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13화 (113/561)

#16.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6)

베크룩스의 차량갑판에서 나는 경독들에게 향후의 처세를 주문했다.

“세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소.”

경독들의 주의가 모인다.

“다들 체감하고 있겠지만, 이 나라 공직자들의 축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위험한 일이 되어갈 거요. 반대로 청렴함은 다른 무엇보다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거듭날 테지. 이제껏 저지른 부정만으로 돌이키지 못할 선을 넘어버린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가 없을 거란 말이오.”

나는 숨을 돌리고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아직 선을 넘지 않았소.”

정확히는 이제야 비로소 선 너머를 기웃거릴 자리까지 올랐노라 해야겠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입에 담을 만큼 내 지능이 모자라진 않았다.

“오늘 이후 난 여러분이 청렴한 사람으로 남도록 도와주겠소. 들불이 번지는 자리의 무진장한 재산보다는 안전한 곳에 둔 지폐 한 장이 더 가치가 있다고 했던 걸 기억하시오. 지켜야 할 선을 지키고 나에게 의지하는 한, 내 계자 된 여러분은 그 어떤 높으신 분들의 지하금고보다도 안전한 금고를 이용할 수 있을 거요. 당신들의 청렴함은 금고에 더해지는 무게로 보답 받을 테고. 이것은 계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간부의 마음이오.”

그러니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마시오. 난 담담한 경고로서 당부를 끝맺었다.

집무실로 올라오니 새로운 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핑호에서 위구르인들이 소요를 일으켜? 이 시간에?”

“예.”

수연이 머리를 숙인다.

“암암리에 있던 각 그룹 중심인물들 간의 갈등이 한순간에 주먹다짐으로 비화한 사고입니다. 정확한 경위는 현재 조사 중이지만, 정황상 종교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치료가 필요한 경상자가 3인이고 중상자나 사망자는 없습니다.”

“어쩌다가? 그룹을 나누어 관리 중인 게 아니었나?”

“물품 배급을 위해 그룹 별로 일정 인원을 불러낸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간에 위구르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곧바로 싸움을 일으켜, 대응할 시간이 짧았다고 합니다. 모두가 제 불찰입니다, 형님.”

“됐으니 그만 고개 들어라. 뭐 대단한 일이라고 네가 머리까지 숙이는 거냐.”

애초부터 용핑호엔 많은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전투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력 낭비를 최소화해야했던 까닭. 또한 위구르인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북방 관화(官話)를 구사해야 했으므로, 광둥어만 할 줄 아는 녀석들은 투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내 부하들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단순히 죽이는 것과 소요를 제압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으니, 처음부터 대뜸 총을 갈기기도 곤란했을 것이다.

“중심인물들이라면 누구누구지?”

“알림 샤히디, 튀뮈르 아지지, 쇼랏 압디카디르, 누르메멧 칸, 그리고 메리옘 바투르까지 총 5인입니다.”

수연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은 내가 눈여겨보던 자들의 명단과 일치했다. 앞쪽의 셋은 수니파의 범주에 들었고 뒤쪽의 둘은 시아파의 계보인 이스마일파에 속한다.

지켜본바 수니파로 분류된 셋도 파벌이 모두 제각각인 느낌이었다.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신앙은 종파를 불문하고 매우 세속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핍박 받는 민족의 민족주의와 결합한 믿음은 언제라도 극단으로 치우칠 불씨를 품고 있었다. 수연이 가장 먼저 언급한 알림 샤히디가 바로 그러한 경우로 추정되었고.

경독들에게 집중하는 사이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규모가 있는 그룹은 다 휘말린 셈이군.”

“그렇습니다.”

“혹시 내가 더 알아야 할 게 있나?”

“주동인물들이 하나같이 책임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예정된 그들의 쓰임새를 감안하건대 저나 경태가 대응할 일이 아닌 듯하여 일단은 요청을 보류해두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고?”

“모릅니다. 책임자하고만 대화하겠다고 합니다.”

“배짱들이 좋은데.”

“누르메멧 칸이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우리는 당신들이 중국인이 아님을 안다.」라고.”

“……흠.”

그들의 간파가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짐작할 단서는 많았고,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수연이 조언한다.

“폭력사태의 발단은 알림 샤히디와 메리옘 바투르입니다. 나머지 셋은 이 둘의 말다툼에 가세한 것이지요. 만약 만나보시겠다면 샤히디, 바투르를 먼저 부르시길 권해드립니다.”

“폐쇄회로 영상은 있나?”

“물론입니다. 보시겠습니까?”

“한번 보자.”

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샤히디가 먼저 뭐라고 쏘아붙이고, 거기에 바투르가 조용히 답하자 샤히디가 이마를 붙잡고 인상을 구긴다. 이후 다른 연놈들까지 합세하여 언성을 높이는가 싶더니, 서로 다른 그룹들이 크고 작은 두 무리로 갈라져 패싸움을 벌이는 게 아닌가. 말다툼이 패싸움으로 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4초에 불과했다. 수연의 말마따나 한순간에 벌어진 사태인 것. 현장에 있던 부하들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뭐라고 떠드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

내가 위구르인들을 거두고서 채 열흘도 흐르지 않은 시점이다. 그 사이에 보안성 좋은 위구르어 통역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우즈베크어도 대충 뜻이 통한다고 하지만, 우즈베크 통역사라고 하여 찾기 쉬울 리가 있나. 다른 건 몰라도 대화만큼은 중국어로만 하라고 강제할 걸 그랬나 싶다.

어쨌든, 용핑호의 승객들이 보여준 갈등엔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같은 수모를 겪은 동포 간엔 응당 동병상련이 앞서야 하는 게 아닌가? 몇 마디 대화만으로 패싸움을 벌일 만큼의 미움이 겨우 하루 이틀 만에 쌓였을 리도 없다.

어쩌면 이들이 과거부터 서로 악연이 있는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위구르족 강제수용소에 갇혔을 때나, 혹은 아직 수인(囚人)의 몸이 아니었던 시절부터.

‘연극……은 아니겠지.’

이들이 배역을 나눠 뭔가를 꾸며봐야 얻을 만한 이익이 없다. 영상을 앞으로 되돌린 난 샤히디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샤히디가 드러낸 감정은 명백한 경멸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투르를 부르도록. 혼자 오기 불편하다면 칸과 같이 와도 된다고 전해. 데려올 땐 수니파에 속한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주의하고.”

이는 메리옘 바투르가 여성임을 감안한 지시였다. 내가 알기로 위구르 시아파의 주류인 이스마일파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자유로우며 히잡 착용조차 개인의 선택에 맡길 만큼 개방적인 신앙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어찌 쓰일지 모를 인재에게 쓸데없이 종교적인 원한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늦은 시간에 혼자 나오기도 부담스러울 것이고.’

본인의 두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1인 1선실을 쓰게끔 하고는 있으되, 중국제 선박인 용핑호는 방음이 썩 잘되는 배가 아니었다. 그저 발소리만으로도 의심과 루머가 싹틀 수 있는 것이다.

아까 끝내지 못한 논문 첨삭을 진행하며 기다리기를 잠시. 예상과 달리 바투르가 홀로 부름에 응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별일이군. 집무실로 쓰는 선실이 비좁았으므로, 작업하던 문서를 닫은 난 수연을 동반하여 바투르가 기다리는 브리핑 룸으로 이동했다. 무장한 부하의 감시 하에 앉아있던 바투르는 내가 들어서자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손을 아래로 까딱이며 표준중국어로 이야기했다.

“그러실 필요 없소. 편하게 계시오.”

“아…….”

바투르가 눈에 띄게 동요한다. 뭐지?

“이 목소리…….”

“목소리?”

“그때 저희를 구해주신 분이시군요.”

“그걸 목소리만 듣고도 안다고?”

“네. 음식을 나눠주실 때 죽기 싫으면 천천히 먹으라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구명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인이시여.”

그때는 내가 내 목소리를 내었던 때다. 지금도 가공의 인물인 리규휘 행세를 할 때는 아니었고. 가만히 바투르를 응시하던 나는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앉았다.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시군.”

“감사합니다.”

“딱히 칭찬은 아니었소만……. 아무튼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들었소. 메리옘 바투르 양.”

“메리옘이라 불러주시길.”

“그럼, 메리옘. 그쪽의 용건을 묻기 전에 다른 것부터 확인합시다. 당신의 동포들이 당신의 눈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까닭이 뭐요?”

내 물음에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리는 메리옘. 그녀의 한쪽 눈두덩엔 시퍼런 피멍이 들어있었다. 알림 샤히디의 주먹질이 남긴 흔적이었다.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마저 붉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시력이 상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눈이 이 꼴이 났는데도, 죽은 후롱방주가 공산귀족에게 엄선하여 납품한 ‘특급’ 상품의 아름다움은 쇠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아주 많은 일들을 가능케 하는 선천적 재능이다.

침묵하던 메리옘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카피라라 하더군요. 이는 한어로……”

“불신자라는 뜻이지.”

“아시는지요?”

“남성형은 카피르(كافر). 여성형은 카피라(كافرة). 다에쉬(IS)의 개잡놈들이 사람 목을 썰면서 입버릇처럼 선고하는 죄목이잖소. 덕분에 쿠란의 개경장이나 몇몇 구절들과 함께 내가 아는 얼마 안 되는 아랍어 중 하나가 되었지. 당신이 왜 그런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불렸는지가 의문이군.”

내 말에 메리옘은 쓴 맛이 진한 조소를 머금었다.

“쿠란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청결치 아니한 몸으로 행하는 예배는 받지 않겠다…….”

“그건 예배 전에 몸을 씻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오?”

“어떤 이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제가 이미 씻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몸이 되어버렸으니, 제게는 더 이상 기도를 올릴 자격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조상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목숨을 끊어 최후의 명예를 지키라고.”

“한인(漢人/한족)과 동침을 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한인들로부터 잦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한순간이나마 심중을 스치는 서늘한 감각. 그런 의미일 리가 없음에도, 항상 머릿속 한편에 원탁에 대한 경계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기름부음이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오전에 질 나쁜 꿈까지 꾼 마당이니.

내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한 메리옘이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을 이었다.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건 제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신적인 고문…… 같은 것이었죠. 옷을 모두 벗겨놓은 다음, 기름부음이라며 머리 위로 돼지기름을 부어주고, 돼지 배설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에서 몇 시간이고 한겨울의 찬바람을 맞게 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다. 어떤 율법학자들은 그저 돼지를 만지기만 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교리해석(파트와)을 내놓을 정도. 그래서 이스라엘은 테러를 막기 위해 위험한 지역마다 돼지 오줌통을 매달았고, 미국에선 무슬림을 지옥으로 보내주는 탄환이라며 탄두 도료에 돼지기름을 섞은 실탄이 팔리기도 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는 고양이를 앞세워 이집트의 군대를 격파한 바 있다. 그 뒤로 2천 5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종교적 맹목의 그늘은 달라진 게 없었다.

“카라마이의 겨울은 춥지요.”

메리옘의 회상은 어두웠다.

“제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온기란 따뜻하게 데워진 돼지기름뿐이었어요. 한인 간수들은 제 머리 위의 철창을 밟고 다니며 국자로 기름을 떠서 부어주었죠. 세례를 받으라고. 너희 회교도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느냐고.”

기름부음은 기독교에서나 신성한 의식이고 상징이지, 이슬람에선 어떤 의미도 없다. 고로 카라마이 수용소의 간수들은 자기네 수인들을 이교도의 방식으로 모욕한 것이었다.

“처음에 저는 기름이 쏟아질 때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흐르던 기름이 하얗게 굳어 살을 덮는 느낌은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어요. 전 울고 또 울면서 그걸 조금이라도 빨리 벗겨내려고 애를 썼죠.”

여기서 나오는 나직한 한숨.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무뎌지더군요. 나중엔 다 체념한 채로 기름이 쏟아지기를 기다릴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름이 굳어도 더는 긁어내지 않게 되었고요. 기름으로 덮인 자리는 그만큼 덜 추웠거든요…….”

공감은 사람을 다스리는 값싸고 효율적인 도구다. 난 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자가 내키는 만큼 떠들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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