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02화 (102/561)

#15. 고독의 도가니 (13)

공단을 나온 트럭 세 대는, 흑해자당 돌격대가 일으킨 소란 속에서 나를 제외한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은 채로 탈출에 성공했다. 트럭 행렬의 탈출을 확인한 바이크 돌격대의 기수들은 조금 더 학살을 이어나가다가 골목과 골목 사이로 녹아들듯 철수했다. 고수 방어를 실시하는 순라지대 병력들로 인해 전과 확대에 한계선이 그어진 탓이다. 놈들은 떠나갈 때 여기저기 화염병들을 투척했다. 방치된 차량들을 불태워 공안 측의 기동역량 감소를 꾀한 것이다. 머릿수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게끔.

이건 흑해자당의 근거지 하나를 포착할 기회다. 이동과 은신이 비교적 자유로운 돌격대와 달리, 폭탄을 대량으로 저장할 장소가 흔하지는 않을 테니.

나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 추적을 다른 녀석들에게 맡겨볼까 하고. 내가 아무리 와일드카드여도 가진 몸은 하나이니, 매사에 기회비용을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들키지 않게 미행을 유지할 능력은 오직 나에게만 있었다. 내 추적은 통상 시야의 가시거리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난 트럭들이 더 멀어지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부서기. 병력을 추슬러 차단선을 재구성하고 도심 각 구역에 최소한의 지원 병력을 파견할 준비를 하십시오. 공단의 폭도들이 추가로 공격적인 행동에 나서진 않을 겁니다. 난 사라진 적들을 추적해보겠습니다.”

가오슈센은 나를 만류하려 들었다.

“잠깐, 동사장은 여기에 있어야 하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냐면-”

뭔가를 말하려던 공산귀족이 눈을 굴리며 입을 다물었다. 속내는 뻔했다. 내가 저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게 편하긴 한데, 그걸 말로 꺼내자니 체면이 상하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압도당하기 쉬운 상황에 사리를 분별할 이성이 남아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귀족에게 신속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지금부터 시 치안행정의 주도권을 장악하셔야 합니다. 현재 순라지대가 광저우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유일한 치안 부서가 되었으니, 잘만 하면 성(省) 공안청으로부터 공식적인 위임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 이후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장타이롱 경독이 시 공전공사를 들이치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공안에 협조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면 관계자들을 정치적 제물로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이는 공산귀족도 머리가 식어감에 따라 더듬더듬 떠올릴 내용들이지만, 1분 1초가 중요한 시점이므로 내가 빠르게 일깨워주는 편이 나았다. 공전공사가 문제 상황을 은폐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들이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일. 나는 내가 주르륵 쏟아낸 말들을 소화하는 가오슈센을 두고 콤을 돌렸다.

“그 밖의 다른 임기응변은 부서기와 휘하 경독들의 능력을 믿겠습니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지요.”

부서기의 능력 운운하는 부분이야 어쨌든, 휘하 경독들의 능력을 믿는다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당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재능이 타고난 배경과 정치질이라곤 해도, 실무적인 성과 없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기는 불가능한 일. 내가 보기에 부서기의 실무능력을 채워주는 게 바로 휘하의 세 경독들이었다.

손가락을 까딱여 경태 이하가 따르도록 한 나는, 부하 하나로 하여금 이쪽을 노리다 사살당한 흑해자당 돌격대원의 오토바이를 끌고 오게 했다. 옆면이 갈리다시피 긁혀있었으되 기능상의 장애는 없어 보인다. 민활한 추적엔 사륜차보단 이륜차가 더 나을 것이었다.

나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며 지시했다.

“너희는 차를 타고 따라붙어라.”

폭탄을 적재한 트럭 행렬은 이제 내 시야에서도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난 스로틀 그립을 꺾어 엔진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냈다. 중국산답지 않은 경쾌한 가속. 푸른 색채의 LCD 계기에 뜨는 RPM이 단숨에 훅 치솟는다. 전자식 경적은 여러 소리를 낼 수 있어 전투시 신호를 주고받기에 적합했다. 흑해자당 연놈들이 이런 쪽으로는 투자를 아주 잘하고 있었다. 장비의 품질은 전투원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

어느 정도 간격을 줄인 다음에는 빠른 속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트럭 행렬이 다른 평범한 차량들처럼 신호를 지키며 운행했기 때문이다.

‘아주 대범들 하시군.’

흑해자당의 배짱을 뒷받침하는 건 예전보다 더욱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파괴된 CCTV들이다. 완벽한 통제사회 건설을 위해 공안 예산을 국방비보다 많이 쓰고, 감시기술 개발에만 연간 10조원씩 투자하던 나라의 꼬락서니라곤 믿기 어려울 지경. 형편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난 직접 추적에 나서는 대신 공산귀족에게 차량번호만 알려주고 말았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트럭 운전사들과 마찬가지로 신호를 기다리며, 난 런던의 감시체계도 이 꼴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세계에서 가장 감시가 심한 도시는 베이징이 아닌 런던이다. 근래 들어 감시 카메라의 숫자로는 추월을 당했으되, 인공지능을 활용한 감시기술은 여전히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내가 런던 공략에 라즈베리 미친 개미 같은 기상천외한 수단까지 활용하려 드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수단이 아니고선 원탁의 눈을 피해 일을 벌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여하간, 나는 열 개가 넘는 교차로를 지나기까지 멀쩡한 카메라를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복구하는 속도보다 부서지는 속도가 더 빨랐고, 카메라 교체 작업을 하는 이들에 대한 저격과 테러가 끊임없이 반복되었으며, 카메라의 절대적인 공급량 자체도 부족해진 까닭.

이렇게 얼마나 쫓았을까.

폭탄 수송 트럭들은 마침내 한 낙후된 주거지로 진입했다. 이로써 차량폭탄테러의 가능성은 사라진 셈이다. 처음부터 헛된 추적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테러가 벌어졌다고 치자. 화약의 출처를 필사적으로 유추한 중국은, 심증이 서는 즉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약 공장을 날려버릴 테니까. 그건 공장주들이 온갖 꽌시를 총동원해도 막지 못할 필연이었다. 기껏 확보한 병기창에서 최대한의 물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인내의 위장막을 씌워놓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파수꾼들의 눈을 피해, 트럭들이 진입한 길목을 지나쳐서 바이크를 세운 나는, 선동적인 벽서(壁書)들 사이에 이질적인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주의 옛 법칙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법칙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우주에서 고통을 면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영혼의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부처의 현신이자 부활한 예수이신 만민의 스승 칭하이 우샹시(靑海 無上師)님께 귀의하십시오. 칭하이 스승께서는 아홉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상석에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우리 스승께 우주의 새로운 법칙을 배우고 열반의 경지를 향하십시오…….」

현 중국의 치안이 개판이라는 또 다른 증거다. 마법의 재래를 맞아 온갖 사이비들이 기승을 부리는 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인민을 현혹하는 자들이 감히 양지로 기어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

따라온 애들의 배치를 무전으로 통제하며, 칙칙한 거주지 어귀에 선 나는 잠시 주변 환경을 관찰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은 몇 평 안 되는 가게에 가설물을 대어 공간을 넓힌 질박한 식당 하나. 정확히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한 명이었다.

나는 점포의 가판 앞에 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 아침마다 선 채로 끼니를 때우고 가는 유형의 가게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비닐 장막 하나 없이 개방되어있는 구조.

“어서 옵쇼-”

늙수레한 주인이 진한 방언으로 무성의한 인사를 건네 온다. 이 근방은 베드타운이고, 출퇴근 시간이 아니다 보니 나 이외의 다른 손님은 없었다. 손님은 물론이고 행인 하나를 찾아보기 어려운 거리였다.

“뭘로 드릴까?”

김이 새어나오는 찜통엔 온종일 파는 딤섬들이 들어있었다. 낡은 메뉴판에 적힌 건 단 세 가지.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새우. 열량보충을 해둬서 나쁠 것은 없었으므로 나는 턱짓을 얹어 주문했다.

“돼지고기로.”

“3콰이 5 줍시오.”

콰이(块)는 위안의 구어적 표현이며, 3콰이 5는 3위안 5마오(毛)를 말한다. 지갑을 꺼내자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가판에 붙은 결제용 QR 코드를 가리켰다. 난 그것을 무시하고서 50위안짜리 지폐를 꺼내어 내밀었다. 당 간부의 지하실로부터 털어온 위안화는 예외 없이 빳빳하고 깨끗했다. 발행되자마자 비밀금고로 직행하기라도 한 것처럼.

주인이 인상을 쓰며 발칵 짜증을 냈다.

“뭐 어디 일본 같은 데서 살다 오기라도 하셨수? 요즘 세상에 딤섬 한 접시 시키면서 고액권을 내미는 인간이 어딨단 말요?”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 말상대나 해주시오. 나는 이 동네 소식이 궁금하거든.”

내 말에 주인의 안색이 굳어진다. 가난한 농민공들의 거주지에서 그저 소식만 듣자고 46위안 5마오(약 8천 원)를 쓰는 사람이 흔할 리 없잖은가. 이는 농민공들의 하루 일당보다 많은 돈이니까. 난 들고 있는 지폐를 좌우로 느리게 흔들어보였다.

“안 받을 거요?”

“저기, 그게…….”

“부족한 모양이군.”

다시 지갑을 열어 고액권 아홉 장을 더 꺼내자 가게 주인은 딤섬 껍데기보다 하얗게 질려버렸다. 찔리는 구석이 있을 테니 당연한 반응. 나를 바라보며 침을 삼킨 그는, 내가 지폐를 내민 채로 가만히 있자 주인은 경련하는 손으로 돈을 받아갔다.

나는 너그럽게 말했다.

“감별기를 써 봐도 좋소.”

고문은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채찍질은 당근을 견들일 때 효과가 좋은 법. 그러니 현찰로 매수할 거라면 위폐가 아니라는 것쯤은 확인시켜줘야지.

“어서.”

이런 초라한 점포에도 위폐 감별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꽤 그럴듯한 물건으로. 위폐가 하도 많이 돌아다니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을 투자. 위축된 주인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시켰기 때문에 감별기에 지폐를 넣었다. 한 장 한 장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열 번 반복된 후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주인은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서있었다. 난 손 끝으로 가판대를 두드려 주의를 환기했다.

“값을 받았으면 물건을 내주셔야 하지 않소?”

끄덕인 주인이 접시에 딤섬을 무아지경으로 담아준다. 내가 주문한 돼지고기만이 아니라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득가득. 가게 위생이야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에 해로운 색채가 없었으므로, 나는 일단 하나를 씹어 삼켰다. 그냥 저냥 싼값에 어울리는 맛이다. 너무 느끼하여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긴장 푸시오. 답변만 잘해주면 지금 받은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드리리다. 주인장(老板)에게도 이득이 되는 거래란 말이오.”

“……예.”

“그럼 우선……. 주인장은 왜 핸드폰(手机)을 두 개나 가지고 계시오?”

이는 내가 굳이 이 가판대 앞에 선 이유였다. 궁벽한 점포의 사장이 사업상의 이유로 두 번호를 쓴다는 건 수상쩍은 노릇. 주인은 매대를 짚고 서서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내가 투시 능력을 보유한 초능력자임을 알 리 없으니, 평범한 인간으로선 공안에서 통신 검열로 냄새를 맡았구나 생각할 터였다.

“살려주십시오.”

주인의 입에서 묻지도 않은 말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저는 그저 망을 봐줬을 뿐입니다. 돈도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하, 하루에 10콰이 받았습니다. 종종 물건을 옮기는 시부……심부름도 하긴 했지만 그게 무슨 물건인지는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핸드폰이나 한번 봅시다. 연락을 그걸로 주고받았을 텐데.”

주인은 순순히 제 비밀 연락수단을 내주었다. 주인의 도움을 받아 잠금을 해제한 나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문자 연락들 사이에서 쉽게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우치(伊潕期)네 둘째가 곧 다섯 살이 되는데 생일은 1월 27일이고 약속시간은 14시이며 공금계좌에서 얼마를 출금하여 어쩌고 하는 내용을 유독 많이 보낸 번호가 하나 눈에 띈 것. 동문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였다.

‘전형적인 난수암호로군.’

비밀스럽게 쓰는 핸드폰에 무슨 놈의 동문회장 번호가 저장되어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다른 문자라곤 위장용으로 일부러 받았을 스팸 문자 폭탄뿐이니 더더욱 알아보기 쉬웠다.

이우치의 이(伊)는 숫자 1(yī)과 성조 및 발음이 같다. 우(潕)는 5(wǔ)이고 치(期)는 7(qī)이며, 이후 나오는 숫자들까지 합치면 1572512714……로 죽 이어지는 배열이 나온다. 암호책의 157페이지 25번째 글자, 127페이지 14번째 글자 같은 식으로 페이지를 더듬어가며 해석하는 암호다.

나는 내가 찾아낸 문자를 보여주며 추궁했다.

“이것과 대조할 암호책은 어디에 있소?”

주인은 다시금 눈을 질끈 감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보안폴더(安全文件夹)의 마오주석어록을 보시면 됩니다. 포, 폴더 비밀번호는 090118입니다.”

과연 폴더 안에는 PDF 파일 하나가 들어있었다. 난 이것을 우리 쪽의 번호 중 하나로 전송했다. 마오쩌둥의 어록은 수많은 출판사들이 다양한 판형으로 찍어내고 있었기에, 단순히 책 제목만 가지고 흑해자당의 암호를 해석하려면 낭패를 보게 되어있었다.

시험 삼아 몇 글자를 맞춰보니 제대로 된 단어들이 나온다.

“살려주십시오.”

가게 주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애원했다.

“제게는, 제게는 다음 달이면 만으로 열두 살이 되는 아들이 있습니다. 육, 육친이라곤 저 하나뿐이라 제가 죽은 다음엔 돌봐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시키시는 일은 뭐든 다 할 테니,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난 가게 주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짓말에 능한 자의 뇌구조가 아니었고 거짓말 특유의 생체신호도 없었으므로 조금이나마 마음이 동하긴 했다. 일단 나부터가 부모를 모르는 고아이지 않은가.

하여 순간의 변덕으로나마 가늠을 해보았다. 이자를 살려 보낼 경우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과 연민의 무게를 심중의 저울에 달아서.

답은 금세 도출되었다. 한숨을 내쉰 난 울먹이는 주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는, 지갑의 지폐를 다 꺼내어 추가로 건네주었다.

“이제부터 저 안쪽에서 싸움이 벌어질 거요. 그 여파가 여기까지 미칠지도 모르니, 당신은 길 건너 반대편으로 몸을 피하시오. 그 다음엔 공안에 자수하도록 하고. 그럼 내가 편의를 봐드리리다. 아시겠소?”

주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환희에 차 격하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고갯짓으로 도로 저편을 가리켰다.

“빨리 가보시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주인은 허겁지겁 돈을 챙겨 가게를 뛰쳐나갔다. 그가 도로를 다 건너기 전에, 적정반경으로 마력장을 전개한 나는 회로에 올려두었던 염동술식을 발현시켰다. 왕복 2차로를 무단횡단으로 건너던 주인의 몸이 쿵-! 하고 옆으로 튕겨졌다. 차선의 진행과 일치하는 방향이다.

가게 안에서 피를 보면 흑해자당이 암호책 노출을 의심할 테니 별수 없는 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주인은 숨이 한 번에 끊어지지 않았다. 달리는 승용차와 비슷한 수준의 힘으로 후려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피 흘리는 주인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구른다. 헐떡이는 중년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고통을 덜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부상의 형태라든가 남는 혈흔 등이 이상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할 이유로 시계를 보며 기다리기를 잠시. 가게 주인이 죽을 때까지는 1분 14초가 필요했다.

시체가 된 주인의 팔뚝엔 여러 개의 거무스름한 바늘자국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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