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18화 (118/561)

#16.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11)

내 역할수행에 만족한 가오슈센은 나를 현장지휘소와 가까운 가설부두로 이끌었다. 베크룩스를 대어놓은 부두와는 또 다른 장소. 이곳에선 배수량이 2만 톤쯤 되어 보이는 로로선(RO-RO) 한 척이 줄줄이 기갑차량들을 내려놓는 중이었다. 그동안에는 그렇게나 받기 어려웠던 인력 및 장비지원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광경이었다.

가오슈센이 말했다.

“중앙당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오. 일시적으로나마 무장경찰의 지휘권까지 내게 주겠노라고. 그러니 포산과 둥관 양면에서 가해지는 흑해자당의 압력을 어떻게든 버텨내라고. 포산 공안국 및 둥관 공안국 역시 한동안 내 지휘에 따르기로 했소. 일종의 특별공작조(태스크 포스)가 구성된 셈이지.”

무장경찰은 공안과 제도적으로 분리되어있는 준군사조직으로서, 말이 경찰이지 실제론 군대나 다름없는 집단이다. 공안에 이어 무장경찰의 지휘권마저 몰아주었다는 건 중앙당이 가오슈센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내게 굳이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부두에서 눈을 뗀 내 물음에 가오슈센이 긴장감 어린 미소를 짓는다.

“동사장께 선물을 좀 드릴까 해서.”

“선물이라면, 저 장비들 중에서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비록 지금이야 반역도당 사냥에 공을 들이고 있을지라도, 동사장과 무명회사의 핵심 사업은 어디까지나 무기밀수이지 않소? 우선은 보급계통에 장난을 쳐서 탄약을 먼저 빼돌리고, 도시가 지금보다 더 안정된 후엔 손망실 처리로 장비 자체를 가져가게끔 해드리리다. 어떻소, 내 제안이?”

“나쁘지 않군요.”

계산적인 호의였다. 일단 나라의 재산으로 선심을 쓰는 것이므로 본인이 지는 부담이 없다시피 하고, 무기 인도가 실제로 가능해질 즈음까지 살아남은 가오슈센에겐 사소한 말썽쯤 가볍게 묻어버릴 권력이 있을 테니까.

광둥 삼합회의 지도부를 쓸어버리고서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은 것도 자신감의 한 근거라 하겠다. 삼합회가 쥐고 있던 밀수라인이 가오슈센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저 중에 무엇을 내어주시겠습니까?”

“저것들이오. 저기 있는 세 대.”

“……러시아제로군요.”

“그렇소.”

가오슈센이 내게 주겠노라 제안한 건 세 대의 러시아제 자주박격포(Нона-С)였다. 박격포라곤 해도 직사가 가능하고, 압연강판을 600밀리까지 관통하는 직사 전용 포탄마저 존재한다. 방어력이 약한 건 흠이지만, 그만큼 무게가 가벼워 범용성이 높았다.

나는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저것들을 여태 폐기하지 않았다니.’

어느 분야라고 그렇지 않겠느냐만, 무기개발 분야에서 중국은 기술 도둑질로 악명이 높은 국가다. 그리고 그 도둑질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가 바로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였다. 어떤 무기를 아주 조금씩만 사다가 꼼꼼하게 분해해서 역설계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역설계를 안 하는 나라는 없지만 중국은 도가 지나치게 뻔뻔했다.

이런 일이 자꾸만 반복되자, 분통이 터진 러시아는 중국에 대하여 더 이상 소량으로는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그럼에도 중국은 어떻게든 러시아 무기를 입수해서 복제품들을 찍어냈다. 지금 말이 오가는 자주박격포도 본디 기술을 훔칠 요량으로 들여왔던 것. 중국이 이 자주박격포에 대한 구매의사를 타진했을 당시, 벌써 여러 차례 욕을 보았던 러시아는 살 거면 백 대 이상을 사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괜한 돈을 쓰기 싫었던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기어코 소량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쪽 업계에선 꽤나 유명한 일화.

그러한 기술 도둑질의 물증을 실전에까지 투입하는 알뜰함은 참으로 염치가 없는 것이었으나, 가짜 공산당의 제국주의자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양심을 버린 인간들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것까지 꺼내 써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도 되겠고. 짐작컨대 원래는 외국에서의 공작에 쓰고자 보관하고 있었던 물건들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기계적인 고장이 발생할 경우 수리할 부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지.’

가오슈센 입장에선 한 번 쓰고 버릴 물건들로 생색을 낸 셈. 그나마도 나에게 양도할 때까지 멀쩡하게 남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내게 선물을 건네는 공산귀족의 속내엔 타산적인 계산 하나가 깔려있을 터였다. 기왕 얻은 밀수라인에서 장차 수익을 창출해보겠다는 계산이. 말하자면 시장 진입을 엿보는 신규사업자가 대형 유통업자에게 보내는 인사치레라 하겠다.

이 인간이 지금 나라 밖으로 돈을 못 빼내서 안달이 나있을 건데…….

나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요구했다.

“기왕이면 저것도 하나 얹어서 주시지요.”

“으응?”

내 손끝을 따라 눈길을 옮긴 가오슈센은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아니 되오. 너무 엄청난 것을 요구하시는구려.”

내가 달라고 한 건 몇 대 안 되는 최신예 기갑차량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정부가 미래전에 대비하여 개발한 신무기로서, 자세한 데이터만 얻을 수 있어도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군침을 흘릴 법한 고급 상품이다.

지난날 경태는 이 기갑차량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평가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같은 느낌이네요.”

기관포, 기관총, 대전차-대공 겸용 미사일, 다목적 소구경 유도로켓, 정찰 드론과 소형 순항미사일, 원격 유탄 투사기까지 한 차량에 다 때려 박아놓았기에 나왔던 평가다.

“대가는 넉넉하게 지불하겠습니다.”

내 말에 가오슈센이 다시금 손사래를 친다.

“대가가 문제가 아니올시다! 러시아제는 가지고 나가다가 걸려도 내 힘으로 어찌어찌 무마할 수 있겠지만, 저것들은 위에서도 최대한 아껴가며 신중하게 쓰라고 신신당부한 물건들이란 말요. 존재 자체가 우리 중국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무기체계라고…….”

“안 걸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백분지백(百分之百/백 퍼센트) 안전한 밀수가 어딨겠소?”

“배 아래에다 매달아서 가져가면 됩니다.”

“뭐라고?”

“쇠사슬로 묶어서 배 아래에 매달아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

공산귀족의 낯짝에 깊은 혼란이 떠오른다.

“저기, 그러니까, 저 첨단 장비를 바닷물에 담가가지고 끌고 가시겠다고? 평범한 자동차조차 바닷물에 한 번 침수되고 나면 폐차를 시켜야 하는 마당에?”

“염려 놓으십시오. 선례가 있는 일이니. 백 퍼센트 안전한 방법이라곤 못하겠지만, 일반적인 수색으로는 절대로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선복(船腹) 아래 수중용접으로 고리를 붙여서 사슬을 엮어놓은 걸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입니까?”

“…….”

이 수법의 선구자는 의외로 한국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현지에서 쓰라고 준 장갑차를 선박 아래 매달아 한국으로 밀수했던 것. 방청도색에 더해 점성이 높은 윤활유(Grease)를 구석구석 처바른 뒤 방수포를 덮어씌워 사슬로 묶으면 된다. 뭣하면 배기구 등을 용접으로 막아버리는 방법도 있고.

물결 아래로 화물을 운반하는 수법 자체는 유서 깊은 것이지만, 바닷물 속 장갑차는 콜럼버스의 계란과도 같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게 된다고? 같은 느낌의.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일임에도 지금껏 간간이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아무튼 불가하오!”

공산귀족이 애처럼 도리질을 친다.

“저건 원래 국경으로 가야 할 것들이 이쪽으로 빠진 거란 말요. 전군을 통틀어도 수량이 많지 않은 물건이니 함부로 욕심을 내기 어렵소이다. 자칫하다간 이제껏 일궈놓은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겠지!”

“유감이군요. 부서기께서 그렇게까지 곤란해하시니 포기하는 수밖에.”

나는 끈덕지게 매달리지 않았다. 스파이 짓을 한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곤란하기도 하거니와,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한 요구를 철회했으니 이제 현실적인 요구를 할 차례. 내가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가오슈센은 이어질 요구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었다.

이후 가오슈센과 한바탕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난 세 문의 러시아제 자주박격포에 더해 섭섭하지 않은 양의 중화기들을 추가로 약속받을 수 있었다. 대가는 해외의 익명 계좌로 들어갈 소정의 현금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백만 달러로 1년을 생활하기 어렵다 하는 자식을 해외에 두고 있는 인간이니, 그 초조함을 이용하면 당분간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재고를 쌓아놓을 수 있을 듯하다. 운이 따라줄 경우 아까 거래를 거절당한 최신예 기갑차량에 대해서도 데이터쯤은 받아낼 법도 하고. 이러한 데이터는 까다로운 거래선을 뚫어주는 열쇠로 쓰기에 좋았다.

줄다리기를 끝내고 잠시 말이 없던 가오슈센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우선은, 박 여사 말이오.”

미주 이야기다.

“동사장의 허가를 받았다기에 직접 흑해자당 패거리를 심문할 수 있게 해주었소만, 그 본심이 흑해자당 소탕보다는 죽은 서 노형(老兄)의 복수에 있는 것 같더구려. 심문이 편향되었다는 게 아니라 느낌이 그랬다는 말이지만……. 어쨌든 진짜로 동사장의 허가를 받은 게 맞소이까? 혹시나 독단행동일까 봐서 확인차 물어보는 거요.”

“맞습니다.”

일을 크게 망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수를 추구할 권리. 이것이 미주가 일전에 내게 지기로 한 더 무거운 빚의 정체다. 나 역시 거기에 가능한 한 손을 보태주기로 약속했고. 그러니 따로 허락을 받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셈이다.

“그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내가 반문하자 어째선지 조금 아쉬운 티를 감추던 공산귀족이 얼른 부인했다.

“아니오, 아니오. 흑해자당을 싹 다 죽여 버리면 따로 원수를 찾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긴 하오만, 복수로 원한을 씻는 일(报仇雪恨)은 사람의 당연한 도리이지.”

체면을 중시하며 복수를 미덕으로 여기는 중국인다운 말이다.

크흠. 가오슈센은 괜한 헛기침을 하고서 머뭇거리며 다음 질문을 꺼냈다.

“동사장께서는 그, 내가 박 여사와 맺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뭐지, 이 개소리는?

“지금 나더러 접대를 지시해달라는 겁니까?”

눈살 찌푸린 내 음성이 서늘했던지 가오슈센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나는 박 여사를 존중하오. 그녀를 무시하는 건 죽은 서 노형을 무시하는 것과 같지.”

“그러면?”

“이 가오슈센이 바라는 바는 보다 진지한 관계올시다. 박 여사의 마음을 얻는 것도 내 능력으로 이뤄야 할 일이지. 다만 그러한 내 시도가 혹여 동사장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스러워 미리 허락을 구해두려는 것뿐이었소.”

“왜 그 녀석입니까? 인터넷만 들어가도 얼나이(二奶)를 꿈꾸는 대학생들과 샤오싼(小三)이 되고 싶은 미녀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얼나이는 평범한 첩이고 샤오싼은 아내보다 사랑받는 첩이다. 공안국의 실세쯤 되고 보면 언제라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인을 얻을 수 있었다.

가오슈센이 얼굴을 붉혔다.

“박 여사는 지천에 널린 그런 천박한 여자들하고는 다르오. 서 노형이 수류탄 위로 몸을 던졌을 때 박 여사는 두 팔 벌려 그 호리호리한 몸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더랬지. 덕분에 내겐 작은 파편 하나조차 튀지 않았소. 나는 그 정도의 헌신을 내 아내로부터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오.”

“…….”

“그래도 여자로서의 매력은 크게 느끼지 못했었지만…… 요번에 흑적(黑贼)들을 손수 심문하는 모습을 보고, 음, 참으로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소이다. 마치 젊은 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지.”

흑적, 즉 검은 도적이란 흑해자당을 달리 일컫는 경멸적인 표현이었다.

“내가 원래 서른이 넘은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여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었소마는, 가죽 장갑을 끼고 쩍쩍 소리가 나도록 반동분자를 두들겨 패는 박 여사의 모습은, 정말이지,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볼에 달라붙고 그 위로 다시 붉은 피가 튀었는데, 주먹질을 할 때마다 오금이 찌릿찌릿해지는 것이-”

“그만. 거기까지. 일단 진심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역겨운 진심이라도 진심은 진심이지. 어린애들에 대한 페도 새끼들의 사랑고백에도 진심이 녹아있는 것처럼. 더 들어주기가 고역이었던 나는,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공산귀족의 회상을 잘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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