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1화 (121/561)

#17. 반역향 (1)

흑해자당과 마오공 연합의 총공세는 신년 전야에 개시되었다.

나는 간이거점 중 하나로 지정된 호텔의 헬기 착륙장 가장자리에 서서 어둠이 내린 도시의 야경을 조감했다. 광저우와 접한 둥관(东莞)의 북쪽 시가지엔 어지러울 만큼 많은 물줄기들이 흘렀다. 폭이 5백 미터를 넘는 굵은 줄기만 셋이고 가느다란 줄기들도 각기 일이백 미터씩은 되며, 그 모든 흐름들이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있는 복잡한 지형이었다. 그중 가장 남쪽에 있는 큰 지류로 진입한 베크룩스는 해경국(海警局)의 정박지와 가까운 곳에서 급유선을 불러 연료를 보충하는 중이다.

본격적인 교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난 시가지 곳곳에서 집단적인 움직임들을 보이는 마력장들을 통해 흑해자당이 드디어 행동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었다.

‘많기도 하군.’

각성한 능력자들의 머릿수가 정말로 많다. 개개인의 능력이야 수준미달이어도 규모의 폭력만으로 군경을 찍어 누르기가 가능할 지경. 형편 모르는 이는 대체 이런 동원력이 어찌 가능한가 싶겠으나, 난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이곳 둥관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난한 농민공들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도시니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중국 제조업의 심장부라 불리던 도시였다. 제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인 고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었고, 공산당이 노동자를 갈아 넣을 맷돌로 정한 경제특구는 고향을 등지는 농민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렇게 모여든 농민공들은 둥관의 제조업이 몰락해버린 지금도 도시 인구의 과반수를 채우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흑해자당이 계속해서 당원을 뽑아내는 기반이다. 자연각성 능력자들은 자신의 마력장을 제어할 줄 모르며, 따라서 같은 능력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존재를 은폐할 능력이 없다. 회로 열린 농민공의 존재를 감지한 흑해자당 패거리가 몰려와 가담이냐 죽음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면, 그 농민공이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 결국 가담하기를 선택할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불황과 빈부격차, 계급차별 등을 이유로 분노가 쌓여있던 참일 테니.

‘그렇게 끌어들여 놓고 돈다발과 선동, 그리고 마약으로 골통을 녹여버렸겠지.’

군경은 공전공사 때처럼 팔뚝의 주사자국으로 가담자를 찾으려 했으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난한 농민공들은 피를 팔아 밥을 사먹기가 일상이었으니까. 이렇듯 굶주림에 쫓기는 매혈(賣血)엔 최소한의 회복 기간조차 없다. 어제 피를 뽑은 자가 오늘 다시 피를 뽑기도 예사인 것이다. 무분별한 채혈이 남긴 자국들은 마약을 주사한 자국들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

“가자.”

야경으로부터 몸을 돌린 난 시동이 걸린 중형헬기에 탑승했다. 상황통제용 데이터 링크 시스템이 탑재된 이 헬기는 가오슈센으로부터 빌려온 지휘권 그 자체였다. 둥관시의 모든 군경 전력에 대하여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이다.

지휘기가 이륙하자 다른 빌딩에서 대기하던 내 부하들의 헬기들도 일제히 출력을 높여 상승했다. 대부분의 간이 거점들은 층을 높게 올린 호화 호텔들이었다.

“데이터는 빼고 있겠지?”

내 물음에 데이터 링크 콘솔을 다루던 부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베크룩스로 전송하는 중입니다.」

“좋아.”

중국 군경이 운용하는 원격 지휘체계의 시스템 구성 및 소프트웨어 데이터는 세상 어디로 가져가든 비싸게 팔릴 상품이다. 일단 한국 국정원과 안보지원사령부부터가 높은 관심을 보일 터. 공산귀족들의 금고를 터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익이겠으나, 그래도 고생한 애들에게 용돈 더해주고도 이윤이 남을 정도는 될 것이다.

원래는 가오슈센이 콘솔을 다룰 인원을 붙여주겠노라 했었다. 우리에겐 생소한 시스템일 테니 훈련받은 오퍼레이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나 실제론 조금도 생소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익숙하게 콘솔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가오슈센은 당황하며 물었다.

“어찌 그리 쉽게 다루시는 거요?”

다른 나라들의 시스템을 베껴다 인터페이스만 간자체로 바꿔놓은 수준인데, 무기밀수시장에서 뼈가 굵은 내가 못 다루는 게 이상한 거지. 그리고 무기체계 개발은 원래 수렴진화가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다. 후발주자들 모두가 선두주자를 모방하는 바닥인 것이다. 모든 스마트폰들이 제조사를 불문하고 기능적으로 유사하듯이, 특정 분류의 무기체계는 개발국을 불문하고 많은 구성요소들을 공유한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군요. 무기 상인으로서의 관록이라고 해둡시다.”

체면을 고려하여 적당히 돌려준 내 대답에, 가오슈센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 오리지널리티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걸 본인도 아는 탓이었다.

‘중국산 무기체계의 설계나 데이터가 인기 있는 이유가 이거지.’

일반적인 국가들 입장에서 러시아나 미국의 기술을 훔치기는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중국이 훔친 걸 다시 훔치는 건 그나마 덜 부담스러운 것이다. 원조 개발국의 추궁을 받더라도 “보세요! 우리는 이걸 중국에서 얻었어요!” 해버리면 되//는 거//니까.

문을 열어놓고 하늘을 날다 보니 헬기 안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헤드셋을 쓴 채 바깥을 유심히 살피던 경태가 눈을 찌푸린다.

「형님. 기체가 영 굼뜨게 움직이는데, 괜찮겠습니까? 과적은 피하는 게 좋지 않았을지…….」

“내가 있는데 매복공격을 걱정하는 거냐?”

「알 까심의 장인들이 뭘 만들어놨을지 모르잖습니까. 4연장 대공포 같은 게 튀어나오면 골치 아프죠. 막는 거야 형님의 염동력 코팅으로 막는다 쳐도, 예광탄 튕겨나가는 불빛들 때문에 너무 티가 나버리니까요. 목격자가 생기면 귀찮아질 겁니다.」

예광탄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탄환으로, 날아가는 자리에 광선 같은 궤적을 그어놓는다. 야간전에선 이 궤적을 보고서 탄이 제대로 꽂히는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깜깜한 하늘을 겨누어 쏘는 대공포의 탄통엔 반드시 예광탄이 들어간다.

“대공포든 뭐든 상관없다. 먼저 보고 먼저 쏘면 그만이지.”

이 지휘헬기엔 본래라면 없어야 했을 한 쌍의 도어 건(Door gun)이 붙어있었다. 좌우의 문 바깥으로 돌출시킨 두 정의 중기관총. 이건 내가 직접 붙잡고 쏘려고 주문한 무장이었다. 시간 여유가 적었던 탓인지 받침대의 용접이 깔끔하지 못하다.

‘언제 일일이 말로 지휘하고 있나.’

적이 어디에 있다고 말로 떠들기보다는, 손수 예광탄 섞인 사격을 꽂아 적의 위치를 알리는 쪽이 빠르다. 예광탄의 밝은 궤적이 적의 주의를 끌기도 하겠지만, 그 정도 위험은 감수 가능한 범위다.

추가로 관측 지점의 GPS 좌표를 뽑아주는 휴대형 레이저 거리측정기도 있다. 바라보며 버튼만 누르면 표적의 위치정보를 자동으로 송신해주는 장비다. 그러나 가시성과 즉응성 면에서 기관총 사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여차하면 갈길 다른 중화기도 많은 수를 실어놓았다. 고속유탄기관총이나 대전차로켓, 대물저격총, 연사 기능은 없을지언정 장거리 명중률이 높은 반자동 특수유탄발사기 같은 것들. 이 중 고속유탄기관총의 경우 본체 무게만 15킬로그램에 달하나, 나나 경태가 손으로 들고 쏘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이렇듯 헬기의 남는 공간을 무기와 탄약으로 가득 채우다시피 해놓은 터라, 그 무게에 비례하여 헬기의 움직임이 둔중해졌다. 보급에 따른 지휘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작부터 재수 없는 소릴 하긴 저어되지만-」

특수유탄발사기를 든 경태가 볼을 긁으며 묻는다.

「만에 하나 헬기가 격추당하더라도 형님께선 다치지 않으시겠죠?」

“…….”

이거야 원. 내가 항상 존재감을 감춰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경태와 같은 최측근조차 대마법사로서의 내 역량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너희 모두를 보호해줄 수 있다. 날 제외한 전부가 뼈마디 몇 개 부러지는 정도는 각오해야 하겠지만.”

내 대답을 들은 경태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그럼 됐습니다. 저희야 어쨌든 간에 형님께서 안 다치실 거라니 마음이 놓이네요.」

저희야 어쨌든이라니. 이 녀석들을 다 잃게 될 상황에 처하면, 내 존재가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력회로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편이 이익일 것이다.

여차하면 추락을 지연시키거나 궤도를 비틀어버릴 수도 있다. 공중에서의 나는 지상에서보다 마력장 전개가 자유로우니까.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양력을 염력으로 대신하면 그만. 바꿔 말해, 보는 눈이 없다면 이 헬기는 엔진이 멎어도 추락하지 않는다.

‘회전익이 무사하다면 더더욱 그렇지.’

회전 날개가 파괴되지 않는 한 헬기는 마법적인 도움 없이도 비상착륙이 가능하다.

“이제부터 조향은 내가 맡겠다.”

이는 미리 이야기를 해둔 바다. 내 말에 조종석의 부하가 조종간을 붙잡은 손에서 힘을 뺀다. 난 염동술식을 활성화하여 보이지 않는 힘으로 조종 스틱을 휘감고, 나아가 같은 힘을 헬기 동체 전반에 퍼트렸다. 고도의 염동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각기관과 같아, 헬기의 움직임은 곧 내 의지에 정교하게 종속되었다.

‘예상대로, 정신 산만하긴 해도 못할 짓은 아니군.’

집중이 필요할 땐 조종을 다시 파일럿에게 넘겨버릴 요량이다.

이렇게 하늘을 날고 있으려니 북미에서 멧돼지를 쫓을 때가 떠오른다. 헬기의 수는 그때보다 세 배나 많고, 사냥감의 수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지경이긴 하지만.

나는 마침내 첫 표적을 겨누어 도어 건의 발사 트리거를 눌렀다.

쾅쾅쾅쾅쾅!

터보샤프트 엔진의 구동음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총성. 굵은 총구에서 주홍빛 파괴적인 광선들이 뿜어진다. 멀어질수록 점으로 수렴하는 광선들은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을 뚫고 그 아래의 차량과 인간들을 두들겼다.

----!

날벼락을 맞은 연놈들이 들리지 않는 아우성을 친다. 운전석을 차지한 놈들이 뒤늦게 차량에 시동을 걸어보지만, 이미 늦었다.

「2번기, 가세하겠습니다.」

「3번기, 가세하겠습니다.」

현대의 헬기는 옛 기병의 적통이다. 사냥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부하들에게 스웜(Swarm) 전술을 주문했다. 흩어져서 움직이다가 공격 시에만 뭉치는 방식. 좌우를 점한 두 대의 헬기가 추가 화력을 더하면서, 지붕 아래 숨어있던 무장차량 대부분이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변해버렸다. 원래 있던 열 대 중 문 밖으로 벗어나기라도 한 건 단 두 대뿐. 그나마 한 대는 정신없이 엑셀을 밟아대다가 벽을 들이받고 말았다.

콰쾅!

찌그러진 무장차량이 기어코 폭발을 일으킨다. 적재하고 있던 탄약에 예광탄 세례가 작렬한 탓이다. 살아남은 최후의 한 대는 후방의 사수가 악을 쓰며 무기를 돌리는 중이다. 하필이면 경태가 경고했던 4연장 대공포. 그러나 크랭크 핸들을 수동으로 돌려서 하는 조준이 빨라봐야 얼마나 빠르겠는가. 사수는 곧 무지막지한 교차사격에 맞아 양방향으로 터져나갔다. 이 시점에서 운전석은 진행방향을 차단한 5번기의 사격에 노출되었다. 운전자는 꼴에 각성한 능력자랍시고 무거운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한 발 한 발에 근 2만 줄(J) 가까운 힘이 실린 대구경탄 연사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따다다다다닷!

반격탄이 날아든다. 건물과 골목마다 숨어있던 흑해자당 무장인원들이 하늘에 대고 총을 갈겨대기 시작한 것. 자세는 엉성하고 조준은 형편없다.

그럼에도 숫자가 많다 보니 몇 발쯤은 헬기 동체를 치고 튕겨나가기도 한다. 허나 헬기 동체 표면에 바깥 방향으로 작용하는 염동차장을 둘러두었기에, 소구경 개인화기로 짠 화망 따위로는 이 헬기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마력장을 넓게 펴도 무방한 환경의 장점이다.

난 잡다한 반격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보다 효과적인 표적이 있었으므로.

쾅쾅쾅쾅!

발광하는 사선이 버려진 공장을 두들긴다. 쇠락한 제조공장 내부엔 흑해자당이 심혈을 기울여 긁어모았을 각성체 물소 수백 두가 갇혀있었다. 군경을 끌어들인 다음 한꺼번에 풀어놓을 작정이었을 터. 중기관총 소사(掃射)에 놀란 소들이 집단으로 광란을 일으킨다. 낡은 기계들을 칸막이 삼고 철골을 용접해서 만든 우리는 그 광란의 압력을 오래 견뎌내지 못했다.

중앙 통로에 마약과 주사기를 쌓아놓은 채 때를 기다리던 무장 관리인들은, 우리를 부수고 나온 물소 수컷 단 한 마리의 질주에 직선으로 쓸려나갔다.

“사격 중지!”

내 한마디에 지원사격을 가하던 다른 기체들의 사격이 뚝 끊어진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진 검은 물소들은 커다란 뿔로 사방팔방을 들이받아 마침내 폐공장의 일각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뭉글거리는 먼지구름을 뚫고 나온 수백 톤의 생체질량들이 불 밝혀진 도로와 거리를 따라 폭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