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반역향 (4)
함포사격의 부재를 틈타 상류의 보트 돌격대가 급격하게 거리를 좁혀왔다. 초계함 루저우는 현측의 보조무기들을 써서 그 공세를 저지하려 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함포의 침묵을 만회할 순 없었다. 이런 와중에 비뢰포 포대는 산발적인 포격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뻐벙!
산탄의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초계함과 베크룩스의 선체에선 자잘한 노을빛 불티들이 피어나고, 흐르는 강물 위론 창백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2번기 이하 편대가 포대 제압에 힘쓰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짙어지기만 하는 포연이 보통의 시야론 포들의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흑색화약을 대량으로 쓰는 대포는 고성능 연막 제조기의 역할을 겸한다.
짙게 끼어 주변으로 번지는 연막은 강물에 뛰어들려던 능력자들에게도 호재였다. 비뢰포 산탄으로 초계함의 교전능력을 저하시키고, 보트 돌격으로 양동을 걸어 초계함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양동의 또 다른 축인 능력자들이 강변에서 뛰어들어 최단거리를 헤엄치는 게 본래의 계획이었을 터.
순서가 엉망이 되긴 했어도 적에겐 여전히 전의가 남아있었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 황금에 대한 탐욕, 계급혁명의 광기, 그리고 마약의 약기운을 한데 뭉쳐 녹여놓은 전의가. 어쩌면 친인척이 볼모로 잡혀있거나, 그에 준하는 보복위협을 받았거나 할 수도 있겠고.
베크룩스는 산탄 포격에 안테나 마스트가 날아갔다. 응급수리 전까진 장거리 교신이 불가능해졌다는 뜻. 그런데 응급수리를 하려면 우선 포격부터 멎어야 한다.
난 대장기를 남쪽 강기슭 상공으로 몰았다.
“포대는 내가 제압하겠다! 2번기부터 4번기까지는 초계함을 지원하여 보트 선단을 차단할 것! 나머진 강물로 뛰어드는 놈들을 막아!”
너른 물길로 나온 보트 선단은 좁은 물길에 있을 때보다 저지하기가 어려웠다. 즉 마법적 방호가 없어 신중하게 날아야 할 헬기로는 셋으로도 부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중강습을 도모하는 능력자들을 뭍에서 최대한 지연시켜야 하니 더 많은 수를 나누어 보내기도 곤란했다.
텅텅텅텅-!
내가 갈긴 유탄들이 지상에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비뢰포 자체보다 그 근처에 쌓여있는 화약더미를 노려서 쏜 탓이다. 매회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검은 밤에 투명한 파동이 번지고, 굉음과 후폭풍이 내가 탄 기체마저 진감케 했다.
이렇게 비우는 탄통이 세 개째에 접어들자, 흑해자당의 포병대는 누적되는 피해를 견디지 못해 남은 포를 방기하고 달아나버렸다. 전투 스트레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몇몇의 낙오자들이 눈에 띈다. 가까운 폭발과 충격파에 연속으로 노출된 결과였다.
‘유탄 소모가 극심하군.’
그래도 내가 애쓴 덕에 초계함이 보조무장들의 제어능력마저 상실하는 사태는 막아냈다. 특히 우현에 달린 기관포는 아까부터 일체형 관측 장비의 상태가 아슬아슬했다. 산탄을 한두 번만 더 뒤집어썼으면 수동 사격조차 불가능한 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화약더미를 터트린 내 공격이 먹구름처럼 뭉글거리는 매연을 자아내어, 적 능력자들의 입수(入水)를 쉽게 만들어준 측면도 있지만. 이건 시간을 아낀 대가라고 해야겠지.
베크룩스에선 안테나 및 레이더 교체가 한창이었다. 내가 탑승한 대장기가 해변을 제압하는 걸 보고 곧바로 작업을 개시한 것이다. 난 베크룩스를 엄호할 수 있는 위치로 대장기를 움직였다.
‘흑해자당 놈들은 여기서 그냥 승부를 보기로 결심한 건가?’
계획이 꼬였든 어쨌든, 강상의 차단선이 뚫리면 강을 건넌 흑해자당의 능력자들은 주요 다리들을 봉쇄하고 있는 중국 군경 세력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었다. 방어와 반격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도 주지 않고서.
지금 전력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하는 혼란을 겪느니, 엉망이 된 계획이나마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낫다는 게 흑해자당 지도부가 내린 판단일지도.
쾅!
무기를 교체한 경태의 대구경 라이플 사격이 베크룩스의 뱃전을 기어오르던 능력자의 목덜미를 터트린다. 하얀 선체 측면에 검붉은 핏자국이 남았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모기를 잡은 자국 같기도 하다.
도끼나 곡괭이 따위를 양손에 쥐고서 선체를 번갈아 찍으며 기어오르던 흑해자당 능력자들이 기겁을 하는 모양새가 보였다. 근력이 상궤를 벗어난 자들의 등반은 괴기스러울 만큼 빨랐으나, 경태의 저격은 그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난간에 갈고리를 걸어 밧줄을 타고 오르는 적들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나는 경태가 놓은 기관총좌를 붙잡았다.
물속에 있는 놈들은 총질로 죽일 수 없다. 아무리 굵은 탄이라도 물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급속히 에너지를 상실해버리는 까닭이다. 강력한 중기관총 사격조차 수심 1미터에 머무르는 잠수부를 사살하기 어려울 정도.
그러나 내가 노리는 건 때때로 제 위치를 확인하고자 수면으로 올라오는 놈들이었다. 강물이 워낙 혼탁하다 보니, 잠수한 상태에서는 자기가 목표를 향해 똑바로 헤엄을 치고 있는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쾅쾅쾅! 손아귀로 강한 반동을 느끼는 순간, 막 수면 위로 올라온 정수리 하나가 팍 깨어져나간다. 둥둥 뜨는가 싶더니 목구멍으로 물이 들어가 스르륵 가라앉아버리는 몸뚱이. 언제 어느 놈이 올라올지 뻔히 보이는 입장에선 이보다 손쉬운 사격이 드물었다. 올라오는 머리가 너무 많은 게 문제지. 모양새만 놓고 보면 예광탄과 철갑탄을 쏘는 두더지 잡기였다.
정수리가 깨진 채 가라앉는 시체의 수가 시시각각 늘어간다. 물결 사이로 검붉은 꽃들이 진하게 피었다가 강물 흐르는 속도로 연하게 흐트러졌다.
베크룩스와 5번기 이하의 편대가 강가에 퍼붓는 제압사격 덕분에, 탁류를 잠영하는 적의 숫자가 나와 경태의 대응능력을 초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계수위까지 물이 차오른 댐처럼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균형이었다.
우르릉-!
낮은 음계의 울림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친다. 초계함을 호위하는 능력자들이 수중으로부터의 침투를 막고자 폭뢰(爆雷/수중에서 터지는 폭탄)를 투척한 것이었다. 기절한 물고기 떼가 배를 뒤집은 채 둥둥 떠오르고, 물속의 인간들은 많은 수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벌어진 입마다 공기 거품이 부글부글 새어나온다. 끝끝내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뇌진탕과 내장파열의 향연이었다.
“扔! 不停地扔!”
쉴 새 없이 던지라는 책임자의 호령. 수중의 능력자를 상대하고자 만들어진 폭뢰는 잠수함을 잡는 일반적인 폭뢰보다 훨씬 가벼운 물건이었다. 그래도 하나하나가 수십 킬로그램씩은 족히 나가지만, 초계함을 호위하는 순찰정의 능력자들은 어떻게든 힘을 합쳐 폭뢰를 던져댔다.
이들을 무너뜨린 건 전방에서 밀려든 위협이었다. 마침내 상류에 친 저지선을 돌파한 모터보트 돌격대가 본격적인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한 것. 초계함 기관포의 최소사거리 이내로 진입한 그들은 초계함 곁을 지키던 순찰정들을 규모의 폭력으로 단숨에 압살해버렸다. 작은 순찰정들이 연달아 커다란 화구에 삼켜진다. 로켓에 맞아 폭뢰가 터진 탓이었다.
따다다닥! 따다다닷-!
초계함의 전방갑판과 마스트 좌우에선 강철난간에 엄폐한 수병들이 보트 선단과 포화를 주고받았다. 난간이 강철이라곤 하나 소화기 이상을 막을 두께가 못되었기에, 각성 능력자들의 중화기 사격 앞에선 있으나 마나한 종잇장이었다.
후방 갑판엔 그나마도 없었다. 난간이 죄다 뻥뻥 뚫린 펜스 형이었으므로 수병들은 엎드려서 기어 다니며 노출을 최소화했다. 높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사각에 의지하는 것. 이 상태에서 제대로 된 반격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2번기에서 4번기까지의 부하들이 분발하고 있었으나, 초계함의 전후방 갑판이 피로 물드는 걸 막진 못했다. 갑판에 진지 구축하듯 모래포대라도 쌓아놨다면 사정이 나았을 것을.
이 와중에 기관포는 잠잠하다. 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수상에서 쏠 표적이 없게 되었으면 당연히 강안 제압으로 돌려줘야 할 게 아닌가?
“콘솔! 592함에 통보! 기관포를 강기슭 제압으로 돌려줄 것!”
그러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공중경계를 위해 탄을 남겨놔야 한답니다!」
뭐 이런 병신 같은……. 열불이 치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랄 말고 돌리라고 해! 그래야 헬기를 한 대라도 더 근접엄호로 붙여줄 것 아니야! 지금 누가 그 목숨을 살려주고 있는데!”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나? 실전경험 전무한 함장새끼가 감당키 힘든 상황에서 정신을 놔버린 게 틀림없었다.
‘확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저 초계함이 무너져버리면 베크룩스는 전투가 끝나고서도 이 위치를 이탈하기가 곤란하게 된다.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리면 대사건의 방관자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소리를 지른 보람이 있어, 초계함의 기관포탑이 빙그르르 돌아 초연 가득한 강변을 겨냥했다. 이어지는 사격은 머리를 못 들게 만드는 제압사격보다는 한 발 한 발이 정확한 연속적인 저격에 가까웠다. 이 높은 수동사격 명중률은 고성능 열상장비가 제공하는 적외선 시야에 힘입은 바. 물로 뛰어들기 전의 흑해자당 능력자들은 두툼한 모래주머니 조끼를 입고 있었으나, 단단한 장갑차마저 걸레짝으로 만드는 기관포탄 사격 앞에서 개인의 방어구 따윈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5번기, 6번기! 전진하여 초계함을 엄호할 것!”
이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손실이 발생했다.
「피격! 피격! 부상자 발생!」
3번기가 눈 먼 로켓탄에 맞아 검은 연기와 파편을 흩뿌린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행능력을 상실하진 않았으되, 엉망이 된 탑승칸에서 피 흘리는 부상자가 셋이었다. 휘청거리는 기체 안에서 탄약상자들을 결속해놓은 끈이 끊어져 온갖 상자들이 흉기처럼 나뒹굴었다. 그러다 사람을 친 상자가 박살나며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탄약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다.
망할. 멕시코에서도 안 나왔던 부상자가 여기서 나오나.
“3번기! 베크룩스로! 부상자 후송이 최우선이다! 9번기! 물러나서 3번기를 보호해!”
지금 고도를 낮추는 건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었다. 엄호에 나선 경태가 특수유탄발사기를 속사로 쏘아 여섯 발 중 다섯 발을 명중시키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맞은 보트들은 물결에 떠밀려 표류하거나 가라앉는 신세로 전락했다.
잽싸게 탄창을 교체하던 경태가 당혹감을 표한다.
“저건 또 뭔…….”
때로는 폭뢰를 투하하고 때로는 기관총 사격을 가하기도 하며 모함을 지키던 대잠헬기가, 딴에는 우리 3번기의 착륙을 엄호한답시고 가까운 자리를 선회하는 모습. 그러나 실수인지 미쳤는지 백 미터 이하로 하강하는 바람에 흑해자당의 좋은 표적이 되어버렸다.
쾅쾅쾅쾅!
내 중기관총 사격에 투창기를 든 놈의 몸통이 대각선으로 찢어진다. 그러나 창은 이미 던져진 다음이었다. 날이 갈고리처럼 벌어진 창은 장갑이랄 게 없다시피 한 대잠헬기 외판을 종이처럼 찢으며 박혀버렸다. 그리고 창대에 엮인 케블라 재질의 로프는 반대쪽 끝이 보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보트와 헬기는 서로 나아가는 방향이 달랐다. 질긴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과부하가 걸린 대잠헬기의 엔진 소음이 비정상적인 음계로 치솟는다. 대잠헬기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로켓 사격이 집중되었다. 나와 경태의 엄호사격에도 불구하고, 직선으로 솟구친 로켓 한 발이 기어코 조종석 아래를 강타했다.
콰쾅!
대잠헬기 조종석에서 섬광이 번쩍인다. 깨어지기 직전까지 금이 간 조종석 방탄유리가 온통 점성 높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부조종사가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기체를 제어하려 애썼지만, 조종계통이 파괴된 다음이었다. 결국 대잠헬기는 빙글빙글 돌며 낮아진 끝에 흐르는 강물 위로 기수를 처박고 말았다. 로터에서 떨어져 나와 수면을 치고 튀어 오른 날개 한 짝이 베크룩스의 선체에 틀어박혔다.
두통이 몰려온다.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되는군…….
적들은 슬슬 기운이 다해가던 참이었지만, 헬기 두 대의 연이은 퇴장을 보고서 마지막으로 기세를 다잡는다. 청각을 조율하여 아래에서 떠드는 소리들을 들어보건대, 공안이나 해군의 배를 점령하는 데 엄청난 상금이 걸려있는 모양이었다.
‘왜 자폭공격을 하지 않고?’
아까부터 품고 있었던 의문이다. 만약 저들이 자폭선을 준비했다면, 베크룩스야 어쨌든 초계함 루저우는 지금쯤 침몰이나 착저(着底)를 면치 못했을 테니까. 하다못해 물속을 헤엄치는 능력자들이 흘수선 아래 시한폭탄을 붙여 터트리는 방법도 있다. 공성전 치르듯 뱃전을 기어오르는 것보단 훨씬 더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저들이 점령한 함선을 전력으로 활용하려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해군은 전문화된 기술군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함교를 차지하더라도 군함을 움직이기란 불가능했다.
운 나쁘게 자폭선들만 먼저 격파당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지 못했을 리 없으니.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좁은 물길에서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걸 피하고자 자폭선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연쇄추돌의 도미노로 처리한 숫자만 얼마인가. 자폭선이 섞여있었다면 한 번의 폭발로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들에겐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