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07화 (107/561)

#15. 고독의 도가니 (18)

오늘밤 공격 대상으로 선정된 흑해자당의 근거지는 총 아홉 개소였다. 내가 직접 찾아낸 곳이 하나, 딤섬 가게 주인의 통신기록에 기초한 전산추적으로 특정한 곳이 넷, 차량에 붙인 발신기 신호를 쫓아 포착한 곳이 다시 넷. 이 가운데 세 곳은 행정구역상 광저우시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남은 사냥터는 여섯 개소로 좁혀진다.

이 여섯 중에서 내가 직접 털어먹기로 한 거점은 둘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나머지는 공안과 인민해방군 잔존세력의 몫으로 넘겨버린 것. 각각의 사냥터마다 적잖은 인명손실이 발생하겠으나, 어쩌겠는가. 그놈의 뱅크런 사태와 부시장의 공안국장직 반납으로 인해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을. 일단 승리를 거두고 나면 가오슈센 휘하 공안 전력의 손실은 어떻게든 메꿀 방도가 생길 터였다.

그리하여 공업단지에 이어 하나의 사냥터를 정리하고 이 밤의 마지막 전장 앞에 선 시각은 새벽 3시 27분. 밤이 긴 계절이라 해가 뜨기까진 앞으로 두 시간 반이나 남아있었다. 상현(上弦)과 만월 사이의 어디쯤인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 이제 곧 하루 중 가장 새까만 시간으로 접어들 참이다.

여기만 마저 정리하면 눈을 붙일 수 있다. 난 각성제를 삼키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요즘 밤낮이 자주 바뀌는 생활을 하다 보니 꾸준히 피로가 누적되는 중이었다.

“돌입.”

내 한마디에 다섯 방향으로 들이치는 공세가 개시되었다. 전기 공급 차단으로 가중된 어둠 속에서, 야시경을 착용한 경태 이하의 사냥개들은 눈앞의 비좁은 골목들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 바탕엔 당연히 나와 내 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더럽군.’

흑해자당이 똬리를 튼 이 빈민가에 대한 감상이었다. 여간해서는 목욕을 하지 않는 자들의 거리. 수도도 공용이고 화장실도 공용이어서 위생수준이 저 악명 높은 인도의 뒷골목에 필적한다. 벽면과 바닥엔 똥오줌 자국들이 선명했다. 요강 하나 비우자고 먼 걸음을 하기 귀찮았던 주민들이 창밖으로 대충 뿌려버린 흔적들이었다. 의식이 족하지 않아 예의를 모르는 인간들의 터전이다.

궁극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면 똥오줌을 밟으며 싸우기가 대수이겠으랴.

난 간결한 지휘를 이어가며 악취 가득한 응달로 들어섰다. 발아래에서 지린내 올라오는 생활 폐수가 찰박거린다. 온갖 추잡스런 건더기들이 떠다니는 웅덩이였다. 수십 년 전에 깔았을 보도블록은 꺼진 구석이 많아, 오수(汚水) 고여 썩을 자리도 많았다.

콰앙!

집안에 설치되어있던 지향성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강력한 발사체가 목전의 허공을 가로질러 반대편 벽을 뚫고 들어간다. 자잘하게 튀는 파편들은 염동차장을 도포한 전투복을 뚫지 못했다. 숨어있던 적들이 당황하여 소리를 질러댄다.

“빗나갔잖아! 왜 벌써 터트리고 지랄이야!”

“난 안 터트렸어!”

“씹구녕 새끼! 그럼 폭탄이 스스로 터지겠냐! 철선을 걸어놓지도 않았는데!”

유감이지만 스스로 터진 게 맞다. 정확히는 내 마법이 신관에 작용한 결과.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반경 십수 미터 이내에 있는 폭탄을 격발시키는 건 그리 넓은 마력장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부비트랩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손가락을 세워 돌리자 나를 근접 경호하던 녀석들 절반이 온몸으로 벽을 뚫고 들어갔다. 부실한 벽 석 장만 깨부수면 모퉁이에 엄폐한 적들의 등 뒤를 치는 길이다. 집구석에 웅크려있던 거주자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들을 질러댔다.

“씨발, 튀어!”

벽 무너지는 소리와 주민들의 비명을 들은 적들이 즉각 도주를 개시한다. 앞뒤로 처맞을 위기를 직감한 것. 이쪽의 정확한 수를 모르니 일단 물러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다. 감 좋은 놈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달리는가 싶었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각성한 능력자들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막다른 골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몸 가벼운 일부는 골목의 양쪽 벽을 번갈아 차며 날아오르듯 높은 창문으로 몸을 던지고, 장비 무거운 일부는 내 애들처럼 정면으로 벽을 부수며 달아난다.

흩어진 이후의 재집결 지점을 정해둔 것이다. 나름대로 노력이 들어간 체계적 방어계획이라 하겠으나…….

“따라와.”

나는 그들이 향하는 지점을 향해 일직선으로 길을 뚫었다. 또 다른 주민들의 비명이 더해진다. 힘의 차이가 곧 속도의 차이였으므로, 흑해자당 놈들의 재집결보다 내 도착이 더 빨랐다.

“어떻게?!”

도주하던 놈들 가운데 몸이 가장 날랜 녀석은 경악한 표정 그대로 즉사했다. 어디서 나올 줄 미리 알고 쏘는 사격이 빗나갈 리가 있나. 내 부하들의 총기엔 예외 없이 소음기가 끼워져 있었고, 답답하게 줄어든 총성은 벽 부서지는 굉음에 파묻혔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적들은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하고 튀어나와 일제사의 표적으로 전락했다. 오직 소수만이 먼저 죽은 시체를 운 좋게 목격하고 다른 길로 달아났을 따름.

“3팀. 그쪽으로 두 놈 간다. 현 진행경로를 기준으로 1시 방향 45미터.”

이렇게 꾸준히 적들의 위치정보를 불러주며, 나는 적진 깊숙이 파고드는 데 전념했다. 뒤가 불안한 방어선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법. 내가 중심으로 파고들수록 외곽의 적들은 급속도로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물론 이는 보통 위험한 역할이다. 그러나 나름 대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깊은 밤에 기습을 당한 적들에겐 나와 내 근접경호를 맡은 애들을 어떻게 해볼 능력이 없었다. 끊임없이 적들의 뒤를 치고 집결하기 전에 각개 격파하는 싸움의 연속.

그렇게 10분쯤이 지나, 중간에 마주친 모든 트랩들을 무력화한 끝에 나는 이 거점의 중심부에 있는 폭탄창고에 도달했다. 인접한 여러 가구의 지하실을 죄다 지향성 폭탄으로 채워놓은 장소였다.

이곳의 흑해자당 연놈들이 거점 폭파를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신속한 돌파 앞에서 일찌감치 기능을 상실한 지휘체계, 목숨에 대한 집착, 아직 더 싸울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내지 오기, 단순한 의사결정 지연 등.

그러나 가장 큰 족쇄는 폭탄과 가깝게 저장된 막대한 금품들의 존재일 터였다. 부피가 폭탄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귀금속 및 지폐의 무더기들. 단시간에 반출하기엔 양이 너무 많다. 이것들을 폭탄과 함께 날려버린다는 건 중국인들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은 곧 생명이요 계급이며 인간의 존엄성이기도 하다. 이들이 꿈꾸는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 자본이 결핍된 자들의 생존투쟁이 아니던가. 오랫동안 빈곤과 멸시를 감내해온 자들의 황금에 대한 목마름은, 오랫동안 굶주렸던 자들의 병적인 식탐과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정신질환이다. 의지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강력한 충동인 것이다.

“막아! 시간을 벌어!”

이 거점의 대가리로 보이는 연놈들이 육성 닿는 거리에서 절규한다. 평소 금품을 분산시켜두지 않았던 건 역시 아랫것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집단으로 금품을 훔쳐 탈주할지 모른다고.

패색이 짙어진 지금, 흑해자당의 각성 능력자들은 자기네 대가리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급하게 꺼내오던 금괴 주머니들을 움켜쥐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

“비겁한 자라새끼들! 돌아와! 돌아오라고! 니들이 그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아?!”

라고 외치는 대가리들 또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도망갈 구석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내겐 그들이 선택할 모든 퇴로를 한 발 앞서 차단해버릴 시력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붕괴하는 자들의 도주를 막지 않았다.

모여 있던 적들이 알아서 흩어져주겠다는데 뭐 하러?

‘일방적인 싸움만을 치러온 놈들답군.’

군과 공안의 병력배치 및 이동은 항시 불특정다수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었다. 반면 흑해자당은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을 잠재적 은신처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전력을 감춰왔다.

그러므로 주도권은 오직 흑해자당에게만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울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해주는 정보의 불균형. 이 강력한 힘이야말로 그간 흑해자당의 욱일승천을 뒷받침한 전술적 우위라 하겠다. 지금은 국지적으로나마 그 우위가 증발해버린 것이고.

경태 이하에게 싸움의 마무리를 맡긴 나는, 금과 지폐를 채운 창고보다 사람과 마약이 있는 건물로 먼저 들어섰다. 창문이 드물어 답답한 실내엔 농밀한 악취가 가득했다. 바깥에 감도는 생활의 악취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내음이다.

“누구, 거기 누구시오?”

양손이 테이블에 못 박힌 포로가 내 발소리를 듣고 흐느끼듯 묻는다.

“소리…… 소리를 들었소. 흑해자당, 그 악귀들이 도망치는 소리들을……. 구조대인 거요? 드디어 구조대가 온 것이오?”

포로의 정체는 전일 흑해자당 돌격대에게 산 채로 붙잡힌 공산귀족이었다. 고작 하루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신(拷訊)을 겪었는지, 발가벗은 몸뚱이에 성한 구석이 남아있질 않았다. 패고 째고 자르고 지지고. 끝에서부터 마디마디 끊어놓은 손가락들은 총 열다섯 마디가 사라졌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난 가오슈센 부서기가 보낸 사람이오.”

“가오 부서기?”

내 한마디에, 이마가 뜨거운 포로는 온몸을 부들거리며 찐득한 침을 흘렸다.

“안 돼. 제발. 죽이지 마시오. 내가 잘못했소. 내가 그분께 큰 잘못을 했소.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맹세컨대 내 그분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거요. 그렇지. 통화. 그분과 통화 한 번만 하게 해주시오.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들을, 흑,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소. 제발, 제발, 제발…….”

감염증으로 열이 오른 와중에도 상황판단이 재빠르다. 난 포로가 원하는 대로 가오슈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액정의 불빛이 희미하게나마 어둠을 몰아내자, 귀족 포로는 눈 깜박이는 것도 잊고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통화는 신호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연결되었다.

「오, 동사장! 가신 일은 잘 마치셨소?」

“거의 끝나가는 참입니다.”

「좋소, 아주 좋소. 이쪽도 해가 뜨기 전에 매듭지을 수 있을 듯하오.」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음, 글쎄. 최악은 면했다고 해둡시다. 동사장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직승기(直升机/헬기) 강습까지 시도했는데도 아랫놈들 하는 꼴들이 영 만족스럽질 못하구려.」

부하들에 대한 불만이 어지간히 많은 놈이다.

「아무튼 무슨 일이시오? 완전히 끝을 보기 전에 연락을 주신 이유가 있을 터인데.」

“내가 여기서 나가기 전에, 당신이 생사를 결정해야 할 사람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음? 무슨 소리요, 그게?」

“바꿔드릴 테니 직접 말씀 나눠보십시오.”

나는 포로의 귓가에 전화기를 대주었다. 포로는 다급히 자신의 신분부터 밝혔다.

“부서기! 저 후수광(胡素光)입니다!”

「후수광 부국장? 맙소사. 당신이 살아있었을 줄이야.」

스피커에서 새어나오는 가오슈센의 음성에 약간의 놀라움이 묻어났다. 난 수연이 올린 보고서에서 후수광의 이름을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귀족 포로는 시 공안국 법제처장이자 소방국장이며 수상분국장(水上分局长)이기도 한 실력자였다. 호칭이 부국장인 이유는 공안국 당위원회(局党委)에서의 직위가 부국장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어제 농민공 포병대가 불을 뿜기 이전까지의 이야기. 가오슈센에게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리들을 되찾기는커녕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흑해자당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처리하면 그만.

전화로 연결된 두 귀족 사이에서 정치적인 약속과 맹세들이 오간다. 확답에 확답을 받아내길 거듭하며 고심하던 가오슈센은, 5분여에 걸친 협상 끝에 마음을 정했다.

「일단은 살려서 데려와주시구려. 좀 더 대화를 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잘만 써먹으면 우리의 사업에 보탬이 될 인물이니.」

“알겠습니다. 다른 요청사항은 없습니까?”

「그게 다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소이다. 지금은 이만 끊겠소.」

통화가 종료된 후 얼마 안 가 교전도 종료되었다. 경태가 공전공사에 연락을 넣어 전기 공급을 재개시키자, 칠흑 같던 실내가 갑작스럽게 밝아진다. 이따금씩 깜박거리는 창백한 형광등의 불빛. 눈을 가늘게 뜨고 힘겨워하던 귀족 포로는, 곧 자신의 손을 보며 처량하게 눈물짓기 시작했다.

“욱……우욱……. 내 꼴을 보시구려……. 인간이 어찌……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단 말이오……. 흑해자당 그것들은 사람조차 아니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적어도 공산당 간부가 할 소리는 못되었다.

그리고 내 견해를 말하라면, 이러한 잔혹성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특성들 중 하나다. 사람조차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의 정의는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종 단위로 앓는 나르시시즘이다.

“정중히 모셔라. 장차 우정을 쌓을지도 모르는 분이니.”

귀족 포로를 부하들의 손에 맡겨놓고, 나는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지저의 공기가 올라오며 그렇잖아도 가득하던 실내의 악취가 더더욱 고약해진다. 이제까지 맡았던 악취는 그저 문틈으로 새어나온 것에 불과했을 뿐.

전등불 희미한 계단 아래엔, 귀족 포로가 칭얼대듯 입에 담았던 잔인함보다 한층 더 진한 핏빛의 잔인함들이 고여 있었다.

이 굳은 피딱지 가득한 공간은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동안 흑해자당은 주민들의 밀고를 무슨 수로 막아왔는가?

압도적인 자금력의 힘?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흑해자당이 주는 돈도, 정부가 주는 돈도 다 받고 싶어 하는 자가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으니.

마약의 중독성? 좋다. 밀고를 해버리면 더는 마약을 구할 데가 없어져 버리니까. 그러나 이것 또한 완전한 답은 되지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세뇌와 선동? 도움이야 되겠지. 혁명의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방책이라기엔 역시 모자란 구석이 있다.

모든 빈틈을 메워주는 답은 보복의 공포다. 마오쩌둥이 언명한바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枪杆子里面出政权). 가장 근원적인 권력은 타인의 생명을 좌우하는 데서 비롯되며, 폭력은 투쟁의 수단이기 이전에 인민을 지배하는 수단인 것이다. 애초에 지배가 없이는 투쟁도 없다. 비근한 예로서 그 잘났다는 호치민조차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해댔는지. 공권력의 보호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 수준마저 낮은 주민들은 목전의 칼날에 굴복하기 쉬웠다.

여기에 무수한 허위 신고들을 섞어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마오쩌둥의 사상을 계승한 자들은 경애하는 국부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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