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독의 도가니 (10)
“저 조직력은 말이 안 됩니다.”
가오슈센의 참모가 단언했다.
“홍콩의 반도(叛徒)들이야 백만 명씩 도당을 이루는 게 흔한 일이지만, 여기 광저우에서는 아닙니다. 수백 명의 시위도 전례가 드문 판국에, 하물며 수만이라니요?”
순라경찰지대의 현장본부 천막 안,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는 판하이산(潘海山)이라는 이름의 경독이었다. 전에 미주가 언급했던 가오슈센의 여벌 목숨 셋 가운데 마지막 하나가 바로 이 판하이산이었다. 공산귀족이 자신의 측근 전부를 직접 소개시켜준다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다는 뜻일 테고.
“저 천박하고 무식하고 이기적인 무리는 자기들 스스로는 저만큼 뭉칠 수가 없는 잠재적 범죄자들의 집단입니다. 고로 저 조직적인 행동력의 배경엔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조력과 관여가 있었을 것입니다. 흑해자당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판하이산의 말은 농민공 노동자들에 대한 기득권층의 관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그저 편견에 불과한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지배적 권력을 행사하는 귀족계급의 사회인식은 때때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리는 까닭이었다. 공산당은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꾸준히 감시와 세뇌와 통제와 공작을 행해왔고, 그럼으로써 지배당하는 자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극도의 개인주의는 이러한 파편화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농민공과 흑해자들의 사이도 좋지 못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범죄자가 되는 흑해자들에게, 같은 흑해자들 다음으로 잡아먹기 쉬운 사냥감이 바로 농민공들이었기 때문.
어두운 항아리에 갇혀 서로를 잡아먹으며 독기를 쌓아온 자들이, 항아리가 깨질 조짐을 보인다고 해서 갑자기 연대하여 힘을 모으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공산귀족과 그 부하들이 자꾸만 외세 타령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 편견과 의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가오슈센이 손을 흔들며 넌더리를 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이 상황에 말해봐야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더니 턱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고민한다.
“이번에도 돈으로 해결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화물트럭으로 빈민가를 밀어버렸을 때만 해도 보상금 가지고 찡찡대던 인간이 이런 소리를 하자, 상급자를 보는 세 경독의 눈에 일제히 의혹이 서린다. 지금 내가 맞게 들은 건가 반신반의하는 표정들. 판하이산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참으로 대승적인 결단이십니다만, 3만은 가볍게 넘을 저 반도들에게 일일이 밀린 임금을 주시려면 최소 몇 억 위안의 자금이 들어갈 겁니다. 전번에 더해 이번에도 그렇게 돈을 쓰셨다간 오히려 당 간부가 뭐 저리 돈이 많냐는 식의 역풍을 맞으실 수도-”
“무슨 불알 뜯어먹는 소리(扯蛋)냐, 이 얼간아! 골통에 뇌가 들어있으면 말하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라!”
욕을 먹은 참모의 얼굴이 벌겋게 물든다. 가오슈센이 손가락질과 더불어 힐난했다.
“네가 네 주둥이로 그랬잖아! 저것들은 지들끼리 뭉치기가 어려운 자라새끼(王八蛋)들이라고! 당연히 일부에게만 남모르게 돈을 먹여서 흔드는 거지!”
여기까지 말하고서 주먹을 쥐고 쌍으로 흔들어대는 공산귀족.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 저쪽 지도부와 접촉을 하고, 누구누구가 간부 노릇을 하는지 알아낸 다음에, 어? 그중 몇몇과 따로 만나 돈으로 꼬셔서 걔네들 꽌시를 따라 돈을 먹여 가면! 한 군데 터진 둑이 결국엔 다 무너져 내리듯이! 저것들도 서로를 탓하며 자멸할 게 아니겠느냐 이 말이야! 그다음엔 돈 먹은 놈들을 처리해서 원금을 회수하면 깔끔하겠지!”
질책당한 참모가 머리를 떨군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알아들었으면 한번 계획을 짜봐! 여기서 삐끗하면 우린 끝장이니까!”
공산귀족은 저가 내놓은 방안에 자신이 있는지 논의조차 생략하려 들었다. 시도해볼 가치야 있겠으나, 발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의사결정구조엔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무리 봐도 이것들은 이번 일을 단순한 폭동 진압쯤으로 여기는 품새다. 안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않고 행동에 들어가려는 병신 같은 모습들을 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
‘하기야, 이런 식의 대규모 농성에 대응해본 경험이 없을 테니…….’
근래 중국에서 파업이 잦아졌다곤 해도 기껏해야 사업장 하나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박한 소란들이었다. 노동자에게 파업권이 없고 노동조합이라곤 국가 공인으로 단 하나(중화전국총공회)만이 존재하는 ‘인민과 노동자들의 나라’에서, 언제 이렇게 대대적인 시설 점거 및 투쟁이 있었겠는가.
경험이 없으니 매뉴얼도 없다. 혹은 매뉴얼이 있어도 실천으로 체득한 사람이 없다. 천안문 사태는 군대로 짓밟았고 홍콩 민주화 운동은 마구잡이로 때려잡았을 따름이므로, 있는 건 오직 일방적인 유혈진압의 노하우뿐.
결국 이번에도 내가 끼어들었다.
“잠시 괜찮겠습니까?”
“오, 동사장. 말씀하시구려.”
태도가 단번에 온화해지는 가오슈센에게, 나는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당연한 절차를 일깨워주었다.
“저들이 점유한 시설물들의 상세는 확인해보셨습니까?”
“돌입 시 필요한 내부구조 정보를 이르시는 거요?”
“그게 아니라……. 내 애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 단지 안에 폭죽과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더군요. 쇠그릇을 찍어내는 공장도 하나 있고.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폭죽과 통조림……? 거기에 쇠그릇이라고?”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공산귀족의 낯짝이 빠르게 굳어간다. 눈 감고 한숨을 내쉰 귀족은 한쪽 허리에 손을 올리곤 삐딱하게 서서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이젠 짜증을 내기도 지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니들은 이런 거 안 알아보고 뭐했어? 내가 이 정보를 리 동사장에게 들어야 하나?”
경독들의 안색이 나빠졌다. 이번엔 누가 맞을 차례인가를 두고 서로 눈치를 보던 경독 중 한 명, 후샨량이 시간제한에 쫓기듯이 대답했다.
“그러한 시설 관련 정보는 내부안전보위지대(内部安全保卫支队)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순라지대가 다른 지대들과 분리된 현장지휘중심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받기가 어렵습니다. 안보지대장부터가 부서기님의 반대파에 속하잖습니까.”
“아, 그래? 그럼 여기 동사장께선 이 사항을 어떻게 확인하셨을까?”
“……면목 없습니다.”
“원래 오가던 길이 막혔으면 돌아갈 샛길을 찾아볼 생각을 해야지. 뒤에서 재액이 쫓아오는데 그냥 주저앉아 죽기만 기다릴 거냐, 어?”
흑해자당 바이크 돌격대와의 교전을 통해 일약 순라경찰지대의 영웅으로 떠오른 후샨량도 공산귀족에게 특별한 취급을 받진 못했다. 어차피 얻어먹은 전공이긴 마찬가지이기에.
가오슈센이 머리를 흔들며 아까보다 길어진 한숨을 내쉬었다.
“참 나. 무턱대고 병력을 돌입시켰다간 다른 이유로 목이 날아갈 뻔했군.”
사실 경독들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했다. 높으신 분들께서 몸소 행차하지만 않았던들 현장이 이렇게까지 개판이 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서로 다른 기관들이 관할권 다툼을 하며(혹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비협조적으로 구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여긴 일개 시경(市警)의 부서들이 현장지휘본부를 각자 따로 차려 운영하고 있으니 뭐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어찌 보면 내 탓도 있다. 내가 가오슈센을 띄워준 탓에,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현장에 얼굴 비추기가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린 것.
“동사장 말씀은-”
가오슈센은 눈을 가늘게 하여 공단의 전경을 응시했다.
“저 가증스러운 거지 떼가 지금 양면전술을 쓰고 있다는 뜻이구려. 겉으로는 순전히 억울함을 풀고 싶은 양 굴면서 시간을 벌고, 뒤로는 인명살상을 위한 폭탄을 찍어내고 있다…….”
난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공단으로 들어가는 전력량을 알아보라 하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느 공장에서 얼마의 전기를 쓰고 있는가 여부까진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겠지만, 가동 중인 공장이 있는가 없는가 정도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음, 하고 두어 번 끄덕인 가오슈센이 부하들을 훈계한다.
“다들 들었나? 너희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부분이야. 원래 하던 업무의 틀에 사고가 박혀가지고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거란 말이다!”
그러고는 경독 가운데 하나, 장타이롱을 지목하여 내가 주문한 전기 사용량을 확인토록 지시했다. 그러더니 내게 다시 의견을 구한다.
“가만. 이참에 전기를 아예 끊어버리는 게 좋지 않겠소?”
나는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건 형편을 살펴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형편이라니, 무슨 형편을? 반도들에게 무장을 강화할 시간을 줘서 좋을 게 뭐요?”
“처음에 선수를 빼앗겼다고 불평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보기에, 당신의 경쟁자들은 기회를 선점하는 데에만 몰두하느라 현장정보 수집을 소홀히 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까지 공단으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이고 말입니다. 혹은 후샨량 경독이 말한 내부안전보위지대가 혼자서 정보를 독점하고 있거나…….”
“어……?”
“당신을 견제하는 자들이라 해서 그 연대가 튼튼하기만 할 리가 없잖습니까? 당신은 경쟁자들을 윽박지르며 진압 작전을 서두르는 시늉만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은 기왕 얻은 기회를 낭비하기 싫어서라도 얼른 자기네 엽사병단들을 밀어 넣을 겁니다. 가려 뽑은 이능 엽사들의 힘에 자신감도 있을 것이고.”
난 어깨를 느리게 으쓱이며 결론지었다.
“폭도들이 부지런히 폭탄을 찍어내고 있기를 바랍시다, 부서기. 그래야 우리가 아주 즐거운 구경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하……. 하하하하!”
공산귀족이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다.
“명안이오, 참으로 명안이오! 선수를 빼앗겨 분하던 것이 조금 전인데, 이게 이렇게 돌아오는군! 동사장의 통찰은 참으로 따를 자가 없겠소! 그래, 많이들 죽어줘야지! 그래야 내가 따라잡기에 좋겠지! 이제야 균형이 좀 맞겠군!”
다른 귀족들이 기껏 모은 사병들을 무더기로 잃어버리는 것은 나에게도 유익한 일이었다. 다른 병단들이 약해지는 반대급부로서 나와 내가 만들 엽사병단의 사업 환경은 개선될 것이기에.
게다가 사실상의 사병이라곤 하나, 저들의 병단은 결국 돈 주고 민간인을 고용한 것에 불과하다. 실적과 명성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이능엽사들은 전망이 더 밝은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할 터였다.
어떤 시장에서든 경쟁은 없을수록 유익하다. 소비자들이야 싫어하겠으나, 사업자의 입장에서 독과점은 언제나 올바른 미덕인 것이었다.
“헌데-”
한참만에야 웃음을 그친 가오슈센이, 폭소의 여운이 잔뜩 남은 얼굴로 묻는다.
“내 경쟁자들이 욕을 보는 거야 즐거운 일이겠소마는, 그 뒷감당이 좀 걱정되는구려. 폭도들이 무장을 강화하면 결국엔 우리가 피를 볼 차례도 돌아오지 않겠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설마 이것도 해결책이 있는 거요?”
다시 웃을 준비를 하는 공산귀족에게, 나는 침착한 어조로 답을 돌려주었다.
“그렇습니다. 전부 다 폭사(爆死)시키면 됩니다.”
“……으응?”
의아해하는 가오슈센. 나는 친절한 협력자로서 답을 좀 더 길게 풀어주었다.
“다 폭사시켜 버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단지를 통째로 날려버리자 이겁니다. 밤에 몰래 침투하여 화약 창고에 시한 신관을 꽂아놓고 나오면 그만이지요.”
“이보시오, 잠시, 동사장…….”
“사후조사에서 원인을 날조하면 ‘사고’는 온전히 저들의 책임이 됩니다. 위험한 가연성 물질을 다루는 공정에서 작업자의 부주의로 실화(失火)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폭도 하나가 화약을 옆에 두고 담배를 피웠다는 식으로 꾸미거나 합시다. 자기들 스스로 터져 죽은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비슷한 음모를 꾸미는 다른 도당들에게도 찬물이 뿌려질 테고 말입니다.”
“…….”
“염려 마십시오. 나와 내 회사는 이번에도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할 겁니다. 당신의 명성은 완벽하게 보존되겠지요.”
가오슈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진다. 더불어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농민공들을 그토록 경멸해마지않던 인간이, 막상 다 죽여 없애자는 소리엔 충격을 받다니.
그간의 관찰을 토대로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예상하긴 하였으되, 새삼 일관성이 없는 놈이구나 싶기는 하다.
사람의 목숨은 숫자로 비교 가능한 가치가 아니다. 적게 죽이는 건 괜찮고 많이 죽이는 건 안 되는 법이 어디 있나. 사람들은 대부분 한 사람의 희생이 수만 명의 죽음보다 낫다고 할 테지만, 막상 필요할 때 당신이 그 한 사람이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 터. 그들이 자기 목숨이야말로 다른 사람들 모두의 목숨을 합친 것보다 귀하노라 말하지 못하는 건, 대부분은 그저 체면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기가 싫어 위선들을 떨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다. 나 없이 계속되는 세상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로 내 궁극적인 생존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삼만이 넘는 노동자들을 몰살시킬 화약더미에 얼마든지 불을 댕길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까진 없을 테지만.
국내 사안에 관한 중국의 언론보도는 중국인들도 한 번 걸러서 들을 만큼 신뢰도가 낮다. 그런 마당에 오늘 여기서 만 단위의 희생자가 나와 버리면, 이쪽이 아무리 실화를 주장한들 믿지 않는 자들이 상당할 터. 운 나쁘게 대형 스캔들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공산당이 잘라낼 꼬리는 당연히 가오슈센이 첫 번째겠지. 나로서는 피해야 마땅할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