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7)
“때로는 기름을 먹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입 안으로 들어온 걸 처음 삼켰을 땐 몸과 영혼이 다 더렵혀지는 것 같아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결국은 여기에도 적응하게 되더군요. 마침내 스스로의 의지로 입술을 핥았을 때,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이 말을 내뱉는 순간의 메리옘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주 값비싼 고문을 받았군.’
돼지기름 자체는 비싼 재화가 아니다. 그러나 수도세와 전기요금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고문은 호화로운 고문이라 할 만했다. 하물며 그게 낙후된 내륙 변방에서의 낭비임에야. 외모가 수려한 수인 하나에게 이만한 공을 들였다면 그 목적은 듣지 않아도 알 만큼 뻔한 것이었다.
“알라의 진실한 종을 자처하며 한족보다 동포를 더 못살게 구는 자들은 이렇게들 말합니다.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자는 40일간 영혼이 더러워진다고. 저속한 말을 해도 40일, 음란한 것을 보아도 40일, 술을 마시거나, 기도를 빠트리거나, 감사기도를 올리지 않고서 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자가 요리한 음식을 먹어도 모두 40일씩…….”
여기까지 진술한 메리옘이 자조적으로 묻는다.
“그렇다면 돼지기름을 핥고서도 그날마다 기도로써 참회하지 못했던 제 영혼은 앞으로 몇 년 뒤에나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까요? 죽기 전에는 가능한 일인 걸까요? 이토록 더러워진 몸과 영혼으로 어떻게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요?”
“뭐 그런 잡것들의 개소리를 신경 쓰고 있소? 스스로를 근본주의자라 칭하는 연놈들은 대부분 어느 누구보다 근본이 없는 것들이지. 비록 내가 불신자이기는 하오만, 내 기억이 맞다면 쿠란에도 원치 않게 먹은 돼지고기는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적혀있을 텐데.”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만을 경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에는 죄악이 아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신 분이니라.」”
“내가 기억하는 게 바로 그 구절이오.”
“……유감스럽게도 동포들은 그렇게 이해심이 깊지 않았지요. 저는 기름부음을 받은 채로 같은 수용소의 동포들 앞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동포들은 절 더러운 것으로 여겨 뒷걸음질을 치기에 급급했습니다. 누구도 저를 가엾게 봐주지 않았었죠.”
마음에 여유가 없는 군상이란 다 그런 식이지. 교육수준마저 낮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던 어느 하루, 동포들 가운데 하나가 저를 손가락질하며 우리들의 언어로 외치더군요. 저기에 변절자가 있다고. 그는 감히 위구르어를 썼다는 이유로 한인 간수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수용소의 동포들 사이에선 용기 있는 자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대급부로 저는, 소명할 기회 한 번 없이 완전한 변절자로 낙인찍히고 말았죠.”
“혹시 그 손가락질을 한 자가 알림 샤히디요?”
질문을 받은 메리옘은 우울하게 끄덕여 긍정했다.
‘납품일자의 간격이 커서 설마 싶었는데.’
후롱방주의 장부를 보건대 메리옘 바투르와 알림 샤히디의 수령 및 납품일자 사이엔 3년이 넘는 간극이 존재했다. 수용소의 ‘교육기간’이 1년이므로 나는 둘이 서로 다른 기수에 속하리라 짐작했었다. 1년이 지난 ‘교육생’은 보통 셋 중 하나의 결말을 맞이한다. 우수생으로서 풀려나거나, 상품으로서 팔려나가거나, 낙제생으로서 죽어나가거나.
물론 상품으로서도 반드시 살아서 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내장이 귀하기 때문이다. 상품분류는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삼는 적자생존의 관문이었다.
그렇다면 알림에게도 나름 비범한 구석이 있다. 먼저 팔려나온 메리옘과 달리, 알림은 그 뒤로 몇 년이나 더 수용소 생활을 했다는 뜻이니까.
그쪽도 낯짝이 상등품이긴 하다. 허나 생김새가 귀하다는 이유만으로 수년간 더 공을 들였을 린 없으니, 친족 중에 사회적 명사가 있다거나 잠재적 위험분자가 있다거나 할 확률이 높았다. 결국엔 팔려나온 걸 보면 그 쓸모도 과거의 이야기일 테지만.
내가 물었다.
“메리옘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낙인찍힌 뒤엔, 평소에 못 보던 간수나 수용소장 같은 인간들이 당신을 따로 불러내어 친절을 베풀었겠지? 한동안은 위구르인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다가, 나중엔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느냐는 식으로 회유를 했을 것 같은데.”
메리옘의 눈이 조금 커진다.
“그걸 어떻게?”
“뻔한 거요. 그쪽의 외양은 보기 드문 희소가치지. 그런 당신의 정신을 몸과 얼굴에 흉이 남지 않는 방식으로 깎아냈으니, 굴복한 당신을 쓸 곳이 과연 어디이겠소? 대외적인 선전과 대내적인 선동이지. 위구르인이 이렇게 출세할 수도 있다고. 위구르에 관한 기존의 소문들은 다 거짓이라고.”
“…….”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결국엔 노예로 팔려나오셨잖소. 회유를 받아들여 통제된 자유와 영화를 누리는 대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켰다는 뜻이지. 그 뒤로도 분명 다양한 고문과 회유가 반복되었을 텐데.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을 좋아하오.”
품질이 좋은 인간은 한번 마음을 얻어두면 여간해선 변심하지를 않거든.
메리옘의 눈 주변 온도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감정이 복받친 모양. 나 같은 이해자를 만난 게 처음이라면, 겨우 이 정도 위로에도 충분히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소.”
메리옘의 눈가에 끝내 눈물이 영글기에, 나는 수연에게 고갯짓하여 손수건을 건네주도록 했다. 잠시 후, 눈시울이 붉어진 메리옘이 손수건을 쥐고서 해괴한 질문을 던졌다.
“옆에 계신 분은 은인의 배우자이신가요?”
“……아니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참모들 중 하나이자 우수한 투사지.”
“투사라고요? 여자가?”
“드물지만 무슬리마(무슬림의 여성형) 중에서도 알라의 이름으로 싸우는 여전사들이 있지 않소? 예컨대 「페쉬메르가」의 잔드(Zand) 부족 출신들이라든가. 그들은 마가렛 말리크 같은 전쟁영웅도 배출했지……. 뭐, 그쪽에겐 이런 이야기가 생소할 수도 있겠군.”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인들도 스마트폰 등으로 외부세계와 연결되어있긴 하나, 그 모든 연결은 중국의 악명 높은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 「IJOP」의 통제와 검열을 받는다. 이 인공지능 플랫폼은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황금방패 프로젝트(금순공정)의 궁극적인 산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위구르인들은 외부세계의 소식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핏 소문을 들어보긴 했지만, 뭐랄까,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여서…….”
고개를 저은 메리옘은 진귀한 것을 보는 눈으로 수연을 응시하다가, 마주보는 수연의 무표정함에 위압감을 느꼈는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가 새롭게 물었다.
“아까 조상의 명예 운운했던 건 뭐요?”
“네?”
“알림 샤히디가 그랬다면서. 조상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목숨을 끊으라고. 혹시 수용소장이 당신에게 공을 들인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 아니오?”
“아…….”
머뭇머뭇 망설이던 메리옘이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집안 내력을 밝힌다.
“고조부께서 「20인의 기수들」 중 하나셨다고 들었어요.”
“20인의 기수?”
“우리 위구르인들의 마지막 조국,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짧은 기간이나마 부활시켰던 스무 명의 영웅들을 말합니다. 고작 스물의 기병으로 시작해 독립을 쟁취하신 분들이죠.”
부활이라면 필시 2차 공화국을 이름이다.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다가 중화인민공화국에 잡아먹힌 나라. 존속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라를 잃은 민족에겐 그 짧은 존속기간이 오히려 강렬한 설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일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대충 안중근이나 윤봉길의 현손녀쯤 된다는 건가.’
한국에서 현손녀면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다. 고조부는커녕 증조부의 이름조차 안다는 사람이 드물 터. 그러나 신성한 페도 새끼였던 예언자 무함마드의 영향으로 조혼(早婚)이 흔한 이슬람권에서, 고조부와 현손녀 사이에 존재하는 4대의 간격은 시간적으로 그렇게까지 먼 것이 아니었다. 운이 좋다면 서로가 유의미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더구나 위구르인들은 한족과의 강제적인 결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혼인을 서둘러야 하는 처지였다. 한족들이 거기까지 법으로 규제하고 있긴 하지만.
“고조부를 실제로 뵌 적이 있소?”
“아뇨. 그분께선 나라가 무너졌을 때 소련으로 몸을 피하셨거든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고요.”
“그거 유감이오.”
“예…….”
사람은 아는 만큼 써먹을 수 있다. 난 방금 들은 내력이 달가웠지만 메리옘 본인은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물려받은 피가 얼마나 짐처럼 느껴졌겠는가. 어려서부터 당국의 감시를 의식하여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했을 텐데. 가문의 내력을 비밀로 유지하다가 탄로가 난 경우일지도 모른다. 수십 명의 후손 중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이용하려면 얼마든지 이용할 구석이 있으니.
“사정은 대충 알겠소.”
난 테이블 위로 깍지를 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밀린 일들이 기다리고 있군. 그러니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대가 날 보고자 한 이유가 뭐요?”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하려다 삼키고 하려다 삼키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힘겹게 뜸들이던 메리옘은, 내가 슬슬 짜증이 날 즈음에야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
“은인이시여. 저와 동생들의 메시아가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이게 무슨 개소리야? 황당함을 담아 바라보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인은 심호흡과 함께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바쁘시더라도 조금만 더 들어주십시오.”
“듣고 있소.”
“저도 그랬지만, 저처럼 공산당원들의 노리개로 팔려온 동생들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제가 갇혀있었던 마이쯔치의 회원제 하렘은 카라마이의 수용소 이상으로 사람이 쉽게 죽어나가는 곳이었죠. 배 나온 한인들의 폭력과 엽색은 사람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여인이 탄식하듯 말을 잇는다.
“그나마 저는 마이쯔치의 아낌을 받아 몸 크게 상하는 일 없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관리인이 그러더군요. 이제껏 너처럼 길게 생존한 예가 없었노라고. 덕분에 저는 여러 번의, 그, 세대교체……를 지켜보게 되었죠.”
세대교체라는 단어를 말할 때의 메리옘은 가늘게 떨리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팔려와 빈자리를 채우는 동포들은 대부분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었어요. 동생들이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마다 저는 하렘의 주인인 마이쯔치의 발밑에 엎드려 자비를 구걸했습니다. 그 자비란 때로는 식사였고 때로는 휴식이었고 때로는 치료였지요.”
“그게 살아남은 동생들이 당신을 따르게 된 계기인가 보오?”
“따른다기보다는 의지한 것에 가깝습니다.”
“……계속해보시오.”
“제게 의지하는 동생들은 매일 같이 철창을 사이에 두고 울었습니다. 모두가 울고 흐느끼며 제게 물었지요. 신께선 정녕 우리를 버리신 것이냐고. 혹여 우리가 더러워졌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냐고. 그럴 때마다 저는-”
흐르던 말이 한 방울 눈물에 끊어진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니라고, 언젠가 반드시 알라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해주실 것이라고 다독였습니다. 동생들은 제 말을 믿었지요. 아니, 믿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것 외엔 다른 어떤 희망도 없었거든요. 저희는 매일 같이 되뇌었습니다. 알라께서 우리를 구하실 것이다. 알라께서 우리를 구하실 것이다…….”
“왜 하필 사자라 하셨소? 신의 섭리는 그밖에도 다양할 텐데.”
“절망이 크면 희망도 커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희망은 뚜렷할수록 좋을 것이었고요. 신을 믿는 자에게 구세주가 온다는 믿음만큼 크고 분명한 희망이 있겠습니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로군. 좋은 곳에서 태어나 나쁜 심성을 길렀다면 사이비 교주가 되었을지도 모를 재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당신들을 구해주었다 이거요?”
“예. 하렘에 갑작스레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 되고, 불이 꺼진 감옥, 어둠 속에 방치된 동생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굶어 죽어가며 최후의 믿음마저 잃어버리고 있을 때, 당신께선 잠긴 문을 열고 바깥세상의 빛과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굶주린 저희에게 죽을 쑤어 베풀어주셨고, 마침내는 그 끔찍한 하렘 밖으로까지 나오게 해주셨죠.”
이거 참……. 난 타인의 입에서 거의 종교적으로 묘사되는 내 모습에 거부감을 느꼈다. 이는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이 더없이 선호하는 바였으므로. 일단 내가 어느 누구보다 혐오하는 스승새끼부터가 나와 다른 고아들에게 종교적인 숭배를 요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