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2화 (122/561)

#17. 반역향 (2)

살아있는 것들의 홍수는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드드드드드- 하는 땅울림과 물소 무리의 울음소리가 헬기 엔진의 소음을 뚫고 높은 고도까지 전해진다. 이렇게 폭주하는 물소 떼에게 일반적인 자연재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 흐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8번기 방향! 막아!”

후속 기체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제압사격을 퍼부어 물소들의 진행방향에 간섭한다. 무리 전체의 관성이 있으니 정면으로 가로막는 건 어리석은 짓. 홍수의 진로를 틀기 위해서는 충분한 여백을 주고서 물소 무리의 선두가 휘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번엔 경태가 소리쳤다.

「9번기! 상승해! 고도가 너무 낮잖아!」

그러면서 특수유탄발사기 조준사격으로 물소 무리의 분열을 저지한다. 각성체 물소들을 겁먹게 만드는 데엔 예광탄과 철갑탄을 혼입한 중기관총 소사보다 35밀리 고속유탄의 폭발 한 번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섬광 번뜩이는 쾅 소리 한 번에 막 갈라지려던 줄기가 다시 본류로 합쳐진다.

지상에선 자연히 아비규환이 빚어졌다. 흑해자당 떨거지들이 소떼를 겨누어 총질을 해댔으나, 알량한 소화기 사격으론 수백 톤의 질량에 붙은 관성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평범한 물소조차 리볼버 사격쯤은 씹어 먹는 마당에’

중국 남부에선 원래 물소에 의한 사고가 흔하다. 도시 근교에서조차 농기계를 대신하는 물소들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일 년 벌이가 2만 위안(한화 약 330만 원)을 넘기면 기적인 농민들이 무슨 수로 값비싼 농기계를 산단 말인가. 고로 이 땅에서 모기와 개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죽이는 동물이 바로 성난 물소였다.

즉 지금 보이는 광경은 공산당의 제국주의적 착취가 있었기에 비로소 잉태될 수 있었던 재난인 것이다.

뿔 달린 검은 짐승들은 인간들의 부질없는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이기고 지나갔다. 전방으로 휘어진 굵은 뿔이 총 든 인간을 들이받을 때마다 피와 모래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어째서 모래가 함께 튀는가 하면, 모래를 두껍게 채운 조끼가 가난한 능력자들의 방어구였기 때문이다. 단시간에 규모를 불린 흑해자당이 무슨 수로 제 패거리 전체에게 질 좋은 방어구를 지급하겠는가. 바이탈 파트의 두께가 반 뼘이 넘는 모래 조끼들은 착용자로 하여금 견착조차 못하도록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부피였다. 한마디로 조준사격이 불가능하다 이 말이다.

‘어쨌든 머릿수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을 테니.’

금속은 비싼 자원이다. 흑해자당은 한정된 자원과 생산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경태야. 대전차 로켓!”

쾅쾅쾅! 내가 예광탄으로 가리킨 표적을 본 경태는 무기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거면 됩니다!」

예광탄과 철갑탄을 튕겨내는 표적은 민수용 SUV 차량에 철갑을 씌우고 포탑을 달아놓은 형태의 나르코 탱크였다. 아니, 여긴 멕시코가 아니니 테크니컬(Technical)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리겠지.

경태는 이 급조 장갑차량을 단 한 발의 유탄으로 무력화시켰다. 투웅- 하고 쏘아진 고속유탄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린 끝에 포탑의 조그마한 외부관측창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전 상에 외마디 경고가 전파된다.

「조심해!」

내부 탄약의 유폭으로, 장갑차량의 포탑이 거의 백 미터 가까이 솟구쳤다. 직경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포탑에 포탄 수십 개 분량의 폭발압력이 집중된 결과였다. 강력한 폭발과 충천하는 화광에 놀란 소떼의 선두가 속도를 줄였으나, 뒤쪽에서 계속 밀어대는 통에 결국 방향만 조금 틀어졌을 따름이었다.

“훌륭한 솜씨였다!”

「감사합니다!」

칭찬을 받은 경태가 탄창을 교환한다. 실력 좋은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 작은 틈으로 유탄을 꽂을 줄이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다. 많이 다뤄보지 않은 화기와 탄종임에도, 몇 탄창 비우는 사이 고유한 탄도 특성을 완벽에 가깝게 파악한 듯했다.

이쪽 방면에서 흑해자당의 공세는 이미 돈좌된 것이나 다름없다. 놈들은 마약 투여한 소떼를 몰아 광저우로 넘어가는 돌파구를 뚫을 작정이었겠으나, 물소 무리의 진로가 남동쪽으로 틀어지면서 북북서로 치고 올라갈 길목들이 마비상태에 빠진 것이다.

물론 우회는 가능하다. 그러나 최단경로를 개척하여 최단시간에 치고 올라오려던 계획은 포기해야만 한다. 동쪽으로 몇 킬로미터만 돌면 여섯 개의 물줄기를 건너 북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경로가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계획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야.’

현재 흑해자당이 동원한 인력의 태반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아니, 훈련은커녕 의무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았을지가 의문일 지경. 그런 무리가 만 단위쯤 되고 보면 작전을 변경하고 전투인력을 재배치하기란 엄청나게 까다로운 일이 되어버린다.

유일한 대안은 치밀한 작전을 세워두고 모든 공세가 차례차례 기계적으로 진행되게끔 안배하는 것.

따라서 적이 새로운 작전을 입안하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전에 계속해서 밀어붙이면, 흑해자당의 지휘체계는 필연적인 마비를 피할 수 없다.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주도권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지상에선 흑해자당의 정예들이 전면에 나섰다. 강철 방패를 앞세워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라서는, 우리가 머무는 하늘을 향해 갖은 화기의 방아쇠를 당겨댄다.

“2번기 이하는 뒤로 빠져!”

적의 화력을 내가 탑승한 대장기로 끌어들이며, 난 위협적인 화기를 든 연놈들을 최우선적으로 격파했다. 직접 격파하기보다는 격파해야 할 표적들의 위치를 예광탄으로 알려주는 것에 가까웠지만.

허나 중기관총 사거리의 한계선 언저리에 웅거한 대공미사일 사수들까지 저지하긴 어려웠다. 엄폐물에 몸을 숨긴 사수들은 발사기의 전원을 켜고는 적외선 탐색기가 냉각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플레어, 준비!”

열 추적 미사일의 적외선 센서를 교란할 수단을 준비시키며, 나는 염력으로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다루어 다수의 좌표를 전송했다.

“콘솔! 전송된 좌표로 화력지원 요청해! 표적, 지대공미사일 사수!”

나를 노려 쏘는 건 괜찮지만 다른 기체들을 노리는 건 위험하다. 한 대라도 떨어지면 그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꼭 내 부하들이 아니더라도, 인근 공역을 맡은 중국 군경의 헬리콥터들이 당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부담이 무거워진다.

콘솔을 다루던 부하가 타자를 두드리고서 몇 초 뒤, 광저우로 이어지는 다리를 지키던 최신예 기갑차량들로부터 다수의 소형 순항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이스라엘의 기술을 훔쳐 만든 이 순항미사일들은 네 쌍의 크고 작은 안정날개를 펼쳐 표적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프로펠러 추진 순항미사일의 착탄보다는 휴대용 대공미사일들의 탐색기 냉각이 더 빨랐다. 가뜩이나 서늘한 바람 부는 계절이 아닌가. 충분히 차가워진 적외선 탐색기는 3초 안에 목표물을 포착할 수 있다. 흑해자당 사수들이 마침내 발사관을 어깨에 얹고 엄폐물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내 귀엔 구형 러시아제 탐색기의 뚜, 뚜, 뚜, 뚜- 하는 전자음이 들리는 듯했다. 수 킬로미터 밖의 살의가 선사하는 흥분에 혈관이 훅 달아오른다.

‘나를 쏴라!’

대장기를 맹렬하게 전진시킨 나는, 사정권으로 들어온 사수들에게 중기관총 사격을 퍼부었다. 쾅쾅쾅쾅! 쭉쭉 뻗어나간 대구경 총탄들이 트리거를 당기기 직전이었던 사수 둘을 잡아냈다. 다음 순간, 전면의 아홉 방위로부터 아홉 개의 발사섬광이 번쩍였다.

“플레어, 발사!”

내 지시에 파일럿이 즉각 반응한다. 파바바박 소리와 함께 헬기 좌우로 밝고 뜨거운 발광체들이 사출되었다. 미사일의 열 추적 센서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하게 찍힐 열원들. 내가 이걸 조금 빠르게 사용한 것은, 다른 방향으로 발사된 미사일들까지 이쪽으로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과연, 뿌연 달빛 아래 로켓 모터가 그리는 하얀 연기의 궤적들이 마치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급격하게 방향을 꺾는다. 아홉 발 중 아홉 발 전부가 나를 겨냥한 충돌궤도에 돌입했다. 난 조종간을 당겨 헬기를 후퇴 상승시키며 생각했다.

‘한꺼번에 쏜 게 잘못이지.’

이건 미사일이 지나치게 구형이라 생기는 문제다. 알 까심의 장인들이 대공미사일까지 찍어내진 못하니 십중팔구는 밀수품으로 들여왔을 터. 밀수시장에 넘쳐나는 북한제 면허생산품이 아닐까 싶다.

사수들로선 나름 머리를 굴려서 가한 일제사였겠지만, 차라리 시간차 공격을 가하여 이쪽의 플레어를 소진시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발사하기도 전부터 미사일의 숫자와 형식을 간파하여 대응하는 초인이 있으리라곤 저편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한 번 더! 발사!”

대장기 양편으로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는 고열의 발광체들이 튀어나간다. 이 정도면 눈속임은 충분하겠지. 난 발화술식을 활성화하여 방금 사출된 플레어에 강력한 열을 더해주었다. 빛 없이 열만 만들어내는 술식이 있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기존의 발화술식으론 플레어를 완벽하게 모사하기가 불가능하다. 마력을 태우는 불에선 연기가 나오지 않으니까.

동시에 나는 헬기 주변 수십 미터에 걸쳐 부드럽게 밀어내는 염동력을 퍼트렸다. 궤도가 휘어진 미사일들은 느리게 떨어지는 플레어를 향해 사납게 돌진했다.

쐐애애애액-!

1초 이하의 시간에 아홉 발의 미사일이 가까운 허공을 연속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만약을 위해 전개한 염동력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한낮에 쏘면 간혹 태양을 향해 직주하기도 하는 멍텅구리 미사일이라 한 발도 빠짐없이 속아버린 것이다.

“워우. 지리는 줄 알았네…….”

경태가 중얼거리는 소리. 날아오는 미사일이 아홉 발이면 아무리 나를 믿고 있어도 철렁할 수밖에 없다. 당장 보이는 광경에 압도당하고 마는 것. 나부터가 혈관에 아드레날린이 확확 번지는 느낌인데,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부하들은 오죽할까.

헬기를 지나친 미사일들은 그대로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표적에 충돌해야 터지는 탄두이니, 연료가 다 떨어지거나 최대 상승고도에 도달할 때까지 비행을 이어갈 터였다.

콰쾅! 콰콰쾅!

이쪽에서 날린 순항미사일들이 이제야 비로소 사수들을 타격했다. 결과는 전탄 명중. 하나하나가 수류탄 대여섯 개 화력에 불과한 소형 미사일들이지만, 탄두에 카메라가 달려있고 수동 조작이 가능한지라 한 발이라도 빗나갈 일이 없었다.

‘됐군.’

하여간 이스라엘의 유대나치 새끼들이 무기 하나는 잘 만든단 말이지. 그걸 복제한 중국 놈들의 솜씨도 솜씨이고.

적에겐 여전히 다수의 대공미사일이 남아있었지만, 이쪽 방면에 배치된 사수들이 떼 몰살을 당했으니 당장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들에게 발사기 조작법을 교육받은 인원이 많을 리가 있나. 작동 절차를 무시하고 쏘면 유도기능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아직 1회분의 플레어가 남아있기도 하겠다, 나는 대장기로 적들의 머리 위를 오가며 중국 군경에게 더 이상 중대한 대공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용기를 얻은 군경의 헬기들이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흑해자당의 저항을 짓뭉갠다.

이로써 이 부근은 혼돈이 완연한 난전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극도로 흥분한 물소 무리가 도로와 거리를 배회하는 가운데, 여기저기 파편화된 흑해자당 세력이 군경을 상대로 무질서한 난전을 벌이고들 있는 것이다. 조직적인 전투보다는 머리가 없는 폭동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었다 하겠다. 그 산발적 폭동들을 군경이 공중과 지상에서 합동으로 제압해간다. 유리한 싸움이 되자 군경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흑해자당이 이 부근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건 아니었다. 일단 물길에서는 저들 지도부의 통제력이 살아있다는 증거들이 보였다.

“콘솔! 강상전단의 592함에 통보! 귀함의 전방 우측 수로와 후방 좌측 수로에 수상한 동태 있음! 고속으로 주행하는 소형선 다수!”

콘솔을 다루는 부하가 내 경고를 초계함에 전달했다. 함선번호 592의 함명은 루저우(泸州). 황포군관학교 옆 해군 정박지에서 보았던 두 척의 초계함 중 하나였다. 경고를 받은 초계함에서 함포가 돌아가고 무장한 수병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진다. 뒤쪽의 헬기 갑판에선 파랗게 도색한 대잠헬기가 이륙을 준비한다. 잠수함을 상대하는 헬기라곤 해도 기본적인 공격수단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소형선들은 양동이란 말이지…….’

적들의 진정한 의도는 각성 능력자들을 동원한 수중 강습에 있었다. 제3세계의 해적들이 전 세계의 바다에서 그 효용을 증명한 원시적인 전술이다.

당연히 해군과 해경 측도 여기에 대비는 하고 있었다. 수중의 마력장 변화를 감지할 능력자들을 소형 선박 일곱 척에 나눠 태워 초계함을 근접 호위하도록 조치한 것. 강의 수심이 깊지 못하므로, 감지범위를 벗어난 수중침투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숫자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버리면 중과부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초계함 후방 멀찍이 떠있는 베크룩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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