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독의 도가니 (7)
후롱방 공략 이후로 며칠이 더 흐른 시점에서, 우리는 공산당 고위 간부의 비밀금고 한 곳을 추가로 털어먹는 데 성공했다. 이 지하금고는 시(市)급이 아니라 성급 정부에 속한 관료- 즉 가오슈센의 숙부 가오닝후이를 감옥에 처넣은 자들 가운데 하나의 소유였는데, 쏟아져 나온 재물과 보화의 양이 전번의 배를 가볍게 넘어갔다.
그리하여 두 번에 걸쳐 누적된 우리의 몫은 합계 약 13톤가량이었다. 채권과 달러를 합쳐서 7톤, 금괴를 비롯한 귀금속의 무게가 다시 6톤. 양이 너무 많아 무게로 달아야 하는 이익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한화로 환산한 가치는 얼추 1조 원쯤이 될 터. 앞으로 진행될 추가적인 사냥들을 감안하면 수백억 정도의 ‘사소한’ 오차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기회를 봐서 금고 하나를 재투자 없이 삼켜버릴 경우 수 조원 이상의 금액이 단번에 더해질 테니까.
환금성이 떨어지는 예술품과 고미술품들은 부수적인 이익으로 보면 적당하다. 1할을 애들 성과급으로 뺀다고 쳐도 엄청난 순이익이 남을 것이었다.
흑해자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대체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는지는 몰라도, 가오슈센과 미주를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광둥성에서만 최소 두 명의 간부가 추가로 비밀금고를 털린 정황이 있다는 것이었다. 간부들이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엽사집단과 흑해자당의 공격대로 추정되는 세력 사이에서 잇달아 대대적인 무력충돌이 빚어졌노라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간부들은 공안이나 정규군에게 보호를 요청하지 못했다. 그건 문자 그대로의 자살행위였기 때문에. “여기 내 비자금이 있습니다.”하고 스스로 자수하는 꼴인데 중앙당 기율위원회가 가만히 있을 리 없잖은가.
‘지능이 부족한 연놈들은 공개처형으로 본보기를 삼고, 압류된 재산은 더 높으신 분들끼리 갈라드시겠지.’
중국은 원래 공개처형을 좋아하는 나라다. 학교 운동장 같은 데다 현수막을 걸어놓고는 「선고대회」 운운하며 사형을 언도한 다음, 대중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쏴 죽여 버리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하여 횟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들의 시선이 쉬이 닿는 도시 권역에서의 이야기일 뿐. 벽촌을 도는 순회재판정에선 길가와 논밭에서 이루어지는 총살이 일상과도 같았다.
오늘, 위성전화를 걸어온 가오슈센은 조만간 당 간부들의 처형식이 집행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근래 여러모로 여유를 잃은 중국은 도시 한복판에서조차 거침없이 공개처형을 집행하고 있었으나, 이제껏 사형수의 신분이 당 간부인 사례는 없었다. 죽이는 자들 입장에서도 마냥 남 이야기일 수만은 없었기 때문.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곱게 보내주는 것이 귀족들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러나 엄혹한 시국은 그러한 약속마저 깨뜨려 놓았다. 다음 사형대에 올라갈 자들은 예외 없이 비밀금고를 털린 간부들이었다. 관례조차 무시하는 걸 보면, 민심을 위무하는 일이 그만큼 급하다고 판단한 것이겠다.
「아 글쎄 나에 대한 공세가 뚝 그쳤지 뭐요! 검거작전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둔 사람이 이 가오슈센이다 보니, 내 정적이라는 것들이 자기네 금고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날 응원해야 할 처지가 되어버린 거요! 하하하! 이 무슨 쾌거인지!」
가오슈센이 즐거이 전해온 상황은 내가 이미 예상한 바였다.
「갑자기 죽게 된 놈들과 반대로 숙부님의 재판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다오. 물론 금방 풀려나실 가망은 없지. 숙부님의 목숨은 윗분들이 내 목에 채우는 목줄 같은 것이니까. 허나 기분이 나쁘진 않구려. 이게 어디란 말이오? 동사장과 만난 이후로 흐른 나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시간이었소!」
또한 이 공산귀족은 본인이 인민영웅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말했다.
「작년부터 전인대(全人大) 상임위의 심사를 거쳐 1년에 한 번 뽑기로 한 인민영웅이지만, 작금은 새로운 영웅이 절실한 시국이지 않소? 특별 승인이 이루어질 경우 춘절(春节)을 기하여 훈장을 받을 수도 있겠지. 이 몸의 이름은 레이펑(雷锋)과 같은 반열에 들고, 이 몸의 일화는 새로운 홍색경전(红色经典)으로서 역사에 남을 거요!」
이듬해 춘절이 2월 12일이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두 달에 좀 못 미치는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가오슈센의 기대가 낙관적이긴 하나 실현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이 공산귀족의 앞길은 탄탄대로다. 잘만 조종하면 중국의 첩보망에 빨대를 꽂으려는 내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겠지. 기실 내가 이슬람 소수민족들과 주변 국가들을 감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던 배경엔, 이 인간을 방첩 계통으로 올려 보내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여하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른 공산귀족들은 직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기묘한 공론(公論)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론의 요지는 영미권에 존재하는 「시민체포권」을 도입하자는 것. 이는 평범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체포할 권리를 말한다.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 출연한 한 관료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사상이 불순한 이능보유자(异能保有者)들이 그 힘으로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다른 시민들을 해치고 있는 와중에, 선량한 시민들이 같은 힘으로 악에 맞서는 일을 법으로 금지함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애국적인 공민(公民)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살인자와 매국노들을 처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서 그는 먼저 캘리포니아 형법 837조를 예로 들었다. 범죄행위를 직접 목격한 경우, 혹은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중범죄를 저지른 자임이 확실시되는 경우 시민은 다른 시민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해지는 위압은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간주된다는 내용을.
「국가와 인민에게 이롭기만 하다면 적의 지혜를 모방하는 것이 대수이겠습니까? 저들은 저들의 이능보유자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병단(兵團)을 조직케 하고 정부가 감독관을 파견함으로써, 사특한 자들의 반사회적 공포행위에 성공적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업들을 이루기 위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형법은 이미 중국의 공민들에게 다른 공민들을 제재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니까요! 형법 제82조! 범죄행위를 직접 목격하였을 때! 수배되거나 감옥에서 도망친 자를 발견하였을 때! 그리고 경관에게 쫓기는 자와 마주쳤을 때! 모든 인민에겐 다른 인민을 체포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왕 있는 법에 맞춰 새로운 제도를 정비하고 용감한 공민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일깨워주는 것뿐입니다!」
이 관료의 말엔 사소한 오류가 두엇 있었는데, 하나는 시민체포권이 꼭 영미권에만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발원지가 영국이긴 하지만, 대륙법의 계보에 속하는 국가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시민체포권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관료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중국부터가 그러한 국가의 한 예시였다.
다음으로, 민병대에 대한 감독관 파견 제도는 미국에서도 아직 도입을 논하는 단계에 불과했다. 관료의 주장처럼 벌써 효과를 보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오류였다. 적에 비해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식의 화법은 대중을 선동하기에 좋다.
어쨌든 이러한 주장에 깔린 진의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나는 내심 쓰게 실소했다.
‘각자 보유한 사병들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싶다는 거지…….’
기존의 공안과 군대는 당국의 감시가 심하기에 비밀금고 보호에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감독관이 파견되는 친정부 민병대는, 소수의 감독관만 구워삶으면 어디에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는 애초에 자기 사람을 감독관으로 임명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이제 그들이 고용한 엽사들은 정규군에 준하는 무기와 장비를 이용 가능하게 되며, 더는 비밀스러운 고용이 아니게 되므로 비용 또한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중앙정부가 이러한 속셈을 모를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지방귀족들의 사병 보유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리라 생각했다. 현재 이 나라는 경제적인 이유로 계엄조차 마음대로 선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니까. 민심을 잡겠다고 계엄을 선포했다간 역으로 민심이 폭발해버리리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현재 중앙당이 밀고 있는 부패척결 할당제는 급한 김에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산 제물을 바쳐 민심을 위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겠는가. 약발은 회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게 되어 있고, 공산귀족들 가운데 부패하지 않은 자는 없으니, 언젠가 내 차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귀족들의 공포는 결국 무제한적인 분열과 당 내부로부터의 중상(中傷)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므로 다 함께 썩어있는 거짓 공산주의자들에겐 보다 지속 가능한 대안이 절실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치부를 공론화하지 않으면서 작금의 혼란상에 연대하여 대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런 정책이.
내가 보기에 민병대 합법화는 귀족들로 하여금 치안안정을 위한 자금을 스스로 내놓도록 만드는 괜찮은 전략이었다.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뒤따름은 필연이겠으되,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될 터. 「이능굴기(异能屈起)」 어쩌고 하는 당국의 표어와도 상통하는 정책이라 하겠다.
혼란스러운 시기, 귀족들의 사병 보유는 중국 대륙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베크룩스호(號) 후미의 난간에 기대어 남국(南國)의 선선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나는 앞으로의 사냥이 조금 더 까다로워질 것을 예감했다.
「형님. 용핑호(號)가 곧 도착한다는 연락입니다.」
“보고 있다.”
함교의 수연으로부터 들어온 무전. 난 구부러지는 물길 멀리 주장강의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빛바랜 백색의 선체를 바라보았다. 뱃머리 좌측엔 용핑(永平) 두 글자가 발음을 알리는 알파벳과 함께 적혀있었다.
이 용핑호는 우리가 위구르인들을 수용하고자 새롭게 임대하려는 소형 크루즈의 이름이었다. 후롱방의 근거지를 털어서 데려온 자들, 후롱방주 후슈잉이 따로 숨겨두었던 ‘특급상품’들, 그리고 공산귀족 마이쯔치가 운영하던 사교클럽에서 구조한 자들까지 합치니, 확보한 무슬림의 숫자만 287인에 이르렀다.
이들을 뭍에 내어놓기는 곤란했다. 탈출을 꾀할 수도 있고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격리하자면 역시 고립된 선상이 최고인데, 베크룩스가 좋은 배이긴 하지만 저 많은 숫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체급은 못되었다. 이제까진 차량과 화물을 수용하는 갑판에서 먹이고 재우느라 몸살을 앓았다.
“계약엔 문제가 없나?”
내가 묻자 즉각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우선은 시험운용 명목으로 일주일을 벌었습니다. 어차피 운행이 중요한 배는 아니기 때문에, 부두에 대어놓고 실사용을 하면서 가격을 협상하려 합니다.」
베크룩스처럼 급한 계약은 의심을 사기 쉽다. 고로 수연은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협상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위구르인들의 상태는?”
「육체적으로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영양실조 치료식을 추가로 조달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는 버려진 사교클럽에 갇혀있었던 성노예들의 이야기다. 클럽 내 집단숙소의 구조는 감옥과도 같았고, 공산귀족의 관리인들마저 죄를 피해 달아나 버린 시점에서 수인(囚人)들의 집단 아사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내가 악취 가득한 숙소의 문을 열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클럽의 식품저장고에 남아있던 재료들을 이용해 유동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먹여야 할 사람은 많은데 일손은 부족하여 나까지 손을 보태야만 했던,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이가 없었던 경험이었다.
‘내 손으로 요리를 해본 게 얼마만의 일인지.’
대개 사람의 생존한계로 물 없이는 사흘 음식 없이는 삼주를 말하지만, 원래부터 영양상태가 나빴던 노예들은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틸 수 없었다. 듣기로, 시설의 주인인 마이츠치가 숙청당하기 이전부터 이미 정상적인 급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모양.
하기야 이 시국에 어느 귀족이 클럽을 찾을 여유가 있었을까. 주인이 찾지 않고 손님도 오지 않으니 자연히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이건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수연의 보고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활동이 가능한 인원들은 출신지, 종파, 민족, 유입경로 등의 기준에 따라 여섯 개 그룹으로 나누어 관리 중이며, 전 인원이 건강을 회복했을 때의 적정 그룹 수는 열다섯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한 종파별 인원수는 수니파가 191인으로 가장 많고, 이스마일파가 35인이며, 나머지 61인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종파에 따른 갈등 징후는 아직까진 확인된 바가 없으며…….」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을 이슬람 극단주의에 매몰된 자들로 묘사하길 즐기지만, 실제 위구르 자치구는 터키 이상으로 세속신앙이 보편적인 땅이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판국에 극단주의는 무슨 놈의 극단주의란 말인가.
보고를 다 들은 내가 이야기했다.
“용핑호로의 수용을 마치고 나면 건강한 자들에겐 특식을 제공해주도록 해라.”
「특식……입니까?」
“내일이 성탄절 아니냐.”
「아.」
예수, 꾸란의 표기에 따르자면 선지자 이싸(يسوع)의 탄신일은 이슬람을 믿는 자들에게도 거룩한 날이다. 비록 히즈라력(曆)에 규정된 축일은 아닐지나, 어지간히 보수적인 신자들을 제외한 나머지에겐 축일에 버금가는 하루인 것.
‘저녁에는 애들을 좀 챙겨줘야겠군.’
사소한 기념일을 챙기는 건 사기 관리에 있어서 가성비가 좋은 일이었다. 경태는 오랜만에 술맛을 좀 보게 될 것이다. 전번처럼 문자 그대로 맛만 보는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한두 시간쯤은 기분 좋은 취기를 느낄 수 있게끔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부두 너머의 번화가를 바라보았다.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도 번화한 중심가에선 어떻게든 기득권층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 부유한 거리 어디에서도 성탄절과 관련된 장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지금과 같은 시기에 양제(洋节), 즉 서양에서 들어온 명절을 기념하는 행위는 당의 눈 밖에 나기 딱 좋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실소도 안 나올 만큼 유치한 행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