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20화 (120/561)

#16.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13)

중국이 광저우로 보낸 건 기갑차량만이 아니었다. 오늘을 기하여 광저우의 바깥 경계엔 엄청난 숫자의 드론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충전 및 제어 플랫폼 역할을 하는 대형 풀 카고(Pull Cargo) 트레일러 차량 수십 대가 도로를 달리며, 그로부터 발진한 감시 드론들이 파괴된 CCTV들의 빈자리를 가변적으로 메꾸도록 한 것이다.

출항을 앞둔 베크룩스의 갑판에서 보이는 드론의 수만 마흔여섯 기에 이른다. 난 작은 멀티콥터(Multicopter)들의 조직적인 비행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축차투입을 피하고자 힘을 모으고 있었다곤 해도, 저렇게 대대적인 드론 운용체계가 단시간에 뽑혀 나왔을 린 없지. 일찌감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두었던 시스템이겠군.’

딱히 놀랍지도 않다. 제국주의자들의 공산당은 그간 민중반란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왔을 테니까.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도 축소판 정도는 시나리오를 세워두었을 법하다. 시나리오가 있다면 거기에 걸맞은 대응 전략과 장비개발이 뒤따르는 게 정상이고.

반도체 공급이 부족할 텐데 잘도 이만큼을 찍어냈구나 싶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드론 하나가 추락에 가까운 포물선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진짜 추락은 아니다. 나는 기체 내부에 충전된 화약의 색채를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지상에선 기다란 투창들이 매서운 기세로 솟구쳤다.

투창기(投槍器/Spear Thrower)를 활용한 투창은 각성한 능력자의 힘에 힘입어 놀라운 탄속을 보여주었다. 눈대중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시속 삼사백 킬로미터를 넘나드는 느낌. 가장 빠른 투창의 속도감은, 막 던져진 직후에 한정하여 옛 소련제 대전차로켓(RPG-7)의 포구초속에 버금간다.

여기에 투사체의 중량 역시 일반적인 투창을 상회하는지라, 맞기만 하면 드론이 아니라 어지간한 공격헬기의 조종석 방탄유리마저 관통할 듯하다.

‘그렇다고 공격헬기를 사정권에 두는 건 자살행위가 되겠지만.’

던지는 사람이 아무리 초인이라도 투창의 유효사거리는 수백 미터를 넘을 수 없다. 그에 반해 공격헬기는 기본 무장인 기관포의 사거리만 킬로미터 단위다. 명중률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지경. 오직 눈과 감각에 의지하여 던지는 창과 열상장비 및 사격통제장치로 조준을 보정하는 기관포를 어찌 비교한단 말인가. 초인의 감각이 상궤를 벗어난다 한들 최첨단 군사 장비를 능가하긴 어렵다.

다만 이 콘크리트의 숲에서처럼 시설파괴 및 민간인 피해에 주의해야 하는 전장에선 공격헬기의 효용이 격감한다. 창을 던지는 능력자에게 환경적 우위가 부여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방향을 주시하던 경태가 감탄성을 흘렸다.

“와. 저걸 기어코 맞추네.”

하강하던 자폭 드론이 투창에 맞아 박살났다. 추력 불균형으로 괴상한 나선을 그리며 추락한 무인기는 지상에 닿자마자 수류탄 대여섯 발에 해당하는 위력의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연기가 솟구친 후 간격을 두고서 쿵- 하는 울림이 밀려온다. 이에 반응하듯 다른 드론들이 고도를 높여 안전권으로 물러났다.

우우웅-

품속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꺼내어보니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발신자는 카지노의 하얀 추장. 난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서 통화를 연결했다.

“납니다.”

「오, 회장.」

오랜만에 듣는 추장의 음성은 그 사이에 강산이 바뀌었나 싶을 만큼 쇠약하게 변해있었다.

「그대에게 인사를…… 또 한 번의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전화를 드렸소.」

지난 성탄절에 카지노의 후계자는 결국 자신의 할아버지를 내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장차 부족의 성산 와우 키울릭을 되찾으려는 자신의 계획이 조부의 건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나는 제 조부를 부탁하던 마샤트의 무거운 음성을 기억한다.

“별것 아닙니다. 시설은 마음에 드시는지?”

「물론이오.」

말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듯 느릿느릿하게 돌아오는 답변.

「아주…… 좋소. 병실은 깨끗하고, 간병인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친구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염치가 없긴 하지만…… 침략자들에게 치료를 받을 적보다…… 마음이 편하구려…….」

건강할 때라면 나오지 않았을 지나치게 솔직한 말들. 이 노인네가 오늘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군.

“염치 같은 말은 입에 담지 마십시오. 친구를 돕는 일은 나의 즐거움입니다. 추장께선 그저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만 전념하시길. 당신이 없으면 누가 부족의 어려움을 돌보겠습니까? 부패한 자치정부가? 아니면 저 압제자들의 정권이?”

「고마운 말씀이오마는…….」

하얀 추장이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빼어난 전사라도…… 세월과 싸워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오……. 이렇게 늙고 쇠약해진 내가 부족의 원로입네 행세하는 것은…… 진정으로 부족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교만에 사로잡힌 늙은이의 욕심과 아집이 아니겠는가 싶소…….」

“결국 은퇴를 하시려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그나마 사리판단이 가능할 때…… 뒷일을 확실히 해두어야…… 부족에 혼란이 없지 않겠소……. 부족을 위해서나…… 손녀딸을 위해서나…… 지금 자리를 정리하고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드오…….」

이 대목에서 통화 상에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섞였다.

“옆에 마샤트 양이 있는 모양이군요. 오늘 한국을 뜬다고 들었는데, 아직은 병원을 떠나지 않았나봅니다.”

「착한 아이요……. 이 할애비 걱정에 발길을 떼지 못하는 게지…….」

또 한 번의 한숨을 내쉬는 추장.

「회장……. 당신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자…… 부족의 은인이고…… 우리 카지노 최고의 고객이기도 하오……. 그런 당신의 지지와 믿음은…… 내 손녀가 자리를 굳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외다…….」

감사인사보다는 이쪽이 본론이겠군.

“정치적 후견인 노릇을 해달라는 겁니까?”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만…… 크게 번거로울 일은 없을 게요……. 마샤트에겐 약간의 권위가 부족할 뿐이니까…….」

“조금은 번거로워도 상관없습니다. 그 정도는 여전히 우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이니.”

「고맙소. 진심으로……. 회장이 이런 사람임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오…….」

“별말씀을.”

고맙다는 소리는 내가 해야지. 노쇠하여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말만 듣고도 눈물짓는 손녀에게 있어, 조부가 지금 내게 건네는 말들은 일종의 지침이자 유언과도 같을 테니. 너는 어려울 때 이 사람에게 의지하도록 하거라, 라는.

“마샤트 양에게 전해주십시오. 부족 사람들 가운데 건강이 많이 나쁜 사람이 있다면 몇 명쯤은 더 보내도 무방하다고. 타향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말벗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라고.”

사막의 사람들 사이에 돌 나에 관한 미담은 많을수록 좋다. 큰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서도 꾸준히 내 존재감을 상기시킬 방법이 있는데 쓰지 않을 이유가 있나.

어디선가 아스라이 총성이 들려온다. 그럼에도 강변에 드문드문 보이는 시민들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앞서 거쳐 온 멕시코나 오클랜드와 같이, 총격전은 이 도시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람은 적응력이 좋은 동물이다.

「방금 총성을 들은 것 같소만…….」

“일을 하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위험한 곳에 계시는 게요?」

“내 본업은 죽음의 상인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소이다.」

추장이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바쁘신 듯하니 시간을 더 빼앗지 않겠소……. 보중하시구려…….」

“다음에 다시 통화하지요. 그때는 건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친구.”

그럼 이만.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잠시 후 베크룩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두와 거리를 벌린 배는, 함체에 부딪히는 물살과 측면으로 작용하는 보우 쓰러스터의 추력에 힘입어 거의 제자리 회전에 가깝게 180도 방향을 전환했다. 함교에 배치된 인력이 오랫동안 밀수항해에 종사해온 베테랑들이다 보니, 배의 조향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순류를 타게 된 베크룩스는 여전히 부두에 묶여있는 용핑(永平)호 곁을 지나 동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용핑호의 상층 갑판에선 일군의 위구르인들이 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내가 메리옘 바투르 이하의 그룹에게 내어준 특권 아닌 특권이다. 원래는 보는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선체 외부 활동을 금해두었었지만, 메리옘 그룹은 숫자가 그리 많지도 않고 이슬람의 복식을 고집하지도 않으니, 타고 있는 배도 여객선이겠다, 중국인들의 눈에 띈다 한들 그냥 외국인인가 보다 할 터였다.

부두를 떠나는 베크룩스를 본 메리옘 그룹은 어째서인지 안색들이 하얗게 질렸다. 잠시 생각해본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버리고 떠날까 봐 겁을 집어먹은 건가.’

무슨 외출하는 주인을 보는 애완견들도 아니고……. 베크룩스의 움직임을 따라 갑판 후미에 몰려서는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새가 어이없기까지 하다.

“경태야. 저쪽으로 무전을 연결해봐라.”

“저쪽이요?”

내 시선을 좇은 경태는 아, 하고는 주파수를 맞춘 무전기를 넘겨주었다. 무전기를 쥔 나는 용핑호 상층 갑판을 호출했다.

“거기, 메리옘 바투르 바꿔.”

상층 갑판을 통제하던 부하들 중 하나가 메리옘에게 무전기를 건네준다. 메리옘이 부하의 손짓에 따라 흠칫거리며 무전기를 귀에다 가져다 대기에, 난 거두절미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나는 돌아온다. 괜한 걱정 말고 조용히 기다리도록.”

무전기 조작법을 몰라 허둥거리던 메리옘이 잠시 후 발신 버튼을 누르고 질문을 던져왔다.

「권능을 허여하는 분이시여, 혹시 위험한 곳으로 가시는지요?」

“아마도. 그러나 너희가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 군요.」

내게 세례를 받은 배교자는 몇 호흡의 공백을 두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귀하신 분을 믿습니다. 당신께선 심판자이시며 죽음을 가져오는 자이시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닐 것입니다. 영광을 누리고 돌아오소서.」

심판자와 죽음을 가져오는 자는 권능을 허여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알라의 아흔아홉 다른 이름들 중에서 골라낸 표현들이었다. 내 부하에게 무전기를 돌려준 메리옘이 제 동생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멀어지는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어 그룹 전체가 일제히 메리옘의 예를 본받는다.

‘어떻게 망설이거나 머뭇대는 인간 하나가 없군.’

연극이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아무리 세속적인 무슬림이라도 저런 연극을 할 순 없으니까. 동생들의 상태에 대한 메리옘의 절박한 진술은, 아무래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증언이었던 모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메카를 향해 엎드리던 무슬림들이 오늘은 나를 향해 엎드리다니. 이 변화가 단 하루 만에 일어났다는 게 핵심이었다.

어쩐지 한숨이 나온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저들에게 회로도 열어줘야 하고, 나머지 그룹들도 순서대로 면담을 해봐야 하고, 조직의 사무도 돌봐야 하고, 틈틈이 그간 수집한 코드들을 연구하면서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갈고 닦는 동시에 인간 사냥과 군자금 마련에도 앞장서야 하고…….

그저 생존을 도모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이 드나.

베크룩스에 속도가 붙으면서 배교자들이 엎드린 갑판이 빠르게 멀어졌다. 강상(江上)을 오가는 선박의 숫자는 우리가 처음 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던 때에 비해 체감이 될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강변의 해군기지엔 중국의 신형 초계함 두 척이 현을 맞댄 채 계류되어 있었다. 중국이 스플래틀리 군도의 영유권을 두고 대만, 베트남, 필리핀 등의 약소국들에게 행패를 부릴 때 주로 내보내는 함급이다. 두 척 모두 수병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출동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수십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시가지에 초계함을 투입한다면 흑해자당의 이동과 결집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재미있게도, 이 해군기지 외곽엔 과거 국민당이 세운 황포군관학교가 존재했다. 장제스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인재를 길러내던 교육시설. 식민지 조선의 무장투쟁 계열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이 학교의 신세를 진 자들이 많았다.

요컨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던 자들의 사관학교와 제국주의자들의 해군기지가 한자리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제국주의자들의 공산당은 하나의 중국을 운운하며 국민당의 군사학교를 자기네 사적지로 지정해놓았다. 이 어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이런 풍경들을 지나, 베크룩스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나아갔다. 이번 사냥의 마지막 고비가 될 싸움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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