필요 없다.”

길목을 지키던 부하들이 길을 내어준다. 팽창한 내 마력장이 베크룩스를 집어삼키는 순간 선박 전체에서 잠시나마 총성이 사라졌다. 흑해자당 공격대가 허둥대는 꼴들이 보인다. 모두가 불안과 공포 가득한 눈으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갑판과 격벽 너머가 보일 리 없건만. 그 반응이 마치 호랑이의 냄새를 맡은 토끼의 무리들을 보는 듯하다.

나는 성큼성큼 나아가며 무전기에 대고 명령했다.

“2번기 이하에 통보한다. 너희는 밖으로 기어 나오는 놈들을 잡아 죽여라. 단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된다. 알겠나?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마라!”

겁먹은 토끼들은 예외 없이 다리들을 떨고 있었다. 마소에 대한 장악력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잡것들은 각각의 마력장이 애처로울 만큼 위축된 상태였다. 경태나 경호실 애들쯤은 되어야 내 가까이에서 그럭저럭 마력장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 내가 배려해준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퍼엉!

발화술식으로 찰나 간에 넓은 영역을 불태운다. 0.1초 안팎의 짧은 연소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한 열팽창은 좁은 복도에 살인적인 압력의 폭풍이 몰아치게 만들었다. 앞쪽 복도 좌우에 숨어 어쩔 줄을 모르던 연놈들이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다.

내 쪽으로 몰아치는 폭풍을 중화한 건 전방으로 전개한 염동차장이다. 좁은 복도의 단면에 집중된 염동차장은 충격파는 물론 어지간한 중화기 공격도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난 동일한 술식으로 바람을 일으켜 공기를 순환시켰다. 손수 유발한 산소 부족으로 인해 전투불능에 빠지는 바보 꼴을 면하기 위해서.

두려움은 보이지 않을 때 더욱 커진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부터 도주를 결심한 적들은 그 신속함에 비례하는 속도로 궁지에 내몰렸다. 나가면 헬기의 사격에 맞아 죽고, 가만히 있으면 거대한 존재감을 투사하는 미지의 괴물과 마주치게 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수연의 침착하고 청아한 음성이 선내방송을 탔다.

「광저우 공안국에서 알린다.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