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94화 (94/561)

#15. 고독의 도가니 (5)

“당신이 책임자인가?”

나는 내게 질문을 던진 후롱방주 후슈잉(扈秀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싸대기를 후려쳤다. 팍 돌아가는 머리통. 입안이 터져 피가 튀었으나 카펫이 붉어 티가 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통상시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 후슈잉은 피 섞인 침을 옆으로 뱉고서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내 부하들에게 붙잡혀 무릎 꿇려지기는 하였으되 손발이 포박 당하진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망가진 얼굴로 입술을 떨었다.

“시작부터 너무 난폭하군. 적어도 어느 분께서 나를 잡아오라 하셨는지는 알고 싶은데 말이지. 혹시 잉겅레이 님께서 보내셨나? 아니면 두뤄윈 님? 쑹쯔산 님? 바로 죽이지 않는 걸 보면 누구든 이 후슈잉을 길들여 쓰실 데가 있는 분이실 텐데.”

착각에 빠진 후롱방주의 입에서 시당 간부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흘러나온다. 이는 이 여자에게 아직 숨을 붙여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바닥 아래의 바닥에 거하는 자들만이 알 법한 정보라는 게 있으니까.

물론 그 정보라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비밀장부에 다 담겨있었다. 아무런 단서 없이 구술에만 의지하는 심문에는 한계가 있는 법. 돈과 물건이 오간 내역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만 진술을 요구하면 된다. 그럴 필요가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찰칵. 내가 술병 가득한 책상을 더듬어 은밀하게 감춰진 수납공간을 열자, 긴장한 채 지켜보던 후슈잉의 얼굴에 경악과 의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알았지?’와 ‘어떻게 열었지?’에 해당할 감정이었다. 수납공간엔 전자식 자물쇠가 내장되어 있었으니까. 외부에서 보면 전혀 티가 나지 않고, IC칩을 가져다대야 비로소 열리는 구조였다. 책상의 낡은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치들. 이 의외성이야말로 은닉의 핵심이었을 터다.

나는 한 장 한 장 장부를 넘겨가며 중요한 부분은 사진을 찍어 베크룩스로 전송했다. 광둥 삼합회의 일개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액수의 단위가 상당하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부잣집에선 문간을 기웃대는 개새끼들도 금으로 된 뼈다귀를 물고 다니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후슈잉이 내 심중을 떠보려 애쓴다.

“이봐. 능력 좋은 경관 나으리. 앞으로 같은 분을 섬기게 될지도 모를 처지에 너무 비싸게 굴지 말라고. 지금 나한테 조금만 베풀면 내가 훗날 몇 배, 아니, 몇십 배로 갚아줄 수 있-”

“글을 쓸 때 어느 손으로 쓰나?”

“뭐?”

“오른손과 왼손. 어느 쪽 손을 주로 쓰냐고 물었다. 많이 해봐서 익숙한 질문 아닌가?”

내 건조한 질문에 후슈잉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는다.

“오, 오른손…….”

“그럼 왼손에서 골라야겠군. 1조장. 손가락 하나 뽑아라.”

“잘라라.”가 아니라 “뽑아라.”다. 다른 부하들이 후슈잉을 억누르는 사이, 경태는 후슈잉의 왼손 엄지를 순수한 힘만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으직으직 관절이 찢어지는 소리는 깡패 두목의 고통스러운 절규에도 다 파묻히지 않는다.

나는 그 느린 파열을 감상했다. 후슈잉은 각성한 능력자였으되 강화 효율의 문제로 실제 힘은 보잘것없었다. 다만 그래도 회로가 열렸다고 고유의 마력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 마력장의 크기에 힘입어 부하들 앞에서 허세를 떨 수는 있었을 것이었다. 동네 깡패들에게서 허세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어쨌든 후슈잉의 몸은 내가 강화술식을 설계해준 경태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잠깐 사이 땀으로 흠뻑 젖은 후슈잉이 울부짖는 가운데, 나는 경태에게 한 번 더 지시했다.

“지져.”

답답한 사무실에 째지는 비명이 메아리친다. 공포를 새기고 여유를 빼앗는 건 심문의 기본. 이는 비슷한 짓들을 지겹게 해보았을 후슈잉도 알 테지만, 안다고 해서 면역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이 공포와 고통의 속성이었다.

살을 굽는 내음은 맡을 수 없었다. 담배 연기에 찌들어있는 곳에서 방독면을 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눈엔 구석구석 끼어있는 니코틴과 타르의 색채가 선명했다. 에어컨 필터는 노란 이물질들로 가득했다. 몇 년을 쓰면서 청소 한 번을 안 한 듯한 모양새.

“너는 내가 물어볼 때만 입을 열면 된다. 이해했나?”

“예, 예…….”

“좋아.”

예절을 빠르게 학습한 깡패 두목은 아까와 같은 허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참으로 얄팍한 허세였다. 나는 시선을 다시 장부에 두었다. 얕고 넓은 수납공간에 들어있던 다섯 권의 장부는 후롱방과 그 뒷배를 봐주던 간부의 검은 역사를 담고 있었다.

“5년 전부터 새로운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군?”

내가 묻자 침을 흘리던 깡패 두목이 고개를 든다.

“5년 전이라면…… 혹시 웨이우얼 놈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리(大爷)?”

“그래.”

웨이우얼(维吾尔)이란 위구르(Uighur)의 음차였다. 장부를 보건대 후롱방은 초창기부터 사람을 사고팔던 조직으로서 그 전에도 간간이 위구르족 노예를 거래한 기록들이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조직이나 딜러를 통해 간접적인 경로로 적은 숫자를 취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5년 전부터는 취급하는 단위가 달라졌다. 공급처와 공급주기도 일정해졌고.

“여기 적혀있는 카라마이(克拉瑪依)는 지명을 말하는 게 맞나?”

“그렇……습니다. 거기 있는 재교육 수용소에서 상품을 받아 왔습니다.”

일개 방파 주제에 능력도 좋군. 아무나 뚫을 수 있는 공급선이 아니었을 텐데. 조금 더 페이지를 넘긴 나는, 들어온 위구르족 노예들 가운데 적은 수가 정기적으로 특정 대상에게 납품되었음 또한 확인했다. 받은 자의 이름은 마이쯔치(麥梓淇). 이 이름을 나는 수연을 통해 들었다. 전직 광둥성 정부 관계자이자, 얼마 전 숙청당한 후롱방의 핵심 뒷배라고.

“마이쯔치는 혼자서 뭐 이렇게 많은 수를 상납 받았지?”

젊거나 어린 남녀를 거의 천 명 가까이 받아갔다. 난잡한 취향에 왕성한 성욕과 남다른 권력이 더해지더라도 혼자서 감당하기가 불가능할 규모. 현실이 매양 상상을 비웃는다지만, 내가 아는 한 당 간부들의 축첩은 일백 안팎이 현실적인 한계였다.

후슈잉은 침을 삼키고서 대답했다.

“그분께서 운영하시던 비밀 사교클럽이 있습니다.”

“난교클럽이 아니라?”

“……안쪽의 사정까진 모르지만 아마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여러 간부들이 위험부담을 공동으로 나눠셔 졌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고위 공직자들의 난교 동호회 같은 게 아니었을지. 사이를 돈독히 한답시고 당 간부끼리 첩을 공유한 사례도 있잖은가. 진정한 꽌시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는 경지여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납득한 나는 이어서 물었다.

“그 클럽이 어디에 있나?”

깡패 두목은 이번에도 순순히 정보를 불었다. 내가 위구르족에게 흥미를 보인다고 여겼는지, 관련하여 묻지 않은 정보까지 스스로 내어놓는다.

“저기, 그, 나으리. 상납할 길이 막혀서 아끼고 있었던 특급 상품들이 좀 있습니다. 높으신 분께 바친다면 역시 남의 손을 타지 않은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클럽에 있는 것들의 몸뚱이는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을 테니……. 아, 바치기 전에 나리께서 한 명쯤 챙기셔도 좋-”

나는 후슈잉에게 다가가 복부를 걷어찼다. 다가오는 날 기대감에 차 올려다보던 후슈잉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상체를 구부렸다.

이후로도 나는 차근차근 고통을 주며 정보들을 뽑아냈다. 내가 위구르족 노예에 특히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그들을 이슬람 세력과의 접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구르족은 정치적인 문제로 다른 이슬람 세력들로부터 오랫동안 외면 받아왔지만, 이젠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성공하기만 한다면 위험부담이 많이 줄어드는데 말이야.’

언젠가 수연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손잡을 것을 건의했었고, 나 역시 진지하게 검토한 바 있다. 그저 그러기 위한 징검다리를 밟기가 위험하여 보류했을 따름.

한편으로는 위구르족 노예들을 데려다가 전투원으로 써먹는 방안도 뇌리를 맴돌았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 전투원의 숫자라지만, 사막의 사람들로부터 모집한 인원에 위구르족 노예들을 더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전투인력 확보가 가능할 성싶었다. 버려진 자들의 군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확인한 나는 턱짓으로 후슈잉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끌고 가라. 진술 조작은 저쪽에서도 잘 하겠지.”

가오슈센의 아랫것들에게 산채로 넘겨주면 죽이기 전에 최대한의 쓸모를 뽑아낼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후롱방주의 가장 중요한 쓰임새다. 내게는 장부만 있으면 된다.

“잠깐, 잠깐-!”

구체적인 처분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길함을 느꼈는지 후슈잉이 다급한 발버둥을 쳐댔다. 경태 이하는 그런 깡패 두목에게 재갈을 물리고 수갑을 채워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나 역시 층계를 내려가니 지하의 구석진 방엔 이미 실어온 재보들이 옮겨져 있었다. 운반 시엔 다른 트럭들이 움직여 시야를 차단해주었고. 나머지 장면 연출은 썩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여기서 압류된 물건이 증거보관실로 옮겨지면, 장물을 알아본 원래의 주인은 속앓이를 하면서도 감히 제 것이었노라 주장하지 못할 터였다. 이만한 재물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그 출처를 증명해야 할 테니까. 즉 권리주장이 곧 자신의 수뢰(受賂)와 부정에 대한 진술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정계의 승냥이들이 가만히 있질 않겠지.

후롱방의 잿빛 성채를 나선 나는 주변의 사업장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하류인생들의 생존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삼삼오오 사방에서 몰려들던 방파의 잔챙이들은 본채가 완전히 털렸음을 깨달았는지 모조리 도망쳐버린 뒤였다. 일반 가옥으로 숨어든 녀석들은 잡아내자면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지만, 내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컹컹! 으르르르-!

내가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옮긴 사업장은 투견장이었다.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기시감을 느낀다. 깡패도 달아나고 관객도 다 달아나버린 투견장의 우리 안에선 피칠갑을 한 개들이 승리를 만끽하는 중이다.

철조망 안쪽으로 흥건하게 고인 피는 인간의 육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것 참.”

사람은 삶이 즐겁지 아니하면 산 채로 죽어가는 생물이다. 삶이 괴로운 사람일수록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마련. 그런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게 되면 거기엔 매양 폭주하는 광기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여기서 개와 개의 싸움은 역치(閾値)를 밑도는 식상한 자극이었을 터다. 어린애들에게 날붙이 몇 개 들려주고 투견 무리와 싸움을 붙이는 건 맛이 가버린 인생들을 만족시킬 도착적인 즐거움이었을 것이었다.

허억, 허억-

실시간으로 생살이 찢어지는 와중에도 아직 심장이 뛰는 남아가 하나 있었다. 일회용품 치고 곱상하게도 생긴 얼굴. 관객들의 입장에선 고운 것의 죽음이 못난 것의 죽음보다 강렬하다. 못난 것은 동정조차 적게 산다는 점에서 실격이었다. 마침 자식을 파는 부모들이 많아졌을 터라, 그날그날 상등품을 조달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여기는 세상이 어렵고 어지러울수록 번영을 구가하는 사업장이다.

“살려……살려주ㅅ-”

폐가 제대로 수축을 하지 못하여 자그맣기 짝이 없는 요청. 내가 아니고선 듣지도 못했을 목소리다. 너덜너덜한 소년이 한쪽 팔을 내게 뻗으려니, 먹을 것을 두고 서로 다투던 개들 가운데 하나가 그 팔을 물고서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오래된 피로 검어진 흙바닥에 새로운 피가 흩뿌려진다. 나는 권총을 뽑아 아이의 머리를 쏘고, 총성에 놀란 개들을 차례로 쏴 죽였다.

이제 둥그런 철조망 안에는 흐르는 피와 고요한 죽음만이 남았다.

“그냥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 말입니다.”

“뭐냐.”

경태가 죽은 애들을 보며 묻는다.

“누군가가 방금 쏘신 저 애 정도로 다쳤다고 칠 때, 형님의 마법으로 부상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글쎄다.”

가만히 생각하던 내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화해야 할 마력장이 너무 강하지만 않다면, 아마도.”

방금 사살한 남아는 누가 봐도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일단 내장부터가 많이 뜯겨나가 버린 것을. 나는 그저 수십 초 남짓한 고통을 덜어주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황금기의 유산에서 비롯된 육체강화 술식을 원전(原典) 그대로 구현해낸다면 심대한 신체적 결손조차 재생해내는 게 가능해진다. 원전 구현은 연산량과 회로에 걸리는 부하가 막대하여 지금의 내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 필요하다면 시도를 해볼 수는 있었다.

“왜, 내가 저 애를 살려서 거두었으면 했나?”

묻자, 경태는 멋쩍어하는 기색으로 답했다.

“아아뇨……. 누굴 살리고 누굴 거둘지는 온전히 형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죠. 전 정말로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모두가 이 김경태처럼 운이 좋을 순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반쯤 내가 새긴 정신교육에서 나오는 대답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에서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책임질 순 없노라고. 내게는 그럴 생각도 능력도 의무도 없으며, 너희들 또한 그러해야 하리라고. 그러지 않고선 언젠가 힘이 다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잡아먹히는 날이 오고야 말리라고. 나와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조직의 역량엔 항상 넉넉한 여분이 남아있어야 마땅하다고. 너희 모두 겪어봐서 알지 않느냐고…….

나는 발걸음을 사육장으로 옮겼다. 잠겨있던 철문이 스스로 열리고, 철창에 갇힌 개들이 짖는 소리가 커지며, 어둡던 내부에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개들이 갇힌 우리 사이에 사람을 가둔 우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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