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06화 (106/561)

#15. 고독의 도가니 (17)

경태 이하가 작업한 폭파 준비는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빠르고 정교했다. 정확한 결과는 터트려봐야 알 일이지만, 나는 실패를 걱정하지 않았다. 폭발 규모가 예상을 넘어선다 한들 창고와 인접한 공장들만 중파(中破)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공산귀족이 감싸는 공장주들도 이 정도 피해라면 싸게 치였노라 생각할 테지.

돌아온 경태가 내게 무선 격발기를 건네곤 시계를 보며 보고했다.

“9분 17초 뒤엔 따로 신호가 없어도 터지게끔 맞춰놨습니다, 형님.”

혹시라도 무선 신호가 제대로 닿지 않거나, 격발기가 불량일 경우에 대비한 보험으로서의 조치였다. 경태 이하의 목덜미가 땀으로 젖어있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치하했다.

“수고했다. 실력들이 아주 좋구나.”

“별말씀을요.”

이 커다란 창고의 작업을 고작 10분 이내에 대단한 거다. 그저 모조리 폭파시키기만 하는 거라면 모를까, 농민공들이 급조해놓은 방화격벽을 치우거나 폭탄의 양을 조절하며 진행한 작업이므로. 폭발물의 종류에 따른 영향범위를 표로 만들어 통째로 암기시켜놓았다곤 해도, 암기한 지식을 실전에서 활용하는 건 별개의 차원이었다.

이젠 3만 농민공 집단의 머리를 자를 차례다. 애들과 더불어 지하 경로를 통해 폭탄 창고를 벗어난 나는, 지하에서 나온 직후 격발기를 작동시켰다.

꽈릉! 우르르르릉-!

발아래가, 골반과 등뼈가, 머리와 이빨이 진동으로써 폭음과 공명한다. 수십 개의 벼락이 연달아 떨어지는 듯한 굉음은 지상에 존재하던 다른 모든 소리들을 일소해버렸다. 땅과 가까운 밤의 아랫자락이 잿빛 초연(硝煙)에 먹혀 쇳물처럼 달아오르자, 마침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대혼란이 무질서를 벗하여 터져 나왔다.

농민공들의 대오는 즉각적으로 붕괴했다. 이미 내가 거짓 폭음을 일으킬 때부터 동요하고, 살아서 도망친 자들이 “폭탄 창고에 불이 났다!”라고 외칠 때부터 시시각각 불안과 공포에 잡아먹히는 중이었던 자들. 일찍이 내가 예견했던 그림이 그대로 펼쳐진다. 사람이 사람을 으깨어 죽이는 집단 압사의 지옥도가.

더욱 좋았던 것은, 쌓여있던 폭발물 전부가 지향성 폭탄(EFP)이었다는 점이다.

콰쾅! 쾅!

반쯤 무너진 창고 건물에서 새로운 화광이 솟구치는 순간마다 최소 수십 개 이상의 발사체들이 튀어나온다. 각각의 발사체는 각도만 잘 맞으면 한 번에 대여섯 명을 관통하고도 남았다. 자잘하게 튀는 파편들도 살을 찢기에 충분한 운동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충격파를 맞은 차량들이 도난방지 경고음으로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켜, 검붉게 뭉글거리는 밤에 세기말적인 고음을 더했다.

곳곳에 뿌려지는 피와 내장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생존자들을 채찍질한다. 더욱 가열해진 3만인의 무한경쟁은 밟는 자가 승자였고 밟히는 자가 패자였다. 밟히는 자는 삽시간에 가죽이 찢어지고 근육이 떨어져나갔다. 눈대중으로 어림하건대 체중의 절반쯤은 무수한 핏빛 발자국들로 변해 사라지는 듯하다.

때로는 발사체가 아니라 폭탄 자체가 폭압에 휩쓸려 통째로 날아오기도 했다. 폭탄 속을 채운 흑색화약이 낙하 충격만으로 발화하진 않았으되, 지식이 결여된 농민공들은 그 폭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경기를 일으켰다. 폭탄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사람이 물러난 원이 생겨나고, 그 일그러진 원의 가장자리엔 매양 밟혀 죽은 시체들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평범한 노동자보다는 각성한 능력자의 생존율이 더 높다. 거대한 약육강식의 무대였다.

“지금 나가면 위험합니다.”

경태를 비롯한 내 부하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농민공 지도부를 호위하는 능력자 중 하나의 음성.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무전으로 지시만 내리던 브레인들이 마침내 이 ‘혁명의 병기창’을 버릴 결심을 하고 기어 나온 것이었다.

호위에게 만류당한 지도부 중 하나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신음한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이쪽 응달에 우리가 숨어있다곤 상상도 못하는 눈치들. 저것들을 붙잡을 생각으로 왔는데 스스로 나와 주니 고마운 일이다.

저것들이 지도부라는 사실은 긴급대응팀이 달려올 때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농민공 능력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마력장을 지닌 자들이 한 숙사(宿舍)에 몰려있고, 해당 건물의 상층엔 비능력자가 절반가량 섞인 무리가 이 상황에서조차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몰라볼 수가 있나.

경독 판하이산으로부터 받은 증강현실 안경은 지도부의 얼굴을 하나도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호위로 붙은 능력자들은 붉은 테두리로 강조된다. 지도부가 이제껏 철저하게 출입을 삼가며 아랫사람들을 부려왔다는 방증이다. 난 가져온 보람도 없는 안경의 단말기를 떼어 악력으로 으스러뜨렸다. 부서지는 소리는 손에 둘러친 흡음결계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저편에선 초조한 대화가 계속되었다.

“이 상황을 흑해자당에 알려야 하는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간부가 손톱을 질겅거리며 우물대듯 던진 물음에 능력자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없습니다. 통화권까지 나가는 수밖에요.”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워. 분명 공안 놈들이 수작을 부린 거라고……!”

발을 아무리 굴러봐야, 지발(遲發)된 폭탄들이 끊임없이 발사체를 사출하는 상황에서 사방이 트인 공터를 달려 빠져나갈 도리가 있을 리 없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며 인물들 사이의 상하관계를 파악했다. 심문을 당할 때, 훈련을 받은 자들이라면 상하관계부터 속이려 드는 게 기본인 까닭이다. 그래봐야 시간을 좀 버는 게 고작이지만, 때로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의 유무가 결과의 차이를 낳는 법이니까.

아울러 자연스레 새로운 단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나, 이것까지는 너무 큰 욕심이었다. 서열을 다 파악한 나는 경태에게 신호를 보냈다.

덮치라고.

폭발하는 밤에 압도당하고 농민공들의 떼죽음에 비통해하던 간부들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모조리 사로잡혔다. 그나마 능력자들이 저항 비슷한 발버둥이라도 쳐봤으나, 능력과 숫자 양면에서 열세인 데다 기습까지 당한 마당에 길게 버티기란 불가능한 일.

제압이 완료된 자리에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무릎 꿇려진 자들은 곧바로 이쪽의 서열을 깨달았다. 포박당하는 과정에서 턱을 세게 얻어맞은 ‘대장’이 나를 노려보며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는다. 사위가 어둑한 와중에도 두 눈은 불을 붙인 듯하다.

“역시 네놈들 짓이었구나! 더러운 거짓공산당의 주구들 같으니……!”

대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너! 너어! 너는 저 처참한 광경을 보고 느껴지는 게 없는 거냐? 억울한 일을 겪은 저 많은 인민들이! 저토록 무력하고 끔찍하게 죽어나가고 있는데! 경관 주제에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느냔 말이다, 이 사람 옷을 입은 짐승 새끼야(衣冠禽兽)! 네놈들 모두의 18대 조상까지 범해주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외국인이 듣는다면 욕을 참 문학적으로 한다고 웃어넘기겠지만, 실상 중국인에게는 성질이 급할 경우 그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내려 들 만큼 심한 욕설이다.

능력자의 힘으로 온 힘을 다해 포승을 끊으려 애쓰던 놈이 중심을 잃고 모로 쓰러진다. 포승줄의 재질은 케블라 섬유였다. 자력으로 일어날 수가 없게 된 놈은 이제 몸을 비틀며 발광했다. 본인은 세상 다시없을 만큼 비장한데 남 보기엔 벌레 꼴인 꿈틀거림. 난 부하들에게 그냥 내버려두라고 손짓했다.

“두고 봐라…….”

바깥에선 폭발과 압사의 아비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몸 세우길 포기한 대장 녀석은 씩씩대는 숨결로 바닥의 먼지를 날리며 이를 갈았다.

“노동자 계급은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다! 노동자가 곧 혁명이며! 핍박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혁명의 불꽃은 절대로 꺼지지 않아! 알겠냐! 거짓공산당과 너희 주구들이 벌인 짓은 언젠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훗날 분노한 인민들의 손에 찢어져 죽을 때 내가 한 말을 기억해라!”

“혁명 투사 나셨군.”

이로써 이곳 현장은 대충 마무리되었다. 안면 정보가 확인된 하급간부들이야 공안들이 잡아줄 테지. 놓친다 한들 여기 붙잡아놓은 연놈들만큼 중요하지도 않을 테고.

이젠 어제와 오늘에 걸쳐 존재를 확인한 흑해자당의 다른 근거지들을 연달아 급습해야 한다. 그들이 병기창에서 터진 변고를 알아채고 조직적인 대응에 돌입하기 전에. 아무리 연락을 차단했다 하나, 창고에서 울려 퍼진 폭음은 도시의 중심부까지 닿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안 쪽에 양보한 몇몇 사냥터에선 폭발 이전에 이미 공세가 개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여기서 잠시 열량을 보충하고 갈 생각을 했다.

“남은 밤이 길다. 다들 뭔가를 먹어두도록.”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내가 휴대한 에너지 젤을 꺼내어 마개를 뜯자, 엎어진 채 곁눈질로 나를 보던 대장 녀석의 낯짝이 다시금 흉물스럽게 구겨진다.

“이 상황에 먹을 게 넘어간단 말이냐! 무고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배고프면 먹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너 이 악마 새끼! 천벌을 받을 인간쓰레기(人渣滓)!”

악마라. 짙은 초연과 해체된 인간들의 내음 속에서 무성의하게 허기를 달래다 보니, 어쩐지 딤섬이 떠오른다. 입맛에 영 맞지 않아 하나만 집어먹고 말았던 그 기름진 딤섬들이. 에너지 젤 한 팩을 다 삼킨 나는, 저렴한 단맛이 감도는 입을 물로 헹구고서 의도적인 도발을 이어갔다.

“남이 악마인 줄은 알아도 자기가 악마인 줄은 모르나.”

“뭐?”

“정의로운 척을 하고 싶었으면 마약을 써서 사람을 조종하진 말았어야지.”

“무슨…… 소리냐…….”

“이 나라엔 도무지 착한 빨갱이가 없다는 소리다. 평범한 시민들을 도구처럼 소모하는 연놈들이 무슨 염치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운다고 떠드는 것인지. 적어도 내겐 그런 뻔뻔함은 없어. 난 내가 더러운 인간임을 인정한다.”

중국어로 말하는 빨갱이는 적색분자(赤色分子)가 되어 한국어만큼 멸시적인 어감이 살질 않았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대장- 젊은 마오주의자에겐 이 정도로도 충분한 모욕이었는지, 통상시야로 보이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못된 빨갱이에 어울리는 낯짝이 되었다. 어설프게 모르는 척 하려던 것도 집어치우고 빽 소리를 지른다.

“너희와 우리를 같은 취급 하지 마라! 그건 혁명을 위한 필요악이었을 뿐이다! 어디서 감히 거짓공산당의 사냥개 따위가 우리를 적색분자라고 부르는 거냐!”

“그래서, 마약을 풀어 협력자 집단을 양성한 게 잘하는 짓이었다고?”

“닥쳐! 우리는 설득을 생략했을 뿐이야!”

“설득을 생략해?”

“그렇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그들은 올바른 일에 헌신하게 된다! 그게 자의인가 타의인가는 중요치 않아! 어차피 누구도 혁명의 대오에서 열외가 될 순 없으니까! 열외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혁명의 적에 불과하다!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만 해! 그게 당연한 거야!”

평범하게 미친놈이로군.

격노한 사상범의 심저(心底)를 긁고 도발하여 여기까지 대화를 끌어온 나는, 다른 간부들의 신체징후 변화를 통해 대장의 주장에 동의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마약 운운하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처럼 보이는 인간마저 있다.

엄밀히 말해 마약으로 협력자들을 묶어둔 건 흑해자당의 소행이다. 흑해자당과 「마오공」의 관련성에 대해선 오직 심증만이 있었을 뿐 확실한 단서나 증인이 없었는데, 여기서 이 대장 녀석이 이중으로 함정을 밟아버린 것이었다. 마약 배포 혐의를 인정함으로써 한 번, 흑해자당과의 연관성을 무의식중에 인정해버림으로써 두 번.

이 연놈들이 흑해자당 및 마오공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몰라도, 마약이라는 키워드에 흔들린 인간부터 취조를 시작한다면 시간이 크게 절약되지 않을까 싶다. 공안 측에 인계해줄 때 이를 귀띔해주는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동지들!”

대장 녀석이 결연한 어조로 제 동료들을 부른다. 군대 밖에서 쓰이는 동지라는 호칭은 동성애자에 대한 멸칭으로 변질되어버린 지 오래건만, 마오쩌둥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들에겐 사정이 다른 모양이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우리는 혁명의 걸림돌이 되고 말겁니다! 그러니 전원 자결합시다! 죽음으로써 혁명에 보탬이 되고! 거짓공산당에게 우리의 의기를 보여줍시다!”

자결? 무슨 수로? 이 녀석들에겐 목숨을 끊을 수단이 없었다. 의아해하는 내 시선 아래에서, 대장 녀석이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제 혀를 깨물었다. 이빨에 잘린 혀 반쪽이 핏물과 함께 입 밖으로 떨어진다. 단숨에 혀를 끊어 뱉는 단호함은 분명 범상찮은 것이지만-

어이가 없어진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대체가……. 혀를 깨물면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을 아직도 믿는 멍청이가 있나?”

내 조소에, 대장을 뒤따라 비장하게 제 혀를 깨물려던 멍청이들 몇몇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하기야 대학 교수라는 작자들이 모여 진화론을 부정하는 단체도 있는 마당에 이까짓 루머 하나 믿는 게 대수이겠는가. 잘린 부위를 다시 열심히 씹어 덧낸다면 반나절 후엔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제국사냥꾼 [독점]

107화

1%

페이지

정주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