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93화 (93/561)

#15. 고독의 도가니 (4)

이즈음 건물 밖에선 이쪽으로 이어지는 골목마다 잡다한 무장인원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몰려드는 중이었다. 이 낡은 성채를 중심으로 몰려있는 방파의 사업장들이 두목의 부름에 응하여 지원 병력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아래층의 부하들은 내가 경고하기도 전부터 새로운 적의 출현에 대비하고 있었다. 최초 돌입과 동시에 드론을 띄운 베크룩스의 원격 정찰 지원 덕분이었다. 저층의 부하들은 적의 증원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숫자만 많았지 무장이라곤 권총과 날붙이 따위가 전부였기 때문. 또한 양민학살과 무질서한 패싸움에 특화된 건달의 전투력은 진짜 전투에선 쓸모가 없다. 여기에 중층으로 올라온 두 명의 저격이 더해지니 적들이 감히 전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만히 골몰하던 나는 경태가 차고 온 크로우 바를 보고서 싸움을 마무리 지을 방편을 정했다. 저쪽이 인간 중기계의 힘을 이용하겠다면 이쪽도 똑같이 대응하면 될 일이다. 저들이 없는 길을 만들겠다니, 우리도 그렇게 해줘야겠지. 저 지역구 건달패들보다는 조금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것 좀 잠깐 빌리자.”

내가 손을 내미니 경태 녀석이 허리춤에서 크로우 바를 끌러 준다. 다른 부하에게선 방탄방패와 도어 브리칭에 쓰는 플라스틱 폭약을 넘겨받았다.

“조를 다시 둘로 나누겠다. 1조장은 나를 따라오고, 너희 둘은 이 자리를 지키면서 길을 틀어막아. 지시가 없는 한 먼저 공격할 필요는 없다.”

예! 하고 돌아오는 대답들. 1조장은 경태를 말한다. 원래 있던 길목은 둘만 남겨도 막을 수 있을 만큼 좁았다. 혹시라도 적이 나오려 든다면 말이지만. 나는 이번에도 적에게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개의 싸움은 주도권을 놓지 않는 자가 승리를 거두는 법. 쉴 새 없이 몰아쳐 적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야말로 대승의 지름길이다.

4층으로 내려간 나는 도박장의 너른 테이블을 밟고 올라 천장에 플라스틱 폭탄을 부착했다. 이 천장은 곧 매복자들이 밟고 있는 바닥이었다. 황금기의 눈이 없더라도 소리만으로 짐작 가능한 위치. 하얀 지점토 같은 폭탄에 막대형 신관을 꽂고 전선을 늘어뜨려 격발기에 물린다. 경태와 함께 안전거리를 확보한 나는 따로 숫자를 셀 것도 없이 격발기를 콱 움켜쥐었다.

콰쾅!

섬광이 번뜩인 직후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후두두둑 쏟아진다. 결과를 보면, 문짝이나 겨우 부술 양의 화약으로 천장을 무너뜨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크로우 바가 필요한 것이었고.

적들의 당황은 시끄러워지는 층간소음이었다. 다시 테이블을 밟은 나는 폭발로 드러난 철근에 크로우 바를 걸고 온 힘을 다해 확 끌어내렸다. 제 자리로부터 뚜둑- 하고 떨어져 나오는 녹슨 철근. 바스러진 녹 가루가 푸스스 흩날리는 게 신경에 거슬린다. 중국의 낙후된 민간 건물에 정상적인 철근이 들어가 있을 리 없잖은가. 덕분에 일이 더 수월해지긴 했지만.

뚜둑, 뚜둑, 뚜두둑-!

한 번, 두 번, 세 번. 반동을 주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리를 이탈하는 철근이 많아진다.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할 수만 있다면 한 번에 모조리 뜯어냈을 것을.

“이제 무너진다. 섬광탄 준비해. 두 개다.”

내 명령에 문 밖에 선 경태가 양손에 섬광폭음탄을 쥐고 안전핀을 제거했다. 나는 자리를 피할 이유가 없다. 섬광이든 폭음이든 내 감각을 어찌하진 못하니. 섬광 쪽이 특히 더 그러하다. 영상기록을 고려하건대 방패 뒤에 숨는 시늉은 해야겠지만. 적 다수의 감각을 확실하게 마비시키고자 두 발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

천장 위의 적 일부가 이제야 내 의도를 깨닫고서 바닥을 가리키며 소리들을 지르고 있었다.

늦었어, 새끼들아.

매복을 곧바로 포기하지 못한 게 저들의 패인이다. 나는 늘어진 철근 여럿을 휘어잡고서 뒷걸음질을 치며 와락 뜯어냈다.

“흡!”

우두두두득! 마침내 천장 전체에 균열이 확산된다. 아래쪽이 절반 넘게 사라진 콘크리트의 굳기만으론 근육돼지 하나와 무장인원 다수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티잉-! 섬광폭음탄의 안전손잡이가 튀는 소리. 내가 물러난 자리에 아우성치는 인간과 콘크리트의 혼합물이 쏟아져 내리자, 경태가 즉각 한 쌍의 섬광탄을 투척했다.

“쿨럭, 케흑! 염병할(肏)! 뭐야 이 씹구녕(傻屄) 같은-”

떨어진 건달패 가운데 하나가 회칠한 낯짝으로 욕을 퍼붓다 방탄방패를 든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놈의 눈이 커지는 찰나, 강렬한 빛이 실내를 순백으로 물들였다. 동시에 터진 굉음이 다른 모든 소리들을 지우며 건달들의 청각을 마비시켰다.

쩍!

크로우 바의 갈고리가 무릎 꿇은 근육돼지의 턱밑을 찍고 들어가는 소리. 커다란 사지가 경련하는 가운데 체중을 실어 한 번 콱 비트니 갈고리 끝이 척수(脊髓)에 걸린다. 나는 지렛대를 당겨 관상(管狀)의 신경다발을 턱뼈와 함께 뜯어냈다. 나름 우수한 강화능력자의 허무한 최후였다. 천운으로 살아남더라도 전신불수는 확정.

“무슨 일이야!”

위층에서 묵직하게 쿵쿵대는 발걸음이 가까워진다. 그러나-

카카카카캉!

무너진 구멍으로 접근하던 또 다른 근육돼지가 총성에 놀라 방어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공황에 빠진 양아치 하나가 되는 대로 쏴 갈기는 무차별 사격. 여기에 경태의 엄호사격마저 더해지니, 눈 먼 자들의 공황은 전염병처럼 확산되었다.

“죽어! 죽어!”

적의보다는 공포를 더 많이 담고 있는 절규들.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건달들이 각자가 쥔 방아쇠들을 미친 듯이 당겨댔다. 서로가 서로를 쏘며 자멸하는 광란의 현장. 재빨리 두어 걸음 물러선 나는 방탄방패에 경사와 염동력을 먹이고서 5초가량의 광란을 견뎌냈다. 평범한 개인화기에 평범한 탄창의 조합으로는 몇 초만 갈겨도 탄이 바닥난다.

윽, 으으…….

회색 잔해 곳곳이 핏빛으로 젖어드는 풍경에 온갖 놈들이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더한다. 건달패의 정예는 모두 방탄복이나 갑주 따위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죽은 놈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어구는 하나같이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제품들이었고, 소총탄에 연달아 맞는 충격은 맞은 놈들의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로 컸으므로, 널려있는 부상자들은 나와 경태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사냥감들이었다.

무기를 바꿀 필요는 없었다. 탄창 교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럴 땐 총보다 냉병기가 더 빠르다. 평범한 사람이나 애매한 능력자라면 몰라도, 내게는 격이 다른 신체강화 술식이 있으니까. 노리는 건 사제 갑주와 방탄복의 빈틈. 상궤를 벗어난 힘이 실린 쇠지레는 역시 상궤가 벗어난 속도로 건달들을 죽여 나갔다.

“살려……. 살려줘…….”

이제 겨우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건달 하나가 허우적허우적 탄창 빈 기관단총을 내게 겨누며 살려달라고 비는 소리. 손가락은 덧없이 방아쇠를 당겨대고 있다. 말과 행동이 완벽한 모순이었다. 내가 손쓸 것도 없이 경태의 사격이 건달의 경추를 좌우로 관통했다. 떨어진 놈들을 모조리 척살한 나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자세를 낮추어 방패를 치켜들었다.

티티티팅!

경사를 준 방패에 흠집만 남기고서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가는 소구경 납탄(FMJ) 세례.

“이런 씨발!”

내게 낡은 소총을 연사로 갈긴 근육돼지가 욕설을 내뱉는다. 비상구 방향의 회랑을 장판파의 장비처럼 지키고 서있던 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하는 짓은 장비와 거리가 멀다. 이 중장갑 두른 떡대가 제 동료들의 광란 앞에 몸을 사리지만 않았어도, 나와 경태는 아래로 떨어진 놈들을 다 죽이지 못했을 테니. 이제 근육돼지는 제 동료들이 싹 다 죽은 참상을 보곤 아까보다 더 겁을 먹은 표정이다. 덩치가 크다고 담까지 크라는 법은 없는 것이었다.

티팅! 티팅! 티티티팅! 방패를 조금씩 움직여가며 한 탄창 분량의 납탄 전부를 도탄시키자, 제 빈약한 화력에 좌절하고 경태의 견제사격에 겁먹은 중갑 떡대는 손을 떨며 다시금 회랑으로 물러나려 들었다. 동시에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쉐밍! 텐린! 도와줘! 빨리! 여기 다 뒤졌어!”

놓칠까 보냐. 방패와 크로우 바를 놓아버린 나는 죽은 돼지의 해머를 주워 들고서 한 층 반 높이를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역전되는 눈높이. 어어? 어어?! 하고 뒷걸음질이 급해지는 사냥감. 소총의 재장전은 아직이다. 마음 급한 놈이 팔에 끼운 방패를 칼처럼 휘둘러오기에, 나는 전신 근육을 쥐어짜는 수준의 망치질로 맞받아쳤다.

“어억! 씹-”

방패가 대각선으로 찌그러지며 근육돼지의 전면방어가 열린다. 나는 거의 뜬 채로 받아치다시피 한 반동에 저항하는 대신, 처음 내딛은 발을 축으로 반 바퀴를 돌면서 망치머리를 당겨 뒤로 내질렀다. 남은 발로는 바닥을 찍으며 기다란 자루 전체에 힘과 체중을 밀어 넣는다. 그러자 망치 머리부터 자루를 타고 전해지는 떡! 하는 충격. 망치에 스친 돌격소총이 거칠게 흔들린다. 그러고서 몸을 돌려보면, 근육돼지는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수제 방탄 투구의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보호경 안쪽에서 한 쌍의 충혈 된 눈이 나를 올려다본다.

“아, 안 돼!”

돼. 나는 천장에 닿을 만큼 치솟은 망치를 전력으로 내리찍었다. 불꽃이 튀는 자리, 두꺼운 강철 투구의 정수리가 푹 꺼져 들어간다. 곧이어 비뚤어진 투구의 아래쪽 틈으로 피가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떡대는 즉사를 면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어깨를 바들거리기에, 나는 놈의 팔을 걷어차 완전히 엎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바닥에 닿은 머리통을 내리찍는 망치질로 다시 한 번 강타했다. 콘크리트와 망치머리 사이에 낀 둥근 투구가 타원형으로 찌그러진다. 얼기설기 고정시켰던 방독 필터가 빠지더니 그 구멍으로도 부글거리는 피가 새어나왔다.

나는 격한 반동 및 움직임에 제자리를 이탈해버린 끈과 고리들을 원위치로 되돌렸다. 왼쪽 어깨엔 2점식으로 조여 등 뒤로 돌린 대물 저격총의 끈(Sling)이, 오른쪽 어깨엔 1점식으로 고리를 만들어 조인 단축형 돌격소총의 끈이 있었다. 이렇게 총을 둘이나 가지고 다니려니 근접전에선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거운 발소리들이 새로이 가까워졌다. 반대편에 배치되어있던 적 정예의 나머지 절반이다. 몇 개의 벽 너머를 투시해보면, 원래 지키던 자리들을 내팽개치고 황급히 달려오는 건달패거리의 모습들. 난 즉시 한 개 조를 추가로 불러올렸다.

“3조. 5층으로 올라와 적의 뒤를 쳐라. 최대한 빠르게. 전방에 1조가 있을 테니 오인 사격에 주의할 것. 이후 1조장이 지휘한다.”

「3조 입감.」

아래쪽은 충분히 정리된 상황이었다. 본래의 목적을 잊었는지 포기했는지, 증원으로 몰려오던 놈들은 굽어지는 골목과 담벼락 뒤에 숨어 조준도 없는 총질을 거듭할 뿐이었으므로. 전술적으로 표현한다면 적을 완전히 돈좌(頓挫)시킨 셈이었다.

“1조장, 너는 아까 남긴 애들과 합류해서 공격을 개시해. 지금 바로. 3조도 네가 통제해라.”

내 지시에 경태가 바닥에 난 구멍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대장은요?!”

“가!”

일일이 설명할 틈이 없었다. 끄덕인 경태가 비상계단 방향으로 달려가더니, 십여 초 후부터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십여 초가 더 흐르니 깡패 놈들이 비워놓은 층계로 3조가 올라와 깡패 놈들이 쌓아놓은 엄폐물들을 장악했다.

포위공격은 언제나 옳다. 무전으로 호흡을 맞추며 차례로 사격을 가하는 1조와 3조의 합동공격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적들은 조직력이고 뭐고 다 내다버린 채 좌우의 방으로 흩어졌다. 덩치와 방어력이 좋은 근육돼지 둘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버렸고.

내가 경태를 보내며 주목한 것은 바닥 무너진 방의 가장자리에 떨어져있는 원격 발화장치였다. 깡패들이 흑해자당을 본받아 준비한 깡통형 급조폭발물의 격발기다. 하나의 격발기에 세 개의 폭탄이 물려있었다.

‘그래도 아주 멍청한 놈들은 아니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방에 배치된 폭발물들을 보며 하는 생각이었다. 이 급조폭발물(EFP)이 발사체를 투사하는 지향성 폭탄이라곤 하나, 화약을 채운 용기 자체가 파열하는 이상 폭발력의 7할 가량은 전방위로 확산된다. 투사체가 쏘아지는 방향 이외로도 수류탄을 능가하는 살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두껍고 튼튼한 용기를 쓴다면 또 모를까.

저 중동에선 이걸 모르는 미숙한 테러리스트가 지향성이라는 것만 듣고 바로 옆에서 폭탄을 터트린 사례가 있다. 대구경 화포 뒤에 서있다가 주퇴복좌기에 맞아 뒈지는 어리바리한 신병과 같은 경우였다.

방 사이의 문으로 이동하여 폭탄의 편각(偏角)을 조정한 나는, 바닥이 무너진 방으로 돌아와 적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꾹.

콰콰쾅!

발사체 셋이 벽을 뚫는다. 사람을 죽이는 세 개의 직선. 폭탄이 부실한 만큼 벽도 부실하여, 돌 부서진 파편들이 부상자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 궁지에 몰린 채 서로에게 위험한 역할을 떠넘기던 깡패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이제 나는 대물 저격총을 들었다. 자리를 옮겨, 폭탄이 만든 구멍을 총안구 삼아 보이는 적들을 모조리 쏴 갈긴다. 어설픈 방탄복으론 50구경 철갑탄을 막을 수 없었다. 한 번의 격발에 두 명의 몸이 찢어지기는 예사. 이 사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달아났다가 경태 이하의 화망에 걸려 누더기가 되기도 했다.

“으아아아아아!”

망치를 든 근육돼지가 몸통으로 이쪽 벽을 들이받았다. 단숨에 제 덩치만큼의 구멍을 내는 기세는 그야말로 두 발 달린 중장비 그 자체. 중갑 떡대 하나가 투사체 직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으므로, 이놈이 떡대 중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후웅! 망치가 바람을 찢는 소리. 벽이 무너질 때 뒤로 빠진 나는, 다시금 망치질을 피하며 연속으로 물러났다.

“1조, 3조! 전진! 밀어붙여!”

무전을 날리고서 대물저격총의 잔탄을 쏴 갈긴다. 쾅, 쾅! 연속으로 나간 철갑탄이 한 발은 튕겨 나가고 한 발은 장갑을 뚫었다. 이 중갑 떡대들의 갑주는 심장을 방호하는 부위가 특히 더 두꺼워 대물 저격총으로도 뚫을 수 없었다.

“널 죽이겠다!”

총상을 입은 떡대는, 그럼에도 아드레날린이 돌았는지 아픈 기색조차 없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상대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공격성.

허나 느리다.

덩치만큼은 엘 마에스뜨레에 버금가는 주제에 힘과 속도로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느낌. 회로의 질부터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대물저격탄이 바닥난 나는 총을 창처럼 던져버리곤 회피를 거듭하며 투우사처럼 중갑 떡대를 끌어들였다. 떡대 배후의 적 생존자들은 이쪽을 신경 쓸 겨를도 없어보였다.

“이……! 쥐새끼 같은 게……!”

콰르르르! 또 하나의 벽이 망치질 세 번에 철거된다. 전투흥분으로 미친 듯이 치솟은 심박과 전력을 다하는 망치질로 인하여 떡대의 숨결은 급속도로 거칠어졌다. 더불어 타르가 끼어 까맣게 변색된 폐가 혹사를 당하는 중이었다. 자연 각성자 특유의 불균형한 강화로 인해 심폐근력이 활동능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다. 흡연자가 아니었다면 생존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갔을 것을. 이래서 사람은 담배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 발을 걸자, 떡대는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져서는 내가 뜯어놓은 구멍을 통해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쿠웅-! 하는 둔중한 울림. 떨어진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난 짤막한 대검(帶劍)을 뽑아 뛰어내리며 투구와 흉갑 사이의 틈으로 칼날을 찔러 넣었다. 뿌득, 뿌득, 탱강! 휘젓는 힘을 못 버틴 칼이 안에서 뚝 부러진다.

“게흑……. 끄륵…….”

입으로 꿀럭꿀럭 핏물을 게워내며, 두 눈을 부릅뜬 채 내 몸을 움켜쥐는 떡대. 손아귀에 힘을 꽉 주는 걸 보니 갈빗대를 으스러뜨려 죽이겠다는 심산이었다. 가더라도 혼자 가진 않겠다는 거지.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강화술식의 격 자체가 다른데. 내 비록 회로의 출력을 억제하고 있을지라도, 이런 놈의 악력에 다칠 만큼 약체가 되진 않는다. 영상기록만 아니었어도 처음부터 힘 싸움으로 제압했을 것이다.

곧 큼지막한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끝났나?”

물어보니, 근육돼지의 두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영글었다. 아무리 더럽게 산 인간이라도 죽어가며 흘리는 눈물은 맑은 법이었다. 난 중갑 떡대의 손을 떼어 바닥에 내던졌다. 팽개쳐진 손은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이제 위층을 보면, 아까부터 홀로 제 사무실을 지키던 후롱방의 방주는 담배를 안주삼아 술을 홀짝대는 중이었다. 부하들이 다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혼자 폼을 잡고 앉아 우수와 자조에 잠겨있었던 한심한 리더.

그 외에 더 이상 저항하는 적은 없었다. 나는 전진하는 경태 이하를 응시하며 무전으로 지시했다.

“1조, 3조. 두목은 산 채로 확보해라.”

이번 사냥의 끝이 목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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