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01화 (101/561)

#15. 고독의 도가니 (12)

포병은 전쟁의 신이다. 드럼통 한쪽을 터서 만들었을 뿐인 급조 화포라곤 하나, 비뢰포의 이론상 최대사거리는 근 3백 미터에 달했다. 이 정도면 교전거리가 짧은 시가지에선 신 노릇을 하고도 남는다. 시원한 겨울바람이 포연을 반쯤 몰아낸 자리, 농민공들의 포병대가 성난 소리들을 지르며 사각을 올려 차탄을 갈길 기미를 보여주자, 공단 바깥을 포위하고 있던 정부 측 세력은 공안과 민병을 가리지 않고 끔찍한 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이쪽의 공산귀족도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지휘막사가 후방에 있다곤 하나 킬링필드가 육안으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위치였던 까닭이다.

“도, 동사장! 우리도 피해야 하오! 어서!”

내 팔을 붙잡아 끌고 가려 드는 게 귀찮기 짝이 없었다. 난 가오슈센의 손을 점잖게 떼어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정하십시오. 저들의 포격은 여기까지 닿지 못할 겁니다.”

“무슨 소리요, 그게? 빨리 가야 한다니까!”

“진정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언제 당신에게 틀린 조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게 하는 말이 효과를 거두어, 숨을 몰아쉬던 가오슈센의 떨림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나는 턱짓으로 무전기를 가리켰다.

“휘하 병력들에게도 현 위치를 고수하도록 엄정하게 당부하십시오. 순라경찰지대가 다른 지대들과 차별화된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

“안 하실 겁니까? 서두르지 않으면 지대 전체의 대열이 붕괴할 겁니다.”

재촉하는 내 눈엔 벌써 다른 지대들의 혼란에 휩쓸릴 기미를 보이는 순라경찰지대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숫자로는 순라지대가 민병 다음으로 많고, 처음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린 탓에 상대적으로 후방을 점하고 있어 그나마 기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단호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으면 금세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었다.

난 머뭇거리는 가오슈센을 건너뛰고 경독 중 하나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후산량 경독. 부탁드리겠소.”

말은 부탁이어도 실상은 요구나 다름없다. 안면이 땀에 젖은 경독은 상관을 힐끔 살피더니 경례를 대신하듯 까딱 끄덕이고서 무전기를 붙잡았다.

“지휘중심에서 전파한다! 순라지대 예하 전 병력은 현 위치를 고수하라! 반복한다, 순라지대 예하 전 병력은 현 위치를 고수하라!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흠이지만 못 들어줄 만큼은 아니다. 이 정도의 동요는 무전기의 낮은 음질에 가려질 것이었다. 어깨가 한껏 굳은 가오슈센은 방금 제 부하가 월권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을 겨를도 없어 보였다.

묵묵히 시립해있던 경태가 묻는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형님의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괜찮아. 아직도 차탄을 못 쏘는 저놈들의 숙련도를 봐라.”

곡사(曲射)를 쏘려는 농민공들의 포병대는 좀처럼 준비를 끝마치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받침대 아래 잡다한 물건을 괴어 포구를 올리고 뒤에는 모래주머니를 대는 식이라 사각(射角)을 균일화하기가 까다로운 것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쏴 갈기면 얕보이기 십상이지.’

명중률이 무의미한 급조화기는 집단운용으로 살상지대를 구축하여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저들이 성급하게 심지를 점화하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저들을 지휘하는 자가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마오주의에 심취하여 「마오공」의 후계를 자처하는 지식인 중 하나쯤이 아닐는지.

게다가 이론상의 최대사거리라는 3백 미터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당시의 인민해방군이 무수한 폭발사고들을 몸으로 겪어가며 계량했을 수치.

까놓고 말해, 드럼통은 대포로 쓰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접붙여놓았을 뿐인 철판은 대체 얼마까지의 폭발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가? 얼마의 화약을 넣어야 포 자체가 터지는 일 없이 발사가 가능한가? 그러한 발사가 몇 번이면 포의 수명이 다하는가? 발사체의 무게는 어느 정도여야 적당한가?…….

장담하는데, 저기서 포 하나가 터지는 순간 나머지 포병대 전체가 와해될 것이다. 다음엔 누구도 심지에 불을 붙이려 들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심지를 너무 늘려놓으면, 심지가 타는 동안 이능보유자들이 달려와 포를 걷어차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포병대를 통제하는 자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드럼통의 품질조차도 의심스러운 마당. 중국에서 찍어낸 데다 신품조차도 아닌 드럼의 내구성이 좋다면 차라리 기적이라 해야 할 일이다.

이 모든 사정을 담아 경태를 납득시키는 데엔 한마디면 충분했다.

“저놈들에겐 목숨 걸고 모험을 할 담력이 없다.”

내가 헤아리는 저들의 한계는 최대사거리의 절반 이하. 삼분의 일만 넘어도 다행일 것이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신경이 선득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발사!」

포병대가 다시금 불을 뿜었다. 느린 탄속으로 말미암아, 쏘아진 발사체들은 동체시력 좋은 사람이 희미하게나마 육안으로 좇는 게 가능했다. 처음엔 한 덩어리였던 포대가 풀어지며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금속들이 좌르르르 흩어진다. 곡선형 탄도의 정점을 찍은 그 금속들은, 곧 하얀 쇳빛 이지러지는 폭우로 화하여 공안의 전방 차단선을 두다다다닥 두들겨 깨부쉈다.

먼젓번의 아비규환이 보다 큰 규모로 재현되었다.

“…….”

나는 그 비명들을 들으며 긴장을 풀었다. 내 예상에도 못 미치는 짧은 비거리(飛距離). 다만 공안과 민병들이 한데 뒤섞여 일제히 물러나려는 통에 심각한 병목현상이 발생한 상태였으므로, 그 후미가 강철 우박을 얻어맞은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살려줘! 살려줘!”

짙은 피비린내는 살아남은 자들을 더더욱 아우성치게 만들었다. 우박에 맞아죽은 수보다 넘어지고 짓밟혀서 죽을 수가 더 많을 것 같은 극심한 혼란이었다. 농민공들의 진영에서 포성에 맞먹는 함성이 올랐다.

열감이 느껴지는 햇살 아래, 그들은 세 번째, 네 번째 포격을 연달아 쏘았다. 사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재사격에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이는 이미 쓰러진 자들에 대한 확인사살이자, 공황에 빠진 자들을 더욱 겁먹게 할 으름장이었다.

‘나라면 여기서 전과 확대에 들어갈 텐데…….’

적의 대열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추가 전력을 투입하여 적에게 최대의 피해를 강요하는 것이 상식이다. 뭐, 알 만한 사람들의 상식이긴 하지만, 농민공들에게 합류한 것이 진짜배기 마오주의자라면 이 원칙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마오이즘의 혁명이론은 군사력에 의한 국가전복을 핵심으로 삼으니까.

헌데 저들은 초반부터 적잖은 수의 능력자들을 낭비해버렸다. 솔직히 내 예상 밖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피로 명분을 쌓기도 전에 무너져버렸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해할 만한 선택이긴 하다. 시작부터 대뜸 포를 쏴버렸을 경우, 그 영상이 노출되면 마오주의 혁명의 핵심인 인민의 지지는 물 건너 가버리는 거니까.

그러나 이 선택이 더욱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진정한 예비대가 따로 있어야 마땅하다. 통제가 어려운 농민공들은 공격에 쓸 전력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경독.”

“말씀하십시오.”

“지금 타 지대들 및 민병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조직력이 붕괴해버린 상태요. 적도(敵徒)들이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것 같진 않으니, 휘하 병력으로 하여금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에 대비토록 하는 편이 좋겠소.”

“후방……이라뇨?”

“당신들은 처음부터 외부 세력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지 않았소? 상호간 엄호 사격이 가능한 거리에서 최대한 엄폐물을 확보하라 하시오.”

내 암시에 후샨량과 판하이산 두 사람의 안색이 굳어진다. 적들이 여기 모인 공안 전력을 갈아버릴 경우, 광저우시엔 감당 불가능한 치안공백이 발생할 터였다. 적어도 시 치안유지의 근간인 순라지대 하나만큼은 최소의 손실로 보전할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경고가 전파된 이후 30초나 흘렀을까.

바아아아아아앙-!

사방의 골목에서 돌연 바이크 배기음들이 요란하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요 며칠간 광저우 광역권에서 악명을 얻은 소리들. 아우성치는 병목을 가까스로 벗어나 숨 돌리던 자들이 새로운 공포의 출현에 전율했다. 공산귀족과 경독들의 입이 벌어지는 가운데, 나는 흑해자당의 꼼수에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메아리치는 배기음들의 태반이 녹음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겁에 질려있던 자들은 바이크 돌격대의 규모를 오판했다. 지휘부부터가 차에 올라타 아군을 치며 도주하는 판국이었다. 대오를 정돈하여 맞선다면 쉬이 저지할 전력이건만, 지휘체계가 완전히 마비되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

여기서 근거도 없이 적이 많지 않음을 밝히기는 어렵다. 난 현실적인 한계 내에서 추가적인 조언을-사실상의 지시를-얹어주었다.

“각 부대 단위는 제 자리에서 버티기만 하면 되오. 쉬운 사냥감들이 널려있는데 굳이 어려운 사냥감을 노리진 않을 테지.”

후샨량이 묻는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단, 방해가 된다면 아군이라도 사살해야 하오. 도망쳐 온다고 다 받아주지 말라는 소리요.”

내 말이 냉혹하게 들렸는지 후샨량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패잔병들에게 엄폐물을 빼앗기면 막을 공격도 못 막게 되어버린다.

무전으로 다급하게 올라오는 보고들을 들어보건대, 미리 경고를 전달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순라경찰지대는 무질서한 붕괴를 면하고 있었다. 일선 병력들이 보기엔 어쨌든 지휘부가 예상한 상황인 것. 그러니 모두가 본능적으로 지휘부에 의지하려 드는 중이다.

후샨량이 새로운 명령을 하달하자 들끓던 무선망이 조금 더 질서를 회복했다.

흑해자당 돌격대의 입장에서, 병목을 빠져나온 패잔병들은 쳐 죽이며 돌파하기에 딱 좋은 밀도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 차량과 차량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좁은 틈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들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무기를 앞세웠다. 멀리서 보면 마치 기병창처럼 생긴 그것은, 기다란 장대 끝에 화약과 납탄을 채운 죽통을 매달아놓은 것이었다. 죽통 바깥엔 질긴 재질의 로프를 둘둘 감아놓았다.

이 기병창의 정체는 일회용 산탄포였다.

“거창(举枪)!”

중국군에게는 경례의 구호가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창을 내밀라는 뜻이었다. 선두의 외침에 모든 창기병들이 세로로 들고 있던 창을 눕혀 전방을 겨냥한다.

“격발!”

빠바바바박! 기수들이 창대와 함께 꼬나 쥔 격발용 끈을 당기니 죽통이 박살나며 산탄이 흩뿌려졌다. 사람 여럿을 단숨에 찢어 죽이는 화력은 하나하나가 지향성 산탄지뢰(클레이모어)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 철저한 준비성을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렇게 돌입하여 양떼를 무자비하게 도살하던 늑대 무리의 일부가 이곳 천막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려운 사냥감이라도 잡을 가치가 있으면 잡아보겠다는 심산 같았다.

그러나 여긴 나와 내 애들이 있다.

“경태야.”

“예.”

내가 나설 것도 없이 경태가 나서서 애들을 통제한다. 공안 병력에 합류하여 가하는 체계적인 사격이 순식간에 세 놈을 시체로 만들어놓자, 이쪽을 노리던 적들은 금세 공격을 단념했다. 그렇잖아도 잡아먹을 것들이 넘쳐나는 사냥터니까.

기수를 돌린 늑대들은 양떼를 방패삼아 사격을 회피하고는, 총질과 칼질을 해대며 핏빛 질주를 재개했다. 가진 총을 써볼 생각조차 못해보고 죽어나가는 경관과 민병들. 이들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저 겁에 질린 약자의 무리일 뿐이었다.

피에 흠뻑 젖은 라이더 가운데 하나가 골목을 돌아서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바오마(BMW)다! 여기 바오마 차가 있다!”

이 학살의 무대에서, 광택이 남다른 고급 세단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계급적 탈것이었다. 사람을 여럿 치고 가로수를 들이받은 차는 주행이 불가능해진 상태. 세 대의 바이크가 원을 그리며 기관단총을 갈겨댔다. 이어 가까이 접근한 라이더들이 웅크리고 있던 탑승자들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풍채 좋은 공산귀족 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구걸한다.

라이더들은 귀족 포로를 산 채로 붙잡아갔다.

이때 공단에선 폭탄을 가득 실은 트럭 세 대가 달려 나왔다. 나는 비로소 농민공과 흑해자당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찍어내는 화약과 폭탄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했지.’

골수 마오주의자들이 규정하는 혁명은 오로지 적의 말살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즉 무력 이외의 길은 없다.

저들의 브레인이 진정으로 골수 마오주의자인지 아니면 그 흉내를 내고 있을 따름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어쨌든 저들의 진의는 인민혁명의 병기창을 마련하고 최대한 오랜 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데 있을 것이었다. 체불임금을 받아내려는 시위는 그 시간을 벌기 위한 연극에 불과했을 터. 협상은 처음부터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시(市) 공전공사(供电公司/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에 공단의 전기 사용량을 문의해보라 보낸 경독 장타이롱의 보고가 늦어지는 이유도 내 짐작과 조금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파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맞겠지만, 공전공사 측 간부들이 모종의 문제 상황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 해결을 같은 파벌에 속한 다른 간부에게 맡기고자.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혁명의 병기창을 마련한 자들이 전력 공급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리 없다.

흑해자당과 농민공들의 지도부에 마오주의자들이 앉아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아는 한, 중국 내 마오주의자들의 주축은 대학물을 빨갛게 먹은 젊은 인텔리들이었으니까. 교육수준이 높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진짜배기 빨갱이 새끼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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